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vence :: Hill-top Villages
The 5 Most beautiful Villages in Provence

프로방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다섯

보클뤼즈 남쪽에는 산과 들판의 귀퉁이에 유독 많은 언덕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나 문학 등 수많은 작품들에 영감을 부여하며 고요히 그 자리를 지켜온 아주 오래된 마을들이다. 여기 이 다섯 개의 마을은 그중에서, 또 프로방스와 프랑스 내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도 유명하다.
어쩌면 내 인생에 단 한 번뿐이었을지도 모르는, 이 눈부신 마을들로의 여정을 돌아본다.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임성훈 기자, 이소윤 기자  취재협조 프랑스 관광청(Atout-France) www.kr.rendezvousenfrance.com,
프로방스 지역관광청(CRT PACA) www.tourismepaca.fr

루시용 
붉은 황토, 붉은 석양, 붉은 마음

해가 뉘엿하다. 하늘의 정상을 벗어난 태양이 붉은 루시용을 더욱 발그레 물들인다. 그 빛깔에 반해 넋을 놓고 있는 나에게 루시용 토박이가 다가와 손 위에 무언가를 올려 주었다. 근처의 아무 화단에서 한 꼬집 집어 올린 흙가루였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이를 손바닥에 문질러보라는 그녀. 순순히 고운 흙을 살에 비벼 보니 금세 손바닥이 발갛게 변한다. 마을의 광장에서 시원하게 보이는 황토 절벽과도 같은, 짙고 붉은 흙이 온 마을에 지천인 것이다. 루시용의 땅이 이토록 선명한 황토인 것은 대략 1억년도 훨씬 전, 이 땅이 바다였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지구의 운동으로 바다가 육지가 되면서, 루시용 인근의 땅은 유독 많은 철분을 보유하게 되었다. 마을 주변 50킬로미터 반경까지 이런 황토의 땅이 이어진다. 이는 90년대 초반까지 마을의 황토 채석장에서 일을 하며 생활을 꾸려 나갔던 주민들에겐 항상 선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90퍼센트의 흙과 10퍼센트의 색소로 이루어져 있는 루시용의 황토를 채취해 철분이 많은 흙으로는 단단한 토기 등을 만들고, 황토에서 추출한 고운 색소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수출했다. 특히 러시아에서 자주 보이는 오래된 노란빛의 궁전들은 대부분 과거 루시용에서 수입한 색소를 페인트에 섞어 바른 것이라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18세기 말부터 왕성한 시장을 형성했었다. 물론 현재는 유적지가 되어버린 이 황토 지대는 더 이상의 채석이 금지되었지만, 오직 딱 하나 남은 황토의 색 추출 공장이 루시용 바깥 50킬로미터 너머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에서 오토바이를 렌트해 그곳까지 다녀오는 원데이 트립도 꽤 인기 있는 편이다.

1 루시용의 공용 주차장 바로 앞으로 이토록 선명한 빛깔의 황토 절벽이 버티고 있다. 2 3 마을 속에 세워진 모든 건물들은 직접 바른 황토로 벽이 울긋불긋하다. 각자 조금씩 다르게 햇빛에 산화되어 건물에
따라 어디는 분홍색, 저기는 노란색을 띠는 모습들이 참 곱다. 4 작은 골목의 가로등조차 괜히 멋스럽다. 5 휴지통에 새겨진 루시용의 모습. 6 노란색과 하얀색, 황토빛이 뒤섞인 루시용의 황토. 과거에는 이
흙에서 색소를 추출해 옷을 위한 염료나 페인트에 색을 입히는 용도로 사용하고는 했다.

1 4 루시용은 특히 예쁜 잡화점이나 책방들이 많아 쇼핑욕구를 자극하기도 한다. 
2 좁은 골목 속으로 분홍과 노란색 조명이 옅게 비치는 듯하다. 
3 루시용의 종탑. 
5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저 멀리 붉은 빛을 적나라하게 내비치는 황토 언덕이 보인다. 늦봄과 초여름의 프로방스에서 유독 자주 볼 수 있는 새빨간 포피가 함께 넘실대는 풍경이 일품이다. 
6 따스한 벽 위로 가로등 그림자가 드리운다. 
7 프로방스의 미스트랄은 이곳 집들의 구조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강한 바람에 기와가 날아가지 않도록 3~4겹씩 이를 쌓아 올려 탄탄한 지붕을 만든다. 과거에는 이 기와를 많이 덧대어 늘어나는 처마의 길이가 부유함을 상징하기도 했다고. 
8 루시용 마을 속 교회.

뇌리에 깊이 박히는 루시용의 색감

내가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하는 데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빗물이 온 세상을 적시며 그 빛깔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시용은 굳이 비에 젖지 않아도, 모든 골목과 집들이 아주 진한 색감을 뿜어낸다. 루시용의 집들은 붉은 황토로 반죽된 옷을 입고 있다. 프로방스의 많은 집들이 그 지역 땅의 흙을 집 바깥벽에 바르기 때문에, 특히 작은 마을에서 그 골목길을 쭉 두르고 나면 이 마을이 세워진 땅이 어떤 색을 띠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루시용은 황토가 넘치는 부유한 도시임을 결코 숨길 수가 없다. 물론 오랜 옛날부터 이곳에서의 삶이 녹록했던 것은 아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흠잡을 구석 없는 황토이지만, 농사를 짓기 위한 땅으로는 결코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시용 인근은 완벽한 토양이 아니어도 잘 자라는 라벤더나 체리나무 등을 주요작물로 삼아왔다. 사정이 이러하니 황토 채석장만이 많은 주민들의 생계수단이자 희망이었다. 물론 90년대 후반부터 루시용의 아름다움을 전해 들은 관광객들이 황토빛 마을과 거기에 비친 작열하는 석양을 보기 위해 모여 들며 이제는 관광업이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좇는 사람들에게 이 마을은 단연 매력적이다. 노랑과 아이보리, 갈색, 빨강, 주황 등의 수많은 색감을 머금은 마을인지라 그 속의 일상 역시 매일이 알록달록할 것만 같다. 나의 이런 근거 없는 상상이 아마 사실일지도 모르겠다고 느낀 건 책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은 후이다. 작가 사무엘 베케트는 1942년에 나치 정권을 피해 루시용에 숨어들었고, 이곳에서 지낸 3년 동안 작품 활동 역시 멈추지 않았다. 그 기간에 완성한 소설 <와트Watt>는 비록 십년이 지난 후에 발매되었지만, 이보다 먼저 출간된 그의 대표작에서조차 루시용을 여러 번 언급한다. ‘우리는 보클뤼즈에 함께 있었지. 루시용의 보넬리에서 포도 수확을 도왔어.’와 같은 대사 이외에도 루시용은 <고도를 기다리며> 속에서 수차례 언급된다. 이미 루시용을 떠난 이후 집필된 책에서조차 그가 자꾸만 이 마을에 대한 잔재를 남기는 것은 왜일까. 아마 눈부신 색감으로 첫인상부터 강렬한 루시용은 이 속에 살아가며 느끼게 되는 그 이상의 매력으로 작가 뇌리 속에 깊이 박힌 것은 아닐까. 화려한 빛깔의 마을 속에 머물고 있자니 자꾸만 이런 묘한 생각들이 머리를 맴돈다.

1 메네르브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다 만난 이 집은 대문과 거대한 담만으로도 고급스러움이 뚝뚝 떨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서 많은 돈을 모은 여사가 프로방스에 처음 구해 놓은 집이란다. 
2 세월이 느껴지는 건물들을 보며 이 마을의 나이를 짐작해본다. 
3 성 루크 교회 맞은편의 마을 공동묘지. 이곳은 프랑스 내에서도 오래된 공동묘지 중 하나이다. 하지만 창살문 너머로 흘깃 본 분위기는 오히려 더욱 평온했다. 
4 9 10 프랑스에서 나는 트러플 중 70퍼센트가 프로방스, 보클뤼즈 산이다. 메네르브에서 수확된 신선한 트러플 요리와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이 트러플 하우스는 우아한 마을의 풍경 속에서 프로방스다운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장소이다. 
5 마을 전망대에서 보이는 귀여운 프로방스의 들판. 
6 마을 속의 아담한 성 루크 교회. 
7 성벽에 뿌리를 내리고 곧게 자라난 들꽃 뒤로 울창한 숲이 보인다. 
8 마치 보트와도 같은 메네르브 마을의 모양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단연 뱃머리다. 마을의 가장 전면에 멋들어지게 지어져 있는 이 성의 부지는 딱 배의 앞머리처럼 뾰족하게 생겼다. 비록 사유지라 자유롭게 입장은 할 수 없지만, 어쩌다 하게 된다면 그 뱃머리에 올라 타이타닉이라도 해야겠다는 농담이 오고 간다.

Menerbes
프로방스 들판 위로 작은 배가 떠오르다

‘메네르브의 성벽 위에선 저녁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그들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프로방스를 가장 잘 아는 작가로 유명한 피터 메일의 소설 <프로방스에서의 1년>에는 그의 첫 프로방스 집과 가까웠던 이 마을 메네르브가 자주 언급된다. 뤼베롱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 메네르브는 높은 산에서 내려보면 마치 평원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처럼 앞과 끝이 뾰족한 선박의 모양을 띠고 있다. 마치 프로방스 하늘 위 열기구에 탑승한 것처럼 발아래로 아름다운 풍경이 맘껏 펼쳐지는 이 마을. 주로 18세기에 지어진 희끗희끗한 건물들이 성벽 안에 사이좋게 모여 있어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 특히 프로방스의 포도가 영그는 9월쯤이면 보랏빛 포도밭에 둘러싸인 메네르브의 풍경은 황홀경에 달한다.

Gordes
어느 멋진 고르드

고르드에서 결혼하고 싶다. 프로방스의 자연 속에서 자연스레 사랑에 빠져 진정한 행복에 눈을 뜨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어느 멋진 순간’을 봤다면 나의 이 바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대감이 크면 실망하기 쉽다지만, 고르드는 언덕 위에 촘촘히 집을 꽂아 놓은 전경만으로도 마음을 녹여버렸다. 뤼베롱 계곡에 속하는 지역 위로 켈트족의 흔적이 엿보이는 원시적인 매력의 건물과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비록 주말이면 이 작은 언덕 위 마을에서 결혼식을 갖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는 작은 시내가 붐비고는 하지만, 주중이라면 언제든 고요한 풍경 속에 잠길 수 있다. 마을의 파노라마가 보이는 건너편 언덕 위에 간식거리를 사 갖고 올라, 해질녘부터 해가 완연히 지는 순간까지 이 고르드 전체가 얼마나 주황빛으로 발할 수 있는지를 직접 바라보라.

1 고르드로 들어가는 길목. 건조한 돌로 쌓아 올린 돌담처럼 마을 안에는 드라이스톤 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2 4 고르드에 들어서자마자 찾은 카페 ‘Cercle Republicain’의 테라스 석은 이 정도의 장관을 선물한다.
3 5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고르드의 전경이 보이는 건너편 언덕에 올랐다. 이미 석양 때를 알고 피자 한 판과 연인을 챙겨 온 두 사람이 지상 최고의 저녁식사를 즐기는 중이다. 석양이 막 지기 시작할 무렵에는 온 언덕이 빨갛게 발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빛이 점점 사라지면 마을 가장 꼭대기의 르네상스성만이 가장 마지막까지 빛난다. 
6 이전까지 방문했던 마을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고르드. 다소 무채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7 8 마을의 작은 상점에서 프로방스의 두 가지 상징을 만났다. 여름의 매미 모형과 7월 초까지 보랏빛을 온 평원에 피워내는 라벤더 더미다. 
9 이끼가 피어오른 지붕. 얼룩덜룩한 세월의 흔적이 마치 누군가가 물감으로 색을 입힌 것만 같다. 
10 마을 입구의 동상.

라코스트
덕지덕지 묻은 예술과 시간의 떼

라코스트는 가톨릭교 마을들에 둘러싸인 상태에서도, 꿋꿋이 신교도를 이어나간 18세기 저항의 마을이다. 마을 속 카페는 두세 개가 전부일 정도로 소소한 규모이지만 마을 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지독하게 이국적인 감상에 잠긴다. 발을 딛는 모든 땅바닥과 집들을 촘촘히 돌로 쌓아 만들어 놓은 라코스트. 수백 년간 이런 모습을 지녀 왔을 생각을 하니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반갑고 신기하다. 시작과 동시에 마을 꼭대기로 향하는 경사길에 접어들게 되는데, 그 길의 끝에는 대단한 감동이 기다린다. 혁명 당시 상당 부분 파괴된 신교도들의 마을을 인수한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댕이 재건해놓은 라코스트성과 조각상들이 마을의 매력에 정점을 찍는다.

1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이 인수해 복원한 고성 터. 당시의 처참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나름대로 예술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성의 안에서는 매년 여름마다 음악 축제가 열린다. 
2 옛 고성 터와 함께 라코스트 마을의 정상에 펼쳐지는 풀밭. 저 나무 아래는 소풍을 위한 명당자리다. 
3 언덕까지 올라가던 중에 한가롭게 집 마당에 앉아 햇빛을 쬐는 소녀를 만났다. 
4 6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켜온 마을인 만큼 구석구석 운치 있게 빛바랜 모습을 보인다. 
5 바닥과 온 벽이 돌투성이인 마을의 골목들. 
7 라코스트의 건너편 계곡에 위치하는 마을 보니유.

야옹, 나를 찾아봐

프로방스의 언덕 마을 중에 가장 한적했던 앙수이. 구불구불한 골목 길 위에선 나른한 고양이들만이 나의 산책을 동행해주었다. 역시나 뤼베롱 계곡에 위치하기에 마을의 테두리에 다가갈 때마다 황홀한 프로방스의 평원들이 두 눈에 담긴다. 특히 본래는 성벽이었지만 19세기까지 수세기에 걸쳐 꾸준히 모습을 바꿔온 마을 유일의 성 바로 앞에선 드넓은 대지의 장관이 펼쳐진다. 인형이 살 것처럼 예쁜 집들은 늦어도 17세기에 지어진 것들이다. 유독 그 낮은 집들의 대문과 좁은 뜰을 울창한 화단으로 장식해놓았던 이 마을. 덕분에 몸을 숨길 곳이 많아서 일까. 앙수이의 고양이들이 골목과 화단 사이사이에서 간드러진 그르렁 소리로 정적을 깬다.

1 3 아슬아슬한 저 창문틀이 뭐가 그리 좋은지. 프로방스의 창문은 자주 고양이들의 쉼터가 되고는 한다. 2 온 마을이 울창하다고 느낄 정도로 모든 집들에서 아름다운 풀과 꽃이 피어 있었다. 4 5 마을의
성 바로 앞에는 이토록 고요한 전망대가 자리한다.
6 가로등마저 앙증맞다. 7 이 고양이는 뭐가 그리
외로운지 차가운 철봉에 온몸을 그르렁대며 한참을
비볐다. 8 파릇파릇한 식물원 속을 걷는 기분이랄까. 9 우연히 만난 이 털복숭이 풀은 촉감이 사랑스럽다. 고양이 귀를 만지듯 옴폭하고 부드럽다. 10 우람한 언덕 위에 지어져 있는 마을의 성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