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Malaga

More Malaga, Please

볼 빨간 말라가

그 이름을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순간 느껴지는 풍요로움, 말라가. ‘유럽의 발코니’로도 불리는 이 풍요의 땅은 스페인 남부의 꽃이다.
축제와 바다, 햇볕,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니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전역의 여행객들에겐 이만한 지상 낙원도 드물다. 외적인 화려함 뒤로
중후한 역사까지 지닌 이 뜨거운 도시에 들어서면 모든 얼굴에 홍조가 오른다. 말라가에 매혹되어 쉼 없이 웃고,
춤추는 사람들의 볼은 그토록 행복한 붉은 빛이었다.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최은주 기자 취재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com, 말라가 관광청 www.malagaturismo.com

Malaga :: Culture

The City of Sleepless Fair  잠들지 않는 축제의 도시

말라가가 아무리 그대를 행복하게 해도 짙어지는 다크서클을 막아낼 길은 없을 것이다. 운 좋게도 1년에 한 번뿐인 말라가 페어 기간에 방문한 나는 서울보다도 늦게 잠드는 도시를 유럽에서 처음 만났다. 매일 이른 아침에 일어나 여정을 시작해도, 새벽 1시는 넘겨야만 여전히 아우성치는 축제의 도시에 항복을 고하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 축제의 현장을 말라가의 특별한 문화들과 함께 소개한다.
단 한 시도 쉬지 않는 말라가의 열정은 그렇게 축제가 열리는 10일 내내 꿈틀거린다.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최은주 기자 취재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com, 말라가 관광청 www.malagaturismo.com

태양의 축제를 시작한다

이만한 행운이 또 어디 있을까. 내가 말라가에 도착한 때는 말라가에서도 연중 큰 축제에 속하는 ‘말라가 페어Feria de Malaga’가 한창인 시기였다. 매년 8월 19일 자정에 시작해 9박 10일 동안 밤낮없이 이어지는 이 축제 기간의 말라가는 상상 그 이상이다. 길거리에서는 5초에 한 번씩 커다란 꽃과 장신구, 화려한 드레스로 한껏 치장한 사람들이 눈에 띤다. 남녀노소 모두가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술을 마시거나 사람을 구경하고, 아무데서나 춤을 추고, 서로를 응시하며 열정적인 대화에 꽃을 피운다. 특히 말라가 페어의 낮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싶다면 낮의 심장부, 마르케스 데 라리오스 거리Marques de Larios Street으로 발만 살짝 들여놓으면 된다. 널찍한 거리의 입구는 말라가를 상징하는 재스민 꽃다발 비즈나가Biznaga의 거대한 모형이 자랑스럽게 세워져 있으니 찾는 건 시간문제다. 일단 간단하게 말라가 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발견했다면! 그곳이 바로 마르케스 데 라리오스 거리다. 축제가 시작되면 여성들은 모두들 자신 얼굴 크기의 꽃핀을 머리에 꽂은 채로 거리를 활보한다. 날씨가 좋은 날 처음 외출해서 상쾌한 기지개를 피듯, 말라가 여성들은 특히 축제 시즌이면 본인의 한껏 고조된 기운과 기분을 뽐내기 위해 머리에 꽃을 피운다. 더불어 개성을 듬뿍 살린 각양각색의 플라멩코 드레스를 입고 활보하는 여성들도 수두룩하다. 처음 이들을 발견했을 땐 그 놀라움과 아름다움에 쉴 새 없이 입이 쩍쩍 벌어졌지만 3시간이 지나니 그조차도 익숙해질 만큼 말라가 사람들은 이 축제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도대체 이토록 아름다운 젊은 남녀들이 10일 내내 마르케스 데 라리오스 거리를 바글바글 채울 만큼 환상적인 축제가 언제부터 이어진 것인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물었다. 하지만 정말 희한한 건 그 누구 하나 명쾌하게 대답해주는 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수많은 시도 끝에 알아낸 축제의 역사를 짚어 보며 왜 이를 설명하기 어려워했는지 쉽게 깨달았다. 이 축제의 정확한 시초로 추측되는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최소 500년도 전이다. 오랫동안 무슬림에 의해 지배되고 있던 말라가는 가톨릭 군단의 대대적인 전투로 1487년 8월 19일, 그 주인이 다시 바뀌게 된다. 마치 우리의 독립기념일처럼 8월 19일마다 크고 작은 축제를 이어오다 말라가 페어라는 이름하에 본격적인 여름 축제로 지정한 것이 1887년의 일이다. 이 축제의 시작이 그랬듯 일단 페어의 막이 오르면 사람들은 즐기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목적인 것처럼 그저 웃고, 먹고, 춤춘다. 유럽에서 새벽 2시가 넘도록 온 거리에 생기가 넘치는 모습을 본 건 말라가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메인 거리 주변으로 미로처럼 번지는 골목골목들까지 모두 탐험해봐야만 말라가 페어의 다양한 뜨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감히 말하건데, 그대 인생 최고의 여행을 만나고 싶다면 매년 돌아오는 말라가 페어 기간에 이곳을 찾아라. 스스로의 모든 억압을 해제시키고 불가능이란 없다는 생각을 품고 말이다. 단,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유럽 전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이 기간에는 빈방을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니 빠른 예약은 필수다.

1 라리오스 거리 주변으로는 이런 골목들이 셀 수 없이 많다. 
2 말라가 페어 기간에는 길거리를 무작정 걷더라도 정겨운 악단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3 엘 삠삐 레스토랑에서 만난 말라가의 또 다른 상징 비즈나구에로.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향기로운 재스민 비즈나가는 오전에는 봉우리를 오므리고 있지만 오후로 넘어갈수록 활짝 피어난다. 
4 정오가 가까워오는 도심의 골목 풍경이다. 말라가는 해가 지면 골목 사이사이에서 더 많은 이야기들이 새어나온다. 
5 마드리드에 사는 예쁜 세 가족이 말라가 페어를 맞아 멋지게 차려입고 외출에 나섰다.

매년 8월 19일 자정에 시작해 9박 10일 동안 밤낮없이 이어지는 이 축제 기간의 말라가는 상상 그 이상이다. 남녀노소 모두가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술을 마시거나 사람을 구경하고, 아무데서나 춤을 추고, 서로를 응시하며 열정적인 대화에 꽃을 피운다. 일단 간단하게 말라가 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발견했다면! 그곳이 바로 마르케스 데 라리오스 거리다. 도대체 이토록 아름다운 젊은 남녀들이 10일 내내 마르케스 데 라리오스 거리를 바글바글 채울 만큼 환상적인 축제가 언제부터 이어진 것인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물었다. 하지만 정말 희한한 건 그 누구 하나 명쾌하게 대답해주는 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피와 모래가 휘날리는 투우의 현장

투우 경기장 안으로 비치는 이글거리는 태양과 황소의 분노는 지극히도 스페인을 떠올린다. 투우 애호가들에게 말라가 페어는 더욱 특별한 축제다. 페어가 이어지는 일주일 간 ‘라 말라게따La Malagueta’ 투우장에서 매일 투우 경기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말라가에서 1년 중 투우 경기가 벌어지는 때는 크게 두세 번 뿐인데 말라가 페어가 그 중 하나다. 사실 투우와 플라멩코는 말라가가 속해있는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전통이다. 단순한 이미지만을 통해 알고 있던 투우와는 달리 실제 투우장은 매 경기마다 피와 모래가 뒤섞이는 잔인한 공간이었다. 스페인의 북동부에는 투우 경기에서 황소를 죽이는 일을 법적으로 금하는 곳도 있지만 여전히 스페인의 남부 지방에서는 과거로부터
전해진 그대로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투우의 역사가 가장 깊은 지방이라 이에 대한 애정도 역시 스페인 내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자연스레 유명한 투우사들은 안달루시아 출신인 경우가 많다.

전통적인 투우 경기에는 세 종류의 투우사들이 참여한다. 투우 경기를 리드하는 가장 중요한 투우사인 ‘마타도르’, 그리고 그와 함께 경기의 분위기를 잡아가는 일종의 바람잡이 투우사 ‘반데리예로’, 말에 올라 타 긴 창으로 황소를 공격하는 ‘피카도르’. 간혹 반데리예로 없이 모든 과정을 홀로 치르는 마타도르도 있지만 대체로 최소 4명의 투우사가 한 투우 경기에 참여하게 된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들이받을 것만 같은 뜨거운 황소가 투우장에 등장한다. 수평에 가깝게 곧게 뻗은 등과 허리, 두툼한 가슴과는 달리 잘록한 허리를 지닌 몸뚱이는 탄탄한 근육들로 꿈틀댄다. 투우 경기는 등장하는 소의 성격과 기량에 따라 경기의 전개가 매번 달라지지만 간간히 발생하는 즉흥적인 변화를 제외하면 진행되는 과정과 방식은 고정되어 있다. 피 끓는 황소는 네 번의 고개를 넘으며 서서히 죽음에 이른다. 황소는 가장 처음 갑옷을 두른 말에 올라탄 피카도르의 긴 창에 윗목을 두세 번 찔린 후, 마타도르와 반데리예로의 합심 아래 한 번에 두 개씩 세 번 총 여섯 개의 작살이 창에 찔린 상처 주위로 박힌다. 그렇게 서서히 윗목의 출혈이 심해지고 황소가 체력을 잃어 가면 마타도르는 미리 준비한 긴 칼을 황소의 심장을 향해 완벽히 꽂는다. 이 세 번째 과정까지 마친 후 황소의 출혈은 극에 달한다. 움직일 때마다 더해지는 출혈로 그 정신과 기력이 흐려지는 것이 먼발치에서도 느껴진다. 이런 채로 마타도르의 붉은 천 물레타와의 씨름을 몇 번 거치고 나면 황소들은 여지없이 앞다리부터 풀썩 무릎을 꿇는다. 그렇게 큰 두 눈만 껌뻑이며 모래바닥에 앉아 항복을 외친 황소는 반데리예로 중 한명이 쥐고 있던 단칼로 두 뿔 사이의 급소를 찔리며 생명에 패배를 고하는 것이다. 경기장에 등장함과 동시에 흥분에 빠진 황소가 마타도르와 나머지 바람잡이들의 물레타에 의해 건강한 분노로 날뛰는 순간은 사실 그리 길지 않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느껴진 황소의 강인함에 매료되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기에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늠름한 한 생명체의 힘 말이다. 물론 그 것은 노련한 마타도르의 기교에 매번 배를 보이고 말지만 스페인 사람들 중 투우 관람을 선호하지 않는 많은 이들을 그나마 경기 중에 가장 설레게 하는 순간 역시 바로 이 때다.

황소의 죽음이 관중에게 남기는 것

이 날의 경기에서는 한 마타도르의 손에 한 경기에 한 마리씩 그렇게 여섯 마리의 황소가 목숨을 달리했다. 사실 경기를 관람하기 전, 말라가 토박이들은 투우가 처음이라면 맨 앞자리는 피하길 권했지만 투우의 열정적인 이미지만을 기대했던 나는 의아할 따름이었다. 실제로 가장 앞자리에서 관람하는 투우 경기는 스페인 현지 사람들에게도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다. 실제로 황소의 피가 튀는 일도 빈번하고, 가끔은 성난 황소가 담벼락을 넘어 관중석으로 뛰어드는 경우도 발생한다. 거기에다 경기 자체의 흐름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보는 투우는 황소가 죽어가는 과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경기장을 유쾌한 기분으로 나오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경기 과정을 환호와 박수갈채로 일관하는 투우애호가들에게 이는 마타도르 한 사람이 강인한 생명체와 싸워 이기는 스포츠일 뿐이다. 그래서 모든 투우 경기는 마타도르의 유명세와 기량에 따라 경기의 가치와 질, 입장료 가격까지 달라진다. 매번 황소의 분노를 자극하며 모든 인생을 그 뿔 앞에 담보로 거는 마타도르의 길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인생을 다 가진 것 같다가도 스스로 속고 있었음을 깨닫고, 그렇게 허무하다가도 다시 다양한 감정들이 샘솟는 짧은 인생사와 같은 전개의 투우. 경기의 잔인함과 투우사들의 비겁함에도 굳건히 스페인 문화 자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용기가 필요하다. 첫 낯설음을 이겨낸다면 피카소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선사한 투우의 진면목이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1 경기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한 피카도르와 황소가 대치하는 중이다.
2 관중들은 마타도르와 황소의 움직임, 숨소리 하나에까지 집중한다. 
3 말라가에서 유일한 말라가 투우장의 전경. 4 한 손에 하나씩 두 개의 작살을 든 마타도르가 맨몸으로 황소를 유인한다.

 
1 카르멘 티센 미술관에서는 스페인 특유의 흥이 담긴 작품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2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깔끔하게 디자인된 전시관. 
3 작품에는 저작거리로 난입한 황소 때문에 황급히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4 말라가 페어는 아마 애초에 이런 식으로 시작됐을 것이다. 어쩌다 모인 사람들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면서. 
5 작품을 바라보며 과거 추억에 잠긴 관람객. 6 카르멘 티센 미술관의 외관.

그림으로 말라가를 추억하는 일, 카르멘 티센 미술관

말라가를 포함한 안달루시아 지방은 태양의 따스함을 받는 세상이 가장 쨍한 빛깔들이 뱉어내는 땅이다. 그런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닮은 말라가 페어와 투우의 과거 모습까지 추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마르케스 데 라리오스 거리와 연결된 도심에서 카르멘 티센 미술관 건물을 찾는 일이다. 카르멘 티센 미술관은 말라가를 품은 안달루시아 전역의 발자취에 관련된 그림들을 250점 이상 소장하고 있다. 지어진지 3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미술관의 탄생 스토리가 독특해서인지 이미 1년에 16만 명 이상이 찾는 유명 미술관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카르멘 티센 미술관은 동명의 여인이 자신의 이름을 따 말라가에 세운 미술관이다. 스페인의 여배우 출신이었던 카르멘 티센Carmen Thyssen의 남편은 예술계에서 알아주는 부호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세상을 달리한 후 남긴 엄청난 수의 소장품들을 갖고 그녀는 스페인으로 이주한다. 그 중 1500점을 전시하기 위해 첫 미술관을 세울 도시로 정한 곳이 마드리드. 그런 이후 그녀의 친구였던 유명 영화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Antonio Banderas에게서 말라가에 대한 극찬을 듣게 된다.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이미 말라가에 빠져 오래 거주하고 있는 스타 중 한명이다. 

“말라가가 미래다.”라는 그의 말에 이미 안달루시아 출신의 가족들 덕분에 이 땅에 애정이 있던 카르멘은 말라가행을 결심했고, 머지않아 미술관을 세울 좋은 장소까지 발견한다. 16세기에 지어진 빌라론 궁전Palacio de Villalon은 그녀가 대동한 훌륭한 건축가들의 손끝에서 본래 지니고 있던 아랍식 궁전의 특징과 현대미를 멋지게 공존시키며 되살아났다. 지금은 그 3층 건물에는 70년~100년 이전의 말라가와 안달루시아 사람들이 살아가던 모습을 사진이라도 찍듯 그대로 담은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다.

특히 미술관의 1층을 장식하는 작품들은 전부 다양한 작가들이 안달루시아에서 받은 영감으로만 그려낸 작품들이기 때문에 안달루시아라는 거대한 대상의 추억 가득한 사진앨범 속에라도 들어간 기분이다. 그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은 ‘At the Torrijos Pilgrimage’이다. 1800년대 후반에 그려진 이 그림은 이 페어의 가장 최초의 모습이 어땠을지 상상하게 만드는 그림인데, 그림 속에는 서로 필요한 생필품들을 사고팔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어느새 각자의 연주를 즐기며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가 되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남겨 놓았다. 이 그림만 봐도 과거에도 여전했던 말라가 사람들의 흥을 추억할 수 있다. 이를 비롯해 투우 경기장에 생기기도 전의 투우 경기가 만들어 내던 풍경을 담은 그림이나, 황소와 함께 만들어진 재미난 일화들이 팔딱거리는 그림들은 보는 이에게 특별한 힘을 선사한다. 누군가를 속속들이 알기 위해선 그의 과거를 알아야만 하듯, 카르멘 티센 미술관에서 찬찬히 그림으로 배운 말라가의 발자취들 덕분에 미술관을 다시 걸어 나올 때쯤엔 이 도시가 괜히 더 작게만 느껴진다.

1 말라게따 비치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즐겨 찾는 말라가 사람들의 가장 따스한 휴식 공간이다. 
2 해변에는 음료와 간단한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간이 식당과 바가 꼭 하나둘 위치하고 있다. 
3 스페인어로 ‘팔라게따’라 부르는 해변 레포츠를 즐기는 부부. 나무로 얇게 만들어진 라켓으로 공을 번갈아 치는 게임이다. 
4 모래사장의 빛깔만큼 노릇노릇 익은 말라가의 청춘들. 
5 말라게따 비치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간판. 
6 말라가의 젊은이들은 시에스타 시간을 해변에서 많이 보내기도 한다.

코스타 델 솔, 말라게따 비치

말라가의 바다는 ‘태양의 해변’이라는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 해안에 속한다. 태양의 해변은 말라가를 주도로 품고 있는 말라가주 전체를 감싸며 300킬로미터나 이어지면서 영국령인 지브롤터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고로 스페인 남부의 기가 막힌 태양의 해변에서 한번 쯤 몸을 적셔보고 싶다면 말라가에서 보이는 아무 바다에나 뛰어들면 된다는 말이다. 말라가의 매력에 정점을 찍는 해수욕을 아무 곳에서나 즐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말라가에서 제일 유명한 해변이 어디에요?’ 라는 질문을 현지인들에게 던질 때마다 긴 고민의 여지도 없이 제일 많이 들려온 이름이 있다. ‘말라게따 비치Malagueta Beach’! 아드리안 반도의 가장 끝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도시 말라가에는 총 14킬로미터 길이의 해변이 늘어진다. 그 속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해수욕장의 개수만 15개이다. 말라가에서 해수욕만을 위한 여행을 즐긴다 해도 이 모든 해변을 들리기는 무리일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말라게따 비치는 일단 도심에서 가깝고 1,200미터 길이의 시원한 규모덕분에 많은 말라가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더불어 말라가에 단 하나 있는 투우 경기장에서 걸어서도 금방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하니, 혹시 생애 첫 투우가 찝찝한 감상을 남겼다면 이곳에 와서 온몸을 씻어내는 것도 좋겠다.

말라게따 비치를 처음 만났을 때 놀라웠던 건 회색빛깔에 가까운 모래의 색이었다. 해변을 따라 모래사장을 걷다 보니 어느 새 발바닥이 그 회색으로 물들어 있을 정도더라. 모래사장이 매우 넓은 편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수영을 하거나 태양에 몸을 맡긴 채 휴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부족함 없이 그 공간을 활용하고 있었다. 나는 투우를 본 후 바로 찾은 까닭에 상하의를 모두 갖춰 입고 있었는데, 그런 상태로 말라게따 비치 안에 들어서니 완연한 이방인의 감정이 몰려온다. 유럽의 여느 해변이 그렇듯 정말 최소한의 옷감을 걸친 채 햇빛과 바닷물에 뛰어 드는 사람들뿐이니 옷을 몇 개나 몸에 걸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공간이다. 고백하건데 말라가 여인들의 아름다운 여체를 적나라하게 목격하기를 결코 원치 않았지만, 해변을 걸으며 몇 번이나 뜻밖의 목격을 해야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유럽 남부에서는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시에스타가 이어지는 여름이 되면 일을 하다 시에스타에 맞춰 옷을 갈아입고 해변에서 나른한 휴식을 즐기다 다시 업무에 복귀를 하기도 한다는 말라가 시민들. 이런 도시에 사는 이가 아니라면 가히 상상도 하기 힘든 일들을 이들은 매일 같이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