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way :: Fjord

A Truly Splendid Scenery, Fjord

노르웨이의 자연이 만든 걸작

아름다움을 본 사람만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구별할 수 있다고 믿기에 피오르를 만나러 떠났다. 노르웨이 해안에 펼쳐져 있는 대자연이 너른 품을 내 줄 무렵, 그 안에서 온갖 행복한 상상은 꽃을 피웠다. 한계절 가슴 속에 미풍처럼 찾아든 피오르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글 김수현 기자 사진 강건호 취재협조 노르웨이관광청 www.visitnorway.com 02-777-5943, 한진관광 www.kaltour.com

머릿속 노르웨이는 눈과 겨울의 나라였다. 올 초에 개봉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때문이었던 걸까. 영화 속 눈보라가 몰아치고
모든 것이 얼어붙은 아렌달 왕국까지는 아니더라도 겨울의 이미지는 언제나 노르웨이와 함께였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한대성 기후로 겨울이 길고 이때의 평균기온은 영하 15도에 달하니. 그런 노르웨이에 여름이 왔다. 백야로 오후 10시에도 누군가가 내게 오전 10시라 한다면 아침이라 믿을 여름. 하얀 눈으로 뒤덮인 피오르에도 초록의 세계가 피어났다. 자연이 내려준 피오르라는 선물. 이 하나만으로 노르웨이를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라 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모든 것을 뒷전으로 하고 피오르의 장엄한 경관을 마주하는 순간, 정말 죽기 전까지 잊지 못할 것 같은 풍경이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차가웠던 이 땅의 이미지는 눈부신 햇살 아래 눈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피오르 그 신비함 속으로

산골짜기를 가득 메운 빙하가 녹아내리며 산등성이를 깎았다. 날카롭게 모양이 난 골짜기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와 좁고 긴 피오르가 형성됐다. 무려 1만년 전의 이야기다. 그래서 노르웨이는 피오르와 함께 성장한 피오르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르웨이 서쪽 복잡한 해안선은 저마다 나름의 크고 작은 피오르를 끼고 있다. 어떤 것이 피오르이고 아닌가를 분류할 때마다 가이드는 내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산과 바다가 피오르라 했다.

이 자연에 여름이 찾아오면 겨울 동안 높은 산을 감싸던 눈이 녹고 초록의 세계가 드러난다. 그리고 이 초록은 파란 물과 만나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지금껏 경이로운 자연을 마주하고 꺼냈던 수식어와 꺼낼 수 있는 모든 표현을 말한다 한들 피오르 앞에서 느낀 감동을 가감 없이 전할 수 있을까. 휴양지를 향해 말하던 ‘천국’이란 단어도 이곳에서만큼은 결코 아깝지 않다. 하염없이 진한 감동에 취해 있다가도 우렁찬 소리와 함께 얼굴 정면으로 튀어 오르는 폭포수에 몇 번이나 소매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겨울에 쌓인 눈과 빙하가 녹은 물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물줄기는 지칠 줄도 모르고 다가와 꿈속일 거라 생각한 풍경을 현실이라 일깨워준다.

노르웨이 피오르 중 가장 긴 송네 피오르Sogne Fjord는 205킬로미터나 이어져 있다. 눈에 보이는 전부를 새기기에는 기억의 용량이 초과될 길이. 그래서 송네 피오르를 유람하는 이 순간엔 카메라만큼 고마운 것도 없다. 피오르의 품 안에서는 물, 그리고 또 물이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하늘과 산이 맞닿은 풍경은 맑은 물에 거짓 없이 반사돼 눈을 지나 가슴 속으로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1,308미터에 이르는데도 안이 다 들여다보일 것처럼 투명하기 그지없다. 송네 피오르의 일부분인 네뢰이 피오르Nærøy fjord는 산등성이간 간격이 가장 좁다. 하지만 좁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유람선도 이 안에서는 미니 사이즈 장난감이 되어 버린다. 물을 구경하는 재미는 피오르를 따라 작은 마을, 높은 곳에 버려진 농장들을 보는 것으로 이어진다. 크루즈 안 스피커에서는 갖가지 언어로 시시각각 마주치는 풍경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온다. 눈과 귀를 열고 바라보는 자연은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졌고 순하게 정화된 마음에는 평화만이 남아 있었다.

1 4 송네 피오르를 유람하는 크루즈 안에서 마주한 풍경. 2 끊임없이 흐르는 폭포의 근원은 바로 겨울 동안 소복이 쌓인 눈과 빙하였다.
3 피오르를 보지 않고 노르웨이를 여행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방법은 이렇게 크루즈를 타는 것이다. 
5 6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다른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조심스레 다가갔지만 감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이내 발길을 돌렸다.

대자연이 선물한 아름다운 예이랑에르

2시간 동안 송네 피오르를 유람하는 크루즈에 몸을 싣고 난 후 충분히 면역됐을 거라 생각했다. 완벽한 착각이었다. 예이랑에르Geiranger fjord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풍경에 또 다시 멍하니 있고야 말았으므로. 송네 피오르가 많은 것을 포용하는 어머니의 이미지라면 날카로운 S자형으로 꺾인 예이랑에르 피오르는 핸섬한 청년과도 같다. 심지어 5월에서 9월 사이에만 그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니 요즘 말로 쉬운 남자도 아니다. 그만큼 노르웨이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풍경으로 짝사랑을 시작하게 한, 예이랑에르는 그런 남자다. 칼날로 벤 것과 같은 날렵한 절벽에 일곱 줄기의 폭포가 떨어지자 한쪽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7자매 폭포Seven Sisters Waterfall에 이목이 집중됨과 동시에 질세라 맞은 편 구혼자 폭포Suitor Waterfall도 그 위용을 드러냈다. 엄청난 높이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폭포를 보니 예이랑에르를 향한 많은 이들의 사랑을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긴 피오르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배를 타고 가는 내내 큰 산이나 절벽으로 둘러싸여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예이랑에르 피오르를 오가는 크루즈에서 내려 발을 디딘 곳은 절벽도 산도 아닌 작은 마을 예이랑에르였다. 평소에는 인적이 드문 곳이지만 피오르 여행이 활발한 여름에는 전 세계에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인다. 이를 증명하듯 좋은 전망을 앞에 두고 늘어선 캠핑카와 늦은 시간까지도 활짝 문을 연 렌탈샵이 눈에 들어온다. 열심히 자리를 선정하고 있는 한 아주머니는 스웨덴에서부터 이곳까지 차를 끌고 왔다고 했다. 남편은 뭔가를 찾으려 자동차 안을 뒤적이는가 싶더니 금세 평범한 해치백을 캠핑카로 변신시켰다. 마지막으로 싸온 음식을 펼쳐두었으니 예이랑에르를 즐길 준비는 이로써 완벽하게 갖춰진 듯했다.

크루즈에서 내린 곳을 시작으로 언덕 위를 올라가면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공사를 끝마친 계단은 언덕을 오르고 내리며 피오르를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루트. 옆으로는 높은 산에서부터 내려온 폭포가 굉음을 내며 흘러 오로지 자연 속에 파묻혀 있다는 행복함이 더해진다. 산허리쯤에 위치한 유니온 호텔 뒤로는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 갈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있으니 시간이 허락한다면 도전해 보길. 아쉽게도 트레킹은 할 수 없었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환상적인 풍경을 볼 기회가 주어졌다. 예이랑에르를 떠날 때 트롤스티겐Trollstigen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것. 6월에서 8월 사이에 운영하는 이 버스의 루트는 골든루트라 불릴 정도로 예이랑에르 피오르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스쳐간다. 아주 이른 시간이라 버스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그 덕분에 기사에게 양해를 구해 꽤 오래도록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벅차오르는 감동에 코끝이 큰해지며 시야가 흐릿해졌다. 자연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는 건 예이랑에르 앞에서는 결코 과장되거나 허무맹랑한 말이 아니었다. 두 눈에 꼭꼭 눌러 담은 피오르의 풍경은 가을과 겨울이 지나고 꽃피는 시절이 올 때마다 가슴 속에 피어날 것 같다.

1 예이랑에르 피오르의 하이라이트 7자매 폭포. 오늘은 몇 명의 자매가 나왔는지 세어보자.
 2 피오르의 끝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노을이 붉게 물든 피오르의 경관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3 버스 운전기사는 이 폭포의 옆에서 승객들에게 내릴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모두의 대답은 당연히 예스.
 4 얼마 전 완공된 계단. 이 계단 덕분에 자연을 더욱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됐다. 
5 피오르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 이 순간만큼은 어느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