Travel :: Amsterdam

Unpredictable Amsterdam
예측불허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이란 도시를 가장 잘 여행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운하를 따라 작은 골목들을 마냥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박물관에 들어가 가장 느린 걸음으로 둘러보는 것이다. 마약과 매춘을 공식적으로 합법화한 나라이지만 빈센트 반 고흐와
렘브란트의 자취에 발걸음이 경건하게 멈춰지는 예측 불가한 곳이기도 하다.
글과 사진 차예리 기자

물의 도시
암스테르담은 암스텔 강 하구 부근의 평지를 댐으로 막은 후,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 운하로 인해 나뉜 70여 개의 인공 섬을 500여 개의 다리로 연결한 희한한 도시이다. 암스테르담의 진면목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운하를 따라 걷는 것이다. 촘촘한 그물처럼 이어진 운하마다 거의 똑같은 키의 나무들이 이어져있고 작은 집들은 모두 비슷한 높이로 빽빽하게 들어서있다. 비슷한 듯 다른 골목 사이로 걷다 보면 길을 잃기 십상이니 지도를 손에서 놓아선 안 된다. 운하를 걷다 보면 자주 보이는 물위의 집은 실제로 암스테르담의 주민들이 사는 집이다. 전기 공급은 물론 편지까지도 배달된다고 하니 완벽한 수상주택인 셈. 국토의 대부분이 해수면 아래인 네덜란드는 물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운하이다. 그런데 암스테르담에서는 운하가 워낙 많아서 관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수질이 악화되어 매년 정화작업을 하는 데만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것. 더 이상 배를 주요 운송수단으로 쓰질 않으니 운하가 불필요해서 없애자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비록 스쳐가는 여행객의 입장이지만 아름답고 운치 있는 운하의 존폐논란이 안따깝게만 느껴진다.

전 세계의 도시 중에서 면적당 박물관이 가장 많은 도시인 암스테르담. 운하를 따라 작은 골목골목을 누비다 보면 어느새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지루하다며 발길을 멀리하던 여행자들도 암스테르담에서만큼은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고흐 미술관과 국립박물관에 이어 렘브란트의 집을 거치면서 뇌리에 박힌 생각은 가는 곳곳마다 아이들이 많다는 것. 아이들이 한 작품 앞에 모여 앉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 모습이 우르르 스쳐 지나가는 우리네 미술관의 모습과는 달랐다. 한 장의 그림을 관찰하는 아이들의 눈이 신중하면서도 예리하다. 어렸을 때부터 고흐와 렘브란트를 보고 자란 암스테르담 아이들의 삶 속에는 이미 예술이 익숙해 보이는 듯하다. 마치 미술서적에서만 보던 명화를 실물로 볼 때 느껴지는 희열 같은 것이 일렁인다.

고흐 미술관에서 그와 눈을 마주치다
생전에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끝내 병과 자살로 삶을 마감한 불행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의 자화상에 그려진 슬픈 눈빛을 따라 미술관으로 향했다. 작품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현대적인 회색빛 건물로 들어서는 길에는 고흐의 주요 작품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그 벽 앞에 무심코 세워진 자전거와 뛰어 노는 아이의 모습까지도 작품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조용하면서도 분주하게 눈동자를 움직이며 거대한 예술이 방대하게 펼쳐져 있는 전시장의 작품들을 마음 속에 담아가기 위해 부산하다. 물론 우리의 그릇에 담기에는 너무 넘치겠지만 한 장의 그림으로 고흐의 불행했던 삶과 예술 세계를 느끼기 위해서 끊임없이 들여다보았다.
한 작품 앞에 둥글게 서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만났다. 암스테르담 사람들의 고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느껴진다. 고흐와 가까이 살아가는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예술을 평가하기 보다는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데 익숙하다. 예술에 대한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그들의 일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고흐는 수많은 명화를 남겼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작품은 <해바라기>일 것이다. <해바라기>를 빼놓고 고흐를 말한 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고흐는 친구이자 동료 화가였던 폴 고갱과 함께 지낼 프랑스 아를의 노란 집의 벽을 장식할 해바라기를 여러 작품 그려냈다. 해바라기를 유달리 좋아했던 고흐는 수없이 해바라기를 그렸지만 그 중에서 단 두 점만이 고갱의 방에 걸릴 수 있었다. 그 두 작품 중에 하나가 바로 1888년에 완성된 12송이가 그려진 <해바라기>이며, 현재는 암스테르담 고흐 미술관의 벽을 장식하고 있다. 고흐 미술관에는 <감자 먹는 사람들>, <화가의 침실>, <작가의 초상>, <까마귀 밀밭> 등을 포함해서 약 2백 여 점의 회화, 5백 여 점의 소묘, 750여 점의 개인 기록 등을 간직하고 있다. 생애의 흐름에 따라 전시하고 있으며, 예술적인 성장 과정을 시기별로 감상할 수 있다.

‘I am sterdam’,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Rijks Museum
암스테르담 하면 떠오르는 문구 ‘I am sterdam’. 가장 암스테르담다운 이 기발한 문구는 국립박물관 앞에서 만날 수 있다.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거쳐 가는 이 곳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I am sterdam’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국립박물관은 1885년에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17세기 황금시대를 누린 네덜란드의 영광이 살아 숨 쉬는 듯하다.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네덜란드 회화와 조각이 대부분이며, 유리 은세공과 인형의 집과 같은 독특한 수공예품도 전시하고 있다. 국립박물관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시간을 여유롭게 비워두고 가장 느린 걸음으로 둘러보길 바란다. 단 한 작품도 쉽게 지나칠 수 없을 것이 때문. 문고리 하나에서부터 벽과 천장까지도 예술로 가득 차있다.
국립박물관에는 수많은 예술가의 작품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 받는 예술가는 단연 렘브란트이다. 렘브란트의 그림은 전 세계의 미술관에 흩어져 있으나 최고의 컬렉션은 국립박물관의 벽면에 자랑스럽게 걸려있다. 17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는 캔버스 위에서 빛과 어둠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화가이다. 그 뛰어난 솜씨는 <야경>에서 잘 나타난다. <야경>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어서 제대로 된 사진한 장 찍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크기의 그림에서 웅장함이 느껴지고 압도당한 듯하다.
렘브란트에게 최고의 명성을 안겨준 작품인 <야경>에는 숨겨진 뒷 이야기가 있다. <야경>을 보고 있으면 왠지 가로가 짧다는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바로 1715년에 암스테르담 시가 그림을 시청사로 운송 중에 가로를 잘랐기 때문이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세계인을 불러 모으는 명작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해 벌어진 비극(?)이겠다. <야경>이 특별한 이유는 당시까지만 해도 같은 조명 아래서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을 같은 크기로 그려내던 초상화와는 달리, 다양한 회화적 구도와 특유의 명암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야경>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이 작품의 정식 제목은 <프란스 바닝 코크 대장의 부대>이다. 암스테르담 시장의 사위였던 프란스 바닝 코크의 의뢰로 그리게 되었는데 세월이 지남에 따라 먼지가 쌓이고 색조가 변하면서 <야경>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렘브란트의 집에 초대받다
렘브란트의 집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흥분으로 가득 찼다. 꼭 두루마리 휴지라도 하나 손에 들고 가야 할 것만 같다. 렘브란트가 잤던 침대와 그가 썼던 이젤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정말 꿈에서나 바라던 일이다. 저 멀리 렘브란트의 얼굴이 새겨진 깃발이 펄럭이는 집이 보였다. 순간 초록색 대문을 열고 금방이라도 그가 나올 것만 같다. 그의 숨결이 남아있는 집이 있는 거리는 이미 1639년으로 돌아가 있었다. 렘브란트는 1639년에 이 벽돌집을 산 후, 1660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화가로써 전성기 시절을 보내며 <야경>을 포함한 수많은 명작들을 그려낸 바로 그 곳이다. 집은 암스테르담 시내 한 가운데 위치해 있다. 렘브란트는 갈색벽돌의 3층 집을 사기 위해 거액의 돈을 들였지만 결국 파산지경에 이른 그는 집을 경매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무너져가는 집을 1906년부터 암스테르담 시가 복원하기 시작했다. 렘브란트의 집 옆으로는 미술관이 이어져있으며 에칭판화와 드로잉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암스테르담’하면 아름다운 튤립이나 고흐, 렘브란트와 같은 예술가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약과 유럽 최대 홍등가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곳이다. 하지만 누구든 고흐와 렘브란트를 만나고 나면 도시 곳곳에 깊게 각인된 그들의 향취와 색채에 어떤 이미지를 마음 속에 담아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암스테르담은 결코 하나의 이미지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예측불허의 도시라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될 것이다. 귀국 행 비행기내에서도 자꾸 암스테르담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