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Nobeoka, Saiki

Romantic Journey Leaving in Nobeoka, Saiki

노베오카, 사이키로 떠나는 낭만 여행

‘동양의 진주’, ‘동양의 하와이’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날렸던 미야자키, 겨울을 재촉하며 쌀쌀해진 서울 날씨와는 달리, 아직 이곳은 만연한 여름이다. 곧게 뻗은 야자수 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혹시 몰라 가져온 두툼한 점퍼가 무색할 지경. 연평균 기온 17도를 자랑하는 온화한 기후의 미야자키는 일본 규슈 남부의 대표적인 휴양 도시로 유명하다. 지루한 옛이야기 같지만 한때는 일본인들의 신혼 여행지 1순위로 손꼽히는 곳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곳이기도 하다. 10월의 끝자락 미야자키 현 내 자리한 노베오카시와 사이키시를 차례로 찾았다. 규슈의 오지라 생각했던 두 곳에는 소소한 아름다움과 낭만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들이 의외로 많았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스폿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글과 사진 여병구 편집장 취재 · 사진협조 큐슈운수국, 노베오카시, 사이키시

통나무와 돌로 둑을 이용한 300년의 전통의 은어잡이는 노베오카의 색다른 볼거리이다. 펄떡거리는 은어들이 오감을 자극한다.

1 24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는 거대 바위와 그 아래 자리하고 있는 정삼각형 모향의 작은 바위는 북두칠성을 가리키고 있다. 주민들이 신에게 드리는 제에 사용하는 제단도 찾아 볼 수 있다. 기운을 얻을 수 있는 파워 스폿으로 사랑받고 있다. 
2 3 노베오카시의 유일한 천연 온천 시설, 약알칼리성 온천으로 피부가 좋아지는 효과가 있어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미인탕’이라고도 불리며 일본 온천 특유의 소박함과 운치가 있다. 
4 제철을 맞은 은어는 30cm가 훌쩍 넘는다. 인기 메뉴는 소금구이와 일본식 된장을 올린 구이. 10월~11월 중순은 은어가 많이 잡히며 축제 기간 소비량은 무려 6만 마리. 
5 천연 소금을 이용한 만든 다양한 상품.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소금 아이스크림’은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소금 맛이 오묘하게 맛있다. 
6 아타고 산은 251미터의 작은 뒷동산에 불가하지만 일본 야경 100선에 뽑힐 만큼 아름다우며 연인의 성지로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다. 
7 미쯔노에키로 유명한 시모아소 해변 전경. 태평양 연안과 마주한 곳으로 해양레저스포츠를 비롯해 각종 캠핑도 즐길 수 있다.

자연에서 기를 얻다

따뜻한 열대 바람이 코끝과 몸을 훑고 지나간다. 미니버스에 몸을 싣고 미야자키 공항에서 꼬박 2시간 반, 그리고 다시 꼬부랑길을 1시간 남짓 더 달려서야 호리가와 협곡과 오오쿠에산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좁은 산길을 굽이굽이 내 달렸다. 완곡하게 꺾이는 각도에 따라 살짝살짝 변해가는 풍경을 스쳐갔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산간 오지인 이곳을 오가는 버스는 크기가 작은 미니버스, 그것도 하루에 3대정도가 전부라고 한다. 오오쿠에산을 비롯해 규슈의 명산들로 둘러싸인 이곳은 일본인들이 좋은 기운을 얻기 위해 찾는 곳이라고 한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옥색의 물과 산길을 오르는 내내 달라져가는 나무들과 숲의 색이 오묘하다.

일본 내 비경을 자랑하는 명산이기도 하지만 워낙에 좋은 물과 좋은 기운 덕분에 호리가와 계곡에 자리한 천연 온천(미인탕)은 지역 주민들은 물론 일본의 산악인들과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한다. 특히나 철쭉이 피어나는 봄날과 단풍놀이가 시작되는 가을에는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란다.

200여개의 계단을 올라 드디어 마주한 신의 산. 영롱한 기운(일본에서는 파워 스폿이라 함)을 느껴보기로 했다. 거대한 삼각형 바위에 몸을 기대보기도 하고 두 팔을 벌려 한 아름 안나보기도 했다. 어찌나 크고 장엄한지 성인이 몇 명이 손을 맞잡아도 끝이 닿지 않는다. 지금도 지역 주민들은 이곳에서 신에게 제를 지내거나 기를 얻어 간단다. 뿐만 아니라 바위와 마주하고 있는 자연 분화구는 별자리를 표시하고 있는데 암벽 끄트머리에 올라 바라보는 경치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1644미터 높이의 오오쿠에산과 주변의 봉우리들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했다.

짭짤한 은빛 은어와 달콤한 스위츠에 빠지다

출출해진 기분을 달래기 위해 향한 곳은 전통 어업으로 잡은 은어를 맛 볼 수 있는 노베오카 수향 은어 어랑(延岡水.鮎 やな)에 자리한 은어
맛집 국기관(.技館)이었다. 매년 10월부터 11월 중순까지는 은어가 제철이다. 이 기간에는 통나무와 돌로 둑을 만들어 은어를 잡는 축제가
열리는데, 이 어법은 300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뜨거운 열기의 식당은 100여 마리의 은어들이 꼬챙이에 꽂혀 구워지고 있었다.
천연 소금을 뿌려 구운 소금구이가 특히나 인기. 은은한 불에 구운 두툼한 은어 살과 은어를 넣어 지은 밥 등 은어를 이용한 한 상 차림의 식사를 즐기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발 딛을 공간이 없을 정도다. 흐르는 강물을 배경으로 촘촘하게 꾸며진 둑을 바라보며 은어를 잡는 풍경을 그려본다. 맛있는 은어 구이와 뜨거워진 태양을 뒤로 하고 미쯔노에키로 유명한 시모아소 해변에 들러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맛보기로 했다. 이곳은 태평양 연안과 마주한 곳으로 해양레저스포츠를 비롯해 캠핑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천연 소금을 이용한 다양한 상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일본연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소금 아이스크림’은 달콤하면서도 짭짭한 소금 맛이 오묘하게 맛있다.

노베오카 연인의 성지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 오미가마’는 자신의 후손인 ‘니니키노토모코’를 마야자키 다카치호로 내려 보낸다. ‘니니키노미코토’는 노베오카의 아타코산에서 ‘고노하나사쿠야히메’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랑의 신화를 확인하기 위해 아타고산으로 향했다. 저물어 가는 해를 따라 이동한 251미터의 아타고산의 첫 느낌은 평범했다. 야경하면 생각했던 화려한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노베오카시는 조용했다. 은은하게 불을 밝히는 도심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연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짙은 어둠으로 말미암아 바다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바다를 품은 공업도시의 야경은 독특한 감성으로 다가왔다. 화려하지 않지만 운치가 있다. ‘연인의 성지’라 이름 지은 사랑의 순례지 중 한 곳이기도 해 사랑을 이루려는 연인들이 즐겨 찾는데 그래서인지 늦은 밤까지 연인들의 행렬은 계속됐다. 사랑을 주제로 한 3개의 하트형 구조물에는 서로의 약속을 담은 자물쇠가 달려있다. 늦은 저녁까지 남아 조금씩 어두워져가는 노베오카시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1 오이타 현이 위탁시설로 해양산업의 연수 체험을 위한 시설이다. 숙박동과 레스토랑, 해양 액티비티 등이 가능한 부대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2 3 연인의 조개라 불리는 오브제들이 연인의 길에 걸려있다. 4 직경 18미터, 무게 23톤을 자랑하는 대형 목조형 수차. 5 700미터의 종유석 동굴, 실내는 시원하고 신비롭다. 6 7 사이키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사이키 성의 옛터 모습. 천천히 문학의 길을 산책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 마치 에도시대로 타임슬립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아름다운 바다와 연인의 성지

다음 날 아침, 긴 터널의 경계를 넘어 오이타 현의 사이키 시, 가마에(蒲江) 지역에 입성했다. ‘연인의 성지’로 이동하기 전 가마에 휴게소에 들러보기로 했다. 수산업이 발달한 사이키시답게 휴게소 내에는 갓 잡아 올린 신선한 수산물에서부터 농산품 및 수산가공물을 판매하고 있다. 워낙에 인기가 좋아 이곳을 방문하는 방문객이 연간 55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수산물 구경을 마치고 마린컬처센터로 향했다. ‘마린컬쳐센터’라 불리는 곳에 자리한 또 다른 연인의 성지에서 나는 소박한 방식으로 사랑의 메시지를 적어 사랑을 약속하는 커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연인의 조개’라 불리는 지역 특산품인 히오우가이(가리비의 한 종류)의 껍데기를 하나씩 나누어 서로의 메시지를 적고 영원한 인연을 의미하는 붉은 실(あかい いと)로 묶어 바다로 향하는 연인의 길에 서로의 사랑을 담은 조개를 건다. 일본 전역의 200여개의 만남의 성지 중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바다의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다가왔다.

진주 만들기 체험

마린컬쳐센터에서 30분 남짓 이동해 천연 진주를 채굴하는 양식장이자 진주 주얼리를 만들어볼 수 있는 ‘도미에이 펄’을 찾아 작은 선물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곳은 원래 희귀종인 ‘사일런트 블루 색깔의 진주를 만드는 곳이다.
양식으로 만들어지는 진주는 핵을 이식하고 완전체가 되는 1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키워야만 만들어진다고 하니, 엄청난 노력의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실제 진주가 아닌 조개껍데기를 재활용한 비주를 이용한 것이지만 진지하게 만들었다. 진주만큼이나 아름다운 뉴즈만의 풍경은 유럽의 여느 마을에 온 듯 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노구의 할머니가 낡은 커피 잔에 끓여준 커피 한잔이 진하게 느껴졌다. 주어진 비주와 투명 줄을 순서대로 묶어 나만의 작은 주얼리를 완성시켰다.

이국적인 수차와 신비로운 종유석 동굴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하면 좋을 곳, 이번엔 데이트 코스를 둘러보기로 했다. 이국적인 수차와 암벽 등반 코스로 유명한 혼조(本匠) 지역이 바로 그곳이다. 특히나 단풍놀이가 시작되는 시즌이 되면 이곳을 찾는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대형 수차와 함께 점심을 먹고 인근의 오나가라 종유동굴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다. 1899년 도로공사를 하다가 땅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들어낸 동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700미터 남짓한 동굴의 내부 온도는 15도를 유지하고 있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신비로운 동굴탐험을 마친 나는 사이키 의 옛 성터이자 문학의 길이라 불리는 곳으로 향했다.

사이키의 옛 길을 걷다

이번 일정의 마지막은 사이키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사이키 성의 옛터를 찾아 고즈넉하게 문학의 길을 산책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이별을 아쉬워라도 하듯,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사이키시 중심의 옛 성터에 도착했다. 377년의 역사를 간직한 산성은 현재 누각건축양식이 남아 있는 누문정도다. 누문은 규슈에서도 4곳만이 존재한다고 한다. 700미터에 달하는 문학의 길은 옛 무사들과 문인들의 거처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화창한 날씨의 거리는 아니었지만 비가 내리는 이 길도 나름의 운치를 더했다. 돌담길을 따라 마을을 거닐며, 전통 가옥들과 에도 시대 영주가 설치해둔 우물, 사찰 등을 차례로 둘러본 뒤, 아름다운 정원 안에 자리한 다원에 들러 따뜻한 차를 마셔보기로 했다. 말차를 마시기 전, 달콤한 간식을 먹고 왼손으로는 찻잔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조금씩 돌려가며 세 번 정도 나누어 마셨다. 정원 너머로 보이는 작은 다실들, 과거 무사들이 칼을 들고 들어올 수 없도록 일부러 작게 만들었다고 한다. 말차 한 잔과 침묵을 깨는 빗소리, 사이키에서의 또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렸다.

늘 새로운 것, 특별한 것을 쫓아 달려왔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볼 수 있는 경험이었다. 천혜의 자연 환경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한 곳. 어쩌면 오롯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정말 좋을 것 같은 곳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둘만이 오붓하게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그런 곳. 각기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는 노베오카와 사이키. 진정할 힐링스팟이자 슬로우 라이프가 실현될 수 있는 낭만 여행지가 분명하다. 그곳이 벌써 그리워지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