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월간 뚜르드몽드
 
발행구분
[2017년 10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스위스]     도시분류 : [알레취]
기사제목
[COVERSTORY] 알레취 아레나, 놀라움 위를 걷는 여행

Valais :: Aletsch Arena
Walking on Earth, Aletsch Arena

알레취 아레나, 놀라움 위를 걷는 여행

신비한 빙하가 펼쳐진 알프스의 깊은 곳. 빙하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점점 모습을 감추고 있다.
알레취 아레나 여행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일이다.

글 김수현 기자 사진 임성훈 기자 취재협조 스위스관광청, MATTERHORN REGION, Zermatt Tourism, 한진관광

알레취 빙하Alesch Glacier 위에 서면 알프스의 절경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거대한 얼음을 이루고 있는 물은 아이거Eiger
, 묀히 Monch 와 융프라우 Jungfrau 북쪽에서 발레 주로 흘러왔다. 알레취 빙하를 포함한 융프라우-알레취 Jungfrau-Aletsch 빙하 지대는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우리는 매년 길어지는 여름과 이상 기후를 통해 지구 온난화를 몸소 느끼는 중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급속화 되고 있지만, 일상에서는 이를 외면하고 만다는 것이다. 알레취 아레나 Aletsch Arena 여행 후 나는 달라지고 있다. 대단한 환경론자는 될 수 없겠지만,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환경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려고 한다. 나뿐만이 아니다. 알레취 빙하 위를 걸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1 베트머알프의 메인 스트리트. 호텔, 레스토랑, 아웃도어 용품점이 한데 모여 있다.
2 여행 중 발레주 곳곳에서 소를 볼 수 있다. 산맥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가 대부분이지만, 소싸움에 참여하는 검정색 소도 있
다. 이곳의 소싸움은 2~3분 동안 이어지다가, 지는 소가 경기장 끝으로 물러나며 끝이 난다.
3 산과 마을 사이를 오가는 케이블카. 케이블카에 타면 케이블카가 아니라 산이 움직이는 기분이 든다.
4 리더알프에서 베트머알프로 걸어가는 길. 한편에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다.

알레취 아레나에 자리한 산악마을 셋

알레취 빙하는 알프스 최대 그리고 최장을 자랑한다. 무게 270억 톤에 달하는 거대한 빙하가 장장 23킬로미터나 이어진다. 알레취 아레나는 이 빙하와 맞닿은 넓은 지역을 일컫는다. 겨울에는 스키와 썰매 등 겨울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빙하 위를 걷거나 알프스 하이킹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들이 찾는다.
뫼렐Morel, 베튼Betten, 피에쉬 Fiesch 는 알레취 아레나 여행의 시작점이다. 차와 기차는 이곳까지만 들어올 수 있다. 이 역들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각각 리더알프Riederalp 와 베트머알프 Bettmeralp, 피셔알프Fiescheralp 에 닿는다. 이 세 곳의 산악 리조트 마을은 휘발유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청정 지역이다. 주민들도 차를 기차역 주변에 주차한 뒤 케이블카를 이용해 마을로 이동한다. 마을 내 유일한 대중교통은 전기 자동차다. 마을 입구에서 알레취 빙하의 뷰 포인트까지도 세 개의 케이블카가 운행한다. 즉, 총 6개의 케이블카가 론느 Rhone 계곡 주변에서부터 세 산악 리조트 마을, 해발 2천 미터 이상의 알레취 빙하를 잇는다. “케이블카는 알레취 지역의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운송수단입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도 자동차와 케이블카를 타고 오죠. 한 번에 최대 10톤까지 운송할 수 있습니다.” 알레취 아레나 지역 가이드인 웬젤은 베트머알프에서 24년을 살았다. “저는 현대인과는 다소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조금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연을 생각하는 스위스식 사고방식이 좋아요. 저는 제 삶의 방식이 우리가 사는 지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알레취 아레나의 첫 목적지인 리더알프를 향해 뫼렐에서 케이블카를 탔다. 알레취 빙하와 알레취 숲 끝자락에 위치한 리더알프에선 4천 미터급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리더알프에서 다시 케이블카고 산을 오르면 알레취 빙하의 뷰 포인트 중 하나인 무스플루 Moosfluh 에 도착한다. 무스플루는 알레취 빙하 지대 하이킹과 스키의 출발 지점이다.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빙하가 보여야 하지만, 흐린 날에는 빙하 대신 흰 구름이 눈앞을 메운다. 그저 빙하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빙하의 모습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리더알프에서 40분을 걸어 베트머알프에 왔다. 베튼 역에서 케이블카로 올라와도 좋지만, 리더알프에서 이어진 평지를 따라서 걸어갈 수도 있다. 베트머알프는 평소에는 700명밖에 살지 않는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이지만, 겨울철이면 7천 명이 머물며 북적인다. 호텔과 숙박 가능한 샬레가 많은 까닭에 겨울 여행자들은 이곳을 알레취 아레나 여행의 베이스캠프로 삼는다. 아이들을 위한 미니 골프 시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제작된 하이킹 트레일 등도 갖추고 베트머 호수 Bettmersee 에서 보트 투어, 수영, 낚시 등을 즐길 수 있어 가족 여행객도 많이 찾는다. 주민들은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실내 스포츠센터에서 배드민턴과 테니스를 즐긴다. 웬젤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지만 겨울철에는 스키 강사로 활동한다. 그의 집은 스키 슬로프 바로 앞에 위치한다. “베트머알프의 주민 모두가 문밖을 나가는 순간부터 환상적인 스키 코스를 만나는 거죠.”
베트머알프와 이어진 빙하 뷰 포인트인 베트머호른 Betterhorn 도 안개로 자욱했다. 구름이 걷히길 기다리는 대신 마을 주변의 숲길로 향했다. 겨울에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스노슈즈 하이킹을 즐기기 좋은 코스다. 좁은 길 사이로 나무들이 빽빽이 심겨 있고, 비를 맞은 나무들은 맑은 공기를 뿜어낸다. 나무 사이로는 집라인 시설이 이어져 있다. 재미있고 안전해서 아이와 어른이 모두 좋아한다는데, 모양새는 놀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훈련을 위한 고난도 시설처럼 보인다.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에 웬젤은 이곳 사람에게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날씨 탓에 무스플루와 베트머호른에서 구름만 보다 왔다. 그렇게 하루가 다 갔다. 웬젤은 호텔이 있는 피셔알프로 가는 동안에도 알레취 아레나 홈페이지의 웹캠으로 빙하 지역의 상황을 확인했다. 체크인이 끝날 때까지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쉽지만 산의 밤은 더욱 빠르게 찾아왔고, 오늘의 마지막 케이블카도 운행을 마쳤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자연이 허락한 딱 그만큼까지만 여행할 수 있다. 남은 일은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하는 것뿐이다. 따뜻한 코스 메뉴가 아쉬운 마음을 위로한다. 여러 번의 여행을 통해 깨달은 점은 우리를 다시 여행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아쉬움이라는 것이다.

1 베트머알프의 숲길. 낙엽송과 소나무가 빽빽이 심어져 있다. 낙엽송 잎은 아직 초록색이나 깊은 가을이면 노란색으로 변하고 겨울엔 모두 떨어진다.
2 알레취 아레나에 핀 꽃. 이 지역에선 각종 고산식물을 볼 수 있다.
3 베튼으로 가는 케이블카에서 베트머알프의 전경이 보인다. 맑은 날에는 구름 대신 눈 쌓인 봉우리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4 알레취 빙하 투어에 참여하면 빙하지대를 온종일 걸을 수 있다.

환상적인 풍경 속을 걷는 시간, 알레취 빙하 트레킹

새벽에 일어나 커튼을 젖혔다. 오늘도 흐리다. 이날은 해발 2,869미터의 엑기스호른Eggishorn 에서 시작해 알레취 빙하 위를 걷는 빙하 투어에 참여하는 날이었다. 전문 가이드와 10명 미만의 그룹과 함께 빙하를 걷는 것이 오늘 일정의 전부다. 오전 8시 35분,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머리카락 끝은 아침이슬인지 눈인지 모를 물기로 어느새 촉촉이 젖어 있다.
이 여행에는 반드시 필요한 준비물이 있다. 산에서 먹을 간단한 점심 그리고 등산을 도와줄 복장과 장비다. 엑기스호른 뷰 포인트부터 1시간 반 동안은 초심자에게 꽤 어려운 내리막길 코스가 이어진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꾼다는 빙하 트레킹. 그 빙하 위를 걷기 위해 가파른 돌길을 힘겹게 걷는다. 너럭바위 위를 걷는 동안에도 안개가 자욱하다. 행여 안개 속에서 일행을 잃어버릴까 모두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다. 잠시 멈춰 숨을 돌리는 자리. 드디어 파란 하늘과 하얀 빙하가 모습을 드러낸다. 빙하기에 형성된 오래된 광석 지질, 빙하가 만들어낸 U자형 골짜기, 퇴석 등 독특한 지형이 겹쳐져 보인다. 딱 24시간 만에 처음으로 마주한 빙하. 전날 느꼈던 아쉬움을 달래기에 모자람이 없는 풍경이다.
내친김에 30분을 더 걸어 매르옐렌 호수 Marjelensee 근처까지 간다. 가이드가 호숫가의 작은 산장에서 아이젠과 하네스를 나눠주는데, 각자 이것을 들고 15분 동안 다시 길을 걷는다. 힘든 것에 익숙해졌을 때쯤 하늘이 맑아졌다. 바위틈 사이로 피어난 꽃, 무리를 지어 있는 양. 숨어있다 비로소 드러난 풍경 앞에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느새 빙하 바로 앞에 도착한다. 아이젠과 하네스를 착용하고 로프로 사람들을 잇는다. 안전을 위해서다. 빙하 위에서는 모두가 이 줄을 잡고 일렬로 걸어야 한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과묵한 가이드가 드디어 입을 뗐다. “간격을 유지 하세요. 이전보다 훨씬 더 신중하게 걸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이제껏 보지 못한 풍경으로 들어갈 테니까요”.
빙하를 걷는 일은 힘들다. 멀리서 본 거대한 흰 빛은 가까이에서 보니 날아온 먼지 때문에 회색빛이었다. 그런데도 눈이 부시다. 아름답지만 너무 빛나서 눈을 가늘게 뜨게 된다. 빙하 위를 걷는 중엔 모두가 말이 없다. 선두와 마지막 사람까지를 잇는 팽팽한 줄이 몇 마디 말을 대신할 뿐이다. 크레바스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정적을 깨트린다. 차가운 빙하 위를 내딛는 발걸음. 발밑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온몸으로 퍼지지만, 빙하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이 추위를 잊게 한다.
빙하 투어는 빙하 근처까지 가는 시간, 빙하 위를 걷는 시간, 점심시간, 다시 산장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합해 총 6시간이 걸린다. 공식 일정은 산장에서 하네스와 아이젠을 반납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돌아가는 방법은 걷는 것뿐이다.
올 때와 달리 평지이지만 코스가 꽤 길어서 빠른 걸음으로도 족히 1시간 반이 걸린다. 빙하 위를 걸었다는 기쁜 마음 때문인지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옆으로 펼쳐진 아찔한 풍경을 보며 언젠가 길 위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산을 아는 사람은 산에 대해 겸손해. 산에서 보는 세상은 평지에서 보는 것과는 너무 달라서, 결국엔 산에게 오늘도 잘 배우고 간다고 인사를 하지. 그렇게 삶을 배워 가기 위해 또다시 산에 오르는 거야”. 마치 꿈속에 있던 것 같은 산과 빙하 위에서의 하루. 누군가 내게 해줬던 그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14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하얀 알레취 빙하. 가까이서 보면 실은 회색에 가까운 하얀색이다.
2 가이드는 가장 선두에 서서 다음 사람이 안전한 곳을 걸을 수 있도록 길을 만든다.
3 울퉁불퉁한 빙하의 틈 사이로 파란색 물이 보인다.
5 해발 2,869미터에 위치한 엑기스호른에서 시작한 빙하 투어. 스위스인들은 지친 기색 없이 성큼성큼 너럭바위 사이를 걷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길에 다리가 저릿하다.

50년 그리고 100년 후의 미래

스위스의 지질학자 알베르트 하임Albert Heim 은 일생동안 알프스의 지형을 연구했다. 그는 빙하가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지구 환경의 균형을 나타내는 지표라 주장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빙하는 19세기 중반 이후에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점점 녹고 있다. 특히 1850년에서 1860년 사이, 알프스 지역의 온도는 2도 가까이 상승했다. 이 같은 온도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알프스에 얼음이 없는 지역이 생기고, 빙하였던 지대에는 식물이 자란다. 1850년과 2000년, 약 150년 사이 알프스의 빙하 면적은 50퍼센트 가까이 줄었다. 취리히 기술 연구소의 빙하 전문가들은 2050년이면 빙하의 상당수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한다. 또한 21세기 말까지 기온이 3도 상승 시 빙하의 80퍼센트가 사라지고, 5도 상승 시 알프스에서 빙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경고했다.
녹고 범람한 빙하는 숲과 마을에 큰 피해를 주기도 한다. 예부터 빙하란 계곡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경이로운 자연이자 두려움의 존재였지만, 우리 다음 세대에게 빙하는 실존하지 않는, 책 속 과거로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50년 후, 100년 후의 알레취 아레나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자연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만큼 우리도 자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공존 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훗날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도 눈부신 빙하를 만나고 또 한번 그 위를 걷고 싶다.

 

이전글 다음글 리스트

메인페이지 | 회사소개 | 정기구독 | 뚜르드몽드 기사검색 | 커뮤니티 |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