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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aga, The Home of Picasso

말라가, 피카소의 고향을 그리다
나의 일생 92년, 내 고향을 잊은 적이 과연 있던가. 뜨거운 태양과 활기찬 사람들,평화로운 비둘기와 피 튀는 황소가 공존하던 그곳은 짧지만 강렬했던 내 마음 속 영원한 집이다.언젠가 죽음이 내 앞에 도래하거든, 기꺼이 그 매혹적인 도시에 내 이름과 업적들을 헌정하길 바랐다.
이 몸의 자유로운 예술혼이 가장 처음 비상했던 도시, 바로 나의 고향 말라가다.
글과 사진 이소윤 기자 사진 · 취재협조 말라가관광청 www.malagaturismo.com,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

비둘기와 투우에 매료된 작은 아이

여전히 말라가의 메르세드 광장에선 활기찬 비둘기들이 퍼덕인다. 이 광장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따뜻한 집에서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일생은 시작되었다. 미술학교의 선생님이던 아버지 호세 루이스와 어머니 마리아 피카소 사이에서 1881년에 태어난 첫 아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도 가장 뜨거운 남쪽의 해안 도시 말라가는 그가 처음 본 세상이었다. 물론 그가 일생의 대부분을 생활했던 프랑스나 스페인 내의 다른 지역들에도 피카소를 추억할 많은 장소들이 존재한다. 사실 피카소는 9살까지만 말라가에 거주한 이후, 스페인과 프랑스 등의 여러 도시를 터전으로 삼으며 살아갔다. 하지만 말라가는 그의 일생이 처음부터 잘근잘근 눈에 밟히는 도시다. 언제나 그의 가슴 속에서 고향 말라가에 대한 애정은 사그라질 줄 몰랐다. 어린 피카소가 아름다움이란 개념을 채 깨닫기도 전부터 넘치는 영감을 제공한 이 도시를 어찌 잊을 수 있었겠는가. 집 앞의 메르세드 광장에서 매일 같이 마주치던 비둘기들의 날갯짓, 또 아버지와 함께 즐겨 보았던 투우 경기의 뜨거운 열기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아이가 크레용을 달라며 떼쓸 만큼 강렬한 무엇을 남겼다.



1 그림을 좋아하던 소년은 아버지를 따라 집의 발코니에서 한적한 낮의 메르세드 광장을 자주 내려다보곤 했다. 그때부터 자주 그림을 그리며 각별히 애정하던 비둘기. 그는 연인 프랑소와즈 질로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딸에게 비둘기를 뜻하는 스페인어 ‘팔로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2 파블로 피카소의 생가이자 작은 박물관이 조성된 건물의 모습. 3 피카소의 동상은 메르세드 광장 벤치 위에 조용히 앉아 말라가의 매일을 바라본다. 
4 6 생가에서 피카소 뮤지엄으로 향하던 길목에 마주친 산티아고 성당. 성당의 외벽에는 이곳이 그가 세례를 받은 장소라는 사인이 붙어 있다. 
5 아늑한 생가의 내부에는 피카소 가족들에 관한 추억의 사진들과 아버지 호세의 다양한 그림 작품. 피카소가 생전에 말라가에 관해 남겨 놓았던 물품들이 전시 중이다.

그의 인생을 따라다닌 말라가 노스탤지어

미술 선생님이자 화가였던 아버지 호세는 투우 그림만으로도 스페인에서 인정받던 화가였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이었는지, 피카소는 아버지조차 놀랄 만큼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대한 천재성을 드러낸다. 그렇게 꼬마 피카소가 어릴 적에 그렸던 소묘 작품들과 가족에 대한 기억의잔상이 전시되어 있는 피카소의 말라가 생가. 건물 2층으로 오르며 벽에 적힌 글귀를 읽어본다. “(...) although I come from afar I am a child and I want to eat and swim in salt water. Pablo Picasso.” 연중 보이는 지중해성 기후의 말라가는 도심에서 금세 해변에 다다를 수 있는 매력적인 문화 · 휴양 도시다. 그곳에서 생애 첫 추억들을 쌓은 피카소는 자기가 떠나온 머나먼 곳, 넉넉한 햇볕과 열정의 바다가 있던 고향 말라가를 기억에서 지우지 않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피카소는 말라가와 멀지 않은 남프랑스에서 노년의 시간 대부분을 보낸다. 또 어린 시절부터 자주 그림의 주제로 삼았던 스페인적 영감들을 그만의 특색으로 정착시키기도 한다. 말라가 생가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여러 전시품 중에도 그가 생전에 말라가의 투우를 표현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더불어 유독 눈에 띄던 물건 중에는 마치 드라큘라 백작이 떠오르는 전통 의복이 있었다. 이는 피카소가 아끼던 스페니쉬 전통 남성복인 ‘카파Capa’이다. 카파는 예로부터 스페인의 귀족 남성들이 즐겨 입던 전통 케이프인데, 피카소는 자신만의 카파를 항상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카파를 입혀 묻어달라는 긴밀한 부탁을 하기도 했다고. 이처럼 피카소는 세계 여러 곳에서 살아가면서도 스페인과 말라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파블로 피카소 생가
오픈시간 9:30~20:00 (11월~3월 매주 화요일 휴무)
입장료 2유로
주소 Plaza de la Merced, 15 29012, Malaga, Spain
홈페이지 www.fundacionpicasso.malaga.eu

말라가에서 피카소를 만나는 또 다른 방법

이 도시에서 태어난 피카소를 직접 추억할 장소는 당연히 생가가 전부는 아니다. 독보적인 컬렉션으로 입소문이 자자한 말라가의 ‘피카소 뮤지엄’은 말라가에 왔다면 결코 그냥 지나쳐선 안될 장소 중 하나이다. 심지어 피카소의 생가와는 겨우 200미터 떨어져 있기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생가를 나오자마자 피카소의 팬들이 보이는 행동은 기본적으로 모두 같다. 생가 앞 메르세드 광장의 피카소 동상에 다가가는 일이다. 평범한 벤치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동상 옆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거나, 20세기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그 대단한 손을 꽉 쥐어 본다. 어찌나 손길이 많이 탔는지 벤치의 동상 옆자리는 칠이 벗겨지고, 그의 손은 새하얗게 반질반질 바래 버렸다. 살아생전이나 지금이나 그는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애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인 것이다.

말라가에서 피카소의 흔적을 찾는 일은 광장을 지나 골목길에 들어서면서 부쩍 흥미로워진다. 평범해 보이는 그 길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유독 어느 건물 앞에 웅성웅성 모여 선 사람들을 발견했다. 골목에서 크고 작은 성당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는 말라가이지만 이 길의 ‘산티아고 성당’은 잠시 걸음을 멈출 가치가 있다. 본래 모스크였다가 개조된 말라가 최초의 성당임과 동시에 바로 피카소의 부모님이 결혼식을 올린 장소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기 피카소가 세례를 받은 성당이기도 하다. 생가에 이어 피카소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목까지도 피카소와 관련된 소소한 장소들이 이렇게 걸음걸이를 즐겁게 한다.

그만의 작은 사랑의 아카이브, 피카소 뮤지엄

사실 피카소만을 위한 박물관은 말라가뿐만 아니라 프랑스나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말라가의 피카소 박물관이 특별한 점은 이것이다. 그의 가족과 사랑, 개인적인 관심사에 관한 많은 작품들이 보관 중이라는 점 말이다. 16세기에 지어진 고즈넉한 궁전 건물 속에 총 12개의 갤러리로 꾸며진 박물관이 들어선지도 벌써 12년. 갤러리를 쭉 돌며 그의 작품들을 꼼꼼히 관찰하다 보면 마치 피카소가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혼자만의 일기장을 한 장 두 장씩 읽어 내려가는 기분이다. 그의 가족에 관한 작품들과 함께 그의 인생을 풍만하게 했던,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이 담긴 작품들이 자주 보이는 덕분이다. 대대적으로는 7명, 실상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피카소의 여인들은 그의 예술 인생에 모두 제각각의 영감을 선사했다. 미술관에서 만나는 그녀들에 관한 그림 속에는 피카소가 당시의 연인에게 느낀 다채로운 감정들이 그만의 방식대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올가 코흘로바를 그린 그림 ‘만틸라를 쓴 올가 코흘로바Olga Khohlova with a Mantilla’는 그의 업적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그림이다. 러시아 발레리나였던 올가에게 스페인 여인들이 머리에 쓰는 베일 만틸라를 씌워 그린 초상화이며, 그가 그린 중 가장 비싼 작품에 속하기도 한다. 온화하고 안정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올가의 초상화와는 정반대의 작품 역시 즐비하다. 올가와의 결혼 생활 중에 만났던 여러 연인 중 한 명인 도라 마르를 그만의 큐비즘으로 표현한 ‘팔을 올린 여인Womanwith Raised Arms’과 같은 작품 말이다. 프랑스 사진작가였던 그녀는 그의 수많은 여인들 중에 그와 지적으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던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눈과 얼굴, 육감적인 신체와 발랄한 색감이 돋보이는 그림은 피카소가 그녀를 얼마나 각별하게 여겼는지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와 함께 그의 나이 90세에도 멈추지 않고 그렸던 섹슈얼한 작품들을 감상하다보면, 그가 여자와 사랑에 대해 타고난 열정이 그의 예술적 천재성만큼이나 대단했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온다.

하지만 미술관 속 수백 개의 작품들 속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히는 그림은 ‘Mother and Child’이다. 작품 속에는 엄마와 갓난아이, 그리고 그림자와 같은 아빠 세 사람만이 그려져 있다. 피카소의 유가족들에게 기부 받은 약 300점의 작품들로 꾸려진 미술관인 만큼, 피카소의 가족에 관한 작품만이 걸린 갤러리는 귀한 감상 포인트이다. 여기엔 그가 항상 사랑, 예술과 함께 인생의 중심이라 여겼던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담긴 인물화가 주를 이룬다. 한 미술평론가는 피카소를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이라 표현했다. 이는 그의 멈출 줄 모르는 사랑에 대한 목마름을 꼬집기에도 적합한 문장이다. 오직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 20세기 미술계의 판형까지 바꿔버린 개척자 피카소. 그의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잔뜩 품은 고향 말라가는 피카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는 영원한 영감의 도시였다.

피카소 뮤지엄 말라가
오픈시간 화~목 10:00~20:00, 금 · 토 10:00~21:00 (일요일 휴무)
입장료 영구 소장품 컬렉션 6유로, 임시 소장품 컬렉션 4.5유로, 통합 9유로
주소 Palacio de Buenavista, C/ San Agustin, 8 29015 Malaga, Spain
홈페이지 www.museopicassomalaga.org

1 피카소 뮤지엄의 아름다운 정원. 박물관 내의 기념품숍 겸 커피숍인 공간과 이어져 있어, 한가로운 낮 동안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 훌륭한 장소다. 
2 16세기에 지어진 이슬람식 궁전을 적절히 모던하게 개조한 박물관의 실내가 아름답다. 
3 비둘기를 아끼던 피카소의 마음을 전해 들은 것일까. 박물관 외벽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4 이 박물관이 자랑하는 소장품 중 하나인 ‘마더 앤 차일드’. 그가 커다랗게 그린 아기와 선명하게 그린 엄마를 보면 피카소가 가족 내에서 중요하다 여겼던 부분들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5 벽에 걸린 작품은 ‘앉아 있는 자클린’. 그의 인생 마지막 여자였던 자클린은 수많은 그의 후반 작품들 속에 등장한다. 
6 좁은 골목길에 숨어 있듯 자리하는 피카소 뮤지엄 말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