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vence :: Marseille A Dazzling Marseille Day

어느 하루, 마르세유

마르세유는 프로방스의 심장과도 같다. 프로방스 여행을 시작하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마르세유 공항에서 들뜬 첫 걸음을 뗀다. 하루에도 수많은 방랑자들이크루즈나 비행기를 통해 밀려드는 이 지중해 위 도시 속에선 자연스레 앞으로의 여행과 여태까지의 여행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운다.문화와 유흥, 고전미와 현대미, 건축미와 자연미를 온통 간직한 여행의 천국으로 자리매김한 마르세유. 이를 단번에 모두 보겠다는 욕심은 내려둔 채,느긋한 단 하루의 산책길을 나섰다. 물론 비현실적인 도시의 풍광에 발걸음이 금세 바빠지고 말았지만.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임성훈 기자 취재협조 프랑스 관광청(Atout-France) www.kr.rendezvousenfrance.com, 프로방스 지역관광청(CRT PACA) www.tourismepaca.fr

1 이른 아침, 항구 한 귀퉁이에선 요트가 새 옷을 갈아입고 있다. 
2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이면 일종의 거울이 되어 세상을 담는 항구. 
3 항구가 바로 보이는 작은 광장 속 연인. 
4 오른쪽의 생장 요새와 왼편의 뮤셈이 길고 가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5 마치 베니스의 상인처럼 예쁜 배 위에서 예쁜 비누를 팔던 비누 청년. 
6 마르세유 사람들에게 항구는 만남의 장이자, 갈 곳 잃은 이들을 언제든지 품어 주는 유일한 장소이지 않을까. 
7 마르세유 구항구의 모습. 왼편으로는 유럽 문화 수도가 된 도시에 걸맞게 지은 구조물 ‘파빌리온’이 보인다. 앞으로는 쁘띠트레인이 지나가고 있다.

마르세유 랩소디는 항구에서 시작된다

마르세유는 항구가 도시이고, 도시가 또 항구이다. 이곳의 항구란 단순히 도시를 방문하고 떠나는 배들이 정착하는 장소의 기능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공간이라는 이야기다. 마르세유 공항에서 30분 남짓 차를 타고 겨우 마르세유에 도착한 순간, 태어나 처음 보는 바다와 항구, 왕성한 도시와 사람들의 에너지가 혼합된 그 풍경 앞에서 나지막이 환호를 내질렀다. 반짝이는 바다를 감싸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항구의 품 안에는 소박하고 화려한 배들이 질서 정연히 정박되어 있다. ㄷ자 모양의 항구 주변으로 이어지는 널찍한 보도에서는 데이트를 하는 연인, 꼬마와 함께 낚시를 나온 노인, 힙합에 맞춰 세련된 안무를 선보이는 청년들, 훈련된 앵무새를 들고 손님을 구하는 조련사 등 저마다 달라서 더 재미있는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진행 중이다. 맨몸으로 그 삶의 무대를 거닐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악이 귓가를 맴돈다. 그렇게 프로방스 여행 첫날의 긴장감을 항구 곁에서 흘려보냈다.

항구라는 도시의 일부에서부터 색색의 에너지가 철철 넘친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마르세유가 프랑스 내에서도 가장 오래된 역사의 도시 중 하나라는 점이다. 파리와 리옹 다음으로 큰 도시이기도 하다. 물론 처음부터 큰 몸집을 지녔던 것은 아니다. 기원전 600년, 그리스의 포카이아에서 건너 온 이들이 이 땅을 처음 터전으로 삼았고, 다시 기원전 49년에 시저 황제에게 정복되면서 ‘마실리아Massilia’라는 로마인들의 마을이 탄생했다. 지중해를 마주 보는 뛰어난 위치의 작은 해안 마을은 그리스 문명을 엎은 채 문화 · 교통의 요지로서 규모를 키우기 시작했고, 금세 프랑스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가 되었다. 오늘 날까지도 이 네모난 지중해를 향한 문은 바다를 바라보는 모두에게 그리움과 설렘을 동시에 안겨준다.

부두에 걸터앉은 선데이 마켓

고맙게도 항구에서 가장 처음 만난 풍경은 생기 넘치는 선데이 마켓이었다. 오랜 이민자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마르세유는 프랑스인 친구조차 밤거리는 조심하라는 조언을 할 정도로 다소 거친 이미지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화창한 일요일 오전에 어김없이 항구에서 열리고 있던 마켓은 단박에 마음속 경계심을 증발시켰다. 이른 새벽, 바다에서 들어온 어부들은 부두에 배를 바짝 정박하고는 싱싱한 생선들을 매대에 수북이 쌓아 놓고 손님들과 가격흥정에 바쁘다. 생선을 파는 어부들 중 대다수는 술렁이는 배 위에 그대로 서서 손님들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런 독특한 광경에 놀라는 건 오직 나 하나뿐, 매일 아침 이곳에서 열리는 마켓에 익숙한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장을 볼 따름이다. 태양이 빛에 힘을 싣기 시작하는 늦은 오전이 되면 마켓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신선함이 생명인 생선 장사들은 대부분 매대를 접고, 그 자리에는 허브 용품이나
마르세유 특산품, 잡화 등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들어선다. 그중 특히나 마음을 사로잡은 물건이 ‘사봉Savon’, 비누였다. 마르세유의 수제 비누는 프랑스 전역에서 알아주는 물건이다. 마치 어부들처럼 배 위에서 멋지게 중심을 잡고 선 채 알록달록한 비누를 진열하던 한 청년에게서 싼 값에 비누 여럿을 구매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마르세유의 전통 비누는 올리브 오일이나 식물성 오일 등의 천연재료만으로 만들어진 유기농 비누이기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즉 샴푸와 세안비누, 치약으로까지 사용해도 해롭지 않다는 것이 비누 청년의 설명이다. 실제로 마르세유의 비누는 그 전통만 600년에 달하는 마르세유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마르세유에서는 1370년부터 비누를 만드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그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비누를 제조하는 이들이 적게나마 남아 있다. 오직 지중해에서 떠 올린 바닷물과 올리브 오일, 탄산나트륨 등을 재료로 하니, 어찌 보면 마르세유의 바다와 자연이 낳은 선물인 셈이다.

항구의 가장 안쪽에서 시작된 마켓은 항구의 왼편 길목까지 이어진다. 이를 차근차근 구경하며 항구의 가장자리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마르세유 항구의 매력 중 하나는 바다를 바로 마주하는 그 끄트머리가 15~20분이면 걸어갈 만큼 가깝다는 데 있다. 그곳에서 마주할 놀라움은 미처 예상치 못한 채, 오전의 항구가 띠는 수백 가지 표정을 걷는 내내 감상했다.

1 뮤셈으로 이어지는 다리의 모습. 처음 보는 순간부터 반대편으로 모두 건너갈 때까지 환호의 연속이다. 
2 그물망과 같은 콘크리트 외벽에 둘러싸인 실내는 묘한 분위기를 낸다. 
3 뮤셈 앞에서 음료수를 팔던 이민자 할아버지. 그 뒤로 뮤셈 건물이 거대하게 드러난다. 
4 생장 요새 내부. 
5 도시를 원 없이 편하게 둘러보고 싶다면 시티패스 카드를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다. 
6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보이는 마르세유 도심과 지중해. 
7 황금으로 장식된 성모마리아상의 애칭은 ‘좋은 엄마’이다. 
8 언덕 위에 우아하게 세워진 성당 앞으로 유럽연합 깃발이 펄럭인다. 
9 어부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만든 대성당인 만큼 화려한 예배당 내부에는 작은 선박 모형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유럽 문화 수도가 주는 감동의 서막, 뮤셈

항구의 끝에 도달하자 맑은 황토색의 요새가 시선을 가로막는다. 이는 17세기부터 마르세유 항구의 대문을 지켜온 ‘생장 요새Fort Saint-Jean’이다. 인근의 새파란 바다와 모래빛깔의 요새 건물이 멋진 조화를 뿜어낸다. 입장료도 무료이니 가벼운 짐 검사만 마치면 누구나 편안히 입장할
수 있다. 생장 요새는 외관보다 더 이국적인 멋진 내부를 지녔다. 하지만 생장 요새의 하이라이트는 요새에서의 걸음이 거의 다 끝나갈 때쯤 나타난다. 바다 위로 난 철제 다리가 유일한 통로인 박물관 ‘뮤셈MuCEM’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13년에 지어진 따끈따끈한 이 신생 건물은 마르세유가 새롭게 떠오르는 유럽 문화 수도라는 사실을 알고 도착한 나조차도 감탄의 끈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만든 공간이었다. 지중해 문명 박물관이자, 프랑스 최초의 국립 박물관인 이곳은 마르세유에서 단 하나의 현대 건축물을 봐야 한다면 주저 없이 선택하길 바라는 곳이다. 약 9천 평의 부지 위에 지어진 문화 단지로 매력적인 건물만큼이나 훌륭한 기획 전시가 항상 열리고 있다. 마르세유 어부들의 그물을 연상시키는 콘크리트 외관은 겉에서 볼 때와 그 안에서 볼 때의 감흥이 모두 인상적이다. 너무나 흔한 햇빛과 바람, 사람의 그림자까지도 뮤셈에 들어서면 모두 특별해지고야 마는 것인가 싶을 정도다. 눈에 띠는 모든 모습들이 작품과도 같다. 더욱 특별한 건 현대 예술의 정점과도 같은 건축물과 역사적인 요새 사이에 다리가 놓아지며 일으키는 시너지에 있다. 신과 구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마르세유의 매력을 한 구역에 축소시켜 놓은 셈이다. 또 그 안에서 프로방스식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일은 어찌나 황홀한지. 고로 나의 마르세유 여행은 뮤셈을 직접 보기 전과 후로 나뉜다.

하늘 위를 비상하듯, 노트르담 대성당

뮤셈이 마르세유의 새로운 랜드마크라면, 언덕 위 노트르담 대성당은 항상 그 자리를 지켜온 영원한 랜드마크이다. 뮤셈과 가까운 항구 근처의
정거장에서 쁘띠트레인에 올라탔다. 미니트레인은 항구의 남쪽으로 빙 돌아 우락부락한 해안 절벽과 마을, 해수욕장 등이 근사한 휴양도시처럼
이어지는 도시의 남쪽 ‘카탈루냐인Catalans’ 지역으로 내려갔다. 그러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우뚝 솟아 있는 언덕까지 오르기 위해 대범한 우회전을 감행하고, 그 이후로는 가파른 경사에 좁은 골목들을 배경으로 곡예에 가까운 운행이 이어진다. 5~10분 남짓 그런 길들을 오르는 미니트레인
위에 앉아 있자니, 이 길을 멋도 모르고 걸어가려 했으면 주룩 땀을 흘리며 얼마나 후회했을까 싶더라. 하지만 마르세유의 중심가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아기자기하고 이국적인 매력들로 무장하고 있는 언덕 속의 아기자기한 골목들이 그 힘든 여정에 큰 위안이 됐을 것이다. 만약 시간적으로 더 여유만 있었다면, 오를 때는 미니트레인을 이용하고 내려올 때는 천천히 그 골목들의 풍경을 감상하며 걸어 내려오고 싶었다. 다리가 조금 아플지언정 그 풍경 속에 잠시나마 직접 들어가 보기 위해 말이다. 쁘띠트레인이 대성당으로 오르기 위해 꺾어 오른 길의 이름은 ‘호카스 블렁Roucas Blanc’. 이 골목은 도시 내에서도 가장 즐거운 장소와 사건사고들이 밀집한 곳이라 한다.

마침내 도착한 노트르담 대성당. 이 성당이 이토록 높은 언덕에 솟아 있던 게 맞는지 의아하다. 저 아래로 까마득하게 보이는 마르세유 도심 위에 살짝 부유하고 있는 독립된 공간처럼 느껴졌다. 쾌청한 낮에 대성당에 오르면 기존에 갖고 있던 마르세유의 반항적인 이미지가 절반은 바람에
날아간다. 실제로 바람이 세게 부는 언덕이기도 하지만 파란 바다와 울긋불긋한 마르세유가 완성하는 그림은 건전하다 못해 장엄하다.

이 대성당이 지어진 언덕은 마르세유의 독특한 지형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소다. 북쪽으로는 작은 스타Star 마운틴이, 동쪽으로는 상떼-보메Sainte-Baume라는 산이 감싸고 있는 분지 지형이다. 도시 전경을 대충만 훑어도 단박에 알게 되겠지만, 마르세유는 경계의 산들을 제외하고는
높은 지대라는 것이 없는 완만한 평원이다. 그런데 도심에서 유일하게 솟아 오른 석회암 언덕 정상에 이 대성당이 지어진 것이다. 높이 162미터 높이의 산 정상은 과거에서부터 요새를 지어 봉홧불 설치가 자주 되던 장소였다. 항구만큼이나 저 멀리 서쪽 해안까지 시원하게 전망할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높은 대성당 위로 세워진 성모마리아상이 매일 바라보는 마르세유는 어떤 느낌일까. 시민들에게 ‘좋은 엄마The Good
Mother’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성모마리아상은 도시 어디에서도 보이는 곳에 서서 매일의 항구를 지켜본다. 어쩌면 마르세유의 항구가 이토록 밝을 수 있는 건 그녀의 따스한 눈빛 덕분인지도 모른다.

1 프리울 섬의 새하얀 석회암 언덕과 낮은 풀, 꽃들이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2 프리울 섬을 가는 길. 중간에 이프 섬을 가깝게 지난다. 섬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3 사람과 요트 모두에게 반가운 모거렛 해변. 
4 이곳의 갈매기들은 보다 저돌적이다. 
5 금방이라도 올라보고 싶은 완만한 구릉들이 즐비하다.

프리울 섬에서 지중해 위 야생을 탐하다

대성당에서 돌아 내려오는 쁘띠트레인에 다시 몸을 싣고 다시 순식간에 항구 광장에 발을 디뎠다. 본래 타려던 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유로 선착장까지 뜀박질을 했다. 그런데 막상 매표소에 가니 오늘은 날씨 때문에 이프 섬까지 배가 나가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 안타깝게도 이프 섬으로 향하는 배편은 그 날의 날씨에 따라 당일에만 배가 뜨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보다 조금 더 멀리 있는 프리울 섬까지 가는 배편은 올라탈 수 있었다. 왜 프리울은 되고 이프는 되지 않는 것인지 의아했지만 배 위에서 이프를 스치며 보니 조금은 알 겠더라. 워낙 작은 바위섬인 이프는 파도가 세지면 배를 정박하기 어려워 보였다. 이 이프 섬과 내가 향하고 있는 프리울 섬을 포함 4개의 섬이 속한 마르세유 앞 바다의 프리울 군도에는 바다 위 섬들의 집이다. 그 속에 숨어 있던 섬 프리울은 페리로 2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30분이라고 들은 매표소 직원의 말보다 훨씬 빠른 것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프리울 섬은 생각지도 못한 감동을 선사했다. 사막이라 하기엔 약간 울창하고, 그렇다고 지중해안에서 자주 보이는 석회암 지대라고 하기엔 또 척박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요새는 물론이고, 허허벌판, 자갈 해수욕장까지 있을 것은 다 있는 섬이다. 섬은 두 개의 작은 섬이 다리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한 선착장에 내려서 두 개의 섬을 둘러볼 수도 있었다. 더욱 이른 배를 타고 들어왔다면 정말 힘들이지 않고 그 자체로 이국적인 섬의 작은 언덕들을 하나둘 정복해나가는 재미를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었을 것 같다. 17세기부터 인근 해역을 지나던 배들에게 짧은 휴식의 땅이 되어주었던 섬인지라 이렇다 할 건물은 없었다. 선착장을 기준으로 섬에 살고 있는 100명 남짓한 주민들의 집과 레스토랑이 약간 퍼져 있을 뿐이다.

일단 무작정 선착장을 등지고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길을 잃어도 조금만 높은 데 오르면 길이 훤히 보이는 지형이니 걱정이 없다. 하지만 딱히 길이랄 것도 없이 시원하게 뻗어있는 땅과 바위산들이 지독히 이국적이다. 우리가 살던 곳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신기하고 작은 풀과 꽃들이 새하얀 석회의 땅 위에서 더욱 잘 보였다. 저 멀리 높은 구릉으로 프리울에 있다는 과거 병원 건물이 보이긴 하지만, 섬 속 해변이 궁금했다. 그렇게 얼마 걷지도 않고 들어선 바위 문 안으로 모거렛Morgeret 해변이 펼쳐졌다. 마치 거제도에 즐비한 몽돌해변처럼 모래사장 대신 자갈밭으로 이뤄진 독특한 풍경이다. 잠시 바닷물에 손만 싣고 마구 정복하고 싶은 프리울의 아무 구릉 위에 올라 멍하니 모든 풍경들을 바라봤다. 자신들의 땅이라 그런지 유독 낮게나는 갈매기들의 날갯짓을 더 유심히 관찰하며, 또 이곳에서 완벽한 휴식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여행자들의 여유로운 표정들에 흐뭇해하면서 말이다.

1 아직 해가 완전히 져버리지 않은 ‘질까 말까’의 하늘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류의 야경은 마르세유가 아니라면 보기 힘든 것이다. 
2 늦은 밤에도 생기를 잃지 않는 젊은 도시. 
3 항구의 파빌리온은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되는 천장 때문에 지붕 아래의 사람들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 
4 첫 맛은 비릿해도 왠지 모를 구수함이 올라오는 부야베스. 다른 건 몰라도 크루통에 바르는 갈릭 페이스트는 한국에 가져오고 싶을 정도로 이 좋았다.
5 밤이 훨씬 아름다운 대관람차 앞으로, 부야베스로 유명한 빨간 간판의 레스토랑 미라마르가 보인다.

마르세유 밤의 이야기

사실 많은 이들은 마르세유의 낮보다 밤을 더욱 사랑한다. 밤이 되면 항구의 광장에는 조금 더 어두운 젊은 기운이 깔린다. 물론 낮이나 밤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역동적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밤의 그것은 낮의 것과 조금 느낌이 다르다. 이는 해가 완연히 졌을 때의 이야기이고 해가 질까 말까 아쉽게 하늘에 걸려 있을 때가 실은 마르세유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시간이다. 주황빛 석양이 건물에 비치는 일은 여타 유럽 도시들과 비슷하지만, 이곳에는 드넓은 항구와 또 그 위의 수많은 배들이 있으니 말이다. 광장에 앉아 온 항구에 내리는 석양을 바라보다가 이내 주변이 깜깜해지고서야 자리를 일어섰다. 괜한 여행자의 호기심으로 광장 중앙에서 하루 종일 돌아가던 대관람차에 올라선다. 낮은 난간 외에는 안전장치랄 것도 없는 시설이다. 하지만 워낙에 명당 자리에 지어져 있어서 그리 높이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한 눈에 들어오는 항구와 마르세유 중심가의 큰 길목들이 뿜는 불빛들, 또 저 멀리 언덕 위에서 반짝이고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 등을 보며 환호를 질렀다. 그런데 한 관람차의 크기가 작은 편인 데다, 이미 말했듯 특별한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에 고소공포증이 있는 이들에게는 큰 공포감을 선사할 수도 있다. 그래도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기분전환용으로 애용되고 있는 듯했다.

고맙게도 관람차를 탄 광장 바로 앞에 있는 내가 가려던 최고의 부야베스 레스토랑이 보인다. 부야베스는 마르세유에 왔다면 반드시 맛봐야 하는 음식이다. 어부들의 인생과도 같은 맛이 난달까. 더군다나 해산물이 풍부한 마르세유의 시민들이 항상 애용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마치 카레 같은 노란색을 내는 수프는 샤프란의 색을 입은 오랜 정성의 생선 육수이다. 이는 함께 나온 바삭한 바게트 조각에 함께 나오는 갈릭 페이스트를 듬뿍 발라 국물에 퐁당 빠뜨려 떠먹는 것이 정석이다. 이런 방식대로만 먹는 일은 생각만큼 비리지 않았다. 마르세유에서 살아가는 마르세예들에겐 고향의 맛과도 같은 이 음식은 태어나 처음 느끼는 맛도 알려줬다. 그 첫인상을 요상하게 기억하고 싶지 않아 매번 열심히 페이스트를 듬뿍 바른 뒤 수프에 빠뜨려 먹는다. 정석대로만 먹으면 약간의 허전함이 있던 비릿한 수프에 먹는 재미와 함께 풍미가 더해진다. 레스토랑의 사람들은 빵과 함께 나온 생선살까지 곁들이며 오순도순 식사를 즐기고 있다. 그런 그들과 한 공간에서 조명 켜진 항구를 바라보며 부야베스를 먹고 있다니, 정말 마르세유와도 같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