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 :: Turkey
Turkish Delight with Delight

터키의 치명적 달콤함
터키 디저트를 아직 맛보지 않은 이여, 아직 단맛을 안다 말하지 말라. 터키는 중앙아시아, 중동, 지중해 등 지금의 영토를 스쳐간 여러 민족의 식문화가 적절히 융합된 세계 3대 미식 국가 중 하나이다. 그 방대한 터키 음식의 세계에 들어서기 전, 작은 귀퉁이를 먼저 베어 물어보았다.
유독 발달한 그들의 디저트 세계를 말이다. 남다른 단맛을 찾아 헤매던 미식가를 위한 비상구가 여기 있다.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취재협조 케르반 베이커리, 케르반 레스토랑 이태원점 www.kervanturkey.co.kr

태고적 달콤함이 스며든 작은 유물들

터키의 음식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케밥. 터키 내에선 이 케밥의 종류만도 천 가지가 훌쩍 넘는다. 하지만 이 조차도 빙산의 일각일 만큼 화려한 터키의 식문화 안에서 한 자리를 제대로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디저트이다. 기존의 우리가 알고 있던 단맛에 비웃음을 보낼 만큼의 치명적인 달콤함. 거기에 현지에서 대충만 찾아도 수십 가지가 넘을 다양한 종류도 한몫을 거든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 세계에 한 번 빠지면 완전히 섭렵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터키 디저트의 특별함은 세 가지 정도로 추려 볼 수 있다. 첫째는 문화충격 수준의 어마어마한 단맛, 둘째는 대부분의 디저트들이 오랜 과거에서부터 내려오는 전통 레시피대로 만들어진다는 점, 또 모두 터키에서 직접 생산된 천연 재료만으로 생산된다는 점이다. 중동 식문화의 영향이 뚜렷이 남아 있는 터키의 디저트들은 더운 날씨로 인해 툭하면 떨어지는 기력을 보충하거나, 음식의 보관 기간을 늘리기 위해 더욱 달아진 본래의 레시피를 여전히 거의 유지하고 있다. 냉장 기술이 탄생한 현대에 들어서는 유럽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디저트의 당도를 조절한 것과는 달리, 터키의 단맛은 그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 이는 모두 오스만 제국 시대에서부터, 혹은 적어도 수백 년간 이 음식들이 걸어온 길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는 것일 테다. 더불어 남한의 일곱 배도 넘는 방대한 국토에서는 터키 사람들이 먹는 대부분의 음식을 충분히 감당할 만큼 풍족한 식재료들이 수확된다. 그런 덕분에 기존의 레시피에 사용된 천연 재료들을 굳이 새로운 것으로 대체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터키쉬 딜라이트라면 언제든!

터키의 디저트들은 나의 터키 여행을 자꾸만 회상시키는 촉매제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을 여행하며 먹은 다양한 음식들 중에는 첫 맛만으로도 온 신경을 놀라게 한 음식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는 단연 로쿰Lokum이다. 이스탄불에서 여행자가 반드시 들러야 한다는 식재료의 천국 ‘이집션 바자르’에서 처음 만난 로쿰. 첫 인상은 깍두기처럼 잘라 놓은 우리의 엿과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로쿰 가게 상인의 권유로 맛을 본 순간, 떡이라기엔 부드럽고 젤리라기엔 끈기 있는 그 식감과 자극적인 달콤함에 매료되었다. 특히 로쿰 가게마다 그 앞에 산처럼 쌓아놓은 다양한 색깔과 종류의 로쿰들은 몹쓸 시식 욕심이 끊이지 않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작지만 강한 이 디저트는 1700년대부터 터키를 포함한 유럽, 중동의 많은 국가들을 홀려 버린 장본인이다. 터키 땅에서 로쿰을 처음 접한 영국인이 그 달콤함에 홀딱 반해 곧장 영국에 이를 소개했는데 이때 처음 ‘터키쉬 딜라이트’라는 표현을 사용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속주머니에도 쏙 들어갈 만큼 앙증맞은 사이즈이지만 결코 만만하게 여겨선 안 된다. 로쿰 두 덩어리의 칼로리는 약 130칼로리. 옥수수 전분과 설탕이 주재료인 만큼 높은 칼로리는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케르반 베이커리에서 판매하는 로쿰은 터키의 여러 로쿰 제조사 중에 양질의 로쿰만을 만드는 고급 브랜드에서 직접 수입한 것이기에 맛에 더욱 신뢰가 간다. 그러니 칼로리 걱정은 잠시 접어두자. 어차피 웬만한 디저트 마니아가 아니라면 두 개 이상의 로쿰을 한 자리에서 먹기는 힘들다.

그래서 이는 무척 쌉쌀한 터키쉬 커피와 단짝으로 여겨진다. ‘커피는 지옥처럼 검어야 하고, 죽음처럼 진하며, 사랑처럼 달콤해야 한다’는 터키 속담이 있을 정도로 커피 역시 터키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이다. 터키쉬 커피는 오스만 제국부터 시작된 중요한 생활문화 중의 하나로 터키만의 독특한 커피 주전자에 커피 가루와 설탕을 함께 넣어 끓여서 맛과 향이 진하다. 작은 커피 한 잔에 커피 가루가 그대로 들어가니 기존의 에스프레소보단 텁텁하되 조금 더 도톰한 거품을 즐길 수 있다. 맨입으로는 쓴맛에 놀라도 로쿰과는 환상의 호흡을 누리는 파트너다.

우유 빛깔 달콤함, 수틀라츠와 돈두르마

로쿰조차 살짝 부담스러운 터키 디저트 초심자들을 위해 추천하고 싶은 메뉴가 있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터키식 아이스크림 돈두르마Dondurma와 달콤한 라이스 푸딩인 수틀라츠Sutlac이다. 두 디저트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우유가 주재료이니 꽤 만만한 상대다. 또 터키에서는 우유를 사용한 이 디저트들이 결코 아이들만을 위한 군것질로 치부되지 않는다. 특히 수틀라츠와 같은 경우는 이스탄불에서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가도 디저트 메뉴에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다른 터키 디저트보다 덜 알려진 편이지만 우리의 주식인 쌀이 통째로 씹히는 친숙한 매력의 라이스 푸딩. 이태원의 케르반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사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디저트 역시 수틀라츠였다. 레스토랑과 가까운 거리의 케르반 베이커리보다 넉넉한 양으로 디저트 진열대를 든든하게 채우고 있다. 둥글넓적한 자기에 담긴 수틀라츠들은 표면의 거뭇한 그을림이 특징이다. 하지만 장담컨대 맛은 겉모습보다 몇 배로 훌륭하다. 터키의 수틀라츠는 오직 쌀과 생우유, 설탕, 달걀, 전분만을 주재료로 정성스런 조리과정을 거친다. 먼저 큰 냄비에 모든 재료들이 잘 섞이도록 충분히 끓이며 저은 후, 터키에서 공수한 수틀라츠 전용 자기에 담아 오븐에 넣었다가 서빙 전까지 몇 시간의 쿨링까지 마치면 완성이다. 마치 식혜처럼 자연스러운 단맛이 일품인 수틀라츠는 특히나 표면의 그을린 부분에서 풍기는 달고나와 같은 향이 즐겁다. 주기적으로 쌀알까지 기분 좋게 씹히니 가벼운 아침 식사로도 그만이겠다.

꿀과 견과류의 끈적한 만남, 바클라와와 카다이프

나에게 로쿰은 터키 디저트에 대한 호기심을 처음 생기게 한, 바클라와Baklava는 터키 디저트에 본격적으로 빠져 버리게 만든 음식이다.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 성당 앞 도로변에 유독 많이 모여 있던 디저트 가게 중 한 곳에 들어가 무심결에 사먹은 것이 처음이었다. 터키 여행 당시엔 디저트에 대한 상식이 거의 없었기에 유독 자주 눈에 띄는 그 녀석의 정체가 그저 궁금했다. 그렇게 멋모르고 입안에 넣은 작은 바클라와 조각은 혀가 쪼그라드는 듯한 달콤함을 선사했다. 하지만 충격적인 단맛이 지난 후에도 이를 향한 포크질을 멈출 수 없더라. 이는 손만 대면 새어 나오는 시럽보다도, 씹을수록 진해지는 견과류의 고소함 때문이었다. 바클라와는 주로 피스타치오가 들어간 것이 가장 대표적인데 이외에도 호두, 아몬드 등 다양한 견과류들이 맛을 풍성하게 한다. 견과류와 함께 종이보다도 얇은 40겹의 밀가루 반죽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만드는 환상적인 식감은 또 어떠한가. 터키 사람들이 왜 오랜 세월 바클라와로 명절의 식탁을 장식하고, 이를 귀한 선물처럼 여겼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특히 케르반 베이커리에서 맛본 초코 바클라와는 마치 진한 초코 시리얼을 꿀에 찍어 먹는 듯 풍성한 맛이었다. 혼자 황홀하게 먹다보면 이내 디저트를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한 상자씩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와 비슷한 듯 다른 카다이프Kadayif 역시 마찬가지다. 피스타치오를 잘게 갈아 맛을 낸 바클라와와는 달리 통째로 바삭한 표면 위에 박힌 그 고소함은 또 다른 경지이다. 끈적한 시럽 속에서 유자 향까지 우아하게 퍼지니 함께 곁들일 차 한 잔이 유독 고프다.

연달아 만난 터키스러운 단맛에 기분이 상승하더니 금세 여행이라도 온 듯 설렜다. 그 마음은 뜨거운 차이를 한 잔 더하는 일로 가라앉혀본다. 이스탄불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오던 언덕 위 ‘피에르 로티 카페Pierre Loti Cafe’에서의 홍차 향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 시간을 함께 추억할 누군가와 다시 이 얼얼한 단맛들을 느끼고 싶다.

주        소 : 케르반 베이커리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126-2
영업시간 : 매일 10:00~24:00
가        격 : 수틀라츠 5천 원대, 돈두르마와 터키쉬 커피&로쿰 세트 6천 원대,
                   바클라와 7천 원대 (200그램 단위), 로쿰 5천 원대 (500그램 단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