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and Rural

Mexican Mood, Isla Mujeres

리얼 멕시칸 무드의 섬, 이슬라 무헤레스
진짜 멕시코 스타일에 취하는 법. 칸쿤에서 페리에 몸을 싣고 30분을 항해해 이웃섬 이슬라 무헤레스로 간다.
그리고는 잔잔한 카리브해에 몸을 담그고, 골프카트를 타고 해안도로를 질주하며, 알록달록한 컬러의
뒷골목을 산책하고 데낄라를 마시며 멕시코 로컬의 서정을 탐할 것.
글 함희선 기자 사진 최은주 기자 취재협조 드림아일랜드 02-566-3612, dreamisland.co.kr

칸쿤은 멕시코가 아니야. 단순하게 표현하면 멕시코에 있는 미국? 그렇게 생각하면 돼. 정말 미국의 휴양지에 살고 있는 것처럼 나는 불편한 게 하나도 없어. 호텔 존의 사람들은 영어도 잘하는 데다가 웬만한 곳에서는 달러까지 쓸 수 있거든.” 꽤 오래전 칸쿤에서 호텔리어로 몇 년째 살고 있는 독일인 친구에게 멕시코에서 살만하냐고 물었을 때 들었던 말이다.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쳤는데, 직접 칸쿤에 가보고 나니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바다와 모래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해변 위에 몇 십 년에 걸쳐 계획적으로 세워진 칸쿤은 그동안 내가 생각한 프리한 멕시코와는 전혀 딴판이었으므로. 반듯하고, 화려하고, 세련되고, 멋지며, 완벽한 모습. 처음에 호텔 존에만 머무르다 보니 친구의 말처럼 멕시코라기보다는 미국 필이 좀 더 강하게 다가왔다.

만약 로컬들의 생활 무대인 다운타운의 털끝도 보지 않고, 오로지 칸쿤의 호텔 존 중심가에만 머문다면? 그야말로 멕시코 칸쿤 여행이었는데 멕시코 같은 멕시코는 코빼기도 보지 못한 채 마무리되고 말 거다. 물론 취향에 따라서 쿠쿨칸 블러버드를 오고 가며 럭셔리하고 편한 카리브 홀리데이를 만끽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다. 그래도 꼬박 하루에 가까운 시간을 투자해 먼 대륙까지 날아왔는데, 잠시라도 리얼 멕시칸 무드에 취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도 호텔 존을 만끽한 바로 다음날, 주저 없이 이웃섬으로 가는 페리에 몸을 실었다.

칸쿤 앞바다의 작은 섬 하나
리얼하고도 루럴한, 멕시코에 와있는 감상을 물씬 누리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칸쿤 앞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 이슬라 무헤레스Isla Mujeres가 있기 때문이다. 칸쿤에서 페리를 타고 30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살을 맞대고 사는 이웃으로 카리브해에서 가장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푸에르토 후아레즈Puerto Juárez의 선착장을 떠나 섬으로 향하는 페리에는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들이 가득했다. 이른 아침부터 그들은 2층의 갑판 위에 올라 토스트를 굽듯 1차 일광욕을 시작하며 판타스틱한 하루를 장전했다. 페리는 해변 위의 신기루 같은 호텔 존을 시야 뒤로 점점 밀어내면서 물감을 타놓은 듯 새파란 바닷물 위로 뽀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항해했고, 배는 금세 이슬라 무헤레스에 도착했다. 페리를 함께 타고 온 이들이 하나 둘 흩어지자 시간 여행자가 된 것처럼 조금 오래된 멕시코의 어촌마을에 뚝하고 떨어진 기분이 들더라. 칸쿤 본섬에서 겨우 10킬로미터 떨어져 있을 뿐인데, 섬의 시간은 느리고 평화롭게 흘렀다.

이슬라 무헤레스, 여인의 섬이다. 스페인 정복자에게 이런 이름을 얻었는데, 수 세기 전 그들이 섬을 찾아왔을 때 해안에 흙으로 빚은 여인의 조각상이 그렇게나 많았단다. 마야의 여신의 모습을 한 조각상들 말이다. 다른 설도 있다. 해적들이 스페인에서 오는 대형 범선을 약탈하는 동안 그들의 연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이 섬에 고립시켜 두었다는 것. 고고학자들의 신빙성 있는 설에 따르면 마야의 순례자들이 다산의 신인 익스켈Ixchel을 숭배하기 위해 코즈멜Cozmel 섬으로 가는 중간에 들리는 길목이 바로 이 이슬라 무헤레스였을 거라는 것이다. 여인의 조각상이 많이 발견되었다는 설이 더 유력하게 느껴지는 근거다. 지금도 설탕가루처럼 새하얀 모래사장에 누워 태닝하는 여자들이 수도 없이 많으니 여인의 섬이라는 수식어는 붙여도 문제없겠다.

마야의 여신이든, 아니면 비키니를 입은 오늘날의 여신이든, 늘 여인들로 붐벼왔던 이슬라 무헤레스는 한나절 여행으로도 충분하다. 볼펜처럼 길게 생긴 섬이 전체 길이가 8킬로미터, 폭은 150미터에서 800미터 사이에 불과한 작은 섬이라서다.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리는 새빨간 택시가 예뻐서 자꾸만 올라타고 싶지만, 섬 곳곳을 둘러보기에는 골프카트 만한 게 없다. 이슬라 무헤레스를 찾은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골프카트를 렌트해서 섬을 일주한다. 탁 트인 시야는 물론이고, 뜨거운 햇살이며 바람이며 하나도 빠짐없이 온몸으로 느낄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교통수단인 셈이다. 도로도 심플하고, 600페소면 하루 종일 빌릴 수 있는 것도 장점. 골프카트가 줄줄이 비엔나처럼 엮여서 도로 위를 누비는 독특한 광경도 이 섬의 매력이다. 숍이 밀집해있는 다운타운을 제외하고는 교통 체증 같은 건 눈을 뜨고 찾아봐도 없으니 끔찍하게 형편없는 운전자도 멕시코라고 겁먹지 말고 안심하시길.

이슬라 무헤레스 바다 이용법
섬 탐방은 북쪽 끝에서 시작한다. 이슬라 무헤레스 최고의 해변 플라야 노르테Playa Norte가 있으므로. 다운타운도 바로 코앞에 있어

1 카니발 기간을 맞이해 핑크컬러의 의상으로 한껏 차려입은 이슬라 무하레스의 주부님들.
2 그늘 아래 담소를 나누는 동네 어르신.
3 맥주와 데낄라를 파는 노천 펍에 그려진 알록달록한 그림에서 멕시코의 기운이 한껏 느껴진다.
4 뒷골목으로 파고 들어가면 이렇게나 예쁜 건물들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5 해변에서 놀고 있는 꼬마들.
6 이슬라 무헤레스의 레스토랑과 카페들은 이렇게 반쯤 오픈 되어 있다. 벽의 컬러도, 그 앞에 있는 세 의자의 컬러도 아주 사랑스럽구나.

1 4 카리브해의 낭만이 바로 이거다. 이슬라 무헤레스 북쪽 해변의 야자나무 밑에는 그물침대가 환상적으로 매달려있다. 잠깐이라도 누워보고 싶었지만, 워낙에 인기 만점이라 빈 좌석이 나지 않아 이내 포기.
2 5 6 섬의 북쪽 끝으로 가면 이토록 아름다운 물빛의 순수한 해변이 나타난다. 바닷가의 명칭은 플라야 노르테. 3 칸쿤에서 들어오는 페리를 맞이하는 선착장이다. 그 선착장 앞으로 돌고래와 수영하는 돌핀 디스커리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서 섬의 최고 중심가가 되는 곳이다. 화려하고 세련된 칸쿤과 달리 순박하고 순수한 해변으로 산호초가 부서져 만들어진 새하얀 모래사장과 눈부시게 황홀한 물빛의 카리브 해와 함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초현실적인 구름이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이른 아침부터 비키니를 챙겨 입고, 한 손에 책 한 권을 달랑달랑 들고 나오는 예쁜 아가씨들이 특히 좋아라하는 해변이다.
칸쿤 바다에 비해 물이 얕고 파도가 잔잔해서 어린아이도 어디서나 해수욕을 즐기기에 최적인 이슬라 무헤레스에서도 스노클링 즐기기 최고봉은 가라퐁 마린 파크Garrafon National Marine Park다. 해안도로를 따라 죽 남쪽으로 달리면 이내 물빛이 쪽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가라퐁이 등장한다. 소중한 건 죄다 모아서 유리병에 담아놓은 것처럼 가라퐁의 산호 군락에서는 알록달록한 빛깔의 산호들과 예쁘게 생긴 열대어들과 함께 수영할 수 있다. 특히 15톤의 어마어마한 고래상어가 나타나는 시즌인 6월부터 9월 사이에는 이 가라퐁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는다. 고래상어랑 수영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몰려들까. 얼핏 상어와 함께 전 세계 사람들이 뛰어든 목욕탕을 상상했는데, 그건 아니란다. 한 번에 가이드 한 명과 스노클러 2명으로 그 수가 제한되기 때문에, 바닷속에서의 진정 황홀한 경험이 가능하다고.
해양 동물에 관심이 있다면 바다거북 보호 센터Turtle Protection Center도 방문해볼만 하다. 모래사장에 수 백 마리의 알을 낳고 바다로 돌아가는 어미 거북이 대신, 알을 포식자로부터 보호하고 부화해서 키운 후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는 농장이다. 매년 10만 마리 정도의 어린 거북을 키워내고 있으며, 150그램으로 바다에 뛰어든 거북이가 300킬로그램까지 성장해 다시 이슬라 무헤레스의 모래를 찾아온다. 사실 섬에서 가장 유명한 액티비티는 돌핀 디스커버리Dolphin Discovery다. 돌고래와 함께 수영하는 프로그램으로 돌고래 두 마리가 발바닥을 밀어주거나 돌고래 지느러미를 잡고 수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할 수 없는 경험이기에 선착장 앞의 돌고래 가두리는 항상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비록 우리 사람들에게는 똑똑한 포유류와 교감해보는 즐겁고 신비로운 경험이겠지만, 드넓은 카리브 해를 앞에 두고 갇혀있는 돌고래가 과연 행복해할지는 두고두고 생각해볼 일이다.

소소한 재미가 가득히
섬의 남쪽 끝인 푼타 서Punta Sur는 멕시코 영토의 동쪽 가장 끄트머리라 매일 아침 첫 번째 햇살을 받는 곳이다. 거친 해안절벽에 새하얀 파도가 끊임없이 부딪혀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며, 그 위로는 가슴이 뻥 뚫리는 멋진 풍경을 플랫폼 삼은 조각 정원이 자리한다. 달과 다산의 여신인 익스켈에게 바쳐진 마야 신전Templo Maya이 있었는데 여러 번의 허리케인으로 무너지고 그 흔적만 돌무리가 되어 남아있으며 그 주위를 국내외의 아티스트들이 작업한 23점의 조각 작품이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19세기에 해적이 있었어요. 그의 이름은 Fermin Antonio de Mundaca.” 섬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처럼, 이슬라 무헤레스의 카리브 해를 누비던 유명한 해적이 한 명 있었단다. 해적이자 노예 무역자, 건축가이자 시인이고 농부였던 사람. 루머에 따르면 그는 마야의 원주민과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슬픈 짝사랑.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2층짜리 화려한 맨션도 지었는데 결국 섬사람이랑 결혼해버렸단다. 결론은 새드 엔딩. 그 해적은 여생을 아주 우울하게 보내야 했다. 그 흔적은 그녀를 위해 지은 맨션 Hacienda Mundaca에 남아있다. 무서운 해적이었으나 사랑에는 절대 헌신적이었던 그의 이야기가 흥미롭다면, 다운타운에 있는 그의 무덤을 찾아가 볼 것. 다른 묘지는 새하얗고 예쁜데, 그의 것만 시꺼먼 시멘트로 발라져 있어서 찾기 쉽다. 해골 문양이 진하게 새겨진 채로.
리얼 멕시칸 로컬 스타일, 이국적이고 활기찬 분위기를 원한다면 섬의 북부에 조성된 다운타운에서 시간을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 북쪽 끝에 있으니 남쪽은 포기하고 여기서만 머물러도 부족함이 없을 테다. 누가 보더라도 멕시코스러운 망토와 모자, 티셔츠, 산호나 조개껍질로 만든 장신구들을 파는 노점이 거리를 따라 즐비하게 메우고 있으며 키 큰 야자나무가 그 거리 위를 호위한다. 다운타운의 대로를 따라 뒷짐 지고 걸으며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곳곳에 숨겨진 맛집과 카페에서 멕시칸 푸드와 데낄라를 즐겨 봐도 좋다.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좁은 골목 사이로 빠지면 된다. 오색찬란하게 페인트칠이 된 건물과 스페인어로 삐뚤빼뚤 그려진 벽의 글씨들에 반하고, 올라!-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동네 사람들의 미소가 멕시코에게 이국적인 모습을 선사할 지어니.

1 섬의 남쪽 끝, 푼타 서. 거친 해안절벽에 새하얀 파도가 끊임없이 부딪혀 극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절벽 위로는 조각공원이 있다.
2 다운타운의 거리 노점들. 이슬라 무헤레스의 조개, 산호, 돌로 만든 공예품들이 예쁘다.
3 레스토랑, 카페, 펍이 즐비한 다운타운 덕에 여행이 편리하다.
4 동네 묘지에서 발견한 해적의 무덤. 그의 집이 섬의 남부에 남아있다.
5 섬을 가장 잘 둘러보는 법은 골프 카트를 타고 달리다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멈춰서기.
6 섬의 북쪽에 위치한 다운타운. 기념품 숍, 레스토랑, 여행사, 은행, 카페 등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있다.
7 이슬라 무헤레스의 뜻은? 정답 ‘여인의 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