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lovers of the world of romance begins

Jane Austen

세상 모든 연인들의 로맨스가 시작된다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 1775-1817)의 집이자 박물관인  제인 오스틴 하우스 뮤지엄은 런던 시내서 차로 한 시간, 필자가 사는 한인촌 뉴 몰던에서 삼 십분 밖에 안 걸리는 곳에 있다.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원지방으로 손꼽히는 햄프셔주의 초톤Chawton은 숲 속에 숨어 있는 듯한 작은 마을이다.
런던에서 겨우 한 시간 거리에 이렇게 평화로운 들판과 고즈넉한 마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동네 집이라 해 봐야 20채를 넘지 않는 정말 있는 듯 없는 듯 들판 속 깊숙이 자리잡은 마을이다. 자그만 하고 단아한 모습의 마을은 바로 초상화에서 보는 앞머리를 얌전하게 내린 작가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그런 마을 초입에 제인 오스틴이 마지막 7년을 보낸 붉은 벽돌집이 위치하고 있다.
글과 사진 권석하 편집위원

18세기 말엽의 영국을 고스란히 담은 그녀
박물관은 제인 오스틴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비롯해 소소한 물건들을 비롯해 그녀가 글을 쓰던 자그만 탁자까지 정말 잘도 모아 놓았다. 특히 마을길이 내려 다 보이는 이층 방 거실 창문 옆에 있는 탁자 옆에 서면 그곳에 앉아 글을 쓰던 그녀의 모습이 굳이 눈을 감지 않아도 떠 오른다. 이렇게 방방마다 그녀의 체취가 남아 있는 듯 해 흡사 타임머신을 타고 200년전으로 돌아 온 느낌이다. 보통 이런 기념건물들은 내셔날 트러스트 같은 전국적인 유적보호단체의 소속인데 비해 제인 오스틴 하우스 뮤지엄은 독립된 재단이 보존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잘 유지되고 있어 참 흐뭇하다.
단 여섯 편의 소설만 썼음에도 제인 오스틴의 인기는 200년이 지난 지금도 식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가장 영화화가 많이 된 작가 중의 하나이다. 그녀의 소설은 비평가들에 의해 소녀적인 취향이라는 천만부당한 폄하를 가끔 받기도 한다.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이 사랑과 결혼에 연연해 하는 스토리 탓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실제 말하고자 하는 뜻은 결코 그런 것은 아니다. 제인 오스틴 작품 속의 여주인공들은 작가와 같은 시골마을의 처녀들이다. 제인 오스틴은 그녀들의 삶을 자신의 얘기를 하듯 잔잔한 필치로 적어 갔다. 인간에게서 가장 중요한 사랑과 결혼을 통해 당시 사회를 조용히 들여다 보고 그를 종이 위에 옮겨 놓았다.

당시에도 결혼은 조건의 결합이었다. 여자가 부잣집이나 세도가로 시집가기 위해서는 미모와 함께 어느 정도의 지참금도 있어야 했다. 물론 남자는 상당한 수입이 보장되는 사회적인 지위와 함께 부도 갖추어야 마음에 드는 가문의 아름다운 규수를 자신의 아내로 맞을 수 있었다. 이런 지금도 별 다를 바 없는 18세기 말엽의 영국 사회적인 현상을 작가는 결코 흥분하지 않고 조용히 독자들 앞에 꺼내 놓았다. 자신이 옳다 그르다를 애써 나서서 강변하지 하지 않고 그냥 사실적으로 묘사만 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세심한 인생의 화가fine painter of life’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조용한 혁명가Quiet Subversive’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장 사실적으로 당시 사회를 묘사하면서 결코 작가가 앞에 나서서 선동하지 않으면서도 당시 물질 중시 사회 풍조를 꾸짖었다는 말이다.

조건을 버리고 사랑을 택한 혁명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보다 보면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소녀들이 좋아하는 ‘빨간 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이라고 번역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이나 요한나 스피리의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어른 버전 같은 느낌이 든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서는 음모, 배신, 살인, 거짓 같은 엄청난 갈등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아름다운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아픔이 있고 조건을 따져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는 갈등만 있을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조개잡이’, ‘구월이 오면’의 영국 작가 로자문드 필처가 제인 오스틴의 성향을 따르는 작가이다. 필처의 소설에는 결코 악한이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들 선의의 사람들의 삶이 차분하게 전개되고 있어 언제나 산뜻하고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나면 마음이 항상 따뜻해짐을 느낀다.
제인 오스틴이 살던 당시는 정말 애정으로 결혼하는 시대가 아니고 조건을 보고 결혼을 하는 시대였다. 집안의 이해에 따라서 가문끼리의 정략결혼marriage of convenience을 무조건 해야 하는 시대였다.

제인 오스틴은 이런 당시의 풍조를 비판하고 사랑이 우선해야 함을 조용히 작품으로 주장했다. 본인도 사랑하지 않는 결혼을 거부했다. 같은 동네의 6살 연하 해리스 비그위더Harris Bigg-Wither라는 지방 부자 아들의 청혼을 받아 들였다가 다음날 파혼했다. 비그위더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방금 옥스퍼드 대학을 마치고 와서 제인에게 청혼을 했다. 제인으로서는 아버지와 형제들의 의존을 벗어날 유일한 기회였고 부모들의 은퇴 후 삶과 언니의 장래를 보장해 줄 절호의 기회를 버린 셈이다. 제인 오스틴은 그에게서 전혀 매력을 못 느꼈다. 덩치가 크고 섬세하지 못하고 말이 너무 없고 말을 하면 더듬으면서 공격적이던 그를
도저히 사랑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나중에 조카에게 쓴 편지에서 ‘그런 사람을 정말로 사랑하지 않고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 애정 없이 결혼하는 일 이외에는 어떤 것도 좋고 견딜 수 있다’고 했다. 결혼이 직업이었고 모든 여자들의 꿈이 결혼이었던 당시로서는 정말 혁명적인 사고였고 그 생각을 자신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단호하게 행동으로 옮겼다는 점이 더 놀랍다. 그녀의 이런 생각은 작품 ‘이성과 감성’의 주인공 엘리너의 이성에 따른 결정과 메리앤의 감성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나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렇게 제인 오스틴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고를 작품으로 설파하고 자신도 행동으로 나타냈다.

제인 오스틴의 슬픈 사랑의 추억 ‘비커밍 제인’
제인 오스틴에게도 이루지 못한 아픈 사랑이 있었다. 제인은 26살이던 1801년에 초톤의 친척을 방문 하러 온 아일랜드 태생의 토마스 루프로이와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제인은 언니에게 쓴 편지에 ‘내가 만일 언니에게 내 아일랜드 남자친구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말하면 아주 놀랄 것이다. 우리는 같이 앉아 있거나 춤을 출 때 상상할 수도 없는 일까지도 했다’고 자랑스럽게 고백할 정도로 진한 사랑을 했다. 나중에 아일랜드의 수석 재판관이 된 토마스 루프로이는 자신의 조카에게 제인 오스틴과 젊었을 당시 한 때 사랑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삼촌의 후원 하에 런던에서 변호사 수업을 하던 토마스 루프로이로서는 삼촌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제인을 멀리할 수 밖에 없었다. 가난한 젊은이 둘 이서는 장래를 같이 설계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장애를 사랑만으로 결국 넘지 못한 것이다.

그 아픔 탓인 지 루프로이는 결혼 후 첫딸의 이름을 제인이
라고 지었다. 이런 스토리를 가지고 만든 영화가 2007년에 개봉한 앤 해서웨이 주연의 ‘비커밍 제인’이다. 제인 오스틴은 이렇게 자신의 삶을 자신의 작품 속에 녹여 넣었거나 작품처럼 삶을 살았다. 오스틴은 첫 작품 ‘감성과 이성’을 자신의 이름이 아닌 ‘어느 숙녀By a Lady’라는 익명으로 밖에 발표할 수 없었다. 영국의 여류소설가인 조지 엘리엣의 본명은 메리 앤 에반스이다. 브론테 자매로 알려진 사롯테, 에밀리, 앤 보론테 자매들과 작품 발표는 큐러, 엘리스, 액톤 벨이라는 남자이름으로 발표를 했다. 당시는 여자가 유명해지는 일은 여성답지 못하다는 편견이 있었다. 해서 여자들은 작품활동을 공개적으로 할 수가 없었고 사회적인 활동마저도 활발하지 않았다. 남자들이 동행하지 않은 외출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 여겼다. 이 때 지어진 런던 극장가인 코벤트 가든의 극장들은 지금도 여자 화장실이 아주 적어 공연 중간 휴식시간이면 긴 줄이 이어지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도 이때문이이었다.

제인 오스틴을 만나기 위해 떠난 시간여행자들
세상에는 제인 오스틴을 정말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찰스 디킨스 같은 작가들도 열성 팬이 참으로 많지만 그래도 제인 오스틴 팬들에 비할 수가 없을 정도다. 제인 오스틴 팬들의 극성은 그들을 일컫는 제이나이트Janite라는 단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제이나이트를 나타내는 단어나 현상을 이르는 말은 참 많다. Austenian, Austen-worshipper, Austenpros, Austenites, Austenolatry, Janeism 같은 말부터 Austen Cult, Austen Culture, Austen-land 같은 단어도 있다. 심지어는 제인 오스틴을 ‘Divine Jane(신성한 제인)’이라고 까지 부른다. 이런 ‘제이나이트 현상phenomenon’을 하위 문화subculture 적인 풍조라고 구분하기도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런 현상은 너무 오래가고 있다. 지난 100년간 미국을 중심으로 이런 현상이 이어지고 있고 최근에는 영화와 BBC TV의 그녀의 소설을 드라마 시리즈화 해서 더욱 불이 붙었다. 제인 오스틴이나 그녀 소설 속의 인물 등과 관련한 별별 상품이 다 만들어지고 팔린다. 심지어 당시의 의상을 입고 모임을 가지는 일명 ‘코스프레 의상댄스costume balls’까지도 열린다. 오스틴과 관련된 장소를 성지순례를 가듯이 간다. 당시의 옷을 입고 지금은 사라진 영국 전통의 향수를 찾아가는 시간여행자들의 모임이나 다름없다.

TV 시리즈 ‘스타트랙의 광 팬들을 일러 ‘트렉키Trekkie’라고 하는데 거의 그들과 같다고 보면 된다. 매년 미국 오스틴 소사이어티(Jasna) 주최로 오스틴의 생일에는 제인 오스틴이 살던 시대의 복장으로 모여서 잉글리쉬 티를 마시고 제인 오스틴 퀴즈와 게임을 한다. 5000여명의 회원이 있고 매년 거의 1000여명의 회원들이 당시의 복장을 입고 모인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오스틴의 소설이 여섯 개에 불과해서 너무 아쉬운 탓도 있고 영국적인 것에 대한 미국인들의 향수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또한 오스틴의 소설이 워낙 센치멘탈한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성향이 있어서라는 분석도 있다.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 것은 1, 2차 양 세계대전 동안 총탄이 오고 가는 참호 안에서 군인들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보고 안식을 찾았다는 유명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고향을 떠올리고 그러면서 전장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 것이다. 정글북으로 유명한 루디야드 키플링은 그래서 ‘데빗 앤 크레딧’이라는 단편모음집에 수록된 ‘더 제이나이트’라는 단편에서 이런 군인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썼다.

2017년 10파운드 지폐로 태어날 그녀
2013년 소더비에서 제인 오스틴의 후손이 소유하던 제인 오스틴 초상화가 무려164,500 파운드(한화3억 원)에 팔렸다. 그리고 이 초상화는 오스틴의 언니 카산드라가 연필로 그린 스케치를 기본으로 해서 제인 오스틴의 조카가 화가에게 의뢰해서 수채화를 그린 작품으로 앞으로 3년 후인 2017년에 10파운드 지폐에 등장하게 된다. 카산드라가 생전에 인정해서 ‘확실한definitive 초상화’라고 불린다. 지금까지 영국 파운드화에 등장한 여성으로는 브리타이아 여신, 현 여왕 엘리자베스 2세, 간호사의 상징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영국 교도소 개혁가 엘리자베스 프라이에 이어 다섯 번째이다. 현재 5파운드 지폐에 들어 있는 영국의 여성 사회개혁가인 엘리자베스 프라이의 초상화가 2016년부터 윈스턴 처칠로 바뀌게 되자 ‘영국 화폐에 여성을 지키자’라는 운동이 벌어져 35,000명의 서명을 받아 마침내 제인 오스틴이 선정된 것이다.

2011년 7월 제인 오스틴의 미완성 소설인 ‘왓슨가의 사람들’ 친필 원고가 99만 파운드(17억 원)의 추정가보다 무려 3배 많게 팔렸다. 제인 오스틴의 원고를 분석한 학자들은 제인 오스틴의 원고에서 문법이나 철자가 틀린 부분이 많이 보인다고 발표했다. 출판 전에 편집자에 의해 상당한 손질이 가해 졌다는 뜻이다. 1818년 그녀의 오빠 헨리 오스틴은 "제인의 문장은 더 이상 누가 손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라고 해서 세상은 그렇게 믿었다. 사실 그녀는 정규교육은 11살까지 밖에 못 받고 아버지와 손위 오빠들로부터 교육을 받거나 독서를 통해 지식을 습득했을 뿐이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소소한 철자법이나 문법의 잘못이 5살에 벌써 ‘사랑과 우정’이라는 글을 써서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15살에 단편, 21살에 첫 장편소설을 완성한 그녀의 천재성에 흠을 끼치지는 않으리라.

초톤에는 아직도 그녀가 살고 있다
제인 오스틴에 관한 뉴스는 계속된다. 2013년 미국의 팝 가수인 켈리 클락슨이 소더비 경매장에서 제인 오스틴이 끼던 반지를 152,450 파운드(2억 7000만원)에 샀다. 이 가격은 원래 추정가의 5배가 넘는 가격이다. 하지만 미국으로 가지고 나가지 못했다. 영국법에는 이런 국가적인 기념물이 될만한 조상의 유물들은 영국 내에 다른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아야만 가지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두 달을 기다려야 하고 다시 세 달을 연장 할 수 있다. 이 반지는 제인 오스틴이 소유하던 패물 3점 중의 하나이고 언니 카산드라가 가지고 있다가 후손들에 의해 전해 오던 물건이었다. 만일 이런 물건을 영국 내 개인이 사서 후손에게 물리되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면 일년에 100일은 일반에게 공개해야 한다. 현재 이 반지는 초톤의 제인 오스틴 박물관이 전국적인 모금을 전개해 만든 자금으로 구입해 전시하고 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진 계기는 그녀의 사후 반세기도 더 지난 1870년에 출간된 오스틴의 조카 제임스 애드위드 오스틴-리의 ‘제인 오스틴의 회상록’에 의해서이다. 이렇게 시작된 제인 오스틴 바람은 20세기를 들어서면서 학계를 비롯해 일반인들에게 본격적으로 번져 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작품은 처음에는 ‘촌스럽고 조용하다provincial and quiet’는 평을 받았다. 그녀의 작품이 일반인의 기호와는 달리 너무 줄거리가 단순하다고 했다. 즉, 극적인 효과가 없다는 말이다. ‘제인 에어’의 작가 샤롯 브론테의 평이 가장 유명하다. 샤롯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작품이 너무 조심스럽고 빈틈이 없어 열정이 안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세심하게 선정된 화초들이 잘 가꾸어진 깔끔한 담장에 잘 쳐진 정원 같다. 그러나 거기에는 화려한 색깔의 어떤 모습도, 펼쳐진 들판도, 신선한 공기도, 하늘 아래의 푸른 언덕도, 아름다운 개울도 볼 수 없다.’고 점잖게 비평을 했다. 당시는 브론테 자매들 작품처럼 계급을 뛰어 넘는 불 같은 사랑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햄프셔의 아름다운 전원에서 조용하게 살아 온 제인 오스틴에게서는 그런 질풍노도의 작품이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작가의 작품도 결국은 환경의 산물일 수 밖에 없다. 브론테 자매들이 자라고 죽은 ‘폭풍의 언덕’의 무대 요크셔 탄광마을 하워스에서 보는 세상은 황량하고 어둡고 우울하다. 탄광에 오염된 물로 인해 영아사망률이 60%를 넘는 척박한 곳에서 침실 창문에서 보이는 것은 교회 무덤뿐인 곳이다. 마을을 둘러싼 언덕들에는 언제나 바람이 불고 들판에는 유난히 매서운 겨울이 빨리 온다.

이런 곳에서 어릴 때 어머니마저 여위고 이모 손에서 큰 브론테 자매가 쏟아내는 소설에는 누구의 것보다 더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감정들이 실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스틴이 자라고 살다가 죽은 햄프셔 지방은 평온하고 부드럽기만 하다. 사시사철 푸르고 겨울에도 잔디가 죽기 않고 살아 있는 곳이다. 평화롭기만 한 언덕과 들판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고 다니는 양들, 얕게 둘러쳐진 돌담과 그 사이를 졸졸 소리도 내지 않고 흐르는 개울들, 그리고 푸른 하늘 위에서 지저귀는 종달새. 이런 것들이 오스틴이 자란 고향 마을 주변의 풍경이다. 그 안의 오스틴이 살던 마을 초톤도 지난 200년간 잠에 들었다 금방 깨어난 듯 전혀 달라 지지 않았다.
초톤에서 살다가 당시로서는 원인 모를 병인 에디슨 병으로 1817년 41세의 나이로 사망해 근처 윈체스터 대성당에 묻힌 제인 오스틴. 필자가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다니는 A3 도로를 계속 가면 그녀가 살던 초톤도 나오고, 태어난 스티븐턴도 나오고, 묻힌 윈체스터도 나온다. 또 그녀의 활동 무대였던 베이징스톡, 래딩, 판함 등도 자주 지나치는 마을들이다. 그 곳의 이름이 도로 표지판에 나타나면 언제나 제인 오스틴의 단아하고 우아한 초상화의 얼굴이 아련하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