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alia :: Castelli Romani

Day Trip from Roma, Castelli Romani

카스텔리 로마니로 떠나는 로마 근교여행
로마에서 남동쪽으로 20킬로미터 남짓 떨어져 있는 카스텔리 로마니. 과거에는 귀족과 교황의 휴식처였던 언덕 위의 작은 동네들이 이제는 로마사람들이 더위와 인파를 피해 놀러가는 선데이 피크닉의 인기 장소가 되었다.
글 함희선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취재협조 맥아더글렌 www.mcarthurglen.com/ko, 이탈리아 관광청 한국사무소 www.enit.it

프라스카티에 자리하고 있는 빌라 알도브란디니에서 바라본 풍경. 날씨가 좋은 날이면 멀리 로마까지 볼 수 있다.
물의 극장. 빌라 알도브란디니 건물 뒤편으로 가면 트레비 분수 못지않게 거대하고 멋진 분수가 등장한다.
고대 로마시대 귀족들의 권력의 자랑판이었던 카스텔로 로마니. 빌라 알도브란디도 그중 하나다.
바닥 장식까지도 하나씩 손으로 만든 모자이크. 그들의 권력과 부를 가늠해볼 수 있다.

로마에서 남동쪽 20킬로미터 밖으로 달렸다. 무려 이탈리아 로마까지 가서 ‘로마’를 보지 않는다는 죄책감 혹은 상실감에 사로잡히기 일보직전이었다. 지금 여기로 가는 게 옳은 일일까. 평생 로마를 오고간다 해도 제대로 다 보는 건 불가능한 일일 텐데. 분명 후회할지도 몰라. 아니야, 예전에 로마의 유명한 곳들을 다 둘러봤으니 이번엔 로마 밖도 괜찮은 선택일 거다. 해리성 다중인격으로 잠시 고통스러워하며 수많은 생각에 사로잡힐 즈음, 언덕 위에 웅장하게 서있는 빌라 하나가 나타나 모든 걸 압도했다.

귀족들의 호화로운 빌라촌

카스텔리 로마니Castelli Romani. ‘로마의 성들’이라는 뜻을 지닌 라치오Lazio주 한 지역의 16개의 소도시를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 로마 도심에서 차를 타고 출발하면 고작 30분이 걸리지 않는 이웃동네. 고대 로마 시대부터 귀족들이 꿀 발라 놓은 듯이 들락날락거렸던 로마 밖 그들만의 리그와도 같았던 곳. 카스텔리 로마니가 위치한 휴지기의 화산성 구릉 지대인 알바니 언덕Alban Hills은 기원전 7세기부터 많은 마을이 들어섰는데, 특히 고대 로마 시대에는 여름의 뜨거운 더위와 북적거리는 인파를 피해 귀족들이 호화로운 빌라와 저택들을 건설했다. 로마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 프라스카티Frascati에서 마주친 언덕 위의 웅장한 빌라가 그 대표적인 예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단숨에 짓눌러버린 건축물의 이름은 빌라 알도브란디니Villa Aldobrandini. 앞마당으로 거슬리는 것 하나 없이 아무것도 짓지 못하게 한 뒤 혼자 위풍당당하게 로마까지 이어지는 계곡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명당을 독차지하고 있어서 ‘내 눈에 보이는 땅은 모두 다 내 것이오!’라는 마음이 지금의 우리 눈에도 선하게 그려진다. 비 내리던 프라스카티에서 구름이 살짝 걷혔을 때는 저 멀리 로마의 풍경까지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뻥 뚫리듯, 온 세상이 다 내 품에 안기듯 다가왔던 시원스런 풍광은 예부터 모두 로마 귀족들의 차지였던 것이다.

알도브란디니의 빌라는 성 베드로 성당의 주임 건축가였던 자코모 델라 포르타Giacomo della Porta의 설계로 1598년부터 5년에 걸쳐서 완성되었으며, 당시의 빌라 주인은 추기경 피에트로 알도브란디니Pietro Aldobrandini로 지금도 여전히 알도브란디니 가문의 소유로 남아있다. 아쉽게도 내부는 들어가 볼 수 없지만, 빌라 뒤편의 비밀의 극장은 훔쳐보는 게 가능하다. 사실 로마의 트레비 분수가 작년 여름부터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건축 장비에 가려져 있는데, 아쉬운 이라면 지금 당장 알도브란디니 빌라의 뒤편에서 엄청난 선물을 받아들 수 있다. 트레비 분수 못지않은 스케일과 디테일의 물의 극장Teatro delle Aqua이 짜잔-하고 시야에 들어왔을 때 두 손을 부여잡는 감탄을 금치 못할 테니.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진화를 선동한 건축가 카를로 마데르노Carlo Maderno의 작품으로 그 역시 성 베드로 대성당의 내부와 정면, 현관을 설계한 유명한 건축가였으니 그 명성만 언급해도 이 물의 극장의 미모를 상상할 수 있으리라. “당시에는 빌라 건물 뒤에 나만의 거대한 분수들을 갖는 게 유행이었어요. 예술에 심취해있던 돈 많은 사람들의 우아한 사치였죠.” 라치오 주 홍보담당자인 크리스티나의 말처럼 프라스카티에 있는 또 다른 빌라 몬드라고네Villa Mondragone에서도 한쪽에 숨어있는 물의 극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집주인이 소유욕이 더 강했던 듯 알도브란디니의 것은 건물 뒤에 귀엽게 감춰두었다면, 몬드라고네의 것은 거대한 문의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야 만 볼 수 있는 비밀 정원에 꼭꼭 숨겨져 있다.

16개의 아름다운 마을들

로마의 귀족들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과시했던 카스텔리 로마니에는 총 16개의 크고 작은 마을이 있다. 그중에서 멋진 빌라들이 많이 들어선 프라스카티가 가장 인기 있는 방문지이지만, 매해 여름이면 교황이 머물러가는 별장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가 있는 알바노 호수Lago Albano가 또 유명하다. 오래전의 분화구에 형성된 칼데라호로 여름이면 보트를 빌려 타고 화산이 만들어낸 독특한 모래 해변에서 캠핑하며 놀기 위해 찾아오는 로마 시민들로 북적인다. 호수를 둘러싸고 3킬로미터로 이어지는 작은 숲속의 산책길은 피서하기 딱 좋은 장소. 참고로 교황이 여름마다 찾는다는 별장 카스텔 간돌포는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에도 등장하는 곳으로 소설책과 영화에 푹 빠진 괴짜들이 빠지지 않고 들르는 로마여행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네미Nemi라는 마을에 위치한 네미 호수Lago di Nemi 역시 화산이 태생인 칼데라 호다. 고요한 아름다움으로 미국의 화가 조지 이네스George Inness 등 여러 예술가들의 화폭에 꾸준하게 담겨왔다.

프라스카티와 가까운 그로타페라타Grottaferrata도 수고로움을 들여 찾아갈만하다. 성 닐로의 수도원Abbazia Greca di San Nilo이 있어서다. 1004년 칼라브리아에서 온 바실리우스 수도원의 수사, 이탈리아에 그리스 수도원을 도입했던 선구자 로사노의 성 닐루스가 세운 것으로 테라스처럼 생긴 주랑현관과 르네상스 시대의 우아하고 호리호리한 기둥이 인상적이다. 내부에 11-13세기의 모자이크가 여전히 남아있어 사람들을 그로타페라타로 이끈다.

비옥한 화산지대

전통적으로 로마사람들이 교외로 나가 한가로움을 즐겼던 데에는 시원한 날씨와 아름다운 풍경 말고도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카스텔리 로마니를 찾는 요즘 로마 사람들의 주말 콘셉트는 대부분 푸드와 와인이다. 고대시대부터 이 지역은 농업이 아주 잘되었다고 한다. 화산지대라서 비옥한 토양이 거기에 힘을 보탰다. 특히나 슈퍼스타 취급을 받은 건 와인이다. 1996년부터는 여기가 아주 큰 와인 원산지 등급인 DOC 지역이 되었을 정도로 말이다. 로제Rose와 가벼운 스파클링 와인인 프리잔테Frizzante, 그리고 드라이하고 스위트한 와인까지 모두 훌륭하다. 하지만 그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면 단연 화이트 와인. 만약 와인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프라스카티를 생각할 때 귀족들의 빌라보다는 와인부터 주저 없이 떠올릴 테다.

와인은 이렇게나 맛있고, 또 먹을 것은 무엇이 있을까 싶어서 만나는 사람들을 다 붙잡고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해요, 카스텔 로마니 하면 포르케타죠!” 통돼지의 뼈와 내장을 발라낸 뒤 마늘, 허브, 향신료로 채워서 천천히 바삭하게 구워낸 이탈리아 전통요리가 포르케타Porchetta인데, 짭짤한 게 어디서 많이 먹어본 맛이라 했더니 우리 족발과 맛이 얼핏 비슷하다.
껍질은 과자처럼 바삭하고 속살은 아주 부드러워서 씹는 재미가 좀 더 있을 뿐이다. 먹는 방법은 썰어서 그냥 그대로 먹거나 파니니 샌드위치로 만들기. 포르케타 집으로 추천하는 곳은 교황의 여름별장이 있는 알바노 호숫가의 촐리Cioi로 17살의 소년 오비디오Ovidio가 1917년에 처음으로 문을 연 뒤 100년에 가까운 역사와 레시피를 가족이 대를 이어 지켜오고 있는 포르케타 전문점이다. 푸드 여행의 마무리는 네미의 야생 딸기 프라골리나Fragolina가 좋겠다. 자유롭게 노지에서 키운 달콤하고 향기로운 딸기를 한입 베어 물면 카스텔로 로마니의 황홀한 자연 풍광을 혀로 보는 기분일 거다. 올리브와 치즈, 맛좋은 포르케타 한 접시, 그리고 커다란 화이트 와인 한 병이 있다면 설령 우리가 귀족의 핏줄이 아니더라도 카스텔리 로마니에서의 황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완벽한 식탁이 되어줄 거다.

그로타페라타에 위치한 곱고 우아한 느낌의 그리스식 수도원.
카스텔리 로마니는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프라스카티의 화이트 와인은 진리.
알바노 호숫가의 가장 오래된 포르케타 숍 '촐리'의 친절한 점원들.
이 지역 특산품인 뼈 없는 돼지 바비큐 포르케타.
카스텔리 로마니에서 유명한 또 하나의 귀족 빌라 몬드라고네.
총 16개 마을 중 하나인 그로타페라타의 메인 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