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nna :: Ringstrasse
Ringstrassen Casting a Spell on the City

비엔나를 향한 환상의 주문 링슈트라세

한눈에 봐도 유서 깊은 건물과 걷기 불편한 돌길은 시간을 머금은 채 오스트리아 제국의 희로애락을 함께해왔다. 성벽이 무너지고 원형의 도로가 완성되며 오래된 모든 것은 새로운 비엔나와 역사를 공유하게 됐다. 그와 동시에 왕가와 귀족을 위한 공간은 당대 가장 세련되고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났다. 비엔니즈가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한 링슈트라세의 이야기다.
글 김수현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취재협조 비엔나관광청 www.vienna.info





1 케른트너 거리 중앙에 위치한 스왈로브스키 매장. 쇼윈도 안에 클림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황금빛 마네킹이 있다. 
2 마부들이 끄는 마차 피아커Fiaker가 트램과 함께 다니는 풍경은 언제 봐도 이채롭다. 피아커를 타고 구시가지를 도는 투어는 가격은 제법 비싸지만 인기 있다.
3 링슈트라세 안 오래된 건축물, 그리고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휴식을 즐기는 비엔니즈들. 
4 트램이 다니는 길옆에서 종종 자전거 전용 도로를 발견할 수 있다. 바닥에 자전거 그림이 그려져 있거나 자전거용 신호등이 따로 달려있기도 하다. 
5 빨간 트램은 비엔나의 명물이다.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린다.

여긴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새빨간 1번 트램에 몸을 맡기고 창밖 풍경에 매료된 사이 옆자리가 하나둘 비더니 어느새 종점에 다다랐다. 어쩐지 낯익은 건물보다 푸릇한 나무가 많아지는 듯싶더니 비엔나 중심을 확대한 지도 밖에 서 있게 됐다. 유럽의 여타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음에도 긴장으로 매 순간 솟아있던 어깨가 전원적인 풍경에 둘러싸이고서야 제자리를 찾는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도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타고 온 트램에 올랐다. 낯선 풍경에 놀란 것은 여행자라면 응당 느낄 감정이다. 구시가를 둘러싼 둥그런 원형 도로 안팎으로 촘촘히 관광명소가 들어섰으니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이 안에서만 몇 날 며칠 구경해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비엔나 가이드북에는 이 순환도로의 이름이 링슈트라세RingStasse라며 몇 번이나 진하고 큰 글씨로 강조했다. 앞쪽부터 꽤나 장황하게 소개를 한 까닭에 어떤 명소보다 더 궁금했던 길. 그런데 다른 유럽국가에서도 한 나라의 수도와 왕궁을 에워싼 성벽이나 길이 있지 않았던가. 그 안에 역사적 건축물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여기에 하나 덧붙여 우리 집이 있는 서울만 해도 사대문 안쪽이 과거에 수도역할을 했던 곳이며 중요한 사적이 모여 있는데 말이다. 부푼 기대는 한순간에 ‘비엔나에도 이런 게 있구나’ 정도로 바뀌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세상에 둘도 없는 비엔나의 링슈트라세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두 다리로 걷기 전까지.

RINGSTRASSE MAP GUIDE

1 Stephansdom
오스트리아의 대표 문화유산인 슈테판 대성당. 건축이 시작된 12세기에는 로마네스크양식을 추구했지만 14세기에 들어서 고딕 양식으로 개축했다. 비엔나의 중심인 구시가지에서도 중앙에 위치한 비엔나의 간판.

2 Universitat Wien
독일어권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대학교로 1365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루돌프 4세가 그의 형제들과 함께 설립했다. 캠퍼스가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고 빈 전체에 흩어져 있는데, 링슈트라세의 건물은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

4 Burgtheater
부르크 극장은 오스트리아의 여황제였던 마리아 테레지아가 세운 궁정극장이다. 표준 발음의 독일어 연극을 상연하는 것이 특징이며 리노베이션을 예정 중이다.

3 Rathaus
링슈트라세 설립 이후에 들어선 빈 시청은 시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이다. 여름에는 필름 페스티벌,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다.

5 Parliament
합스부르크 왕궁에서 가까운 곳에 국회의사당이 있다. 옛 그리스의 신전 같은 외관이 매우 독특한데, 그리스에서 발생한 민주주의가 오스트리아에 잘 정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6 Naturhistorisches
Museum Wien 자연사 박물관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있다. 이밖에도 동식물, 암석 등 다채로운 고고학적 유물을 전시한다.

7 Museums Quartier
레오폴드 미술관, 쿤스트할레 빈, 현대 박물관이 있는 박물관 지구. 이곳에서는 에곤 실레의 작품을 비롯해 젊은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8 Kunsthistorisches Museum
유럽 내 1, 2위를 다투는 최고의 미술관이자 박물관. 합스부르크 황가의 보물과 브뤼겔의 작품이 인상적이다.

9 Staatsope
링슈트라세 건축과 함께 들어선 국립 오페라 극장은 비엔나의 음악과 관련한 역사가 지나간 곳이다. 이곳에서 최초로 공연된 작품은 모차르트의 <돈 지오반니>. 상연 오페라는 매일 바뀌며 좌석 위치에 따라 티켓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10 Stadtpark
비엔니즈를 위한 시민 공원. 공원을 가로질러 강이 흐르고 주위로 녹음이 펼쳐져 있다. 공원 내 쿠어살롱에서는 매일 콘서트가 열린다.

11
MAK
응용 예술 박물관은 중세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가구, 유리, 도자기, 은, 섬유 등을 전시한다.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응용 예술 박물관의 방문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1 구시가지의 중심, 그곳에 슈테판성당이 있다. 
2 비엔니즈들은 공원을 사랑한다. 링슈트라세 안에는 이런 크고 작은 공원이 시민들을 위해 언제나 열려있다. 
3 국회의사당과 그 앞을 지나가는 트램. 
4 케른트너 거리에 있는 젤라또 트럭보다 도나우 운하 앞 아이스크림 가게의 것이 훨씬 맛있다. 비엔니즈라면 다 아는 사실. 
5 비엔나카드는 개시한 뒤부터 사용 가능하다. 개시하고 싶다면 트램 안이나 지하철역 안 이렇게 생긴 기계에 카드를 넣었다 빼면 된다. 이후에는 카드를 소지하고 다니기만 하면 된다. 
6 옛 성벽의 흔적이 남아있는 거리.

성벽,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가 되다

성공적인 도시계획이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링슈트라세의 건축은 19세기 중반, 정확히 말하자면 1857년에 시작됐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였던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ph I는 과거 오스만투르크 군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운 성벽의 철거를 명령했다. 수도역할을 하는 구역이 점차 확대됨에 따라 성벽이 방어막이 아닌 도시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된 까닭이다. 황제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비엔나 역사상 가장 큰 공공 건축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높고 두꺼운 성벽이 사라지니 황제와 귀족의 거주지인 도심과 중상층, 빈곤층이 사는 바깥구역이 연결됐고 주택난과 불편한 교통으로 인해 정체됐던 성장이 다시 박차를 가하게 됐다. 황제가 위의 칙령을 발표한 1857년부터 1868년 사이 도시 내 인구는 거의 30퍼센트 가까이 증가했다. 링슈트라세의 건설과 함께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비엔나는 유럽국가 내 주요 도시로 발돋움했다. 이때부터 비엔나는 급속도로 성장했고 런던, 파리, 베를린과 함께 19세기 중반 유럽의 가장 큰 도시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8년의 공사 끝에 1865년 5월 1일,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링슈트라세의 건설을 축하하며 대대적인 개통식을 가졌다. 지금으로부터 딱 150년 전의 일이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성벽은 요제프 황제의 예상대로 도시 성장의 주축이 될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면적이 얼마나 컸는지 가로 폭이 넓은 도로를 만들고 주변에 충분한 공공기관을 건축하고도 한참이나 남았다. 나머지 공간에는 귀족과 부호들이 저택을 세웠는데, 특히 궁전극장 주변의 것들은 모두 유서가 깊다. 비엔니즈는 예술가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은 디테일을 감상하며 일상 속에서 예술을 발견한다. 링슈트라세 주변의 현재 모습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보는 비엔나의 풍경이 150년 전의 것과 거의 동일하다는 말이다. 요제프 황제는 공공기관을 설립할 때 왕궁 등 과거의 건축물과 잘 어우러지는 건물을 만들기 위해 유럽의 유명 건축가들을 소집했다. 비록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지만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이 이 계획에 동참했다. 화려하기로는 다른 건물과 견주어도 좋을 일반건물들도 링슈트라세에 터를 잡았다. 국립 오페라극장Staats oper은 이 시기에 지어진 비공공기관 중 간판격인 건축물이다. 당시 여러 건축 양식을 혼용했단 이유로 평범한 상자와 다를 게 없다는 악평을 받았다고 하는데, 현재는 케른트너 거리Karntner Strasse의 대표적인 볼거리로 꼽힌다.

쭉 뻗은 대로를 걷다 보니 성벽 안에 오래된 건축물이야 어디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한 것이 미안하게 느껴진다. 하나의 도로를 따라 오른쪽과 왼쪽으로 시청, 의회, 자연사박물관, 미술사박물관,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특급 관광명소가 있는 곳이 또 있던가. 그래서 비엔나의 링슈트라세는 특별하다. 트램을 타고 지나가거나 잠시 내려 몇 걸음 걷는 것만으로도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각의 홍수를 온몸으로 느끼게 되므로. 링슈트라세 내외를 구성하는 건물 하나하나가 완벽한 예술작품과 같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비엔나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5.3킬로미터의 길이, 60미터 폭의 길을 중심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얼마 후에는 비엔나에서 번화가가 아닌 곳, 소외된 지역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질지도 모르는 일. 슬그머니 지나온 150년의 세월만큼 미래로 향하는 상상도 해본다. 링슈트라세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도 투어를 진행하고 “자, 이곳이 바로 150년 전인 2015년의 비엔나 구시가지입니다!”라는 설명이 덧붙여지는. 과거와 현재가 만난 길에서 새로운 미래가 만들어지는 이 도시를 그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링슈트라세를 따라 여행하는 법

평소라면 발길 닿는 대로 가다 진즉에 길을 잃었겠지만, 비엔나 안에서는 틈틈이 지도만 봐준다면 심각하게 헤맬 일이 없다. 앞서 말했듯 큼직한 볼거리는 링을 따라 줄지어 있으니 트램이 다니는 방향으로 큰길만 따라가면 된다. 먼저 슈테판 대성당Stephansdom과 케른트너 거리가 있는 링슈트라세 안 구시가지는 느리게 걸어도 한 시간 반 정도면 충분히 길을 익히고 둘러볼 수 있다. 물론 어딘가에 시선을 빼앗겨 매혹된 시간은 철저히 제외하고 말이다.

구시가지 바깥쪽 링 전체를 모두 걸어서 탐방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나 체력적인 소모가 크다. 더욱이 시간이 금쪽인 여행자라면 트램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이 적합하다. 어느 정도 지도 파악이 끝났으면 한 곳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이나 반시계방향으로 이동하자. 종종 빨간 트램이 아닌 노란 트램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는 링트램Ring Tram으로 링슈트라세 안을 돌며 투어버스처럼 관광 포인트 앞에서 내려주고 다시 탈 수 있는 트램 버전 홉온홉오프다. 좌석 앞 LCD 모니터와 헤드폰을 이용해 가이드투어를 경험할 수 있지만, 가이드서비스를 제공하는 7개의 언어 중 아쉽게도 한국어는 아직 없다. 링트램 이용자의 99퍼센트는 관광객. 비엔니즈가 일상적으로 타는 트램은 빨간색이다. 트램이나 지하철을 타기 전 비엔나를 어떤 식으로 여행할 것인가, 며칠간 머무를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이틀이나 그 이상 머물며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고 많은 명소를 둘러볼 예정이라면 비엔나카드Vienna Card를 구입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비엔나카드로는 노란 링트램을 제외한 트램, 버스, 지하철을 개시 후 48시간 또는 72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이용 가능하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210여 개 박물관, 관광명소, 레스토랑, 바에서 슬며시 카드를 제시하면 특별혜택을 받을 수 있다. 링트램을 타지 않고 오직 빨간 트램을 이용해 링슈트라세를 한 바퀴 돌려면 1번과 2번 그리고 D트램을 적절히 번갈아 타면 된다. 내리는 타이밍을 놓쳤다 하더라도 노선이 겹치는 구간이 여럿이므로 허둥대지 말 것. 출근 시간에 지하철과 버스를 척척 환승하는 우리에겐 절대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1 비엔나는 세련된 도시다. 건물이나 역사는 오래됐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2 링 안 주요 관광지를 도는 링트램. 트램 위 링 건설 150주년 기념 광고가 눈에 띈다. 
3 슈테판성당 앞 번화가. 케른트너 거리와 이어지기에 언제나 사람이 많다. 
4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예술의 흔적은 비엔나 여행이 주는 재미다. 
5 연말이면 건물 앞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펼쳐지는 시청사. 
6 바닥에 앉아 오랜 시간 그림을 그리던 학생. 
7 트램 안 흔한 풍경.

150번째 생일파티는 현재진행 중

한 세기 반 동안 자리를 지켜온 링슈트라세는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이 도시의 상징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팅 포인트를 제공하고교통의 요충지이자 역사적 이벤트가 펼쳐지는 장소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고 있다. 올해는 링슈트라세 설립 150주년을 맞이하여 이를 축하하고 기념하는 특별한 전시회와 가이드투어가 비엔나 전역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열린다. 주제는 링슈트라세와 관련된 모든 것. 수많은 행사가 있지만 그중 일부만을 아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비엔나 유대인 박물관Judisches Museum Wien에서는 3월 25일부터 10월 4일까지 “링-도로의 유대인 역사”를 주제로 그림 및 사료를 전시한다. 19세기 링슈트라세를 따라 있는 고급주택의 주인 상당수는 유대인 기업가와 은행가였는데, 이들은 당시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예술을 후원했다. 이번 특별 전시회는 링슈트라세가 구축된 19세기, 유대인 집단의 생존을 위한 분투와 유대인 엘리트 소수계층의 신분상승에 초점을 뒀다.

클림트의 작품이 있는 벨베데레 궁전Belvedere Palace에서는 7월 3일부터 10월 11일까지는 링슈트라세에 관한 특별 전시회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젊은 클림트의 초기 작품과 링슈트라세 주변이 번영한 시기에 우아한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나타낸 장식들을 만나보자. 클림트의 <키스>가 있는 상궁이 아닌 하궁에서 열린다.

칼스플라츠Karlsplatz 주변에 위치한 비엔나 박물관Wien Museum은 요제프 황제가 성벽 철거를 명령한 1857년부터 1865년 공식 오픈까지의 8년에 대해 다룬다. 이전까지 본 적 없는 드로잉, 모델, 사진 등을 통해 건축가를 포함한 예술가들이 시대에 걸맞은 완벽한 스타일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 오픈은 6월 11일부터 10월 4일까지다.
홈페이지 www.ringstrasse2015.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