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 :: Argentina

와인, 탱고,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진한 무언가에 매료되고 싶었다. 촉촉한 쇠고기 육즙과 묵직한 달콤함의 와인, 사랑의 흑과 백을 담은 춤사위 탱고가 만난다면 이 목마름이 금세 날아갈 것 같다. 이 모두를 간직한 도시가 바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다. 이 도시에 발을 디딘 사람 중에 와인과 소고기, 탱고에 유혹당하지 않은 이가 있던가. 그 세 가지만으로 매일 밤 아르헨티나의 열기를 피워내는 곳, 레스토랑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다녀왔다.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취재협조 부에노스아이레스 잠원점 www.buenosaires.co.kr

와인과 소고기? 함께 라면 무조건 옳다

아르헨티나의 식문화는 시작부터 넘치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전체 인구보다 2배 많은 소들이 키워지는 나라’,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먹는 유일한 채소는 와인’이라는 문장들이 모두 농담인 줄만 알았다. 물론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긴 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들은 아니다. 남한보다 30배 가까이 넓은 국토의 아르헨티나에서는 그중 3분의 1을 차지하는 드넓은 초원에서 수천만 마리의 소들이 길러지고 있다.
그런 엄청난 공급도 충분히 감당하는 것이 또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소고기 사랑이다. 이 나라에선 일 년에 한 사람이 먹는 소고기 양만 60킬
로그램에 달한다고 하니, 웬만큼 육식을 사랑하지 않고선 그 앞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할 수준이다. 또 와인은 어떤가. 아르헨티나에선 거지도 와인을 마신다 했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단연 으뜸이며, 전 세계에서는 다섯 번째로 와인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이지만 또 그만큼 국내 자체에서 소비되는 양도 어마어마하다. 아르헨티나에 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하나같이 하던 말 중 하나가 그것이었다. 

어쩜 매 끼니마다 빼놓지 않고 와인을 겸할 수 있냐는.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에는 저가 와인 브랜드가 발달한 이유도 물론 있다. 저렴하면서도 다채로운 종류의 와인들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아르헨티나의 와인이 한국의 소주와 같은 국민 주류로 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아르헨티나식 식사를 한 번이라도 직접 맛본다면 그 많은 설명들도 부질없을 만큼 바로 깨닫게 된다. 왜 그들의 식사에 와인이 절대 빠져선 안 되는지 말이다. 다른 나라의 소들에 비해 초원에서 풀만 먹고 키워지는 소가 많은 아르헨티나이기에 항상 저렴한 가격으로 훌륭한 고기들을 맛볼 수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고기 위주의 식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의 느끼함도 주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일 테다. 그럴 때마다 모든 기름기를 싹 잡아먹으며 다시 입맛이 솔솔 돌게 하는 역할을 해내는 것 또한 와인이다.

아르헨티나 노스탤지어를 향한 위로

하지만 국내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어서 아쉬웠는가. 본래 아르헨티나 와인만을 취급하던 수입업체 ‘멘도사’가 이 모두를 격식 있게 선보이
는 아르헨티나 레스토랑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문을 매일 열어두기에 이제는 사정이 백번 나아졌다. 벌써 10년 가까이 아르헨티나의 추억을 자극하는 진짜배기 음식들과 합리적인 가격, 폭넓은 아르헨티나 와인 메뉴로 아르헨티나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나 그리움을 앓는 많은 이들을 위로해왔다. 더불어 풍성한 아르헨티나 와인의 다양성을 위해 멘도사가 아르헨티나에 자체 설립한 브랜드 ‘인IN’을 통해 제작한 와인 역시 선보이고 있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즐기는 저녁식사에는 진정한 화룡점정이 있다. 매일 저녁 9시부터 레스토랑 지하 홀에서 펼쳐지는 탱고 공연이다. 그저 어설픈 탱고 흉내를 상상하는 건 금물. 앞으로 7월 말까지 공연할 이바나와 마우리시오는 둘이 함께 탱고를 춰온 지만 11년이 된 장수 커플이자 훌륭한 파트너이다. 그들이 삼십 분 동안 정열적인 탱고 음악 네 곡에 맞춰 선보인 춤사위는 벅찰 수준의 감동을 선사했다. 서커스에 가까운 아찔한 몸짓들이 뜨겁게 타오르되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슬한 사랑의 매력을 표현했달까. 식사 중간에 공연을 관람했다면 목이 메어 남은 음식을 마무리하지 못할 뻔했다. 훌륭한 아르헨티나 음식과 와인, 절절한 무료 탱고 공연까지 선물하는 이 공간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만든 순간이다.

주소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8-2 대능빌딩 B1
영업시간 18:00~01:00 (일요일 휴무)
가격대 아르헨티나 스페셜 2만 원대,
스테이크 3만~6만 원대, 와인 1병 2만~5만 원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추천하는 와인 콤비네이션

Luigi Bosca Reserva Sauvignon Blanc + 엠빠나다

루이지 보스카 리저브 쇼비뇽 블랑은 화이트 와인 중에서도 가장 바
디감이 가벼운 와인이다. 샐러드나 엠빠나다와 같은 애피타이저 음식
들과 특히 잘 어울리는데, 두드러지는 장점은 후에 먹을 고기 요리의
맛을 더욱 풍성하게 느끼도록 자극해준다는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
스만의 남미식 만두 엠빠나다는 소고기와 햄치즈 두 종류로 마련되어
있다. 다진 소고기에 매콤한 양념을 가미해 만두 속을 꽉꽉 채운 맛이
담백하면서도 깊은 고소함을 자아낸다. 햄치즈는 이보다 담백하되 짭
짜름한 치즈의 맛이 풍성히 느껴지는데 그 모두의 맛과 루이지 보스
카 쇼비뇽 블랑의 상큼한 향이 식사의 시작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훌
륭한 조화를 만든다.

Podowain Blue Cabernet Sauvignon + 빠스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시작한 수입업체 멘도사가 직접 아르헨티나에
서 생산한 와인 브랜드 ‘포도와인’의 블루라인 와인이다. 포도와인 블
루 까베르네 쇼비뇽은 특유의 묵직하고 드라이한 타닌의 맛이 강하
다. 그래서 뚝배기에 치즈와 다진 소고기, 으깬 감자 등의 여러 가지
식재료가 뒤섞인 요리 빠스뗄의 맛과 대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빠
스뗄은 엄마가 집에서 뚝딱 해준 찌개를 먹을 때와 흡사한 훈훈한 감
정이 들게 하는 아르헨티나의 대표 가정식 메뉴. 하지만 여기에 세련
된 포도와인의 향이 섞이면 그 맛이 한 차원 높아진다.

RUTINI Malbec + 아사도

‘말벡’은 항상 아르헨티나 와인을 대표해왔다. 특히 아르헨티나 와인
생산의 80퍼센트를 자랑하는 지역 ‘멘도사’에서 재배된 말벡은 고산
지대 재배의 덕을 본 풍미가 그윽하다. 이런 와인과 함께 하기에는 비
슷한 수준으로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메뉴 아사도가 적합하다. 거대
한 그릴에 나무 장작을 피워 굽는 아르헨티나의 대표 메뉴 아사도. 부
에노스아이레스의 아사도는 고기를 진공 포장한 후 열을 가하는 수
비드 공법으로 사전에 8시간 이상 조리가 된 상태에서 서빙되기 직전
고온에서 15분 정도만 굽기 때문에 두꺼운 고기 덩어리 안에 촉촉한
육즙이 그대로 살아 있다.

Luigi Bosca Gala 1 + 까바요 스테이크

루이지 보스카 갈라 원은 말벡이 80퍼센트 블렌딩된 프리미엄급 와
인이다. 그에 맞게 중후한 맛이 느껴지는 레드와인으로 주로 고급 스
테이크와 좋은 조화를 이룬다. 이와 어울릴 만한 스테이크로는 까바
요 스테이크를 꼽았다. ‘까바요’는 스페인어로 ‘말’을 뜻한다. 두툼한
등심 스테이크 위에 명랑한 달걀 프라이가 올라간 흔치 않은 메뉴이
다. 반숙으로만 익혀진 덕분에 이것이 터지며 스테이크의 육즙과 더
욱 고소하게 섞일 때 맛이 더 풍성해진다. 식은 후에도 질겨지지 않는
부드러움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