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uritius :: Nature Nature  to Make You Feel Small

대자연에 둘러싸여 되돌아본 시간들

예쁜 바다만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것은 일부에 불과했다. 인도양의 작은 섬, 모리셔스 안에는 그동안 다녀온 휴양지에서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있었다.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지만 오히려 이 땅 위에 서 있는 나라는 존재를 겸손하게 만드는 고귀한 풍경들을 만났다.
글 김수현 기자 사진 최은주 기자 취재협조 드림아일랜드 dreamisland.co.kr, 02-566-3612

1 그릭 그릭 절벽으로 가는 길, 얇고 길쭉한 나무들이 바다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다. 가끔 물안개가 올라올 때면 환상적인 장면을 볼 수 있다고. 
2 물색이 매우 이채로웠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빛. 자연에 경외심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3 절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려면 지금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과 반대로 가면 된다. 아래 비치 쪽으로 내려가고 싶다면 이 길을 따라 천천히 걸을 것.
4 5 그릭 그릭에서 모든 것은 생명을 얻은 듯했다. 돌 위로 자란 풀잎은 그 모습이 더욱 커 보였고, 암벽에 부딪혀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6 처음 만나는 인도양의 푸른 바다. 그릭 그릭 이었기에 더욱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머리와 가슴 속이 청량해진 기분도 여전히 생생하다.

거침없는 인도양의 따스한 매력

교롭게도 모리셔스에 도착해 가장 먼저 본 것은 에메랄드 빛 잔잔한 바다가 아닌 성난 파도였다. 파도가 암벽에 부딪히고 마치 절벽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듯한 기이한 풍경이 있는 이곳은 모리셔스 남부 수일락Souillac에 위치한 그릭 그릭Gris Gris. 모리셔스 섬에서 유일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파도가 세게 몰아치는 지역이다. 그 이유는 산호에 있다. 거친 바람과 파도가 와도 산호가 섬을 감싸고 있기에 해안가가 잔잔한 것인데, 그릭 그릭은 이를 막아줄 산호가 없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절벽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세차게 울리는 파도 소리만이 전부일 뿐. 하얀색으로 해안가에 밀려왔다가 푸른색으로 옷을 바꿔 입고 나가는 물결을 몇 분이고 가만히 보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든다. 그릭 그릭이라는 말의 뜻이 내게도 전달된 걸까. 로컬 사람들은 예부터 ‘gris gris’ 라는 단어를 흑마술이나 유령의 공간 등을 표현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흔히 절벽에는 슬픈 러브스토리가 서려 있거늘, 아무래도 이곳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듯하다. 한 번씩 바람이 거세게 불 때,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파도와 철썩-하는 바다의 울음소리. 눈을 감고 모든 신경을 귀에만 집중하면 왜 오래전 사람들이 그릭 그릭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테다.

절벽은 왠지 장중하고 엄숙한 느낌을 주는 것이 보통이고 거기에 이름에 담긴 뜻까지 생각하면 삭막해야 할 것 같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 반대로 현지인들이 가족과 함께 피크닉을 나오고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는 사랑스러운 공간이다. 여름, 즉 12월부터 3월 사이에는 짧은 해변에서 텐트를 내리고 휴식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그들은 성큼성큼 절벽 끝으로 걸어가 파도의 움직임을 구경하고 점심때가 되면 둥글게 앉아 집에서 싸온 음식을 나눠 먹는다. 시간이 정오에 가까워지니 주차장에 차들이 하나둘 들어선다. 문을 꼭꼭 닫고 있던 스낵카도 이 대열에 합류해 영업을 시작한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늘을 향해 쭉 뻗은 나무 아래, 넓은 잔디밭은 금세 가족과 연인들의 정원이 된다. 물끄러미 구경하는 여행객을 보며 그냥 지나치는 법도 없다.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가족들과의 식사자리임에도 인원수대로 앉을 자리를 만든 뒤
어서 오라 손짓 한다. 이 땅에 도착해 처음 느꼈던 그릭 그릭의 거친 이미지는 정겹게 다가오는 모리시안과 함께 따뜻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첫사랑이 그랬듯 무언가의 처음은 언제나 설레고, 달콤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처음 만난 모리셔스의 바다. 이다음부터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함께한 환상적인 에메랄드 빛깔 앞에서도 잠깐 마주한 그릭 그릭의 깊고 푸른빛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이유이다.

화산폭발이 만든 낙원

모리셔스는 약 8백만년 전, 수중 화산폭발과 지각운동으로 인해 바다 한가운데에 융기한 섬이다. 화산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 섬에서는 아주 특별한 자연 절경인 뜨루 오 셰프Trou aux Cerfs를 만날 수 있다. 큐핍Curepipe시 중심에서 약 1킬로미터 거리, 해발 605미터에 있는 원형모양의 분화구로 현재는 휴지상태에 접어들었다. 초록의 자연은 화산활동의 흔적을 아름답게 덮어놨고 비가 내린 뒤면 더욱 환상적인 풍광을 선사한다. 새들이 지저귀고 숲의 동물들이 뛰노는 동화 속 배경을 현실에 옮긴 듯한 이곳이 과거에 이글거리는 용암을 뿜어냈다는 사실은 알면서도 믿기가 힘들다. 그만큼 하늘, 바람, 물 등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이곳에서는 오직 하나, 평화로움을 위해 똘똘 뭉친 것 같다. 직경 350미터, 높이 80미터의 분화구 안쪽은 정글과도 같은 울창한 숲이 펼쳐져있으며 가파른 둑 아래로 내려가면 길을 따라 호수 앞까지 갈 수 있다. 화산 정상에선 큐핍 시내를 360도로 감상할 수 있는데,지역 주민들은 이 값진 풍경들을 곁에 두고 매일같이 조깅이나 산책을 하는 특혜를 누린다. 차로 정상까지 오는 여행객에게는 그저 꿈만 같은 이야기. 높은 산은 아니지만 명색이 산답게 계절에 상관없이 서늘하니 긴 소매 옷은 필수다. 또 한 가지. 뜨루 오 셰프에 갈 때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풀들이 잘 덮어 두었기에 예쁜 호수가 있는 사슴의 정원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휴화산’이라는 사실. 전문가들은 수천 년 이내 언제든 다음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1 4 일곱 가지 색이 보이나요? 날이 맑을수록 색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땅을 만지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지만, 끝을 따라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불가능하다. 
2 3 멀리서 보면 알 수 없다. 무조건 가까이 가야 한다. 이런 이유로 샤마렐 폭포를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망대에 올라가야 한다. 
5 커피맛 잘 모르는 나도 샤마렐 커피에 관해서는 얘기할 수 있다. 독특하게 느껴질 정도로 쓴 첫맛. 그러나 계속 입에 컵을 가져가게 하는 끝 맛.

찬란한 빛으로 더욱 아름다워지는 샤마렐

모리셔스 서남부의 샤마렐Chamarel 지역에서는 화산섬의 또 다른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인구가 약 800명 남짓인 작은 마을이지만 매년 인구의 몇 십배나 되는 사람들이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자연이 남기고간 흔적을 보기 위해 이 지역을 거쳐 간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파인애플 농장과 커피 농장을 지나면 투어버스들이 모여 있는 주차장에 다다른다. 차에서 내리는 것과 동시에 샤마렐의 진가를 볼 수 있는 샤마렐 폭포Chamarel Waterfall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제멋대로 자란 나무들이 절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로 길고 깨끗한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폭포는 멀리서 보는 것보다 가까기에서 보는 편이 그 크기와 신비로움을 제대로 감상하기 좋다.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위태로운 위치에 튼튼하게 버티고 있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폭포의 끝이 어딘지 물을 따라 시선을 아래로 옮기니 보일 듯 말 듯 보이지 않고, 멀리서 들려오는 아득한 물소리에 몸이 휘청 기운다. 자유의 여신상과 견주어봤을 때도 결코 지지 않을 100미터 길이의 폭포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운 것이 당연하다. 화산분출 당시 생성된 폭포는 나이아가라나 가까운 레위니옹의 웅장한 크기의 폭포보다 규모면에서는 작지만, 스노클링을 위한 잔잔한 바다만이 이곳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경이로운 폭포를 뒤로하고 샤마렐 지역의 하이라이트, 세븐 컬러드 어스Seven Coloured Earth를 보러 더 위로 향한다. 표지판에는 꽤나 오래 걸어야할 것처럼 표기되어 있지만 사실은 폭포에서부터 5분도 안 되는 거리. 도착과 동시에 절로 터져 나오는 감탄사와 함께
미지의 땅을 개척한 기분이 들며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기이한 모양, 너무나도 오묘해서 표현하기 힘든 색깔의 땅 역시 화산활동으로 인한 결과물이다. 제주도와 모리셔스는 닮은 구석이 있다. 섬 크기가 비슷하다는 것과 현무암이 많다는 것. 세븐 컬러드 어스는 따뜻하고 습한 기후에 오랫동안 노출된 현무암이 분해되고 침식하여 진흙이 된 것이다. 다른 성분들은 비와 바람에 씻겨 내려가고 결과적으로 알루미늄과 철성분이 남아 이런 진귀한 모습이 지니게 됐다. 철 성분이 담긴 토양은 붉은색을, 알루미늄 성분의 토양은 파란색과 보라색을 띄는데 이들이 섞여 빨간색, 갈색, 자주색, 초록색, 파란색, 보라색, 노란색의 일곱 가지 색상으로 보이는 것. 모리셔스 외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지형을 볼 수 있지만, 유난히 이곳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 보통 철이나 알루미늄 중 한 가지 성분이 많아 여러 색을 볼 수 없는 반면에 이곳은 색이 골고루 섞여 있기 때문이다.

알루미늄과 철 함유량이 높은 펜스 안쪽 흙에서는 식물이 자생할 수 없다. 그러나 샤마렐은 이 작은 땅을 제외한 나머지 비옥한 토양 덕에 커피와 사탕수수 재배가 활발하다. 컬러드 어스 앞 카페에서 맛본 샤마렐 커피는 진한 향과 깊은 맛이 일품으로 마트에 들러 확인해본 바로는 꽤나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샤마렐 지역에 들어서서 본 끝없는 사탕수수밭은 럼주를 위한 최적의 환경. CHAMAREL이라는 상표의 럼은 모리셔스 내에서도 인기 있는 술이며 바닐라스틱 한 개를 넣어두면 최고의 맛에 취하게 된다.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샤마렐 럼 브랜드 공장에서는 럼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 수 있고 시음도 가능하니 샤마렐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면 시간을 내 방문해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