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nna :: Food&Drink life
Birthplace of Taste, Delicious Food & Drink

사랑할 수밖에 없는 비엔나의 맛

예상치 못한 기쁨과 환희의 순간은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풍성한 식탁, 품격 있는 커피하우스 문화, 포도밭의 달콤한 낭만이 모두 이 도시에 모여 있었다. 비엔나에서 경험한 맛있는 여행은 음식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행복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글 김수현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취재협조 비엔나관광청 www.vienna.info



비엔니즈의 커피하우스 사랑

아직 커피를 제대로 접하지 않았을 때지만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한 끼 점심 값과 맞먹는 값비싼 커피, 그리고 이것을 즐겨 마시는 사람들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를. 그때로부터 어느덧 십여년이 지난 지금은 너도 나도 카페를 즐겨 찾는다. 단순히 커피 한잔을 홀짝 마시고 오는 것이 아니라 커피가 있는 공간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 비엔나는 이런 카페 문화에의 중심에 서 있는 도시다. 1685년 구시가에서 처음으로 오픈한 커피하우스를 시작으로 커피는 점차 비엔니즈의 삶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상류층 남성에게만 허락된 공간이었다가 1856년 이후 계층과 성별에 상관없이 출입이 가능해졌고 이때부터 커피하우스 문화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오늘날에는 오스트리아인의 85퍼센트 이상이 하루 한잔 이상 커피를 섭취하고, 2011년에는 비엔나 커피하우스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정도이니 이들의 커피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비엔나 전역에 뿌리를 내린 커피하우스는 830개 이상. 그 중 150곳이 오래전 문화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옛것이라고 하면 재미없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감이 있지만 비엔나 커피하우스 문화는 전혀 반대다. 검정색 정복을 입은 잘생긴 웨이터가 커피를 정성스레 서빙해주는 것은 따분하긴 커녕 한잔을 주문한 것이 미안할 정도로 과분하기까지 하다. 커피하우스 협회에 따르면 비엔나 정통 커피하우스가 갖춰야할 조건에는 격식을 갖춘 복장, 대리석 테이블, 엄선된 신문과 잡지, 이따금 열리는 라이브 공연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마디로 그들이 생각하는 한, 가장 비엔나스러워야 한다는 것. 링슈트라세 안 카페 프뤼켈Cafe Pruckel, 카페 란트만Cafe Landtmann 등이 바로 전통을 이어오는 커피하우스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춰 다양한 컨셉으로 탈바꿈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비엔니즈를 위한 최고의 휴식과 만남의 공간이란 것은 변함없다.

어떤 커피를 마셔야 할까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비엔나엔 ‘비엔나 커피’ 메뉴가 없다. 그런데 내 머릿속엔 비엔나 커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진한 에스프레소 위에 소프트 아이스크림모양의 생크림이 올라가있는 것. 우리가 비엔나 커피라고 부르는 이 커피의 진짜 이름은 아인슈패너Einspanner다. 만일 국내의 어떤 카페에서 비엔나의 감성을 담은 비엔나 커피라는 메뉴를 내놓는다면 그 커피는 당연히 멜랑지Melage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멜랑지가 없는 카페는 커피하우스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엔나에서 가장 인기 있고 흔한 커피이니 말이다. 커피하우스마다 각자의 레시피를 보유하고 있지만 보통은 에스프레소와 따뜻한 우유를 순서대로 1:1 비율로 넣고 1센티미터 가량을 우유거품으로 채운다.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 길들여진 나의 입맛에 멜랑지는 포근한 우유 거품이 솜사탕처럼 느껴지는, 시나몬 파우더가 없는 고급스러운 카푸치노였다. 더불어 사랑스러운 비주얼이지만 칼로리부터 따지게 되는 아인슈패너는 반드시 휘핑크림과 크림 아래 더블 에스프레소를 한 스푼에 떠야 진한 커피향과 달콤함이 조화를 이룬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밖에도 싱글 에스프레소인 스몰 슈바르처, 커피 크림을 별도로 준비해 함께 내놓는 스몰 브라우너, 아메리카노에 해당하는 페어랭거터, 멜랑지에 우유거품 대신 휘핑크림을 넣는 프란치스카너, 블랙커피와 생크림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함께 즐기는 비너 아이스카페 등 기호에 따라 다양한 커피를 선택할 수 있다. 노파심에 하는 이야기지만, 앞으로는 비엔나 커피하우스에서 “비엔나 커피 플리즈!”를 외치고 웨이터와 함께 미궁에 빠지는 일이 없길.

커피하우스에서 보낸 어느 멋진 하루

커피하우스를 즐기는 법은 간단하다. 커피와 함께 자허토르테Sachertorte나 애플파이의 일종인 아펠슈트루델Apfelstrudel과 같은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편안히 쉬는 것. 평소 우리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때와 똑같이 말이다. 이런 카페 놀이가 심심하게 느껴진다면 비엔나 커피하우스 컨버세이션스Vienna Coffeehouse Conversations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다. 여행자와 비엔니즈가 만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만남의 장. 기회는 한 달에 한 번이니 여행날짜와 행사 일정을 맞춰보는 것이 우선이다. 행사는 영어로 진행되며 오고가는 대화를 통해 비엔나 커피하우스 문화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현재 예정된 행사 일정은 6월 18일, 7월 23일, 8월 27일이다.

커피하우스를 찾는 여행자뿐만 아니라 비엔나에는 커피하우스 오너들이 참여하는 특별한 행사도 있다. 매년 비엔나에서 열리는 450개의 연회 중에서도 규모가 제법 큰 행사로 커피하우스 오너들을 대상으로 한 무도회가 펼쳐진다. 카페지더발Kaffeesiederball이라 불리는 이 연회는 일 년에 한번 호프부르크 왕궁에서 개최되며 매년 행사의 주제를 제시하고 수준 높은 음악 공연 등을 선보인다. 2015년 2월 무도회에는 약 5천여 명이 참가해 비엔나 커피하우스의 위상을 널리 알렸다. 다음 무도회는 ‘커피와 아티스트’라는 주제를 가지고 2016년 2월 5일에 열린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자서전에 커피하우스의 일상적인 풍경을 완벽히 묘사했다. “커피하우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서민들을 위한 공간이다. 저렴한 가격에 편안히 앉아 커피 한 잔을 즐기며 토론을 하거나 글을 쓰고 카드게임을 하고 편지를 주고받는다. 무엇보다 여러 시간 다양한 종류의 신문과 잡지를 읽는 사람들의 모습도 카페의 흔한 풍경이다.” 오늘날 커피하우스 문화가 가진 영원불멸의 진리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바쁜 일상 속에서 휴식을 위한 아늑한 공간이 되어준다는 것. 그리고 그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

1 3 전통 커피하우스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정복을 입은 웨이터다. 항상 예의넘치게 주문을 받고 음식도 먹기 좋게 놔준다. 
2 간단히 식사를 하고 싶다면 커피하우스도 좋은 선택이다. 
4 아인슈패너. 우리가 알고 있는 비엔나 커피의 진짜 이름이다. 
5 호텔 자허에서 처음 만든 토르테는 이제 자허토르테라는 이름으로 어느 커피하우스에서든지 찾아볼 수 있다. 
6 링슈트라세에 위치한 카페 란트만의 전경. 전통적인 커피하우스 문화를 따르는 곳이다.



1 7 노드씨의 맛있는 해산물 음식. 햄버거나 샌드위치, 크레페와 같은 간단한 음식도 있고 케른트너 거리의 지점에서는 요리도 즐길 수 있었다. 
2 먹음직스러운 타펠슈피츠.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우아하게 먹는 요리다. 
3 4 알베르티나 앞 소시지 스탠드는 언제나 인기 만점. 탱글탱글한 소시지와 톡 쏘는 머스타드가 참 잘 어울린다. 
5 타펠슈피츠와 비너 슈니첼의 맛집인 플라후타에서 정통 슈니첼 요리를 즐겨보자. 6 점심식사로 슈니첼을 먹는 한 가족의 모습.

전통과 모던 사이의 비엔나 요리

비엔나에서 먹었던 음식은 확실히 맛의 장벽이 낮다.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고 좋아할만 하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해산물 패스트푸드점 노드씨Nordsee의 새우버거라던가 피쉬앤칩스같은 것. 케른트너 거리의 작은 분수대에 걸터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먹은 점심메뉴는 아주 무난한 음식이었음에도 식감까지 기억이 난다. 이렇게 점심을 해결하는 것은 여행자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로컬 사람일 확률이 더 높다. 예쁜 가방 안에 대형 슈퍼마켓인 슈파르Spar에서 산 샌드위치나 간단한 간식거리를 들고 다니다가 점심시간이 됐을 즈음 햇살이 좋은 곳에 앉아 꺼낸다. 가끔은 감자튀김으로 시작해서 치즈버거와 콜라까지 갖춘 세트메뉴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다녀가고 사랑한 도시이기에 점심까지도 모든 사람이 잘 차려입고 식사를 할 줄 알았는데 옷뿐만 아니라 식사 자체가 캐주얼하다. 커피하우스에서 샐러드를 먹거나 소시지 등으로 간단히 해결하는 경우도 많다. 알베르티나 앞 소시지 스탠드Bitzingers Wurstelstand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끼니 사이 간단한 간식으로도 좋지만 빵 사이에 머스타드 소스, 케찹 그리고 소시지를 넣어 먹으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되기 때문이다. 이 소시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비엔나 소시지와는 모양도 맛도 다르다. 식당에서 주문하면 한 접시에 얇고 길이가 긴 소시지 두 점이 나오지만 소시지 스탠드에서 파는 것은 먹기 좋은 크기다. 그런데 이 소시지의 고향을 두고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물음표를 던진다. 서로 우리가 원조라 우기는 것이 아니라 너희 나라에서 온 것이라 주장한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쨌거나 식감이 훌륭하고 먹고 나면 배가 든든하기에 비엔나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만은 분명하다.

전통요리를 이야기하며 슈니첼Schnitzel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풀네임은 비너 슈니첼Wiener Schnitzel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비엔나에서 유래해 유럽 전역에 퍼진 오스트리아의 대표 음식이다. 송아지 고기를 얇게 다져 빵가루를 입히고 튀긴 것인데, 소스가 따로 없고 레몬이 같이 나와 나와 소스 맛으로 먹는 한국식 왕돈까스와는 또 다르다. 1인 1접시를 비우기가 쉽지 않을 만큼 양이 푸짐하다는 점은 동일. 반 정도 먹었을 때부터 느끼함이 솔솔 몰려오기 시작하는데 이때 감자나 야채샐러드를 곁들이면 다시 슈니첼 시식에 집중할 수 있다. 슈니첼 외에 유명한 고기요리이자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이 하나 더 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를 비롯한 고기애호가들에게 사랑 받는 타펠슈피츠Tafelspitz. 부드러운 소엉덩이 살과 다양한 야채, 소뼈를 넣어 삶은 뒤 국물에서 재료를 건져 소스와 함께 먹는 음식이다. 담백한 고기와 독특한 소스의
완벽한 조화에 홀딱 반해 소스 한 방울까지 싹싹 긁어 먹고 싶었지만 이 역시 양이 많은 편이라 실패했다. 비엔나 시내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는 이 두 가지 전통요리를 쉽게 맛볼 수 있다.

1 3 6 호이리거의 포인트는 맛있는 음식과 해포도주. 비엔나 시내에서 먹는 것보다 가격도 저렴하다. 함께한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 2 넓게 펼쳐진 마이어 암 플라츠의 와인농장. 30년 이상 산 나무들을 어린 포도나무로 교체할 예정이라고 한다. 
4 여자 종업원들은 이 지역의 전통 옷을 입고 있었다.
5 마이어 암 플라츠에 베토벤이 다녀갔다는 것을 간판을 통해 먼저 알 수 있다.

와인과 낭만이 있는 호이리거

소주나 맥주를 잘 모른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전 와인은 잘 몰라서요.’ 라는 말은 자주 하고 또 듣는다. 왜 와인은 모르면 약간 민망해지는 그런 대상이 된걸까. 아마 가까운 서울 외곽에 포도밭이 있다면 조금은 와인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랐으려나. 비엔나의 식당이나 바, 카페 등지에서는 맥주만큼 와인을 쉽게 접하게 된다. 수준급 와인도 병당 10유로 안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와인이 얼마나 대중적인 음료인지를 증명한다. 그 누구도 와인을 모른다 혹은 잘 안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저렴하고 맛까지 훌륭하니 커피 마시듯 와인을 즐길 뿐이다. 비엔나 안에 있는 와이너리의 개수는 자그마치 200여개나 되는데, 워낙 내부적으로 수요가 높은 까닭에 다른 나라로 수출할 일이 적다. 그러니 비엔나 안에서는 비엔나 와인을 마음껏 마셔줘야 한다.

이 도시에서 와인을 즐기고 싶다면 아주 특별한 선택지가 하나 주어진다. 와인농가가 운영하는 야외주점 호이리거Heuriger를 방문하는 것이다. 호이리거에서는 그 해에 직접 경작한 포도로 만든 해포도주를 판다. 비엔나 도심에서 살짝 떨어진 그린칭Grinzing은 이런 호이리거가 길을 따라 줄지어 들어선 마을이다. 아무 곳이나 들어가도 새로운 미각경험을 할 수 있기에 여행자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기자가 방문한 곳은 마이어 암 파르플라츠Mayer am Pfarrplatz. 살기 좋은 19구역에서 1683년부터 와인을 생산한 전통 있는 호이리거이자 베토벤이 머물며 9번 교향곡을 작곡한 곳으로 이 지역 안에서는 베토벤 하우스라고도 불린다. 미식가도 아니며 소믈리에의 자질도 없지만 시음을 위해 마신 화이트와인들은 눈을 가리고도 확연히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맛의 차이가 있었다. 종업원은 아직도 테스팅할 와인이 많이 남았다며 향을 맡고 입안에 머금다 뱉으라고 말했지만 그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신맛에 중독돼 자꾸만 목구멍으로 넘기고 말았더랬다. 지금도 또렷이 생각나는 이곳 와인의 맛의 비밀은 브랜딩이다. 하나의 포도 품종만을 사용하지 않고 다양하게 믹스하는 것. 이는 와인을 만드는 매우 전통적인 방식 중 하나이며 포도가 자라는 환경만큼이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호이리거가 좋은 점은 빈속을 채워줄 훌륭한 식사메뉴를 갖췄다는 점이다.
우리 입맛에는 약간 짤 수도 있지만 와인과 아주 잘 어울리는 음식이 가득하다. 독일어를 몰라도 사람들 얼굴에서 웃음꽃이 지지 않는 걸보니 편안한 분위기 아래 즐거운 이야기가 오가는 듯했다. 이 분위기가 무르익을 쯤, 야외에서는 아코디언 공연이 펼쳐지고 이내 악사는 테이블을 돌며 음악을 연주한다. 그리고 아주 어두워진 밤이 되서야 호이리거에서의 황홀했던 저녁식사가 종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