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uritius :: Port Louis Ever-Changing Port Louis

색채로 가득한 도시 속의 삶, 포트루이스

익숙한 건 있어도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풍경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기에 도시 여행이 즐겁다. 숨은 그림을 찾듯 모리셔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포트루이스로 향했다. 도시 안의 낯선 냄새, 이채로운 풍경, 스쳐가는 인연들은 타성에 젖은 여행자를 깨우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글 김수현 기자 사진 최은주 기자 취재협조 드림아일랜드 dreamisland.co.kr, 02-566-3612

1 포트루이스의 북쪽 캡멜로우에서 만난 여성. 남자친구와 한참 동안 사진을 찍는 듯하더니 이내 바닥에 앉아 편한 자세로 쉰다.  
2 확실히 모리셔스는 커플들이 많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랑베이 앞 아이스크림 차가 풍경에 멋스러움을 더한다.  
3 그랑베이에 있는 카지노 티 베가스. 안으로 들어가면 예상을 깨고 매우 건전하다.  
4 모리셔스의 도로는 2차선이 많다. 뻥 뚫리면 전용도로처럼 이용할 수 있지만, 막히면 끝도 없는.  
5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언제나 아름답다. 시간이 잘 맞아 노을이 질 경우에는 더. 이때도 따뜻한 노을을 지나치는 게 아쉬워 차를 세우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6 9 사탕수수밭이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이야말로 바다만큼 모리셔스를 잘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7 블루베이가 있는 마헤부르에 위치한 모리셔스 역사박물관. 크레올 양식의 건축물인 인상적이다.  
8 그랑베이의 낮 풍경이다. 오밀조밀 모여 게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내기를 한 듯싶다.  
10 그랑베이의 인기 클럽인 바나나 클럽. 사람이 많은 모습을 보려면 적어도 11시 이후에 와야 한다고. 모리셔스의 여름인 11월부터는 발 디딜 틈이 없이 붐빈다.

포트루이스Port Louis로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다채로운 풍경을 마주했다. 비슷한 풍경도 비슷하다 일 뿐이지 각자 달랐다. 아직 수확되지 않은 사탕수수가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 이제 막 사탕수수를 수확하는 농부, 뻥 뚫린 고속도로에 수확한 사탕수수를 싣고 가는 트럭, 트럭에서 삐져나와 도로 위에 놓인 불쌍한 사탕수수, 노을과 밭을 배경으로 촬영을 하는 모델. 사탕수수만 해도 이렇게 여러 가지니 한 순간도 정확하게 같을 수가 없다. 거의 모든 모리셔스를 다 돌고 마지막에서야 포트루이스로 향했다. 그동안 수도에 대해 꽤 많은 상상을 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정보야 수도 없이 나오겠지만, 천국이라 불리는 모리셔스의 중심지를 한 번쯤은 머릿속에 온전히 내 생각만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지금껏 봐왔던 바다와 하늘같은 그런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려나, 아니면 다른 곳의 수도처럼 현대적인 건물과 바쁜 사람들로 가득할 것인가. 모리셔스를 찾는 여행객들은 휴양을 목적으로 그랑베이Grand Baie, 플릭 앤 플랑Flic en Flac, 르몽Le Morne 등 에메랄드 빛 바다와 가까운 리조트 지역에서 머문다. 그리고 그곳에서 편히 쉬다가 돌아간다. 총 9개 구역으로 나뉘는 모리셔스,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의 삶의 터전인 포트루이스를 그냥 지나쳐 간다. ‘사람 사는 게 어딜 가나 다 비슷하지’ 라고 생각하며 한 나라의 수도를 리스트에서 삭제한다. 그러나 포트루이스는 이 섬의 축소판으로 여러 인종, 문화 그리고 삶이 뒤섞인 도시이다. 모리셔스 전체를 짧은 시간 안에 보고 싶다면 주저 없이 포트루이스로 향해야한다. 그렇기에 알록달록한 원피스를 벗어던지고 튼튼한 운동화와 편한 복장을 갖춘 평소의 나로 돌아왔다. 바쁘게 흘러가는 모리시안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걸어야 진짜 포트루이스가 보인다
포트루이스를 재미있게 즐기는 제1의 법칙, 반드시 두 다리로 걸어 다닐 것. 도로가 좁아 차가 들어가기도 힘들 뿐더러 깜짝 놀랄만한 교통체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의 방랑자가 되어 상점들이 빽빽이 줄지어있는 골목길을 누비는 것은 이전까지 편안한 리조트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걸어야 진짜 모습이 보이는 이곳을 다니기 위해서 편한 신발은 필수. 바쁜 걸음의 로컬 사람들이 정신없이 옆을 지나가기에 자칫하면 그들에게 휩쓸려 알 수 없는 곳으로 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미로와도 같은 복잡한 도시는 한 가지로 똑 부러지게 정의할 수 없는 모리셔스 구성원들과 문화를 닮았다. 이 섬에서 인도, 아프리카, 유럽, 중국, 중동 문화가 한데 모인 풍경을 포트루이스처럼 완벽하게 보여주는 곳은 찾기 힘들 테다. 한 나라의 수도이자 경제의 중심지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봐왔던 모던하고 세련된 모습의 수도와는 확연히 다른 첫인상. 그럼에도 모리셔스의 어느 곳보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역시 수도가 맞긴 맞나보다.

식민지 시절에 지은 오래된 건물과 낡은 간판이 대다수인 포트루이스이지만, 꼬단 워터프론트Le Caudan Waterfront에서는 아프리카 선진국으로서의 모습을 여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깔끔한 시설의 쇼핑센터와 함께 여행자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킬 인터네셔널 레스토랑과 술 한 잔 하기 좋은 바를 비롯해 카지노, 영화관, 극장 등 각종 엔터테인먼트 시설도 완벽하게 갖췄다. 이러니 날씨가 화창한 주말이면 워터프론트 앞 벤치가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로 가득 찰 수밖에. 모두가 익히 아는 유명 브랜드와 로컬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샵이 함께 있으니 굳이 뭔가를 사지 않더라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포트루이스는 크게 두 곳으로 나뉜다. 워터프론트 앞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중심으로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워터프론트 건너편은 혼란스럽지만 색채감이 넘치는 공간. 포트루이스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인 센트럴 마켓Central Market도 이곳에 있다. 공산품, 과일과 채소, 인도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커리 재료나 차 등을 만날 수 있다. 휴양지 분위기 한껏 낼 수 있는 파레오Pareo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 중인데, 품질은 리조트 내 샵에서 사는 것보다 좋지 않지만 훨씬 다양한 디자인이 있어 내 맘에 쏙 드는 비치룩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기 쉽진 않지만, 모리셔스 음식이 입에 많지 않는다면 근방 차이나타운China Town에서 얼큰한 국물로 입맛을 돋우는 것도 좋은 방법. 디저트는 센트럴 마켓에서 파는 모리셔스식 소야 밀크Soya Milk가 제격이다. 두유맛 밀크쉐이크에 치아씨드를 넣은 음료로 단 한모금만 마셔도 정신이 바짝 들 정도의 단맛을 자랑한다. 더운 날, 도시여행으로 인한 체력보충에도 그만이다.

모리시안의 열정은 경마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제 삼자의 시선으로 볼 때, 한국 사람들의 스포츠 사랑은 매우 각별한 듯하다. 10년 전쯤에는 관심의 대상이 축구에 한정됐었다면 지금은 야구도 축구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도시 사람들의 삶은 팍팍하지만 월드컵과 올림픽 게임을 포함한 큰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들떠 똘똘 뭉친다. 정확한 룰을 몰라도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구경하고 목청껏 응원을 하는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최고로 재밌는 것이 스포츠다. 우리가 축구나 야구를 보며 내뿜는 그 열기를 모리셔스 사람들은 경마를 향해 발산한다.
포트루이스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언덕 아래 샹 드 마르스Champ de Mars가 있다. 1812년 이전까지는 프랑스 군인들의 훈련장소로 사용한 곳이었지만, 이후 모리셔스 레이싱 클럽The Mauritius Turf Club에 의해 경마장으로 바뀌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경마장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과 함께 1968년 모리시안 독립선언이 있었던 의미 있는 장소. 하지만 모리셔스 사람들에게는 이런 오래된 역사나 유명세보다 오직 눈앞에 펼쳐지는 경마가 중요하다. 경기는 본격적인 레이싱이 시작되는 4월 말부터 11월말 사이 거의 매주 토요일 혹은 일요일에 열린다. 가장 많은 사람이 샹 드 마르스를 찾는 시기는 9월에 열리는 메이든 컵Maiden Cup. 표를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지라 숨 막히는 몇 분을 즐기기 위해 그날만큼은 모리셔스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티비 앞에 앉아 중계방송을 시청한다. 몇몇 사람은 옷을 말끔히 차려입고 높은 곳에 앉아 고상하게 레이스를 감상하지만, 대부분은 시그널이 울림과 동시에 말을 향해 소리치거나 함께 뛰며 자신의 선택이 적중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면 경기장 내에서 스낵을 사먹으며 경마를 즐긴다. 누군가는 웃고, 다른 누군가는 아쉬워하고. 비록 모두를 만족시킬 경기결과는 없겠지만 뜨거운 열기에 흠뻑 취할 기회는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도시
포트루이스 시내를 탐험하다시피 열심히 걷다보니 금세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더위를 피해 향한 곳은 그늘이 아닌 언덕 위 시타델Citadel Fort Adelaide. 튼튼한 성벽처럼 보이는 회색 건축물은 도시 전체를 360도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완벽한 전망을 갖췄다. 1832년, 모리셔스를 지배한 영국인들은 바다로 들어오는 적들을 감시하고 항구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타델을 짓기 시작했다. 공사기간은 무려 10년이 걸렸지만 그렇기에 15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여전히 견고하다. 오늘날, 과거에 막사가 들어섰던 자리는 흥미로운 부티크샵이 차지하고 있으며 요새 전체는 훌륭한 전망대로 다시 태어났다. 날렵하면서도 굳건한 이미지의 외관 덕에 종종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한다는데, 마침 운 좋게도 두 명의 배우가 거침없이 액션씬을 촬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 촬영보다 더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아름다운 항구 도시의 풍경. 계단 정면으로는 오밀조밀 모여 있는 크레올 양식의 가옥이 보이고, 반대편에 가면 거대한 크기의 샹 드 마르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상쾌한 바람이 볼을 스칠 때마다 느낀 것은 포트루이스에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여유 그리고 생명력이었다.
포트루이스의 모든 이야기는 식민지 시절로 돌아간다. 화산폭발로 인해 섬이 수면 위로 등장한 후,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로 오랜 세월 남아 있던 모리셔스. 이후 네덜란드인들의 발견과 지배를 거쳐 프랑스가 섬을 소유한 18세기부터 이 도시의 역사가 시작됐다. 포트루이스가 모리셔스의 중심도시로 낙점된 첫 번째 이유는 좋은 기후 덕분이다. 이따금 부는 강한 바람을 포트루이스 아래 모카Moka 산맥이 막아줘 재해가 덜하기 때문. 두 번째는 아프리카 지역과 연결할만한 항구를 만들기에 좋은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포트루이스는 도시 설립 역사 이래로 지금껏 모리셔스에서 무역이라는 아주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기 힘든 작은 섬에서는 무역이 필수기 때문에 모리셔스 유일의 상업 항구인 포트루이스 항구는 둘도 없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셈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과 포트루이스 사이를 오가는 교역품이 모리셔스 전체의 수출·입품 중 99퍼센트를 차지한다니 이제야 좀 실감이 나는지. 세계적인 기업의 지사도 이곳에 있기에 많은 이들이 매일 포트루이스를 오가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도시가 혼잡할 수밖에 없는 거고. 한적한 휴식을 원한 내가 이 도시와 멀어져야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도 자꾸만 마음이 가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날이 저물어 포트루이스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하는데, 단 한 번의 막힘없이 달리던 차가 퇴근시간과 겹쳐 앞으로 나아갈 줄을 모른다. 겉으로는 시계를 보며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겨서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조금이라도 더 오랜 시간 이 매력적인 도시 안에서 쉬었다 갈 수 있게 됐으니.  

1 시타델에서 바라보는 샹 드 마르스. 저렇게 큰 공간이 경기가 있는 날에는 온 도시의 사람으로 가득 채워진다.  
2 꼬단 워터프론트에서는 가장 최신의, 세련된 모리셔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평일 이른 오전에는 샵도 많이 열지 않고 사람도 없다. 포트루이스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주말에 방문할 것.  
3 워터프론트 주스 가게에서는 사탕수수를 기계에 넣고 돌리며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맛은 호불호가 갈릴 듯한 맛.  
4 센트럴 마켓에서 1층, 청과물이나 정육코너에서는 딱히 뭔가를 살 것이 생각나지 않지만 2층으로 올라가면 파레오를 시작으로 잡다한 제품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역시나 살만한 것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