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 :: Belgium

Romantic Belgian Beer

벨기에 맥주의 낭만을 위하여!

달달한 공기가 만연한 2월이 반가운 사람은 손들어보라.
분위기를 잡아 보고 싶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날 저녁 술의 종류가 달라지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올해의 2월만큼은 손을 들고 내린 모두에게 같은 술을 권하고 싶다. 맥주 좀 아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 벨기에 맥주이다. 최소 오백 가지 이상의 맥주가 생산되는 유럽의 맥주 부국 벨기에. 미식가조차 황홀하게 만드는 향기로운 맥주들과 함께 캐주얼한 미국식 음식까지 곁들인다면? 상상보다 벅찬 시간을 선물할 조합인 것은 확실하다.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취재협조 합스카치 광화문점 02-722-0145

우리만 아는 스피키지의 암호명, 합스카치

‘스피키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미국의 1920년대는 ‘금주법 시대’라 하여 주류와 양조의 판매가 법적으로 금지된 시대였다. 하지만 이
당시에도 법의 눈을 피해 몰래 술을 판매하는 주점들이 있었으니, 이런 장소들을 통틀어 스피키지라 불렀다. 아는 사람들만 입소문을 통해 찾아
가고, 정해놓은 암호를 대지 않으면 술을 마실 수 없는 그런 신비로운 공간. 서울의 ‘합스카치Hopscotch’ 역시 큼지막한 간판 하나 없이도 미식가들의 발길을 이끌리게 하는 스피키지 스타일의 개스트로 펍이다.

해가 진 어둑한 골목, 합스카치의 로고만이 그려진 작은 간판이 은밀하게 빛나고 있다. 아담한 한옥 건물 속을 어떤 맛들이 채우고 있는지 궁금
하다. 합스카치에서는 뉴 아메리칸 퀴진을 따르는 가뿐한 음식들과 최상의 조화를 이루는 30가지 이상의 벨기에 맥주들이 오감을 자극한다.
사실 벨기에의 맥주야 유럽 맥주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면 그 명성을 들어 봤음직하지만, 이와 함께 즐기는 아메리칸 퀴진의 조화는 어떤 느낌
일지 쉬이 상상되지 않는다. 뉴 아메리칸 퀴진은 다양한 민족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만큼 세계의 요리법이 뭉쳐 있는 미국에서 수십 년 전부터
시작된 움직임이다. 남미, 아시아, 지중해, 프랑스 등의 이국적인 요리법과 재료들을 전통적인 음식에 셰프의 기량대로 접목하되 모던함을 유지
하는 한 접시의 미국과도 같은 요리라 할 수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아메리칸 셰프>를 통해서도 살짝 그 느낌을 엿볼 수 있듯이 전통적인 요리
법만을 중시하는 대신 보다 자유롭게, 전 세계를 요리 영감의 원천으로 삼으니 그야말로 맛의 한계가 없어지는 셈이다. 합스카치의 데이비드 조
대표는 미국에서 셰프로 일하며 다져놓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기반으로 개성 강한 벨기에 맥주와 통할 세련된 음식들을 탄생시켰다. 덕분에 합
스카치를 찾은 날 ‘FO 슬라이더’를 맛보며 만만하게 봤던 버거에게조차 어퍼컷을 맞았다. 셰프가 직접 구운 부드럽고 촉촉한 브리오슈 번 사이
로 치즈와 함께 반죽해서 구운 두툼한 패티, 덴마크산 하바티 치즈, 진한 향의 적양파조림 등이 들어가며 버거를 요리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익숙
한 메뉴의 음식을 통해 트렌디한 미국 퀴진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 훌륭하다. 버거의 브리오슈 번처럼 부드러운 수제 스콘이 함께 나오는 ‘후라
이드 칙스’ 역시 마찬가지다. 단출한 접시 위의 튀긴 닭다리와 스콘, 쿠반 옥수수를 보면 미국의 가정식이라도 받아든 것 같지만 맛은 역시나 평범하지 않다. 소스가 필요 없을 만큼 매콤달콤 알싸한 튀김갑옷을 입은 치킨은 버거와 마찬가지로 개성 강한 맛을 선사하며 맥주에 대한 갈증을 키운다.

벨기에 맥주의 낭만을 이야기하는 시간

사실 매년 초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각종 ‘데이’들은 아무 상관없는 이들조차도 그저 무시하기엔 서운한 분위기를 자아내지 않는가. 그런 상황에는 대부분 샴페인이나 와인과 같은 과실주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조금 더 남다른, 특별한 시간을 만들고 싶다면 벨기에 맥주야말로 실패 없는
선택이다. 요리에 활용하는 재료와 방식에 제한이 없는 뉴 아메리칸 퀴진의 무궁무진한 맛의 세계와 수준이 맞고도 남는 것 역시 벨기에 맥주
의 다양함이다. 벨기에 맥주는 유럽의 맥주라 하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독일의 것과는 크게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맥주 순수령’이라는
맥주 제조 규율이 엄격히 지켜지고 있는 독일의 맥주는 맥주의 기본적인 재료인 홉과 보리, 효모, 물 네 가지의 재료만으로 맥주를 만든다. 하지만 벨기에에서는 맥주를 양조하는데 넣는 재료와 방식에 대한 규율이 없다.

이런 덕분에 벨기에에서 생산되는 맥주의 가짓수만 500가지가 넘으며, 각각 차별적인 방법과 재료로 생산되는 맥주의 종류는 약 10가지 이상,
세부적으로는 50~60개도 넘는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호가든으로 대표되는 벨기에의 화이트 비어 역시 향신료인 코리앤더와 말린 큐라소 오렌지 껍질이 들어가 더욱 상쾌한 향과 목넘김이 더해지는 것이다.

술과 유럽을 이야기할 때 와인벨트와 비어벨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기후적인 조건이나 여러 역사를 배경으로 와인이 생활 깊숙이 자리
하고 있는 스페인과 프랑스, 이탈리아는 와인벨트에 속하는 나라들이다. 상대적으로 이 나라들보다 높은 위도에 자리하는 비어벨트에는 아일랜
드,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독일, 체코가 포함된다. 벨기에는 지리적으로도 비어벨트의 정중앙에 위치하는 나라이다. 비어벨트의 중심
에서 수천 년간 맥주 문화를 예술의 경지로 이끌었다. 그중에서도 정말 벨기에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맥주를 꼽자면 단연 수도원에서 제조되는 트
라피스트 비어이다. 이외에도 애비 비어, 화이트 비어, 레드 비어, 스트롱 에일, 람빅, 세송 등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우리끼리 ‘벨지언 비어 위켄드 2015’

벨기에 맥주는 시원한 탄산수라도 마시듯 벌컥벌컥 들이키던 기존 맥주들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맛이다. 방심한 채로 입을 잔에 맞추면 첫 모금
이 혀에 닿는 순간 예상치 못한 향과 맛에 깜짝 놀라게 된다. 우리가 흔히 마시던 강한 청량감의 라거 비어보다는 오히려 와인이나 샴페인에 가까운 향과 깊이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벨기에 맥주는 비싸고 질 좋은 양주를 마시듯 한 모금씩 그 맛과 목넘김을 음미해야 하는 이유이다. 실제로 수도원에서 양조된 트라피스트 비어 중에는 와인처럼 병을 개봉하기 전까지 그 속에서 숙성이 이뤄지는 종류들도 있다. 이렇
듯 제조 방식과 재료가 각각의 종류마다 큰 차이를 보이니 자연스럽게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방법까지도 맥주마다 제각각이다. 이런 이유
로 벨기에의 맥주들은 저마다 정해진 전용 잔으로만 마셔야 한다.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맥주의 온도와 맛의 개성에 따라 디자인된 수많은 전용 잔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하다. 특히 벨기에 맥주 중에는 700밀리리터 이상의 큰 병으로 나오는 맥주들이 많아서 한 병으로 서로의
잔을 채워가며 향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벨기에 사람들은 매일의 날씨와 기분에 따라 그날 마실 맥주를 구분할 만큼 맥주를 진정으로 즐기는 이들이다. 벨기에에 아무리 많은 맥주 카
페들이 있다 해도, 현지인들조차 섭렵하기 쉽지 않은 무수한 종류의 벨기에 맥주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을까. 다행히도 매년 9월의
첫째 주 주말이면 3일 간 전국의 맥주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벨지언 비어 위켄드’가 수도 브뤼셀의 그랑플라스에서 열린다. 하지만 맥주를 사
랑하는 마음 하나면 우리만의 비어 위켄드는 언제 어디서든 열릴 수 있는 법. 특별한 이와 함께 벨지언 맥주의 풍미를 공유하는 순간, 그대 테
이블 위에선 이미 작은 축제가 시작된다.

주소 :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27
영업시간 : 18:00~01:00 (일요일 휴무)
가격 : 맥주 1만~3만 원대, 샐러드 1만 원대, 버거 · 치아바타 1만 원대, 파스타 1만 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