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way :: Alesund

Awakening Your Sensitive in Alesund

올레순, 잠들어 있던 감성을 일깨우다

차가운 바람이 양 볼을 스치던 겨울, 작은 마을에는 회색빛의 재만이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었다. 복구조차 힘든 상황을 뒤엎고 올레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름다운 건축물과 함께 새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전 세계 많은 여행자를 사로잡은 올레순의 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글 김수현 기자 사진 강건호 취재협조 노르웨이관광청 www.visitnorway.com 02-777-5943, 한진관광 www.kaltour.com

울퉁불퉁한 도로 위에 들어선 카페 몇 개. 길 뒤편 조용하고 좁은 골목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유유히 걸어 다닌다. 길 찾는 것에는 영 소질이 없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올레순의 골목과 건물만큼은 뚜렷이 떠오른다. 노르웨이 지도 안에서 올레순이 차지하는 공간은 크지 않다. 그렇기에 짧은 시간 안에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대도시가 주는 것과는 다른 풍경에 매료됐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느새 마음속에는 지도 속 크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큰 사랑이 움트고 있었다.

도시, 아르누보로 다시 태어나다

1904년 1월 차디찬 바람이 부는 어느 겨울날, 올레순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삽시간에 도시 전역으로 퍼져 16시간 만에 850여 채의 집을 재로 만들었고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복구를 시도하기조차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올레순 사람들은 좌절이 아닌 극복을 택했고, 그 결과 불과 3년 만에 도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아르누보 스타일로 새롭게 태어났다. 프랑스어로 ‘새로운 미술’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르누보Art Nouveau는 19세기 말 유럽에서 일어난 미술 경향으로 주로 순수미술보다는 건축 장식이나 공예 등으로 표현됐으며 자연에서 모방한 물결치는 곡선 형태가 특징이다. 작은 해안마을이 주목받게 된 것은 이 아르누보에 영향을 받은 건축물 덕분. 높은 첨탑과 선이 아름다운 여인을 떠올리는 건물은 금세 입소문을 타고 노르웨이와 유럽 관광객을 이곳으로 이끌게 했다. 현재는 많은 건물이 레스토랑이나 개인의 주거지역으로 사용되는 중이지만 약재상을 개조해 만든 아르누보 센터The Art Nouveau Centre는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를 아르누보 양식으로 꾸며 볼거리가 가득하다.

올레순을 대표하는 특유의 아름다움은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악슬라 산Mount Aksla에서 절정을 이룬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전망대에 올라서니 노르웨이의 가장 예쁜 도시 중 하나로 인정받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만큼 환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차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지만 하이킹 코스를 잘 갖춰놨기에 매일 운동 삼아 산을 오르내리는 주민들도 많다고. 언제든 걷는 것만으로 이렇게 동화 같은 풍경을 만날 수 있다니. 이들은 전생에 무슨 공을 세운 걸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전생과도 같은 게 아닌 100년 전 올레순 사람들의 강인한 정신과 마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에 마음속으로 부러움만큼이나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올레순 산책의 두 가지 매력

높은 곳에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 이상으로 나무에 둘러싸여 걷는 즐거움을 통해 올레순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중심거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순뫼레 박물관Sunnmøre museum 주변은 고즈넉이 산책을 즐길 최적의 장소다. 박물관 한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가면 여러 채의 가옥과 배들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바이킹 문화와 18세기 무렵 어부들의 삶을 어느 정도 상상해볼 수 있다. 허름한 외관을 보고 짐작은 했지만 어민들이 살던 집 내부는 심플함 그 자체였다.
석유를 발견하기 이전의 노르웨이는 지금처럼 부유하지 않았기에 나무로 만든 적당한 크기의 어선과 이런 작은 집만 있다면 어느 정도의 생활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래서 안은 좁은 침대와 조리실 정도가 전부다. 심심한 내부보다 이목을 사로잡은 건 잔디로 덮여있는 독특한 지붕이었다. 건조한 시기에는 잔디를 그대로 두다가 비가 온 뒤에 자라면 적절하게 잘라 항상 비슷한 길이를 유지했다. 주변 호수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지붕은 볼수록 특이했지만 이는 오래전 농촌 지역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형태였다고. 박물관 내부에서는 이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관한 상설 전시회가 기다리고 있으니 여유 있게 천천히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어딜 가나 산책하기 좋은 차분한 도시에도 매일 역동적이고 힘이 넘치는 곳이 있다. 아이들과 해양생물이 함께하는 올레순 수족관Atlanterhavsparken. 고백하건대 여행자로서 조금은 불편하지만 한 나라의 경제 인구 입장에서 노르웨이에 살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주말을
정말 주말답게 보낸다는 것이다. 올레순뿐만 아니라 대도시의 백화점 및 편의점, 심지어 박물관과 같은 관광지까지도 일요일에는 문을 닫는다. 하지만 올레순 수족관은 일 년에 단 며칠을 제외하고 언제나 열려있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또 한가지. 그간 많은 수족관을 가봤지만 비율로 따지자면 다른 곳과 비교해 근해에 사는 해양생물이 월등히 많다.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메인 수조에도 올레순 주변에서 잡히는 물고기로 가득했다. 그동안 작고 귀여운 니모에 익숙했다면 겁먹을 만큼의 큼지막한 물고기들. 그러나 놀라는 것도 잠시, 이미 그 맛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입안에는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둔 사람의 표정이었던 걸까. 수족관 직원이 움직이는 물고기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것이 가장 맛있는 것이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사색에 잠기고 싶거나 에너지가 필요할 때라면 주저 말고 올레순으로 향하자. 완벽하리만치 평화로운 모든 풍경이 척박했던 삶에 쉼표를 선물하고 잠들어있던 감성을 일깨울 테니.

1 올레순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도시의 중심. 흐르는 물을 따라 카약킹이나 요트와 함께 휴식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2 조용하지만 그렇기에 삶에 쉼표를 선사하는 올레순. 
3 5 뾰족한 첨탑과 모서리가 둥근 것은 아르누보 건축양식의 특징이다. 미술 양식 중 하나라고 하니 어렵게 느껴지는지. 그렇다면 쉽게 생각하자. 예쁜 것이 곧 아르누보라고. 
4 7 순뫼레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 몇 채의 집과 배들은 이전 모습을 복원한 것과 실제 그들이 사용했던 것이 함께 있다.
6 멀리서 봤을 때는 신비롭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조금 무섭다. 사진 속에서 볼 수 있듯이 꼬마의 몸에 절반보다 큰 물고기들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