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way :: Bergen

Living in the Past and Present, Bergen

시간을 나누는 항구도시, 베르겐

중세 한자동맹 주요 도시로서의 영광은 현재 베르겐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에 의해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과거를 품에 안고미래를 만들어가는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베르겐만이 가지고 있는 눈부신 장면들을 포착했다.
글 김수현 기자 사진 강건호    취재협조 노르웨이관광청 www.visitnorway.com 02-777-5943,   한진관광 www.kaltour.com

한자동맹과 함께 성장한 항구도시

70년 올라브 3세Olav Haraldsson에 의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베르겐은 훌륭한 지리적 요건 덕에 발전과 동시에 항구도시로 유럽에 이름을 떨쳤다. 12, 13세기에는 수도의 역할을 해냈고 이 기세는 중세로 이어졌다. 13세기, 독일 상인들의 주도하에 한자동맹이 형성됐다. 해상 교통의 안전을 보장받고 이를 바탕으로 상권을 확대할 수 있어 발트해 연안 여러 도시가 동맹에 가입했다. 베르겐은 90여 개가 넘는 도시 중에서도 특별했다. 독일 한자상인들의 집과 사무실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요즘으로 치자면 한자동맹 해외 지사였던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상인 중에서는 이곳으로 이주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항구를 따라 늘어선 목조창고Wharf는 당시 무역항으로 번성했던 베르겐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나무로 만들어진 탓에 화재로 소실되기도 몇 번. 하지만 그 때마다 이전과 똑같은 형태로 완벽하게 재건한 덕에 브뤼겐Bryggen 지역에서는 중세 베르겐의 모습을 여실히 감상할 수 있다.

브뤼겐 탐방은 브뤼겐 박물관Bryggens Museum에서 시작됐다. 약 12세기로 추정되는 오래된 건축물의 터 위에 지은 박물관은 1976년에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룬 문자, 도기 등의 역사적 유물과 흥미로운 영상을 통해 베르겐 최초 정착민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브뤼겐 박물관에서 나와 발걸음을 옮긴 곳은 목조창고가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한 한자 박물관Hanseatisk Museum. 브뤼겐 지역 목조건물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해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좁은 내부를 가득 메운다. 호화로울 거라 생각했던 상인들의 공간은 예상보다 소박했다. 2단 서랍장의 문을 우측으로 여니 그제야 이것이 서랍장이 아닌 침대였다는 걸 알 정도. 그러나 이 작은 공간이 큰 부를 축적할 수 있게 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15세기 이후 무역의 중심이 대서양으로 이동하며 한자동맹과 베르겐의 무역은 점차 쇠퇴했다. 하지만 이를 위로하듯 브뤼겐 앞 어시장fisketorget은 활기가 넘쳐났다. 베르겐 현지 사람들보다는 관광객에게 더욱 인기가 많은 곳으로 일대를 둘러보고 끼니를 해결하기 좋은 신선한 음식이 가득하다. 주문을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요리를 만들어주니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햇살이 좋은 날, 잘 정박된 요트를 바라보며 먹는 점심은 브뤼겐 최고의 백미. 달콤한 체리를 입 안에 넣고 아주 천천히 같은 길을 몇 번이고 걸었다. 갈 길은 바빴고 팔뚝만한 갈매기들이 1미터 내로 다가올 때마다 도망가기도 했지만 항구마을의 오래된 낭만이 좋아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른 채 목조건물 사이를 거닐었다.

1 2 브뤼겐 지역은 여행자에게 베르겐을 대표하는 풍경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든다면 당신은 영화 <겨울왕국>을 관람한 사람. 
3 베르겐에서 갈매기만큼이나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배. 브뤼겐 앞에는 요트를 시작으로 크루즈 등 다양한 배들이 정박되어 있다. 4 과거 베르겐의 무역을 책임진 목조창고는 현재 기념품샵과 레스토랑, 카페로 변모했다. 
5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어시장에 들려 신선한 해산물을 구경하도록 하자. 물론 시식도 함께.
 6 낡은 목조건물에 어울리는 오래된 것들로 가득한 한자박물관에서는 한자동맹과 관련된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베르겐 사람들의 일편단심 베르겐 사랑

누구나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한 애착은 있을 터. 하지만 아마 그 마음은 베르겐 사람과는 견줄 바가 못될 것 같다. 가이드와 관광 안내 책자는 항상 같은 말을 했다. “베르겐 사람bergenser들은 베르겐을 사랑합니다.” 가끔 다르게 표현한 것도 있었다. “베르겐에 사는 이들은 베르겐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한 사실을 몇 번이고 강조하니 그토록 이 도시를 사랑하는 베르겐세르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여행자에게 보이는 베르겐이 아닌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브뤼겐 지역을 지나 항구를 등지고 앞으로 걷다 보면 특이한 벽화들로 가득한 골목이 나온다. 많은 길 중에서도 신발 장식이 붙어있는 곳에 걸음을 멈춰 섰다. 과거 스코스트리트Skostredet 안쪽에는 신발 공장이 모여있었지만 현재는 세련된 카페와 아티스트의 개인 작업실이 들어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확실히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보다 낮 시간 휴식을 즐기고 있는 현지인들이 대다수. 점심때가 넘어가니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이 가장 좋은 테라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골목을 따라 언덕 위쪽으로 올라가면 주택가가 나온다. 여름휴가가 길게는 4주나 주어져 베르겐 사람들은 이 기간을 이용해 주변 나라들로 여행을 떠난다. 그래서인지 차분한 분위기가 골목 전체를 감돌았다. 닫힌 창문 사이로 보이는 골동품에 상점일 거라 생각한 곳은 누군가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슬쩍 들여다본 것이 전부지만 디자인샵으로 착각할 만큼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 인테리어도 훌륭했다. 아기자기하게 모여있는 집들은 과거 베르겐에서 유행한 건축양식을 따랐다. 단, 불에 쉽게 타지 않도록 표면만 나무로 제작한 것이 차이점이다. 여러 번의 화재는 그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은 유지하면서 튼튼한 집을 짓게 했다. 골목을 걷는 동안 금세 이곳 주민들의 취향에 익숙해졌고, 언젠가 이 아름다운 풍경 안에서 함께 하겠노라 마음먹었다.

노르웨이 사람에게 여름은 소중하다. 초겨울부터 봄이 오기까지는 일찍 해가지는 반면에 여름은 햇살을 아주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는 베르겐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 도시 정중앙에 있는 공원 릴르 룽게가르즈반Lille Lungegardsvann은 일광욕을 즐기기에 제격인 장소로 일찍부터 가족, 연인들로 가득 차있어 벤치를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작은 의자보다 더 편안한 풀밭이 넓게 펼쳐져 있으니 아무 데나 털썩 앉으면 그만이다. 해안가 쪽 노르네스Nordnes에서는 산책뿐만 아니라 수영을 할 수 있어 현지 사람들에게 더욱 인기가 많다고.

마지막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플뢰엔 산Mount Fløyen에 올라가 도시 전체를 바라봤다. 늦게까지 지지 않는 해로 야경을 볼 수는 없었지만 저녁까지 온전히 베르겐 사람이 되어 시간을 보냈다. 하루 동안 베르겐을 돌며 만난 현지인들은 정말 책자에 써있던 말처럼 그들의 문화와 도시를 사랑하고 있었다. 과거를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리라. 덕분에 멀리서 날아온 여행자는 베르겐 사람들의 삶 안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행복을 느꼈다.

1 6 조용한 주택가를 오랜 시간 거닐다 보니 어느새 베르겐세르가 다됐다. 어떤 곳보다 편안함을 느꼈으니 말이다.
 2 3 5 스코스트리트는 현재 신발을 생산하지 않는 대신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고 있다. 감각적인 벽화와 트렌디한 베르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핫플레이스. 
4 7 커다란 분수를 중심으로 펼쳐진 풀밭이 매력적인 릴르 룽게가르즈반 공원. 한 폭의 그림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더니 역시나, 베르겐 사람이었다.
 8 플뢰엔 산은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순간에도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이용하고 걸어서 내려오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