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Hokuriku

We Expect that all of Japan, Hokuriku

우리가 기대하는 일본의 모든 것, 호쿠리쿠
이유 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이 유행을 한다지만 대부분 어느 정도 목적성을 띤다.  자신이 선택한 여행지에 일정한 기대를 안고 가는 것은 인지상정. 여기 당신이 생각해 왔던 일본이 있다. 웅장한 대자연과 고색창연한 전통이 살아 숨쉬고 심지어는 맛있기까지 한. 대도시의 복잡한 일상에서 비켜난 때묻지 않은 일본의 모습. 호쿠리쿠라면 틀림없다.
글과 사진 임성훈 기자     취재협조 니가타현 관광국(www.enjoyniigata.com/korean),     인피니티 커뮤니케이션(www.dccom.co.jp)

호쿠리쿠는 도쿄를 기준으로 북서쪽, 동해와 인접한 이시카와(石川), 도야마(富山), 니가타(新潟), 후쿠이(福井)등 4개의 현을 아우르는 지방의 이름이다. 전통문화와 음식, 그리고 환상적인 자연이 어우러져 오래 전부터 일본인들은 이곳을 사랑했다. 많은 비와 강한 햇살이 교차하기를 여러 번. 변덕스러운 날씨에 조바심을 내며 호쿠리쿠의 3개 현을 둘러 보았다.

이시카와 현

일본전통문화가 숨쉬는 가나자와

이시카와 현의 중심도시인 가나자와. 전국시대의 장수 오다 노부나가의 측근 중 하나였던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가 가가(加賀, 현 이시카
와 현의 남부지역)에 터를 잡으면서 발전의 첫걸음을 뗐다. 전성기에는 1년에 백만석이나 되는 쌀을 산출해 ‘가가백만석’ 이라고 불리며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가나자와의 경제적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 2차대전의 전화를 피한 탓에 당시의 영화로움은 지금도 가나자와에서 온전히 숨을 쉰다. 그 중 일본을 대표하는 ‘다이묘(大名 지방의 번주)정원’인 켄로쿠엔을 찾아봤다.

일본의 3대 정원으로 불리는 켄로쿠엔(兼六園)

아는 사람은 안다. 일본인들이 얼마만큼 자신들의 정원 문화를 자부하는지. 또 그것을 향유하는데 있어 열심을 다하는지. 그들에게 있어 ‘이름난
정원’은 영원한 버킷 리스트다. 그런 점에서 가나자와 사람들은 전생에 나라를 열 번은 구했나 보다. 오카야마의 코라쿠엔, 미토의 카이라쿠엔과 함께 ‘일본의 3대 정원’으로 불리는 켄로쿠엔을 바로 앞 발치에 두고 있으니.

“무척 더운 날씨지만 미안하게도 많이 걸어야 할 겁니다. 켄로쿠엔은 보통의 정원과 비교해 아주 넓으니까요. 총면적이 무려 11만 제곱 미터나 됩니다”. 동행한 정원 해설사가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며 걷는 데 불평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의 넓이를 나타내는지 선뜻 와 닿지 않았다. 뉘앙스로 봐서 켄로쿠엔이 ‘아주 넓고 큰 정원’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본격적으로 산책을 시작하고 스르르 땀이 배기 시작할 무렵, 청량한 소리가 반가워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폭포였다. 작은 석탑을 품은 연못의 모습도 보였다. 단풍나무들에 둘러싸인 풍경이 시리게 운치 있는 이곳, 히자고이케(瓢池)였다. 히자고(瓢)는 우리말로 호리병을 뜻한다. 연못의 가운데가 잘록한 모습이 꼭 호리병처럼 생겼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과거 켄로쿠엔의 모태가 된 정원 ‘렌치테이(蓮池庭)’가 있던 곳이 여기여서 ‘켄로쿠엔의 발상지’로도 인식된다고.

연간 170만 명이 찾는 곳이라기에 사람들에 치이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했었는데 웬걸. 정원의 중심으로 향할수록 고요함은 점점 깊이를 더해갔다. 사람들이 자취를 숨긴 산책로 주변은 종류도 모를 수많은 이끼와 나무들이 대체했다. 비현실적으로 알록달록한 초록물결에 감탄해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와우! 세상에는 이처럼 많은 종류의 초록빛깔이 있으며 심지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

명품정원이 되기 위한 여섯 가지 조건

과거 송나라의 시인 이격비는 자신의 글 [낙양명원기]에서 명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광대함, 고요함, 고색창연함, 인력(인공적인 미), 조망, 수
로]의 여섯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도시대의 정치가인 ‘마쓰다이라 사다노부(松平定信)’가 이것에 힌트를 얻어 이 거대한 정
원에 켄로쿠엔(兼六園)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격비가 제시한 조건 여섯 가지를 겸비한 정원이라는 뜻이다. ‘끄덕끄덕’. 그렇다면 너무도 잘 지
어진 이름이다. 이 정원이 가진 분위기를 설명하는 데 있어 켄로쿠엔이라는 이름 외에 보다 확실한 표현이 또 있을까?

조용한 산책로를 걸으며 만끽했던 호젓함과 녹색의 향연이 조금은 심심해 질 무렵, 웅성거리는 소음과 함께 한 순간 시야가 넓어졌다. 조금 전까
지도 감동해 마지 않던 켄로쿠엔의 녹음을 오롯이 수면에 토해내고 있는 연못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카스미가이케(霞ヶ池). 가가번의 5대 번주 ‘마에다 쓰나노리’가 공사를 시작한 이래 180년. 대를 이어 심혈을 기울여 완성시킨 정원 켄로쿠엔의 그런 감상은 켄로쿠엔의 하이라이트와 드디어 마주 선 것이다.

대강이나마 연못의 형태를 가늠해보고자 바쁘게 굴리던 눈동자에, 여러 대의 카메라들이 주시하고 있는 한 장소가 포착되었다. ‘아, 저것은……’ 카스미가이케의 심볼로 불리는 석등 ‘코토지도로’가 연못을 배경으로 묵묵히 서 있었다. 켄로쿠엔을 대표하는 단 한 장의 이미지를 꼽으라면 열에 아홉이 주저 없이 선택하는 유명한 풍경이다. 코토지도로를 자세히 보면 좌우다리의 길이가 다른데 메이지 시대 초기에 ‘우연히’ 한쪽이 변형된 것이라고. 오가는 사람들이 이것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를 망설이지 않는 주요한 이유가 되었다. 뜻하지 않게 불완전한 모습이 된 후, ‘비대칭의 미학’으로 불리며 오히려 큰 관심을 받게 된 코토지도로. 새옹지마라는 말이 우리 인생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400년 전통의 명과에서 체험한 화과자만들기

차 한잔에 곁들인 화과자(일본어로는 ‘와가시’)의 맛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씁쓸하고 담백한 차의 뒷맛과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화과자의 오묘한 조화는 서로에게 깊은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이런 이유로 다도의 역사와 화과자의 발전은 그 맥을 함께 해 왔다. 다도문화가 발달한 가나자와. 맛있고 전통 있는 화과자의 도시로 유명하다. 그래서 들러봤다. 화과자를 직접 만들어 보기 위해.

“나무틀에 넣은 가루를 꾹꾹 눌러 주는 게 제일 중요해요. 가루가 부드러워 어설프게 뭉쳐지면 쉽게 부서집니다. 그렇다고 너무 힘으로만 하지 마세요. 정성을 담아 누르는 겁니다.”

화과자를 만드는 체험과정은 단순했다. 먼저 화과자의 재료가 되는 가루(곡물가루와 설탕을 섞은 것)를 플라스틱 통에 부어 골고루 섞는다. 그리고 음각으로 무늬가 새겨진 나무틀(무늬가 새겨진 본체와 덮개부분이 분리가 된다)에 가루를 넣고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준다. 나무틀 위에서 어지럽게 날리는 가루들을 평평한 플라스틱 판으로 쓸어내면서. 마지막 과정은 봉으로 나무틀을 가볍게 두드려가며 뚜껑이 되는 부분을 조심조심 들어내는 것. 틀 안에 부어진 재료를 손가락으로 누를 때와 나무틀의 덮개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실수만 없다면 대부분은 예쁜 모양의 화과자를 얻게 된다.

나무틀을 이용해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화과자를 ‘라쿠간’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알고 보니, 체험장소였던 모리하치(森八)가 엄청난 ‘라쿠간’의 명가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쵸세이덴’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집의 라쿠간이 ‘일본의 3대명과’로 불리는 명품이라는 거다. 1625년에 창업되었다니 가게의 역사 또한 유구하다.

체험도중 과자를 쑥쑥 뽑아내던 ‘나무틀’이라는 것에 흥미를 느끼던 차, 그 동안 사용했던 나무틀을 전시한 방이 있다고 하여 냉큼 달려갔다. ‘우오오!’ 몇 개인지 셀 수도 없이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과자의 틀들. 그 속에 새겨진 테마들의 다양함과 정교함에 눈이 부셨다. 그것은 이미 과자를 찍어내기만 하는 단순한 틀이 아닌, 예술로 불려야만 마땅했다.

1 켄로쿠엔을 대표하는 단 한 장의 이미지를 꼽으라면 바로 이것. 누구나 사진 찍기를 망설이지 않는 유명한 풍경이다. 
2 ‘가스미가이케’에 조성한 인공 섬인 ‘호라이지마’. 거북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장수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다. 
3 일본 최고의 정원과 가장 잘 어울리는 복장이라면 단연 일본 전통의상. 갑작스러운 기자의 부탁이었지만 흔쾌히 포즈를 취해 준 아가씨들의 
    미소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4 일본신화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인물 ‘야마토타케루’의 동상. 신기하게도 이 동상 주위에는 새들이 접근하지 않는다는데. 알고 보니 동상이 미량
    의 비소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그러하다고. 
5 금박공예의 중심지인 가나자와의 ‘사쿠다’에서 만난 금박공예품의 화려한 모습. 이곳에서는 금박공예체험도가능하다. 
6 가나자와와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인 화과자 체험. 화과자의 재료를 플라스틱 통에 부으며 즐거워 하는 체험 참가자들. 
7 나무틀 전시실로 향하는 통로의 모습. 전시실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나무틀의 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니가타 현

맛있는 일본의 재발견

니가타는 눈이 많이 내린다. 녹으면서 얻어지는 것은 대지를 적시는 깨끗한 물. 이는 좋은 물이 필수적인 술 제조와 벼 재배에 축복이나 다름없다. 니가타가 쌀과 사케에서 최고급으로 꼽히는 이유다. 니가타는 산도 많고 해안선도 길다. 신선한 채소와 해산물이 일년 내내 넘쳐난다. 자연은 그렇게 니가타에 아름다운 맛을 선물했다.

니혼슈(일본사케), 니가타의 자존심

니가타는 니혼슈의 본고장으로 불린다. ‘기후, 쌀, 물, 양조기술’로 불리는 4대 양조조건이 완벽하다. 현 내에 분포한 양조장 수만 92개. 이는 단일 현이 가진 양조장 수에서 일본 내 최다이다. 사케의 품질은 또 어떤가? 고급으로 평가 받는 '긴죠(吟.)'이상 급에서 출하량 1위, 니가타 산(産)사케인 고시노간바이, 구보타, 핫카이산은 일본인들이 가장 마시고 싶어하는 사케의 랭킹 1~3위를 휩쓴다. 1등만 좋아하는 니가타. 정말 술에 관해서는 못 말리는 동네다.

사케를 비교하는 방법

세상 어떤 술이라도 마실 때의 예법이 있고 룰이 존재한다. 흔히 말하는 주도가 바로 그것. 그런데 시음에도 방법이 있다니! 1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미노이’ 주조를 들를 수 있었던 건 그래서 행운이었다. “지금 보시는 사케 잔이 술을 체크하는 포인트입니다. 바닥을 유심히 보세요. 뱀의 눈이 보일 겁니다.” 기미노이 주조의 총무담당인 ‘키가(木賀)’ 씨의 말에 따라 사케 잔의 바닥을 살피니 ‘오오, 과연!’. 파란색 원 두 개가 그려진 밑이 꼭 뱀의 눈을 닮았다. 파란 선이 그려진 부분으로는 술의 투명도를, 가운데의 흰색 부분으로는 술이 지닌 색을 체크한다고. “어떤 술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지 알기 위해서 ‘키키자케(비교시음)’는 필수입니다. 술의 품질과는 별개로 말입니다.” 키가씨가 알려 준 키키자케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색을 체크한다. 그리고 잔을 얼굴 가까이 가져간 후 냄새를 체크한다. 마지막으로 입에 넣고 머금은 후 뱉는다. 덧붙여 키가씨는 사케를 맛있게 마시려면 가급적 차게 해서 마실 것. 만약 데워야 한다면 40도의 온도에 맞출 것을 강조했다.

행동 없는 이론은 의미 없다. 본격적인 술 맛 비교를 위해서 니가타 역 안에 위치한 사케박물관으로 달려갔다. 이름은 ‘폰슈칸’. 무려 100가지가 넘는 사케의 맛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곳이다. 키키자케를 위해 사케체험장으로 들어섰다.

500엔을 내면 코인 다섯 개를 받는다. 코인 하나당 술 한잔을 마실 수 있으니 총 다섯 잔을 시음할 수 있다. 술의 이름과 종류들이 표시된 자판기 앞에 섰다. 그 수가 너무 많아서 고민하던 찰나, 벽 한쪽에 걸려있는 칠판 두 개가 눈에 보였다. ‘이 달의 추천 사케 베스트5’와 ‘지난 달의 인기 사케 랭킹10’이 이름과 자판기의 번호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 밑으로는 안주용 소금들이 작은 함에 담겨 놓여 있었는데, 모두 니혼슈와 어울리는 소금들이라고 했다. 이용방법도 설명되어 있었다. 적당량을 스푼으로 덜어 손바닥에 뿌린 다음, 입안에 넣고 혀의 가운데 부분으로 맛을 보라고 했다. 많고 많은 안주 중에 왜 하필 소금이냐고 물어보니, 사케의 맛을 부드럽게 살려 주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키키자케에 앞서 손바닥에 소금을 덜고 작은 사케 잔을 받아 자판기 앞에 섰다. 그리고 지난 달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시음했다는 술, ‘에치고 쓰루가메’에 주저 없이 코인을 밀어 넣었다. 기미노이에서 배운 시음 법에 따르면 잠시 동안 입에 머금다 뱉어내야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잠시 후, 사케의 부드러운 향이 입 안에서 맴돌다 목과 식도를 천천히 적셔왔다.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니가타였다.

매운맛으로 일본을 사로잡다, 간즈리

니가타 묘코지역의 특산물인 간즈리는 고추를 발효시킨 조미료다. 과거 이 지역에서 간즈리의 인기는 대단했다. 겨울에는 추위를 견디게 해주는 보온식으로, 여름에는 스테미너를 유지시키는 보양식으로 대접받았다. 집집마다 간즈리 만드는 냄새로 가득했다. 그러던 것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장점이었던 매운 맛이 너무 맵다는 이유로 기피의 원인이 되었던 것.

“미국에서 유학했던 젊은 시절, 고향에서 가져 온 간즈리는 입맛을 지켜주는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여러분과 고추장의 관계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되실 겁니다. 그것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까웠지요. 그래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와 함께 간즈리를 살리기 위해서 팔을 걷어 부쳤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간즈리’의 대표 ‘도죠 쿠니아키’씨가 말했다. 그 후로 간즈리를 이용해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개발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맛이 확립되지 않던 시기였지요.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언제나 꿈을 잃지 말자고 격려해 주시던 분이 아버지였습니다. 속상하기는 마찬가지셨을 텐데……” 말을 잊지 못하던 도조대표는 입을 열었다. “아! 이거다 하는 감이 왔지요. 그렇게 간즈리의 맛을 찾은 게 20년 전입니다” 이후로 간즈리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하자면 도죠 대표의 설명이 이어지는 도중 틈틈이 딴 짓을 했다. 사진 한 장이 자꾸 눈에 들어와 어쩔 수 없었다. 설산을 배경으로 작업복을 입은 여인들이 눈밭 위에 빨간 고추를 뿌리고 있는 모습. 몰래 훔쳐 보던 사진의 정체는 곧 드러났다. ‘유키사라시(雪さらし)’라고 했다. 직역하면 ‘눈 위에서 말린다’. 소금에 절여둔 고추를 눈 위에 뿌린 후, 3~5일간 햇빛에 말리는 간즈리 핵심 제조과정의 하나라고. 그렇게 유키사라시를 거친 고추의 맛은 순하고 부드러워 진다고. 원체 눈이 많은 묘코라, 뿌려진 고추들이 하룻밤 사이에 눈에 파묻히는 경우도 때때로 벌어진단다. 그렇
게 되면 이듬해 봄이나 되어서야 꺼내게 된다고.

“일본의 기무치는 김치의 일본식 절임일 뿐입니다. 결코 김치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본고장인 한국에서 맛본 김치의 매운 맛은 결코 이렇지 않았어요. 한국을 통해 매운 맛을 더 배우고 싶습니다. 그렇게 매운 맛을 교류하며, 한일관계가 더욱 돈독해 지기를 진심으로 희망하구요”라고 말을 맺는 도죠 대표를 보며 생각했다. 일본 사람들이 비록 매운 맛에 약할지언정, 매운 맛을 싫어한다고 그 누가 쉽게 단정할 수 있을까.

대부호의 생활을 엿보다, 북방문화박물관

박물관이라는 어감이 주는 딱딱한 격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동네 마실 다니듯 부담 없이 다녔다. 일본 옛집 특유의 검은 색 나무 담장도, 비슷해 보이지만 우리 것과는 다른 기와 지붕도, 수국과 연꽃 무리들 사이에서 반짝거리는 햇빛처럼 낯설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담하다거나 수수한 모습도 아니다. 차라리 그와는 반대다. 명색이 에도 시대를 거쳐 메이지 시대를 아우르며 니가타 제일의 부자로 떵떵거리던 ‘이토’ 가문이 살던 집이다. 다다미방만 65개가 넘는 대저택. 집안 구석구석에 보존된 장식물과 집기에는 대부호의 아우라가 서려 눈이 부시다. 다다미 백장이 사용된 대응접실은 위화감이 들만큼 넓었고, 기둥 하나 없이 꾸며진 긴 복도에는 ‘세상에나!!’를 연발했다. ‘가마쿠라-무로마치’시대 풍으로 조성된 정원 또한 이 집의 품격이 예사롭지 않음을 증명했다. 에도 풍의 흰 벽과 검은 기와가 멋졌던 건물 ‘슈코칸’에서는 결국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집트에서나 볼 수 있는 미이라의 마스크부터 페르시아의 타일, 중세유럽의 진귀한 구슬까지. 이 모든 보물급 미술품들이 단지 ‘취미’로 모아
진 컬렉션이라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집이 편안하기만 했다. 그것은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식당인 ‘미소소우’에서 먹어 본, 정말 밥짓는 냄새가 최고인 ‘하가마’밥에서 전해진 여기 어머니들의 손맛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 거대한 저택을 순순히 지역에 기증한 이토 가문의 마음씀씀이가 이유일 수도 있겠고. 있어도 더 가지고 싶어하는 욕심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렇게 하기가 어디 쉽겠는가?

1 폰슈칸은 술뿐만 아니라 간장 맛의 비교하며 시식해볼 수 있는 장소였다.
2 니가타를 제대로 설명해 주는 홍보문구. “니가타, 느긋하게 맛있는 여행”
3 일본전통가옥에서 기품 있는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면 주저 말고 이 건물을 이용해 볼 것. 외부인의 숙박이 가능하도록 꾸며 놓았는데 한국인에
   게는 특별 디스카운트도 가능하다고. 
4 1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니혼슈 ‘기미노이’.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니가타의 명품 술이다. 
5 간즈리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다양한 제품들. 
6 북방문화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식당인 ‘미소소우’에서 맛 본 니가타 향토요리. 지역 어머니들의 손맛과 정성으로 만들어진 진짜배기 니가타   
    음식이다.

도야마 현

웅장한 대자연의 보고

도야마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다면,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된다. 빌딩높이로 쌓아 올린 설벽 사이를 아슬아슬 지나가는 버스의 모습. 3000미터급 고산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우리가 ‘다테야마 알펜루트’로 부르는 그곳. 감이 빠르다면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도야마는 일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웅장한 풍경들이 펼쳐진 천혜의 자연 여행지다. 여기 다테야마 알펜루트에 못지 않은 또 하나의 환상적인 자연이 도야마에서 여행자를 유혹한다. 일본에서 가장 깊은 V자 협곡, ‘쿠로베(.部)협곡’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 제일의 협곡을 만끽하는 최고의 방법. 토롯코열차

쿠로베 협곡을 감상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배낭을 메고 협곡의 구석구석을 걷는 방법. 또 하나는 토롯코 열차라는 협곡열차를 이용해 둘러보는 것. 하지만 입장조건이 까다롭고 숙련된 산악인 외에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길이 많아 일반여행자의 선택은 대부분 후자이다.

열차의 시발점인 ‘우나츠키역’에서 토롯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종점인 ‘게야키다이라역’까지 20Km를 달릴 예정. 기대해도 좋다고 했다.
열차 밖으로 보이는 협곡의 아름답기가 눈물이 날 정도라고 했다. 그러니 한 순간도 풍경에 시선을 떼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전날 저녁식사 도중 현지 관계자인 ‘무라야마’씨가 한 말이 떠올라 착잡했다. 이유는 비 때문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 이랄까. ‘츠유’라고 불리는 일본장마에 태풍까지 북상하면서 날씨는 거침이 없었다. 굵은 빗방울은 사방을 압박했고, 거센 바람은 난폭하게 주위를 흔들었으며, 안개인지 구름인지 분간하기 힘든 자욱한 연기에 시계도 엉망이었다. 터져 나오는 한숨을 어쩌지 못하는 사이 출입문이 닫히고 열차는 곧
출발했다.

토롯코 열차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잘도 달렸다. 손을 뻗으면 벽에 닿을 듯, 폭이 좁은 레일 간격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열차가 출발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가 밝아지며 협곡의 속살이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이 걸린 천애의 절벽들이 근위병처럼 엄숙한 자태를 뽐냈고, 거대한 초목들은 깎아 지른 골짜기를 빈틈없이 메웠다. 천둥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빠른 속도로 계곡을 가르는 물결은 또한 비현실적으로 파랬다. 자연은 쿠로베협곡에 이토록 멋진 그림을 그려 놓았다. ‘스고이’를 연발하며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다 문득 궁금해졌다. 어떤 계기로 사람들은 이 험한 쿠로베협곡을 택해 열차를 놓게 되었는지.

아찔하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와

수량이 풍부하고 유속이 빨라 큰 비가 내리면 협곡의 아래는 온통 물난리였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수력발전소의 입지로는 최적의 장소. 협곡 안에 댐을 만들고 발전소를 세웠다. 이 와중에 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인력과 자재를 수송할 교통편이 필요했다. 이것이 바로 토롯코 열차가 태어나게 된 계기다. 그러다 1953년에 정식철도로 인정받고 상업용으로 전환했다. 영업초기에는 ‘목숨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양해를 구하고 승객을 태울 만큼 위험한 구석이 있었다고.

당시의 아찔함을 공유하고 싶은 용자가 있다면 창문 없는 오픈 차량(보통객실)을 이용해 보도록. 시속 16Km의 속도로 천천히 달리는 토롯코지만, 자칫 실수라도 하는 날엔 까마득한 협곡의 아래로 번지점프를 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모습이 연출된다. 그렇다고 너무 말자. 토롯코 열차는 놓치지 말아야 할 뷰 포인트와 주의가 필요한 장소라면 어김없이 안내방송으로 일러줄 만큼 친절하니까 말이다. 여기서 하나의 팁을 더하자면 토롯코 열차는 같은 길을 왕복하는 시스템. 우나츠키 역에서 출발할 때는 진행방향으로 오른쪽, 돌아올 때는 왼쪽 편 좌석에 앉도록 하자. 대부분의 뷰 포인트가 그 방향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쿠로베 협곡의 대자연을 느긋하게 즐기다 보면 편도 80분이라는 소요 시간이 눈깜짝할 사이에 흘러간다.

 

쿠로베협곡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풍경들

우나츠키 댐

진홍색 다리가 에메랄드 그린의 호수와 어울려 절경을 연출하는 우나츠키 댐. 도쿄 돔의 20배에 달하는 물을 저장한 이 댐은 쿠로베강의 하류를
범람에서 보호한다고.

신야나가와라 발전소

중세유럽의 고성을 연상케 하는 이 건물의 실체가 궁금했는데, 어이없게도, ‘신야나가와라’ 라는 이름을 가진 수력발전소라고 한다. 에메랄드 그
린의 호반 위에서 기품 있게 서 있는 모습.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모습을 가진 발전소 아닐까.

아토비키교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구로나기 역과 터널을 연결하는 이 파란색 다리에서는 반드시 눈을 감을 것. ‘아토비키바시’라는 이름을 가진 이 파란색
교량이 걸쳐져 있는 높이는 무려 60m. 철도 연선에서 가장 깊고 험한 계곡 사이에 놓인 다리이다. 까마득한 높이에서 내려다 보이는 쿠로베 강
의 파란 물결이 아찔하기만 하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