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atia :: Zagreb The Zagreb Bucket List

이 도시에서 꼭 하고 싶은 일, 자그레브 버킷 리스트

과연 자그레브에 시간을 투자할 것인가? 한 나라의 수도를 그저 들러리 취급하곤 하는, 크로아티아를 찾는 여행자들이 흔히 갖는 물음이다. 정답은 예스다. 자그레브는 첫눈에 반하진 않아도 결국엔 사랑에 빠지고 마는 그런 매력이 있으므로. 수첩에 적어놓은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실천하며 이 도시를 만끽했다.

글과 사진 함희선 기자 취재협조 크로아티아 관광청 croatia.hr, 한진관광 www.kaltour.com

여행의 스타트는 요시파 옐라치차 광장에서

“반가워, 옐라치차!” 국가적 영웅, 크로아티아 군대를 이끌고 헝가리에 맞서 싸웠던 19세기 총독과의 끊임없는 인사. 도시를 걷다 보면 요시파 옐라치차 광장Trg Josipa Jela.ia을 몇 번씩이나 지나치게 된다. 길을 잃고 헤매서다 아니다. 도시를 반으로 나누는 어퍼 타운Upper Town과 로어 타운Lower Town의 경계에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자그레브는 시내가 그리 넓지 않고, 볼거리 대부분이 적당한 거리에 있어 직접 걸으며 두루두루 보는 도보여행이 딱인데, 그때 옐라치차 광장을 머릿속에 중심으로 심어두고 움직이면 인간내비게이션으로 변신이다. 더불어 여기는 자그레브 온 시민들이 애정 하는 약속 장소라서 한가운데 멀뚱히 서서 트램에서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 건설된 고풍스러운 건물들에 온갖 상점과 레스토랑이 밀집하게 들어선, 밤낮없이 북적거리는 일리차Llica 거리도 여기 옐라치차 광장에서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자그레브 도보여행은 두말할 것 없이 요시파 옐라치차 광장에서 출발!

꼭꼭 숨어라! 도시 곳곳에 세워진 숨은 동상 찾기

당신이 알고 있는 가장 유명한 크로아티아 사람이 혹시 이종격투기 선수 크로캅이 전부이지 않은가? 하하. 그 무지함의 해결 방법은 단순하다. 자그레브 시내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동상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주로 발밑에 조각가의 서명이 있으므로 인터넷의 도움을 받거나 지나가는 시민을 붙잡고 물어봐도 좋다. 마치 진짜 사람인 것처럼 함께 인증샷을 찍고 정체까지 밝히고 나면 감정적으로나 지식적으로 크로아티아와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 들 거다. 두 사람만 미리 공개하자면, 트칼치체바 거리 위에 드레스를 잘 차려입은 여성 마리아 유리치 자고르카Marija Juric Zagorka와 심각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마리아는 19개의 소설을 발표하고 <Woman's Papers>라는
신문을 발간하기도 했던 크로아티아 최초의 여성 저널리스트이고, 테슬라는 에디슨에 버금가는 전기와 발명의 천재다.

조용하게 떠오르는 미식의 도시 자그레브 먹방 찍기

그동안 왜 아무도 크로아티아 음식이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특히 자그레브는 수도로서 전국에서 올라온 맛있는 요리들이 총출동하는데 말이다. “자그레브에서 뭐 먹지?”라는 고민은 쓸데없다. 유럽의 대도시라면 보통 존재하는 일식과 중식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타이와 멕시칸 레스토랑도 마찬가지. 거의 반강제적으로 크로아티아 음식만 옵션으로 남는데 그게 바로 행운인 셈이다. (이탈리아식은 제외, 시내에는 훌륭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넘쳐난다.) 역사적 배경 속에 오스트리아, 헝가리, 터키,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 영향받아온 크로아티아 음식의 세계는 상상 이상으로 박수를 부른다. 특히 가격이나 음식 수준에 큰 차이가 없어서 눈 감고 고른 레스토랑에서 식사해도 만족도가 높다. 밥뿐이랴 패스트리, 젤라또, 맥주, 브랜디, 와인, 과일 등 세끼 이외에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들도 축복이다. “내가 여기에 먹으러 왔나?”하는 의문이 들 때 자그레브 여행은 성공이라 불러도 된다.

넥타이의 고향에서 내 남자를 위한 쇼핑

크로아티아는 넥타이의 출생지.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있으랴. 역사적으로 부적과도 같은 물건이라 귀빈이 방문하면 크로아티아 사람들도 꼭 넥타이 선물을 한단다. 시작은 1618년부터 1648년 사이에 일어났던 30년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군대를 지원하러 가는 크로아티아 군인들에게 연인들이 꼭 살아 돌아오라는 의미로 목에 붉은 천을 매어주었고, 그걸 마음에 들어 했던 루이 14세가 크로아티아 장병들을 일컫는 크라바트Cravat라고 부르며 유행시켰으며, 귀족과 부유한 시민들 중심으로 인기를 끌다가 19세기 유행이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이름이 크라바트에서 넥타이로 바뀌었다. 쇼핑하고 싶다면 잘 알려진 크로아티아 브랜드 크로아타Croata와 크라바타Kravata를 추천한다.

가이드북 손에 들고 걸으며 관광객처럼 도시 탐방

어퍼 타운은 역사가 오래된 구시가지로 역사적인 장소들이 모여 있어 관광객이 많고, 로어 타운은 그에 비해 신시가지에 가까우며 광장과 쇼핑가, 미술관, 공원 등이 있어 젊은이들의 낭만을 느낄 수 있다. 가이드북을 손에 쥔 전 세계 여행자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자그레브 역사 초창기에 지은 랜드마크들이 있는 어퍼 타운으로 향한다. 워낙 가까이 붙어있는데다가 눈에 잘 보이는 갈색 표지판이 길을 친절히 안내하기 때문에 지도 없이 돌아다녀도 전혀 어렵지 않다.

옐라치차 광장에서 시작한다면 첫 번째 코스는 캅톨 광장에 위치하고 있는 성모마리아 승천 성당Cathedral of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고딕양식의 105미터 쌍둥이 첨탑이 도시의 잔잔한 스카이라인에 물결을 일으킨다. 자그레브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건축물은 번쩍거리는 지붕의 위용을 뽐내는 성 마르크 성당St. Mark Church이다. 미사 시간에만 들어갈 수 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사실 외관이 더 출중하다. 빨강, 하양, 파랑의 체크무늬로 된 타일 지붕 때문에 왠지 장난감 레고 같은 겉모습. 지붕 왼쪽에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슬라보니아를 상징하는 중세 시대의 문장이, 오른쪽에는 자그레브의 표상이 있다. 성당 주변으로 잠시 눈을 돌려보면 갑자기 움츠러드는 기분이 들 거다. 종종 정치인들을 태운 검은 차와 무서운 표정의 경호원들도 마주치게 된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에 의회 사보르Sabor가 들어서 있고, 한때 총독이 거주했던 반스키 드보리 대통령궁Banski에는 법원 등의 관공서가 위치하고 있어서다. 이는 모두 성당이 있는 마르코브 광장Trg Svetog Marka이 16세기 이후로 자그레브의 정치적 활동의 중심지였다는 걸 증명한다.

어퍼 타운에서 다시 로어 타운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선 어두운 성문 하나를 지나게 된다. 스톤 게이트Stone Gate.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며, 촛불을 밝히고, 꽃을 바치는 사람들은 1731년 대형화재가 난 뒤에도 흠짐 하나 없이 온전하게 살아남았던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림의 기적을 믿는 사람들이다.

도시를 점령한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 음미하며 한량 빙의

커피에 한 맺힌 사람들만 사는 것처럼 커피향이 그윽하게 퍼지지 않는 곳이 없다. 도시를 점령한 노천카페들. 원래 카페가 있는 건물 앞은 당연하고, 좁은 골목길에 생긴 작은 빈공간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파라솔과 테이블이 차려진다. 길 전체가 카페로 뒤덮인 트칼치체바Tkal.i.eva는 그야말로 노천카페의 성지. 뻔한 콘셉트의, 똑같은 커피 맛을 보여주는 대형 체인점이 아니라 저마다의 충만한 느낌으로 무장한 카페들이 너무 많아서 어디로 갈까 발걸음까지 망설여진다. 커피를 좋아해서 카페가 많이 생긴 건지, 아님 카페가 좋아서 사람들이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된 건지. 아무튼 하나같이 커피 맛도 최고, 카페 분위기도 최고다. 거리를 향해 놓인 테이블에 진득하게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 책을 읽으며 로컬 사람처럼 여유를 부려 봐도 좋다. 한량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단, 커피는 진정한 유럽 스타일로 주문할 것. 크로아티아 사람들에겐 진한 에스프레소가 절대적이다. 에스프레소에 손사래가 처진다면 카푸치노나 카페라테.

노천카페 어디로 갈까

Tkal.i.eva 돌라츠 시장을 오른쪽으로 끼고 어퍼 타운
방향으로 죽 이어지는 트칼치체바. 자그레브 노천카페 거리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바로 여기다.

Bogovi.eva 보고비체바는 요시파 옐라치차 광장 바로
남쪽에 있다. 세련되고 깔끔한 분위기로 커피 말고도 온화한 밤에 나이트아웃하기 좋다.

Preradovi.eva 로어 타운에서 거리 공연이 가장 많이
열려서 마치 휴양지의 야외 공연장 같은 곳. 프레라도비체바는 보고비체바를 가로지른다.

돌라츠 시장의 빨간 우산 아래서 싱싱한 과일 장보기

이렇게 예쁜 시장이라면 하루에 몇 번이라도 장을 보러 시장에 갈 테다. 하나쯤 집에 훔쳐 가고 싶은 빨간 우산이 나란히 줄을 선 돌라츠 시장Dolac Market. 파란 하늘 아래 놓인 파라솔만 올려다보고 있으면 도시인 걸 깜빡하고서 수영복 입고 드러누울 지경이다. 시장은 요시파 옐라치차 광장 북쪽으로 어퍼 타운과 로어 타운의 경계에 들어선다. 1926년 이후로 매일 장이 들어서는데, 평일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주말에는 1-2시간 조금 더 일찍 문을 닫는다. 오픈 광장에서 판매되는 주요 품목은 과일과 채소다. 복숭아, 토마토, 무화과, 자두 등 뜨거운 크로아티아의 햇살을 먹고 자란 싱싱하고 탐스러운 과일들, 밭에서 방금 뽑아낸 듯한 당근이며 무와 양배추들이 가판대 위에 가지런히 오른다. 돌라츠 상인들의 배치에 대한 예술적 감각이란! 진열해 놓은 모습에 감탄하며 사진 찍기에 몰두하다가 “혹시 너희 나라에는 토마토 없니?”라는 소리 듣기 십상이다. 오픈 마켓보다는 재미없지만, 광장 아래 1층에 치즈, 생선, 육류 등을 판매하는 실내 시장이 있음을 참고할 것.

자그레브의 창조적인 무드에 빠져볼까 갤러리와 박물관 탐방

기차역과 어퍼 타운 사이에 자리한 로어 타운에는 자그레브에서 가장 흥미로운 갤러리와 박물관들이 밀집해 있다. 과거 억압받았던 사회주의 체재와 긴 내전으로 표출하지 못했던 것 때문인지 자그레브에는 유난히 예술과 관련된 장소들이 넘쳐난다. 미술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 무용, 연극, 음악 등 크로아티아인들의 예술사랑은 상당하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크로아티아만의 예술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여럿으로
지난 200년간의 크로아티아 현대 미술사를 조명할 수 있는 현대미술관이 대표적이고, 최근 떠오르는 신미술계를 접할 수 있는 독립 갤러리도 정말 많다. 미술이 어렵다면 나이브 아트Naive Art가 굉장히 흥미로울 테니 주목할 것.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1960-70년대에 유행했던 미술사조로 이반 게네랄리치Ivan Generalic, 프라뇨 므라즈Franjo Mraz, 미르코 비리우스Mirko Virius 등 그림을 배우지 않은 평범한 농민화가들이 주인공이다. 크로아티아 시골생활을 엿볼 수 있고 깜찍한 동화처럼 이해하기 쉬운 그림들은 나이브 아트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가볼 만한 갤러리와 박물관들

미마라 미술관 자그레브 최고의 박물관. 회화작품으로는 라파엘로, 카라바조, 렘브란트, 보쉬, 벨라스케스, 고야, 마네, 르누아르, 드가 등 대가들의 것을 소장하고 있다.

현대미술 갤러리 지난 200년 동안 크로아티아를 대표했던 부코바츠, 미하노, 비치, 라치치 같은 19-20세기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메슈트로비치 아틀리에 이반 메슈트로비치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인정받는 예술가다. 그가 살았던 17세기 건물에 100점이 넘는 그의 조각품들을 전시한다.

갈레리아 클로비체비 드보리 저명한 크로아티아의 미술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피카소와 샤갈과 같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라우바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크로아티아 현대 미술을 엿볼 수 있는 갤러리. 최근 자그레브의 창작 중심지로 뜨고 있다.

갈레리아 스투덴트스키 센타르 크로아티아의 젊은 미술가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설치물, 환경회화, 공연 등 개념 예술에 초점을 맞춘 갤러리다.

크로아티아 나이브 아트 미술관 1960-70년대에 현지에서 유행했던 미술사조 나이브 아트의 작품들을 100여 점 전시한다.

탑승 후 바로 하차! 세상에서 가장 짧은 케이블카 경험하기

탑승하자마자 하차라니. 자그레브에는 운행시간이 겨우 55초밖에 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케이블카가 있다. 참고로 세상에서 제일 빠른 케이블카가 아니다. 느리게 가는 건데 길이가 짧아서 빠르게 느껴질 뿐이다. 숫자 1과 2가 새겨진 앙증맞은 두 개의 파랑 케이블카는 1888년부터 어퍼 타운과 로어 타운을 잇고 있다. 계단으로는 5분 만에 오를 수 있는 거리이지만, 로트르슈차크 타워와 성 마르코 성당을 쉽게 찾아갈 수
있는데다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케이블카를 타본다는 즐거움에 전 세계 여행자들은 오늘도 55초에 몸을 싣는다.

골목마다 마주하는 거리의 연주가 감미로운 음악에 취하기

자그레브가 첫인상으로 여행자들의 마음을 확실하게 끌어당기지 못하는 건 아무래도 딱딱한 분위기 때문일 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 그리고 다시 사회주의 체재 시절에 지은 건축물들은 어딘가 무겁고 차가운 느낌이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친절한 사람들은 그런 객관적인 분위기마저도 살살 녹이는 재주가 있다. 음악도 한몫을 거든다. 크로아티아는 예부터 수많은 클래식 음악 연주자와 작곡가들을 배출했다. 다양한 팝과 록이 자생할 정도로 음악 장르는 다양하며, 헝가리와 베네치아가 지배하던 중세 시대부터 이어진 민속 음악도 역시 감탄스럽다. 딱딱한 도시를 감미롭게 만드는 것도 그런 음악을 연주하는 거리의 음악가들이다. 골목마다 울려 퍼지는 음악의 선율에 온전히 귀 기울이고 난 뒤엔 자그레브 거리도 한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워진다.

 

일요일의 골동품 시장에서 추억을 낚는 보물찾기

스케줄에 일요일이 낀다면 반드시 브리탄스키 광장Britanski Trg으로 향할 것. 자그레브에선 누구나 돌라츠 시장으로 달려가지만, 사실은 더
재미있는 골동품 시장이 매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열린다. 나란히 줄을 선 빨간 우산은 돌라츠 시장과 다름없지만, 가판대 위에 올라오는 건 자그레브 시민들이 집에서 갖고 나온 손때 묻은 중고품들이다. 유고슬라비아 시절을 떠올리는 낡은 사진과 화폐들, 집에서 쓰던 티세트, 낯선 동유럽의 언어로 쓰인 서적, 사랑을 속삭였던 오래된 편지, 작동이 의심스러운 카메라 등 차고 넘치는 물건더미 속에서 잘 찾아보면 괜찮은 보물을 낚게 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세르비아의 할머니가 젊었을 때 아끼던 큼지막한 진주 귀걸이처럼 세월과 추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그런 보물. 우두커니 서서 시장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파는 사람이나 사려는 사람이나 판매와 구매의 의욕이 전혀 없어 보이는, 그저 함께 구경하고 이야기하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워 보이는, 활기가 넘치는 일요일이 브리탄스키 광장에서 한판 벌어진다.

주홍빛 지붕의 예쁜 도시 발밑에 두고 빙빙 둘러보기

유럽의 도시들은 위에서 시원하게 내려다보는 풍광이 예쁜 법. 자그레브에선 로트르슈차크 타워Lotr..ak Tower에 올라가자. 13세기 중반 시의 남쪽 문을 보호하기 위해 건설한 탑. 나무 계단을 올라 꼭대기에 오르면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로어 타운과 어퍼 타운을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파란 하늘과 퍼즐처럼 맞춰진 주홍색 지붕들의 조화는 자그레브 풍광 중에 베스트 오브 베스트. 특히 성마르크 성당과 성모마리아승천
성당 등 도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를 색다른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 좋다. 옐라치차 광장 주변에 유난히 현대적인 빌딩의 건물 꼭대기에도 360도 테라스 카페가 있지만, 오히려 높이가 너무 높고 안전 펜스가 둘러져 있기 때문에 도시 최고의 전망대는 로트르슈차크라고 할 수 있겠다.

실연박물관에 찾아가 내 평생의 질긴 인연들 툭툭 털어버리기

친구들의 이별 이야기를 경청하는 건 정말 싫은데, 온 세상 실연의 기억들을 모아둔 박물관엔 도대체 왜 마음이 끌리는 걸까. 도시의 대표 명소인 성 마르크 성당과 같은 도로에 위치한 실연박물관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엔 요즘 성당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다. 예전에 없던 독특한 콘셉트에 호기심이 발동한 사람들. 세계 각국에서 전해진 저마다의 실연을 품은 물건들을 전시하는데, 물건 자체보다는 거기에 깃든 스토리가 짠하다. 행복했던 사랑의 순간이 깨질 때 돌아온 슬픔과 분노에 눈물도 나지만, 때론 우스꽝스러움에 실소가 터지기도 한다. 유치한 연애의 끝과 같은 가벼운 이별도 있고, 어머니가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나 아이의 유산으로 쓸모없어진 장난감 등 안타까운 아픔도 느낄 수 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관람객의 눈빛은 굉장히 진지하다. 처음엔 시시해 보이나 꼼꼼히 읽어보고 공감하다 보면, 나만 힘든 일을 겪었던 건 아니라는 위로를 받으며 문을 나서는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최근 속앓이라도 했던지 “세상 사람들 다 똑같네. 내 남자친구보다 더한 놈도 있군!”이라며 웃으면서 떠나는 이도 있다. 기념품점에서 파는 30쿠나짜리 나쁜 기억을 지우는 지우개 ‘Bad memory Eraser’도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하트로 뒤덮인 기념품 쇼핑하며 사랑 꽃피우기

‘사랑이 넘치네요. 정말로!’ 자그레브에서 찾게 되는 어느 기념품 상점도 눈이 아플 만큼의 빨강 하트 세상이다. 마그넷, 인형, 장식품, 머그컵, 티셔츠, 우산 할 것 없이 전부다. 아마 귀여운 하트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기념품 쇼핑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다. 모든 것은 리치타Licitar에서 유래했다. 달콤한 허니 도우로 만들어 컬러풀하게 장식한 비스켓. 사랑의 징표로서 발렌타인데이나 결혼식 때 선물로도 쓰고, 크리스마스트리에도 이 하트를 잔뜩 매단다. 크로아티아의 문화이자 자그레브의 전통적 유산인 탓에 기념품에도 하트 문양이 빠지지 않는 셈인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가장 핫한 박물관이 실연박물관이지만, 자그레브는 원래 사랑이 흘러넘치는 도시라는 걸 기억해 달라.

도시 구경은 창밖으로! 빈티지한 블루 트램타고 오르락내리락

내 마음속 자그레브의 비공식적인 아이콘은 블루 트램이다. 다소 우중충한 컬러의 도시에 톡 쏘는 탄산음료 같은 역할을 해내는. 마치 달걀 박스 같은 빈티지한 모양도 예쁘고 색깔도 청량한 블루 트램은 유럽의 매력을 한껏 드러낸다. 물론 자그레브는 콤팩트한 도시인데다가 여행자가 원하는 볼거리가 가까이 모여 있기 때문에 트램을 타볼 기회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느릿느릿 달리는 블루 트램에 올라타 창밖으로 하는 도시
구경은 재미지다. 트램은 오로지 로어 타운만을 달린다. 낮에는 15개의 노선이 116킬로미터의 트랙을 운행하고,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는 5개의 노선이 정확한 배차간격으로 고요한 밤을 달린다. 대부분의 트램이 옐라치차 광장을 지나기 때문에 아무 번호에나 올라탔다가 내려도 문제없다.

키노 유로파Kino Europa는 여행자가 접할 수 있는 최고의 영화관이자, 시민들에게도 당연히 베스트 영화관이다. 1924년에 오픈한 자그레브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으로 매일 저녁 아르누보 스타일로 꾸며진 실내에서 주류 상업영화에서 벗어난 컬트영화, 아방가르드하며 실험적인 크로아티아의 영화들을 상영한다. 크로아티아어를 못하는 우리들에게 기쁜 소식은 ‘Subtitled Tuesdays’가 있어서 매주 화요일이면 영어 자막이 있는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 여행 중에 짬을 내서 관람한 영화는 여행의 기억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할 테니 키노 유로파에서 한편 감상해보자. 극장 밖으로는 테라스가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와 와인바에서 커피와 30여 종의 그라파를 마실 수 있으니 참고할 것.

영화처럼 낭만적인 여행이 되길 꿈꾸며 영화 한편

영화광이라면 필름 페스티벌

Zagreb Film Festival 10월에 열리는 크로아티아 영화계의 가장 큰 이벤트. 세계 각국의 유명 감독들은 피처, 단편, 다큐멘터리 세 부문에서 ‘황금 유모차’ 수상을 두고 경쟁한다.

Zarebdox 소규모의 다큐 영화 마니아들을 자그레브로 끌어들이는 영화제. 전 세계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며 매년 2월 말에 시작해 3월까지 이어진다.

International Experimental Film and Video Festival 9월 말에 시작하는 국제 실험영화 및 비디오 축제. 예술적이며 대안적으로 제작한 영상을 소개하는 색다른 이벤트다.

World Festival of Animated Film 1972년 이후로 자그레브에서 매년 6월에 열리고 있는 세계 애니메이션 축제. 짝수 해에는 단편, 홀수 해에는 장편으로 된 애니메이션이 테마다.

잠들지 않는 도시의 밤 모두 다 같이 파티 타임!

나이트라이프로 유명한 유럽의 대도시처럼 명성은 없어도 자그레브의 밤은 쉽게 잠들지 않는다. 낮의 강행군에 지쳐 호텔로 발길을 옮기려는 여행자들조차 다시 방밖으로 끌어내는 에너지가 있다. 춤에 집중된 나이트클럽보다는 라이브 뮤직을 연주하는 클럽과 바가 대세다. 자그레브 나이트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두 곳은 SPUNK와 KSET. 음악 장르는 불문, 팝, 펑크, 재즈, 랩, 포스트 록 등 다양하다. 입장료도 5천 원을 넘기지 않게 저렴하고 와인, 맥주, 라키야 등 술값도 놀라운 가격이라 놀기에는 그야말로 천국이다. 대낮에 커피를 팔던 노천카페들도 해가 지면 테이블 위에 촛불을 올려놓고 술집으로 얼굴을 바꾼다. 커피를 마시던 이들도 같은 자리에 앉아 자연스레 술을 한잔 더 주문하고. 여전히 추천하는 곳은 트칼치체바. 거리의 밤은 그야말로 단체 파티다. 좁은 골목을 따라 오밀조밀 모여 있는 가게들, 거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테이블에 다 같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노라면 자그레브의 빛나는 별밤 아래 대규모 야외 파티를 여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어 그렇게 흥이 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