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zona&Utah :: Bryce Canyon

Home of Pink Hoodoos,Bryce Canyon

핑크빛 호리호리한 돌기둥의 집, 브라이스 캐니언
대지위에 삐죽빼죽 솟아있는 핑크빛의 날씬한 돌기둥들. 혹시 외계인이 지구에 던져버린 과자들일까.
브라이스 캐니언의 기이한 풍경은 자꾸만 엉뚱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글 함희선 기자 사진 최은주 기자 취재협조 미국관광청 www.discoveramerica.co.kr

1 썬셋 포인트에서 살짝만 내려가면 후두스의 숲을 걷는 쉬운 트레킹이 가능하다. 
2 브라이스 캐니언은 도로와 전망대가 잘 정비되어 있어 드라이브 투어하기 편리하다. 
3 4 기이한 암석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풍경에 취한 사람들.

흐읍-. 숨을 들여 마시다가 호흡을 잠깐 멈추고 말았다. 일부러가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서 숨이 저절로 막혔다. 시선이 머무는 곳 전부, 360도 파노라마 뷰 모두다 시각적으로 나를 공격했다. 아주 자극적인 방식으로. 핑크에 가까운 주홍빛 돌기둥들이 땅위로 삐죽빼죽 솟아오른 모습은 마치 외계인들이 UFO를 타고 날아와 치토스 과자를 지구를 향해 마구 던져놓은 것처럼 기이한 형색이었다. 그야말로 줄맞춰 나란히 세워놓은 치토스들의 향연. 여태껏 이렇게 생긴 땅덩어리를 본적이 있던가. 좁은 골짜기를 따라서 빼곡하게 들어선 날씬한 돌기둥 사이로 바람까지 ‘쉬이- 쉬이익-.’ 하고 불어대니 그렇지 않아도 신비로운 분위기는 그 크기에 몸집을 키웠다.

꽃처럼 피어나는 아름다운 땅
기이한 풍경으로 엉뚱한 상상을 자꾸만 불러일으키는 이곳은 자이언 캐니언과 같이 유타주 남서부에 위치한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이다. 포소건트 고원Paunsaugunt Plateau의 동쪽이 수천 년간 침식되면서 만들어진 소협곡으로 원형극장처럼 생긴 분지가 계단처럼 이어지는 독특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192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파리아Paria 강은 원형모양이 연속되는 협곡의 가장자리를 지금도 조금씩 깎아내는 중. 흙과 자갈을 이동시키면서 점점 더 기괴한 모양으로 말이다. 144제곱킬로미터의 드넓은 공원의 면적을 채우는 건 단연 압도적인 바위기둥이다. 그들은 주홍, 빨강, 분홍, 노랑, 하양 등 날씨와 태양의 기분에 따라 여러 빛깔의 몸뚱이를 드러낸다. 포함하고 있는 광석이 많아서 이토록 다채로운 건데, 상상을 너무 했는지 처음엔 호리호리한 돌기둥들이 치토스로 보이더니 나중에는 꽃처럼 피어나는 암석으로 보이더라.
범인은 누굴까. 이런 세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창조해낸 건 역시 물이다. 지층이 바다 밑에 있을 때 토사가 쌓여서 암석이 형성되었고, 그 후 바다 위로 우뚝 솟은 암석이 흐르는 강물에 씻기면서 연약한 토사부분이 사라져버린 거다. 비교적 단단한 암석만 침식되지 않고 남아서 이렇게 무수한 돌 첨탑의 밭이 일구어졌다.

어떻게 하면 브라이스 캐니언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하나의 기록을 찾아냈다. ‘소를 잃어버릴 지옥 같은 곳.’ 1870년대 협곡 근처에 처음으로 농장을 세우고 살았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에비니저 브라이스Ebenezer Bryce가 했던 말이다. 뚜렷한 길 없이 여기저기 하늘로 솟구쳐있는 돌기둥사이를 걷는 건 미쳐버릴 것처럼 복잡한 미로를 헤매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아마 당시에 농장을 운영했던 그는 협곡에서 소중한 가축을 몇 마리 쯤 잃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혹시라도 소를 잃어버릴까봐 절대로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것일 지도.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을 지옥으로 여겼던 그의 이름을 따라서 협곡은 브라이스 캐니언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살게 되었다.

소를 잃어버릴 지옥 걷기
다행히 우리는 140년 전과 다르게 지옥 같은 공포를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 잘 포장된 도로가 공원 전체에 깔려있어 15개나 되는 뷰포인트에 차근차근 들리며 브라이스가 두려워했던 협곡도 팔짱끼고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중 반드시 거쳐 가야 할 대표적인 전망대는 썬라이즈 포인트Sunrise Point, 브라이스 포인트Bryce Point, 썬셋 포인트Sunset Point, 인스퍼레이션 포인트Insperation Point다.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레인보우 포인트Rainbow Point의 해발고도는 2774미터로 협곡 자체가 높이 솟아있어 바람도 많이 불고 기온도 낮은 편이라 분위기는 괜히 더 환상적이다. 상상력이 가미된다면 하늘에 가끔씩 날아다니는 까마귀들이 마녀들로 보일 만큼. 11월부터 3월까지는 눈이 쌓여서 장비를 착용하지 않으면 걷는 엄두조차 낼 수 없지만, 대신 독특한 풍광을 감상하며 스노우 슈잉과 크로스 컨트리스키를 타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브라이스 캐니언은 드라이브 투어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러나 전망대에서 그저 바라보기는 몇 번으로 끝내고 적어도 한 군데 쯤에서는 ‘길을 잃은 소’가 되어보길. 공원 내에는 80킬로미터에 달하는 하이킹 트레일이 마련되어 있다. 브라이스가 지옥이라고 표현했다고 해서 겁먹지 않아도 오케이다. 보통 전망대와 전망대 사이를 연결하는 정도의 트레일이라 무장하고 들어설 필요가 전혀 없으므로. 간단히 걷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루트는 내가 직접 걸어보았던 썬셋 포인트에서 썬라이즈 포인트까지. 길이는 1.6킬로미터, 난이도는 낮지만, 그렇다고 시시하진 않다. 위에서 내려다보았던 돌기둥의 숲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걷는 비범한 산책이니 말이다. 단, 일부러 만들어놓은 길도 아니요, 절벽으로 떨어지는 걸 방지하는 울타리도 없으니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두 눈 똑바로 뜨고, 두 다리에 단단히 힘을 주고 걸어야 한다. 특히 바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면 무조건 피해야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바람과 비에 의한 침식과 풍화작용은 늘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돌 굴러가유-.” 외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미 늦은 것. 돌 떨어지는 소리라면 즉시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후두스의 울창한 숲
지질학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여기 다 모여 있다. 산책에 심취한다면 한눈팔다가 30분 거리도 3시간 헤매는 게 가능하다.
이를 테면 후두스Hoodoos에게 시선을 빼앗겨서. 토르의 해머Thor’s Hammer라는 이름마저 붙은 46미터짜리 거대한 후두스도 있다.
약한 이판암이나 이암 위에 더 단단한 사암이나 석회층이 싸여있는 늘씬한 바위기둥의 정체가 바로 후두스로 얼핏 초코송이 과자 같기도 하고, 인형머리가 달린 귀이개를 닮기도 했다. 마냥 우스꽝스러운 표현은 아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 역시 후두스에서 인간의 형상을 떠올렸으니까. 아파치족의 전설에 따르면 지상의 사람들에게 크게 노한 조물주는 세상을 다시 만들기 위해 큰비를 뿌렸다. 다만 아파치족을 가엽게 여긴 신은 그들만은 구해주기로 결심했는데, 몇몇 이기적인 사람들이 노인과 아이들을 남겨두고 높은 산으로 도망치는 것을 보았단다. 신은 그 장면에 크게 노하여 부족을 버린 사람들을 돌로 바꾸어버렸다. 브라이스 캐니언의 지천에 널린 게 후두스인데, 혹시 아파치족의 성품이 원래 좀 이기적이라는 건가. 아니다. 아마도 매일같이 오고가며 눈앞에서 마주하는 돌기둥을 바라보면서 늘 착하게 살라는 인디언 어르신들이 만들어낸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오늘날 후두스 숲을 산책하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고.

인스퍼레이션 포인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브라이스 캐니언의 아찔한 풍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