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land :: Helsinki City
One Day in Helsinki

헬싱키에서 단 하루가 주어진다면

북유럽의 작은 도시 헬싱키. 아무리 크기가 작다고 할지언정 짧은 시간 동안 휘리릭- 둘러보는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디자인 쇼핑에 올인을 해도 훌륭하고, 핀란드 사우나를 하며 건강에 투자해도 좋다. 그래도 누구나 만족시킬 수 있는 건 하루 여행자를 위한 ‘당연한 여행 코스’다.
글과 사진 함희선 기자 취재협조 핀에어 www.finnair.co.kr, 헬싱키관광청 www.visithelsinki.fi, 라플란드관광청 www.saariselka.fi

해안가

핀란드는 핀란드어로 아주 예쁜 이름을 가졌다. 수오미Suomi. ‘호수가 많은 나라’라는 뜻이다. 핀란드에는 호수가 많고, 물이 많다. 수도인 헬싱키도 발트해에 인접해 있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도시 규모의 절반이 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일만큼 복잡한 해안선과 수많은 만, 섬으로 구성되어있다. 전체 해안선 길이만 123킬로미터. 헬싱키에서 해안가 산책을 하지 않고 도심만 둘러보는 건 이 도시를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물론 대부분의 여행자가 도시에 온전히 소비할 시간조차 모자라다. 평소에는 꿈도 꾸지 않았던 아침 산책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다. 루우호라티Ruoholahti에서 히에타니에미 해변Hietaniemi Beach을 지나 세우라사리Seurasaari까지 연결되는 해안의 길이는 총 7킬로미터. 뒷짐지고 걸으며 ‘수오미’를 느껴보기 완벽한 코스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에서 가까운 지점을 골라 30분만 산책하면 마음이 풍족해진다. 해안가 산책이 죽어도 싫은 여행자라면 핀에어 스카이 휠Finnair Sky Wheel이 있다. 2014년 6월에 오픈한 따끈따끈한 회전 관람차의 파랑색 창문을
통해 바다가 둘러싸고 있는 도시가 눈에 훤히 담긴다. 12유로를 투자하면 12분 동안 헬싱키 하늘을 돈다.

암석 교회

세상에 이런 교회가. 헬싱키 최고의 명소로 꼽히는 템펠리아우키오 키르코Temppeliaukio Kirkko는 돌덩어리를 깎아 만든 암석 교회다. 1969년 이 교회를 설계한 두 명의 건축가 티모Timo와 투오모 수오말라이넨Tuomo Suomalainen이 한국에 살았더라면 진짜 TV 프로그램에 기인으로 소개됐을 거다. 자연적으로 놓여있던 기반암의 속을 숟가락으로 파내듯이 깎아 동굴처럼 만든 건물. 두발로 옥상을 밟아 봐도 그게 교회인지 돌산인지 알 길이 없다. 신기한 건 오로지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벽면만이 아니다. 천장은 무려 22킬로미터 구리 띠를 원형으로 돌돌 말은 쿠폴라 형태다. 자연 속에서 영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핀란드 사람들의 이상이 실현되는 경건한 공간. 교회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묘한 분위기에 휩싸여 종교와 상관없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조아리게 된다.

헬싱키 중앙역

헬싱키의 관문인 헬싱키 중앙역Helsingin paarautatieasema. 하루에 20만 명의 이용객이 드나드는 도시에서 가장 복잡한 공간이다. 핀란드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고,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경유해 모스크바까지 가는 국제 철도 노선도 운행한다. 핀란드의 건축가 엘리엘 사리넨Eliel Saarinen의 설계로 1917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던 해에 완공되었고, 중앙역은 교통요지로서뿐 아니라 건물 자체만으로도 수려하다. 옥색 지붕과 적갈색 화강암으로 마감된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에서 눈여겨볼 포인트는 49미터 높이의 우아한 시계탑과 대형 아치의 정문 옆에 둥근 램프를 들고 있는 거대한 석상이다. 2013년 영국 방송 BBC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으로 뽑히기도 했으니 항공편으로 핀란드에 온 여행자라도 잠시 들러보길.

헬싱키 대성당

“나 헬싱키 다녀왔어요!”하는 의미의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
다면 헬싱키 대성당으로 가는 거다. 수십 개의 계단 위에 새
하얀 몸매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는 대성당은 파란 하늘 밑에
서 포토제닉하다. 아쉽게도 겨울이면 그 파란빛은 행운이 있
어야 따라오는 것이나 도시의 랜드 마크이니 헬싱키 첫 방
문자라면 꼭 찾아가 볼 것. 그저 헬싱키 대성당이라고 불리
는 탓에 이름을 잊고 살지만, 본명은 투오미오 키르코Tuomio
Kirkko다. 핀란드 루터교의 총본산으로 국가의 주요한 종교
행사를 행하며, 시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런데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보통의 유럽여행에서 마주하는
성당들과 조금은 다른 분위기이지 않은가. 사실 과거의 핀란
드는 스웨덴과 러시아 강대국 사이에서 아주 힘든 시기를 보
냈다. 수도 헬싱키 역시 제정 러시아의 황제였던 알렉산드
르 1세가 독일의 건축가 카를 엥겔Carl Engel을 데려다가 “상
트페테르부르크와 같은 도시를 만들라!”해서 세운 계획도시
다. 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약 40만 개에 달하는 화강암으로
바닥을 깐 정사각형 형태의 원로원 광장Senaatintori이 그 계
획의 시작이었다. 1852년 카를의 설계로 완공된 대성당 주변을 헬싱키 대학교과 정부청사, 국립도서관 등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올리게 하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으니 “여기 왠지 러시아 같아.”라는 감상은 전혀 틀린 게 아니다. 성당 앞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는 동상도 러시아 황제였던 알렉산드르 2세이니 말이다. 역사의 중심에 서있는 원로원 광장은 지금의 헬싱키 시민들에게 약속을 잡
는 만남의 장소이자 여름이면 계단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즐기는 일광욕 베스트 스폿이다.

디자인 디스트릭트

핀란드를 이야기할 때 ‘디자인’을 빼놓는 일은 있을 수 없다.
2012년 ‘세계 디자인 수도’였던 헬싱키는 홈인테리어, 가구,
패션 등 디자인 컬처를 이해하기에 완벽한 도시다. 북유럽
디자인 열풍으로 친숙해진 브랜드가 있다면 헬싱키에서 지
갑을 마음껏 열어도 좋다. 비록 살인적인 물가라 해도 이 도
시에서의 쇼핑은 거부가 불가능하니까. 마리메꼬, 이딸라,
아라비아, 아르텍, 알바 알토, 요하나 굴릭센, 이바나 헬싱키
등 핀란드 디자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브랜드들이 도시 곳
곳에 퍼져있다. 한 건물 안에서 편안하게 쇼핑하고 싶다면
핀란드 최대의 백화점인 스톡만Stockmann, 도시 풍광을 즐
기면서 여유롭게 제품을 접하고 싶다면 디자인 디스트릭트
Design District를 권한다. 25개 거리에 디자인 숍과 부티크,
패션 스토어, 박물관, 갤러리, 쇼룸, 스튜디오 등 200개의 스
폿을 선정해놓은 것으로 주로 에스플라나디Esplanadi와 푸
나부오리Punavuori 거리에 밀집해있다. 길을 헤매지 않고
원하는 브랜드를 찾고 싶다면 ‘디자인 디스트릭트 워킹 루트
맵’이 요긴하다.

마켓광장과 올드 마켓홀

헬싱키에서 오로지 도시적인 풍광만 기대하지 말 것. 매력은 옛 것에서도 흘러나온다. 핀란드의 도시들은 전통적으로 시장이 들어서는 광장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구도심의 여객항 옆에 있는 카우파토리Kauppatori 마켓 광장이 헬싱키의 그것이다. 배에서 바로 가져온 생선이나 직접 키운 채소와 과일들을 파는 시장이 들어서고, 빵과 커피, 간단한 요리, 다양한 식재료를 파는 노점들도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구 120만 명에 인구밀도가 서울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으니 규모 자체는 그리 크지 않다. 소박한 동네 시장에 가깝다. 매서운 추위가 잦아드는 겨울이면 노점의 개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지만, 그래도 재래시장 고유의 매력은 여전하다. 마켓 광장 건너편으로 가면 지붕 높은 벽돌 건물이 하나 나온다. 올드 마켓홀인 반하 카우파할리Vanha Kauppahalli다. 1889년에 문을 연 이래로 헬싱키 시민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실내 시장. 두 개의 작은 복도를 따라 치즈, 연어, 고기, 채소, 와인, 초콜릿 등 신선한 재료들과 바로 먹을 수 있는 빵과 수프 등을 파는 상점이 들어서있다. 장을 보러 나온 헬싱키 시민들과 여행자들의 발걸음으로 늘 시끄러운 올드 마켓홀은 점심시간이면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러 오는 잘 차려입은 회사원들로 북적인다. 여행 중이라 탐나는 것 모두 살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새우 오픈 샌드위치나 루네베르그 케이크를 사서 한적한 항구 한쪽에 자리 잡으면 호사스러운 나들이가 따로 없다.

살루토르겟 레스토랑

악평보다 무서운 건 핀란드 음식을 향한 무관심이다. “연
어나 청어나 먹겠지 뭐.”라는 게 핀란드를 찾는 여행자들
의 유일한 기대다. 에스플라나디 거리에 위치한 레스토
랑 살루토르겟Salutorget에서 한 끼의 식사를 마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핀란드 음식이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지도. 헬싱키 마켓 광장을 바로 앞에 두
고 있는 살루토르겟은 스웨덴어로 마켓 광장. 1830년대
지어진 네오르네상스 스타일의 옛 은행 건물 내부는 거대
한 기둥과 우아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고급 레스
토랑으로 탈바꿈했다. ‘스칸디나비안 비스트로’를 표방하
는 살루토르겟에서는 북유럽 퀴진을 선보인다. 애피타이
저로 러시아식 팬케이크인 블리니, 메인코스로 감자 퓌레
와 함께 나오는 발틱 헤링이나 링곤베리 잼을 곁들인 송
아지 고기를 시키면 성공적이다.

스피스 레스토랑

퓨어 노르딕. 스피스Spis를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두 단
어다. 한적한 골목에 숨어있는 단 18개 좌석의 앙증맞은
스피스는 북유럽에서만 생산되는 신선한 재료로 식탁을
차린다. 앙트레로 생선과 고기 메뉴를 내기도 하지만, 대
부분 채소를 베이스로 한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채소
조각이 이상한 그릇 위에 줄을 맞춰 나올 때도 있지만, 매
니저 야니의 설명을 듣고 나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식사를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무조건 입속에 밀어 넣는 것
이 아니라 접시 뒤에 숨겨진 재료의 출처나 요리 방식에
도 관심을 가져보라는 것. 다이닝 룸은 야니씨가 꽉 잡고
있다면 키친은 안테로 아우리부오와 페르투 요키넨, 두
명의 셰프가 책임진다. 음식은 보통 매일 바뀌는 데일리
메뉴를 4코스, 혹은 6코스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와인 리
스트가 훌륭하고, 특히 북유럽에서 양조된 독특한 스타일
의 맥주가 냉장고에 가득하니 진정한 노르딕 경험을 원한
다면 야니씨에게 요청하길.

럭스 헬싱키 페스티벌

“이렇게 춥고 깜깜한 밤에 헬싱키 사람들은 무엇을 하죠?” 먼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주로 던지는 질문이다. 올해로 7회를 맞이한 럭스 헬싱키Lux Helsinki는 아무래도 그 관점에서 출발한 듯하다. 헬싱키에서는 매년 겨울이면 빛 축제가 개최된다. 2015년에는 1월 4일부터 8일까지 5일 동안 총 17점의 아트워크가 핀란디아 홀부터 원로원 광장에까지 도심 13군데에서 빛을 밝혔다. 유난히 긴 추위와 짙은 어둠 탓에 메인도로가 아니라면 죽은 것처럼 고요해지는데, 이 럭스 헬싱키 덕에 축제 기간 동안만큼은 한밤의 거리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올해를 빛냈던 작가 중 하나는 독일의 재스퍼 레오나드 퀸Jasper Leonard Kuhn. 버튼을 누른 이에게 1분 동안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One Minute of Fame>으로 시선을 끌었다. 라이팅 디자인 콜렉티브 헬싱키 팀의 <Anonymous>도 참여율이 좋았다. 누구든지 하얀색 큐브 안에 들어가 2분 동안 원하는 행동을 하면 그 모션이 핀란디아 홀 벽면에 예쁜 빨간 빛으로 변해 작품이 되었다. 전 세계 빛 축제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벨기에 ACT팀의 계란 모양의 나무틀 <OVO> 역시 럭스 헬싱키 축제에 등장했다. 어쩌면 북극권의 하늘을 밝히는 오로라와 같은 역할을 럭스 헬싱키가 매년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