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Pinnawala

Pinnawala Elephant Orphanage in Sri Lanka

스리랑카에서 본 코끼리만한 희망
스리랑카 제 2의 도시로 유명한 캔디. 캔디와 고작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코끼리가 사는 작은 도시 피나왈라가 있다.
피나왈라에 자리하고 있는 코끼리 고아원은 자유로운 코끼리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정글 속을 유유자적하는 코끼리들의 자유를 태어나 처음 목격했다.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최은주 기자 취재협조 주한 스리랑카 대사관 lka.mofa.go.kr

태어나 처음 만난 야생 코끼리
상상해보라. 날이 저물며 세상의 색이 점점 희미해져갈 때, 오렌지빛으로 물든 야생의 벌판 위에 코끼리 한 마리가 서있다. 그 코끼리는 무엇에도 귀속되지 않으며 오직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아슬한 자유로움만을 걸치고 있다. 스리랑카에 머물던 어느 날, 마법처럼 이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야생 벌판을 달리던 차 안에서 홀로 서있는 야생코끼리를 창밖으로 처음 보았을 때, ‘시간이 잠시 멈춘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태어나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주 잠깐 스쳐지나간 풍경 중 하나였지만 잔상이 무척이나 강렬해서 흐르는 시간 위로 자꾸만 그 모습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태어나 처음 야생코끼리를 목격하게 해준 땅 스리랑카는 아시아 코끼리들에게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 터전 중 한 곳이다. 코끼리는 흔히 아프리카 코끼리와 상대적으로 아담한 아시아 코끼리로 부류를 나눌 수 있는데, 아시아 코끼리들은 인도와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등의 나라에서 여전히 그 개체수를 많이 유지하고 있다.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코끼리는 행운과 복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실제로 스리랑카에서 방문한 많은 사원에서는 코끼리 상아를 이용한 실내 장식이나 상아로 만든 공예품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스리랑카 사람들의 이런 코끼리 사랑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 사랑이 너무 과분해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될 뻔도 했다. 다행히도 이젠 상아를 얻기 위한 밀렵 행위가 현저히 줄어가고 있지만, 과거의 상처는 스리랑카의 많은 지역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이를 처리할 공간이 필요해진다. 주로 어미와 자식으로 이뤄진 소규모 가족이 여럿 모여 커다란 한 집단을 이루고, 그 중 가장 현명한 어미 코끼리가 우두머리를 맡게 되는 코끼리 사회. 이런 집단에서 한 어미 코끼리가 갑자기 죽게 되면 그 아래 자식들의 운명은 돌이키기 힘들다. 자연스럽게 집단에서 분리된 채 보호자도 없이 야생에 홀로 남겨진 아기 코끼리들이 살아남을 확률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양보 없는 자연 속에서 강자에게 당하거나, 또 다른 밀렵의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 그런 위험한 상황 속에서 발견된 코끼리들
을 모아 보살펴주면서 처음 시작된 것이 피나왈라의 코끼리 고아원Pinnawala Elephant Orphanage이다.

코끼리 무한 자유지대
피나왈라의 한적한 마을 케갈레Kegalle에 위치하는 코끼리 고아원에 방문했을 때, 기자를 가장 먼저 놀라게 한 것이 있다. 입구에 그려진 공원 약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초록색 땅은 ‘자유지대Free Land ’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를 확인한 순간 이곳이 단순한 코끼리 전용 동물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니 도로변에서 우연히 조우했던 야생 코끼리의 감동이 고스란히 재현됐다. 지평선까지 새파란 넓디넓은 정글을 뒤로 한 채 온몸이 가벼운 코끼리들이 멋대로 벌판을 거닌다. 어미젖도 채 떼지 못한 상태에서 고아가 되어버린 아기 코끼리들을 한두 마리씩 보살펴 주다보니 어느덧 약 80마리 이상의 코끼리들이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1975년에 스리랑카의 야생동물 보호기관에서 설립한 이후,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숫자의 코끼리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 되었다. 몸이나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코끼리들이 수많은 사육사들의 정성과 손길을 거치면서 집단 내에서의 번식력도 높아진 편이다.

물론 코끼리 고아원에서 오직 들판만을 거니는 코끼리를 보고 돌아온 건 아니다. 공원 내에는 스리랑카 코끼리를 만나기 위해 찾은 관광객들과 코끼리의 친밀감을 높일 수 있는 활동들이 몇 가지 있다. 아직 젖을 떼지 않은 아기 코끼리들에게 직접 젖병을 물려볼 수 있는 시간과 주변의 짧은 구간을 순회하는 짧은 코끼리 탑승도 가능하다. 코끼리의 피부는 두툼하면서도 철사처럼 뻣뻣한 털이 듬성듬성 나있는 것이 특징인데, 아기 코끼리들은 뽀얀 솜털이 보송보송하기만 하다. 그 귀여운 자태로 젖병을 향해 돌진하는 열정을 관람하거나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오전과 점심, 오후로 나눠 하루에 세 번 진행되는데 여행자들에게 항상 인기라고 한다. 오후 1시 쯤 이곳에 도착한 기자는 운 좋게도 1시 15분부터 시작되는 젖병 물리는 모습을 관람할 수 있었다. 추가로 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많은 여행객들이 어미 잃은 아기 코끼리들에게 사랑으로 우유를 먹인다. 어린 아이들도 전혀 겁먹지 않을 정도로 앙증맞은 크기의 아기 코끼리들은 성격이 어찌나 급한지 한 젖병을 순식간에 흡입해버리는데 그 풍경이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유명한 것은 공원 근처의 강에서 코끼리들이 갖는 목욕 시간이다. 한 번에 최대 20마리까지 무리를 나눈 코끼리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시원한 목욕을 즐기기 위해 우르르 강으로 걸어 들어가는 풍경을 과연 지구 위 어느 곳에서 또 볼 수 있을까.

그들의 아픔까지 함께 씻기길
코끼리들의 목욕 시간은 코끼리 고아원 체험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매년 공원의 규모가 커지고 있는 비결로는 성장한 코끼리 고아원의 관광수입도 있겠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기부 덕분이기도 하다. 그들은 아마 코끼리들이 강에서 자유롭게 서로 엉키며 몸을 씻는 모습을 보고 이들의 자유를 위한 투자를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매일 오전 10시와 2시부터 장장 두 시간정도 이어지는 코끼리들의 목욕하는 모습은 장엄하고 또 이국적이다. 코끼리 고아원을 나와 길을 건너 조금만 강변으로 들어가면 강줄기를 따라 탁 트인 야외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공원 안을 둘러본 후 강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으며 코끼리들을 바라본다. 수많은 코끼리들이 피나왈라에서 건강과 행복을 되찾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젠 이와 같은 관광 사업을 통해 이곳에 살던 주민들까지도 삶에 도움을 얻고 있었다.

탐스러운 흙빛의 강물에 20여 마리 무리지은 코끼리들이 도달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속에 뛰어든다. 수심이 그리 깊지 않기 때문에 긴 코를 이용해 스스로를 등목하는 덩치 큰 아시아 코끼리들을 가장 멋진 방법으로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꼼꼼한 목욕이 필요했던 코끼리들은 강물 속에 벌러덩 눕힌 채 사육사들이 솔을 이용해 구석구석 닦아준다. 몸의 방향을 바꿔가며 드러눕는 코끼리와 자신보다 큰 동물을 열심히 솔질하는 젊은 사육사들, 또 물속에 얼굴을 담그고도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빼꼼 내놓은 코끼리 코와 같은 모습들이 얼마나 조화롭고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피나왈라 코끼리 고아원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코끼리의 과거 아픔까지도 매일 이곳에서 씻겨나가길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