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atia :: Hvar

Hvar Twinkling in My Dream

반짝이는 꿈속의 흐바르

두 눈을 의심했다. 스플리트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 떠나왔을 뿐인데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다니. 그늘 한 점 없이 태양의 빛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섬 흐바르는 그 만큼이나 눈부시게 파란 바다 위에서 빛나고 있다. 완만한 구릉이 이어지는 섬 표면에는 쨍한 초록빛의 침엽수와 건조한 바위들이 주를 이룬다. 이국적인 자연경관 속에 뒤섞인 작은 마을들의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최은주 기자 취재협조 카페드유럽 www.cafedeeurope.com, 한진관광 www.kaltour.com

Hvar
보랏빛 휴양지, 흐바르

파란 바다 위 라벤더 천국

크로아티아는 아드리아 해안선을 따라 많은 섬들이 아름답게 이어진다. 그 중 하나인 흐바르는 크로아티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흐바르는 기다란 칼처럼 얇고 뾰족한 모양으로, 가로 길이는 약 68킬로미터에 달하지만 세로 폭은 최대 10킬로미터인 아주 날씬한 섬이다. 그래서 섬 가장 동쪽의 마을은 크로아티아 내륙과 겨우 6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스플리트 인근의 바다에는 달마티아 지역에서 규모가 큰 섬들이 밀집되어 있다. 그래서 그 섬들로 떠나는 대부분의 현지인과 관광객들은 스플리트에서 배편을 끊는다.

짧은 여정은 아니었다. 스플리트에서 브라치Bra. 섬을 관통해 흐바르의 대표 항구 스타리 그라드Stari Grad에까지 다다르는 덴 1시 반 이상이 소요됐다. 하지만 향하는 내내 그 어떤 물감도 이보다 파랄 수는 없겠다 싶은 아드리아해의 영롱함과 상큼한 산들바람에 지루한 줄 몰랐다. 본래 흐바르는 약 1만년 전까지만 해도 내륙과 연결된 육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땅의 계곡 사이를 메워 땅과 얇은 해협을 사이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도착한 흐바르를 차창 밖으로 처음 마주한 순간, 그런 사실을 새하얗게 잊고 만다. 흐바르의 경관과 땅은 도저히 한때 육지의 일부였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모습이었다. 지반의 대부분이 석회암과 백운암으로 이뤄진 섬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카르스트 지형이다. 땅은 뜨거운 태양과 건조한 지반 때문에 영롱한 초록빛의 침엽수나 키 작은 덤불로 뒤덮여 있다. 해변과 가까운 낮은 지대에는 바람결을 타는 나무들이 넘실대지만, 지대가 높아질수록 키 큰 식물은 자취를 감추고 오직 아담한 덤불과 크고 작은 바위들만이 뒹굴 뿐이다. 하지만 결코 척박하다는 뜻이 아니다. 흐바르는 특유의 카르스트 지형 때문에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땅속으로 몽땅 흡수돼버릴 뿐, 실제로 적정한 강우량과 크로아티아 최대의 일조량을 자랑한다. 그래서 지극히 평범한 도로변의 가정집이나 작은 밭에서도 생글생글한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들이 맺어 놓은 열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더불어 흐바르 섬에서 지겨울 만큼이나 자주 볼 수 있는 식물은 바로 라벤더이다. 장담컨대 흐바르에서 만나는 모든 벌판에선 단 5초 만에 라벤더를 찾을 수 있다. 어떻게 이 정도로 즐비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식물이 뿌리내릴 수 있는 모든 땅이 라벤더들의 터전이다. 라벤더는 매년 6월에 꽃을 피우기 시작해 7월까지 보랏빛 물결을 만개하는데, 안타깝게도 요즘은 이를 목격하기엔 늦은 계절이다. 하지만 겨울마저 온화한 흐바르 섬에서는 언제든 초록 벌판 속에서 라벤더 향기를 찾아낼 수 있다. 라벤더가 꽃피우는 기간엔 라벤더 축제까지 열리며 섬 전체가 보랏빛으로 물든다.

흐바르식 휴양을 즐기는 법

라벤더를 찾기 위해 먼발치에서 흐바르의 평원들을 바라보다 가끔씩 깜짝 놀라곤 했다. 평원의 낮은 식물들 가운데 자꾸만 보랏빛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유심히 살펴보면 그것은 라벤더 꽃이 아니라 초원에서 흔히 보이는 돌무더기였다. 흐바르의 돌들은 석회질을 많이 품고 있기 때문인지 유독 햇빛을 받으면 보라색이 감도는 회색을 띤다. 그 묘한 색깔에 취해 돌들을 찬찬히 관찰해보면 또 신기한 점이 발견된다. 평원 위 돌들은 단순히 흐트러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밭을 나누듯 부분부분 담처럼 쌓여 있다. 이것만은 자연이 행한 일이 아니다. 이는 최초로 흐바르 섬에 사람이 정착한 신석기 시대부터 당시의 주민과 그 이후의 로마인들이 건조한 땅에 밭을 경작하기 위해 돌들을 모아 쌓아둔 것이다. 다양한 초원에서 이런 모습들을 목격할 수 있지만, 특히 섬의 입구인 도시 스타리 그라드의 동쪽 평원에는 여전히 돌담으로 구분한 과거의 밭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돌보는 이도 없는 벌판들조차 이토록 귀중한 섬이니 그 속의 도시들은 어떠하겠나. 흐바르 섬의 동쪽 끝에 위치하는 흐바르시는 섬을 찾은 여행자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스타리 그라드에서부터 차를 타고 흐바르와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지던 도시의 이목구비는 설렘에
발을 동동 구르게 했다. 동화 속에서나 보던 바로크양식의 성벽이 마을 뒷산에서부터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온 도시를 감싸 안고, 그 뒤로 노인의 백발처럼 세월이 느껴지는 시가지와 반짝이는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작은 섬에 자리한 작은 도시이니 모든 것이 아담할 것이라 여겼던 예상은 도시에 입장하자마자 증발했다. 4세기경부터 로마를 비롯한 다양한 통치자들을 거친 도시는 13세기와 15세기 사이에 특히 번영했다. 흐바르 섬은 물론, 달마티아 지역 전체에서도 가장 큰 광장이 이 도시에 자리한다. 바로 도시 중앙의 성 스테판 광장St Stephen Square이다. 마치 거대한 대리석 무대처럼 탁 트인 광장에 앉아 도심을 감상했다. 흐바르에 내리는 햇볕에 취한 사람들은 해변 모래사장 위에 눕는 대신 유서 깊은 광장을 바라보며 수다를 떨고, 해수욕 대신 요새에 오른다. 흐바르시에서 특별한 유적지로 구분해놓은 건물은 총 13개이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뒷산에 우람하게 지어진 포르티차Fortica 요새는 그중 단연 최고로 꼽고 싶다. 흐바르식 휴양을 완성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 요새 위에서 앞바다와 도시의 풍경을 두 눈에 담아야 한다. 베네치아 공국에 의해 13세기에 최초로 지어진 후, 수세기에 걸쳐 파손, 증축, 복원의 시간을 거쳐 온 포르티차 요새는 지금 흐바르 최고의 전망대 역할을 도맡고 있다. 처음 그 위에 오르던 감동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풍경의 아름다움과 마주하자마자 두 발이 요새 바닥에 딱 붙어 한참을 떨어질 줄 몰랐다.

1 그늘진 만을 정면으로 보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종탑이 광장과 시가지를 밝힌다. 달마티아 지역에서 가장 넓은 흐바르시의 성 스테판 광장은 수도원 건물에서부터 도시 앞의 항구까지 뻗어 있다.
2 광장을 따라 이어지는 항구는 수많은 요트들의 주차장이다. 바로 코앞의 바다조차 깊은 수심 아래의 모래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다. 
3 항구는 인근의 섬으로 떠나거나 들어오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4 광장 주변의 만을 따라 이렇게 라벤더 제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줄을 잇는다. 
5 6 흐바르에서 황홀한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인 섬은 특히 화려한 나이트라이프로 유명하다.

흐바르가 대접한 달마티아식 만찬

흐바르는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 지역 내에서도 최근 휴양지로서의 인기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섬이다. 대체로 연령대가 높은 관광객을 찾기 더 쉬웠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흐바르에는 화려하게 꾸민 젊은 휴양객들이 자주 보였다. 여행자들이 휴양지에 바라는 모든 것을 넘치도록 갖추고 있는 덕분이지만, 이와 동시에 달마티아의 전통을 편안하게 경험해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온화한 흐바르의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해산물과, 크로아티아의 태양을 가장 오래 마주하며 자란 경작물들로 가히 완벽한 달마티안식을 대접해주는 곳이 바로 이 섬이다. 흐바르시에 도착하자마자 만나게 될 성 스테판 광장의 근처에는 무난한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커피숍들이 대부분이지만 광장과 이어지는 구석구석의 골목들을 탐험하다 보면 사랑스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전통 달마티안 레스토랑들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찾아간 레스토랑은 ‘코노바 메네고Konoba Menego’, 골목의 좁은 계단을 막고 있던 와인통 간판에 반해 무작정 들어섰다. 웨이터들은 달마티아의 전통 블라우스만을 걸친 채 살가운 미소를 날린다. 달마티아 지역에서 레스토랑을 찾다 보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단어가 바로 ‘코노바Konoba’이다. 이는 달마티아 지역에서 예부터 모든 집마다 있던 부엌 겸 음식 창고로 쓰인 방을 뜻했는데, 지금은 현지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이나 펍을 통틀어 가리킨다.
레스토랑 메네고에서 추천받은 이날의 메뉴는 크로아티아 전역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문어 샐러드와 크로아티안 플레이트. 플레이트 위에는 다양한 종류의 훈제 햄과 치즈, 올리브가 올라가고 모든 식사에는 흐바르 섬의 올리브로 짠 올리브유를 곁들인다. 이웃나라인 이탈리아와 비슷한 식문화를 지닌 크로아티아이지만 이런 달마티안 식사는 흐바르를 포함한 달마티아 지역에서만 체험할 수 있다. 정말 신선하고 맛좋은 재료들에 최소한의 현명한 양념만을 가미한 음식들은 그 사이의 조화로움을 찾는 재미와 함께 건강미까지 뚝뚝 떨어진다. 크로아티아 음식은 대체로 짠 편이지만 식재료에 대단한 가미를 하지 않는 이런 식단은 짠맛에 의한 불편함도 줄어드니 먹기 더욱 편안하다.

흐바르에서는 이와 더불어 인근의 섬들로 보트 투어를 떠나는 일과 늦은 밤까지 열정적인 바에서 황홀한 밤을 보내는 것까지 모두 경험해봐야 한다. 대부분 하룻밤도 보내지 않고 섬을 훑고 떠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광장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유럽 여행객들 중 흐바르가 처음인 사람은 드물었다. 그만큼 단 한 번의 인상이 그토록 매혹적인 섬이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 이야기를 직접 들은 나부터도 미래에 재회할 여행지 목록에 이 섬을 일순위로 추가했다.

1 포르티차 요새에서 흐바르 중심가를 찬찬히 관찰한다. 나이가 지긋한 건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멋진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만 같다. 
2 포르티차 요새의 전경. 3 코노바 메네고에서 맛본 전통 달마티안 식이다. 특히 부드러운 올리브유와 새콤한 문어샐러드는 지금 생각해도 침이 고인다. 
4 광장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골목들 속에는 훌륭한 레스토랑과 커피숍들이 즐비하다.

브루세의 숨바꼭질

정말 작은 마을 브루세와의 만남은 마치 하룻밤의 꿈만 같다. 스타리 그라드에서 흐바르시로 향하던 길에 그저 섬의 넓은 평원이 더 보고 싶어 높은 곳으로 길을 따라 올라갔을 뿐이다. 흐바르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언덕 위의 이 작은 마을에선 시간, 그리고 사람과의 숨바꼭질을 하게 된다. 지도에만 나와 있을 뿐 그 어떤 정보도 없는 마을 브루세는 그저 손에 든 모든 것을 내려둔 채 설렁설렁 걸어보는 것이 최선의 여행법이다. 꽤 높은 지대 덕분에 흐바르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평원들이 마을 주변으로 끝도 없이 펼쳐지는데, 라벤더가 꽃을 피우는 계절이면 풍경은 더욱 황홀해진다. 자동차가 없는 여행자들은 브루세처럼 흐바르 속에 숨어 있는 잔잔한 마을들을 찾기 위해 전기자전거나 스쿠터, 렌트카, 택시 등을 이용한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숨을 거둔 브루세에선 마을 주민을 우연히 마주치는 사소한 일조차도 기쁨이 된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고요한 이 마을에서 찾기 힘든 사람, 또 시간과의 숨바꼭질을 하며 소중한 1분 1초를 보냈다.

1 알록달록 예쁜 빨래가 널려 있는 이 집의 마당은 강아지에게 최고의 놀이터일 테다. 
2 9 가만히 있는 자체로 그림이 되는 이 고요한 마을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3 8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조용히 마련되어 있던 묘지. 묘지마다 놓인 사진과 꽃다발들 덕분에 작은 추억함을 연 것처럼 아련하다. 
4 마을로 이끌어준 도로 위에서 만난 풍경이다. 초록빛의 섬과 새파란 바다, 그 뒤의 신기루 같은 풍경이 할 말을 잃게 한다. 
5 묘지 앞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마을 성당.
6 브루세 마을은 방문하는 모두를 반기지도 내치지도 않으며 얌전히 품어줄 뿐이다. 
7 주인의 손길을 잃은 포도넝쿨이 괜히 짠하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스타리 그라드

흐바르 섬으로 향하는 페리들은 대부분 스타리 그라드의 항구로 들어온다. 하지만 스타리 그라드의 구시가지는 항구와 2~3킬로미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에게 흐바르시 만큼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편이다. 하지만 스타리 그라드 역시 멋진 역사와 중후한 시가지가 펼쳐지는 사랑스러운 도시다.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며 주변국과 무역을 해왔던 바탕인 이곳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그래서 스타리 그라드의 진짜 매력을 발견하기 위해선 세련된 항구 주변에서 구시가지의 골목 속으로 숨어들어야 한다. 유독 좁은 골목골목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걷지도 못할 만큼 바짝 걷는 이를 껴안는다. 정말 매력적인 건 세월의 향기가 풀풀 풍기는 건물들이 즐비한 중간에도 아기자기한 아이디어로 꾸며진 상점과 레스토랑, 커피숍들을 꽤 자주 마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느 골목으로 퐁당 들어가도 걷다보면 결국 다시 해안로로 빠져나오게 되는 이 묘한 행복의 미로에서 다시 헤매고 싶다.

1 골목 속에 숨어 있던 성 스테판 광장. 
2 4 스타리 그라드의 골목 내음이 그립다. 3 해안로마저 한적하다. 유독 자전거를 타는 주민들이 자주 보였다. 
5 골목 탐험 중에 발견한 레스토랑 안티카Antika에서 저녁 식사로 트러플 파스타를 맛봤다. 한 그릇 뚝딱 해치울 만큼 감칠맛 나지만 고급스러운 맛이다. 
6 8 포도면 포도, 석류면 석류 이 도시의 쾌적한 분위기와 날씨는 땅 위의 모든 것들을 영글게 한다. 흐바르 섬은 와인과 올리브유로 유명하기도 하다. 
7 도시를 걷다 만난 트르브달리 성은 요새화된 16세기의 성이다. 낚시터로도 쓰였던 성 안의 연못 주변으로는 ‘낚시와 어부의 대화’라는 시의 구절들이 새겨져 있다. 
9 10 스타리 그라드는 조용하고 평화롭다. 흐바르시조차 북적인다고 느꼈다면 돌아가는 페리에 올라타기 전 이 도시에 머물러 보라.

1 흐바르 섬에서 흔히 보이는 평원. 라벤더의 터전인 평원에서는 섬의 과거 주민들이 쌓아놓은 돌무더기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2 매년 6~7월이면 활짝 피어나는 라벤더 꽃으로 섬은 향기가 가득해진다. 라벤더로 만든 저렴한 고품질의 미용 제품들은 흐바르의 자랑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