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lum,

Beautiful Maya Ruin by Caribbean Sea

카리브해를 품은 마야 유적지, 완벽한 전망의 툴룸
마야의 유적지 중에서 유일하게 카리브해를 옆에 두고 지어진 툴룸의 요새. 뜨겁게 달구어진
돌덩이 위에서 일광욕하는 이구아나와 바람신의 신전을 바라보며 카리브해에서
수영하는 여행자들 모두가 툴룸을 즐기는 방법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
글 함희선 기자 사진 최은주 기자 취재협조 드림아일랜드 02-566-3612, dreamisland.co.kr

툴룸에 살고 싶다. 이왕이면 카리브해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가 좋겠다. 여기라면 지붕 없이도 하늘의 구름과 별빛을 이불 삼아 잠든다 해도 행복하겠지 싶다. 마야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집이 얼마나 대단한 전망을 갖고 있었는지 알고 살았을까. 지금으로 치면 오션 프론트 뷰 스위트룸에 버금가는 대단한 클래스인데 말이다. 마야인 다음으로 새롭게 툴룸을 차지한 주인은 뜨겁게 달구어진 돌덩이 위에서 몸을 지지는 이구아나들이다. 발밑에서 꼼짝 않고 앉아있는 한 마리의 이구아나에게 나지막이 말을 걸어봤다. “그래, 여기가 네 집이로구나. 너도 여기가 기가 막히게 멋지다는 걸 아는가 보다. 그치? 여기 참 좋지?” 완벽한 전망에 반해서는 순간적으로 다음 생애에는 툴룸의 이구아나로 태어나볼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어버린 바다 요새는 칸쿤에서 남쪽으로 120킬로미터를 달리면 만날 수 있다. 무너지고 낡아버린 상처투성이의 회색빛 요새. 하지만 툴룸은 짙푸른 하늘과 청록의 바다와 어우러져 강렬한 빛깔의 풍광을 만들어내는 매력적인 마야의 유적지다.

바닷가의 회색빛 요새
툴룸Tulum의 것은 전쟁을 위해 지은 요새가 아니다. 상업과 교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세운 요새라 분위기가 공격적이거나 날카롭지도 않으며, 돌바닥에 누워 낮잠을 청하고 싶을 만큼 포근하기만 하다. 물론 상인들이 물건을 거래했던 곳이라 생활용품이며 진귀한 물품들이 가득했으니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도 톡톡히 했을 테다. 적의 공격을 막는 게 목적인 보통의 요새와 달리 툴룸의 것은 드넓은 멕시코만을 감시하기 위해 세워진 까닭에 요새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서있다. 3미터에서 5미터까지 높이 솟아 오른 8미터 두께의 단단한 성벽은 요새를 삼면으로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 왜 사면이 아닌 세면일까? 그 답은, 네 번째 성벽이 바다이기 때문이다. ‘툴룸’이라는 말도 마야어로 ‘담’을 뜻한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은 1200-1521년 사이 열대우림을 전전하던 마야인들이 마야문명이 소멸하기 직전에 햇살이 따사롭고 바람이 선선한 이곳 툴룸에 찾아와 해안가 절벽 위에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전성기 때에는 항구도시로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냈는데, 마야의 사람들은 이곳을 통해 벨리즈Belize까지 항해하며 무역 루트를 유지했다고. 1518년 스페인의 탐험가 후안이 이곳을 항해해 지나갈 때 기록해둔 문서를 보면, 성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모습이 정말 감탄스러웠단다.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으로 칠해져있는 요새가 정말 아름다웠다며. 지금은 마치 미완성으로 보일 정도로 완전한 무채색에 불과하지만, 컬러풀한 자태를 자랑했던 당시에는 푸른 카리브해와 대조를 이루는 멋진 요새였으리라. 그러나 스페인의 침략 이후의 툴룸은 75년간 방치된 상태였다. 물론 치첸이트사처럼 마야의 순례자들은 끊임없이 이곳을 방문했었고, 1888년 유카탄반도의 계급 전쟁Caste War 때 인디오 난민들이 이곳을 은신처로 삼기도 했지만, 툴룸은 오래도록 혼자 쓸쓸하게 버려져있었다.

1 바람신의 신전에서 내려다보이는 해안 풍경. 물빛깔이 어찌나 청초한지 바다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가 없더라.
2 툴룸에서 가장 큰 건축물인 엘 카스티요.


유유자적하며 산책 즐기기
치첸이트사보다 시기상 늦게 지어졌지만, 규모나 건축학적으로, 또 예술적으로도 모자란 툴룸이라는 걸 단숨에 알아챌 수 있다. 내가 똑똑해서라기보다는 겉으로 보기에도 치첸이트사의 것이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해 보이므로. 그러나 툴룸은 치첸이트사에 못지않은 매력을 발산한다. 뙤약볕 아래 어슬렁어슬렁 돌무리로 된 유적지 사이를 걷다가 몸이 후끈하게 달아오르면 마야 유적지 너머로 아찔한 청록빛 카리브해로 뛰어들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티셔츠 안에 수영복을 챙겨 입고 갔더니 자꾸만 바다로 눈길이 자꾸 새더라. 그러나 해수욕을 마친 후 유적지를 돌아다녔다가는 뜨거운 햇살에 데일 가능성이 크니 ‘선 유적지 감상, 후 카리브해 해수욕’의 순서를 꼭 지키도록 하자. 감상법은 이렇다. 남과 북으로 380미터, 해안가까지 170미터로 이어지는 멋진 성벽 안으로 마치 오래전의 마야 사람들의 정원을 노니 듯 산책하며, 비록 다 비슷해 보이는 건축물일지라도 찬찬히 살펴보기. 종종 마주치는 이구아나와 반가운 인사도 나누는 여유를 부리면서.
툴룸 감상의 하이라이트는 바람신의 신전Templo del Dios del Viento이다. 치첸이트사를 누르고 브로셔와 가이드북에 단골로 등장하는 표지모델이시다. 오랜 세월의 바닷바람을 견뎌온 우직한 폼으로 절벽 위에 무덤덤하게 서있는 짙은 쥐색의 마야유적은 화려한 카리브해와 환상적인 궁합을 이룬다. 특히, 여기 절벽 위에 올라 내려다보는 물빛깔이 어찌나 청초하던지 바다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가 없더라. 건물 중에서의 최고봉은 해안선과 평행으로 가장 크고 높게 들어서있는 엘 카스티요El Castillo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성을 닮았다하여 캐슬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툴룸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서 망망대해를 감시하는 망대탑의 역할을 담당했었다. 엘 카스티요 곁을 산책할 때는 건물 정면의 중간을 자세히 훑어볼 것. 치첸이트사에서 봤던 비슷한 장면을 볼 수 있을 테다. 톨텍 양식에서 볼 수 있는 깃털 달린 뱀 쿠쿨칸이 새겨져 있다.
엘 카스티요에서 눈을 돌려 주변의 여러 건축물 사이로, 꽃과 나무사이로, 또 돌문을 통과하며 산책하면 한 두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린다. 치첸이트사에 비해 유적마다 새겨있는 하나하나의 깊은 의미는 미약하지만, 툴룸이 지나온 오래된 시간 속을 함께 걷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너그러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유적지 감상 미션을 클리어한 여행자들은 계단을 통해 툴룸의 앞마당으로 돌진한다. 마치 마야 유적보다 마야 유적 옆에서 수영하는 것이 목적인 냥 사람들은 해수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카리브해의 바다에 몸을 담그고 바람신의 신전을 올려다보는 이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달콤하다. 아마 마야의 사람들도 슈가 파우더를 뿌려놓은 듯 하얗고 폭신폭신한 툴룸의 해변을 뛰놀며 드라마틱한 요새의 풍경을 매일같이 즐겼으리라. 바로 오늘의 여행자들과 똑같이.

3 툴룸의 성벽은 세 방면으로 세워졌다. 나머지 하나는 바다가 성벽 역할을 하는 셈이다.
4 브로셔나 가이드북의 표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바람의 신전. 황홀한 카리브해를 앞마당 삼아 절벽위에 자리한다.
5 오늘날의 툴룸을 차지한 건 이구아나. 유적지 돌무리 곳곳마다 일광욕하는 이구아나가 많다.
6 자전거를 타고 툴룸을 둘로보는 부녀 여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