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 :: Vienna

비엔나에서 만난 고향의 맛

엄마의 따뜻한 밥상이 그리워지는 순간은 이국땅에서 제법 자주 찾아온다. 그럴 때면 언제나 준비해간 컵라면에 물을 붓곤 했다. 하지만 비엔나에서는 달랐다. 도심 한복판에서 고향 음식에 대한 갈증을 완벽히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로컬들의 무한한 애정을 받는퓨전 레스토랑 킴 코흐트를 방문했다.
글 김수현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취재협조 비엔나관광청 www.vienna.info, 킴 코흐트 www.sohyikim.com

비엔나의 요리 여왕

셰프들이 레스토랑 밖을 나오기 시작했다. 이 덕분에 우리는 레스토랑 주방이 아닌 안방에서 유명 셰프를 만날 수 있게 됐다. 특히 요리와 예능을 접목한 프로그램의 출연진은 프로그램 방송 시간이면 어김없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의 상위권을 차지한다.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 셰프 대다수는 서울 시내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다. 이렇게 요리 프로그램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기 시작한 출발점에는 서바이벌 요리 프로그램이 있었다. 몇 년 전 방영한 <마스터 셰프 코리아>시리즈가 그중 하나.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한국에 레스토랑이 없음에도 우리에게 스타 셰프로 이름을 알린 사람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 레스토랑 킴 코흐트Kim kocht를 운영하는 김소희 셰프가 주인공이다. “하이고, 여기까지 우째 오셨을까.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마이 하셨습니더.” 요리경연 프로그램에서 날카로운 심사위원단으로 등장한 그녀가 누구보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부산 출신의 그녀가 오스트리아 땅을 밟은 계기는 요리가 아닌 디자인 공부를 위해서였다. 꿈에 대한 확신이 희미해지고 있을 때, 그녀의 머릿속엔 어머니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밥장사하면 밥은 안 굶는다.’ 부산의 대학가에서 작은 카페 겸 식당을 운영한 어머니는 셰프 김소희를 있게 한 장본인이다. 김소희 셰프는 1994년도 일식집 개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요리 경험을 했고 2001년에 비로소 킴 코흐트를 오픈했다.

레스토랑의 이름인 킴 코흐트를 우리말로 바꿔 말하면 ‘김씨가 요리하다’이다. 이름에 담긴 뜻대로 김 셰프는 요리와 관련한 다채로운 활동을 펼쳤다. 비엔나 최초로 어린이 요리 교습실을 열었으며 이후에는 어른들을 위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일의 한 메인 방송사가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가 아닌 독일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 덕분에 그녀는 비엔나 안에서 소위 ‘잘 나가는’ 셰프 반열에 올랐고 이로 인해 고향인 한국과도 인연이 닿게 됐다.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무조건 하고 봐야지예. 그래야 난중에 후회를 하지 않더라고.“ 이런 그녀의 도전 정신은 한국과 오스트리아, 독일 시청자를 모두 사로잡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킴 코흐트 식

오스트리아인의 식탁 위 음식은 고기가 팔할이다. 개인적으로 고기를 해산물보다 좋아하지만 비엔나를 여행하는 동안 끼니마다 밀려오는 고기의 향연에 한두번 놀란 게 아니었다. 레스토랑 메뉴판에는 언제나 고기 요리 옆에 추천마크가 있었고 로컬들은 주저 않고 이를 주문했다. 요리 대다수가 고기 위주인 까닭은 오스트리아의 지리적 요인 때문이다. 8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에 바다로 가기 위해선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나라 밖으로 나가야 한다. 환경이 이러하니 생선 요리가 상대적으로 다양하지 못할 수밖에. 킴 코흐트는 주재료를 해산물로 삼은 요리가 70퍼센트, 채식주의자를 위한 채소 요리 20퍼센트, 나머지 10퍼센트가 고기 요리다. 해산물의 천국인 부산, 이곳이 고향인 그녀는 자신이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음식을 선보이고 싶었다. 킴 코흐트가 오픈했을 당시 오스트리아에는 생선 요리를 능숙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새로운 맛을 찾는 비엔나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의 레스토랑은 금세 입소문을 탔다. 호기심 반으로 킴 코흐트를 방문한 이들도 건강한 밥상에 반해 단골이 됐다. 비엔나 사람들은 웰빙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았는데, 이는 ‘밥이 보약이다’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요리와 잘 맞았다. 킴 코흐트의 요리에서는 유럽식 식단에서 빠지지 않는 버터와 크림치즈를 보기 힘들다. ‘먹고 나면 입이 깔끔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두 재료의 사용을 최소한으로 한 이유에서다. 채소는 로컬에서 재배한 것, 계절에 맞는 것을 1순위로 사용한다. 계절이 바뀌면 메뉴 역시 달라져야 한다는 것. 김소희 셰프가 신메

뉴를 내놓을 때 가장 염두에 두는 점이다. 원산지도 꼼꼼히 따지는 비엔나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직접 재료를 보는 일은 두말할 나위 없다. 메뉴를 고안하기 전에는 제철 과일 및 채소를 찾기 위해 시장을 수시로 방문한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자, 비엔나의 대표 시장인 나슈마르크트Naschmarkt는 다양한 식재료는 물론,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공간이다. 주변에 도매 식으로 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시장들도 있기에 많은 셰프가 이곳을 사랑한다.

비엔나의 지리적 특징 중 하나는 도심 밖으로 조금만 나가도 훌륭한 와인 생산 재배지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비엔나는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품질 좋은 화이트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다. 그러나 한 해에 생산되는 양이 비엔나 사람들의 자체 소비를 충족하기에도 부족한 까닭에 지구 반대편에 사는 우리는 이를 맛볼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특히 비엔나에 간다면 무조건 화이트 와인을 마음껏 마셔줘야 한다. 킴 코흐트에서도 비엔나의 와인을 즐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눈길이 가는 것은 레스토랑의 이름을 딴 화이트 와인이다. 아시아 음식과 와인을 곁들이면 음식보다 술이 더 강조되는 경우가 있었기에 그녀는 자신의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만들었다. 신기할 정도로 어느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이 와인은 현재 비엔나 시내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고향의 맛이 그리울 때면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킴 코흐트가 한국 음식 전문점은 아니라는 점이다. ‘비엔나의 유명 한식당’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오해. 매운맛을 찾는 기자에게 내준 음식 맛도 정형화된 한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퓨전 아시아 음식이 주이지만 이조차도 명확하지 않다. 세계를 여행하며 새로운 맛을 경험하는 과정이 그녀가 선보이는 시즌 요리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때로는 단골손님을 위해 있는 재료를 모아 즉석에서 개발한 맞춤 요리를 제공한다. 마치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의 비엔나 판을 보는 듯,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배를 불리는 한 끼가 그녀가 추구하는 킴 코흐트식 요리이다.

긴 시간 비엔나에 머물며 먹었던 음식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묻자, 김소희 셰프는 의외의 답을 했다. 도처에 맛있는 요리가 널린 비엔나이지만, 그래도 그녀에겐 김치와 밥이 최고란다. 몸살 기운이 있으면 언제나 물 말은 밥과 된장, 풋고추, 김치를 먹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비엔나에 온 이들이라면 반드시 비너 슈니첼Wiener Schnitzel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돼지고기로 만든 10유로 내외의 것이 아닌, 송아지 고기를 재료로 하는 레스토랑을 방문하라고 말했다.

더불어 해외여행 중 한식이 그리울 때를 위한 조언도 들을 수 있었다. “무작정 컵라면이나 고추장 찾지 말고, 왜 한식을 먹고 싶은지 생각하는 게 먼저라. 밥 붙은 게 먹고 싶다면 일식 또는 중식 요리 전문점에 가면 되고. 이도 아니면 매운맛 때문에 한식 생각이 난다는 건데, 그럼 슈퍼마켓 가서 식초에 절인 고추를 사먹으면 끝이라니까. 저도 여행 가서 매운 음식 생각날 땐 앉은 자리에서 고추 반병을 먹지예. 그럼 느끼함이 싹 가셔버려.” 버터, 크림소스에 익숙하지 않은 부모님과 유럽을 여행할 때 꼭 기억해야 할 주옥같은 팁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람들에게 얼굴을 종종 비췄던 김소희 셰프는 현재 비엔나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작년 11월에 나슈마르크트에 있던 분점을 정리하고 오랜만에 개인 시간이 생겼다. 쉬는 것도 잠시, 3개월이 지나자 몸이 근질근질해졌고 새로운 일에 꽂혔다. 조만간 비엔나 시내 한복판에 새로운 캐주얼 레스토랑을 오픈할 예정이다. 6월 말부터는 오스트리아 내 150개 슈퍼마켓에서 킴 코흐트의 특제 소스를 만날 수 있다. 이는 킴 코흐트의 이름을 달고 시판 중인 맛소금, 와인에 이은 제품이다. 이렇게나 바쁜 와중에도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챙기는 데에 소홀한 적이 없다. 가게를 자주 비우면 아들, 딸 같은 직원들이 그녀를 하염없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직원들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해 그녀가 말하는 고향의 맛이 무엇인지 직접 느낄 수 있게 했다. 이들과의 단단한 유대감을 유지하기 위해 되도록 레스토랑을 비우지 않으려 한다.

비행기로 꼬박 열 시간을 넘게 가야 도착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당분간 그녀의 구수한 사투리를 듣고, 손맛 담긴 음식을 맛보기 위해선 긴 여정을 떠날 수밖에 없겠다. 언제 다시 비엔나에 갈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여행 중 고향의 맛이 생각날 때면 그곳이 어디든, 집 다음으로 킴 코흐트를 떠올릴 거라는 사실이다.

신선한 채소를 버무린 참치 샐러드
킴 코흐트식 정갈한 한식 한상
버섯과 호박을 넣은 매운 불고기
돼지고기 볶음과 감자 옹심이

위치 : Merkur Hoher Markt, Hoher Markt 12, 1010 Vienna
영업시간 : 11:30~18:00 (일요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