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월간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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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타이완]     도시분류 : [금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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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FIELD] 타이완의 보물섬, 금문도

부호 마을답게 화려한 서양식 건축양식이 돋보이는 쉐이토우구락의 전경

타이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 국내 여행자 중에서 타이완은 언제나 상위권에 드는 인기 여행지이다. 온갖 미식을 즐길 수 있으며 화려한 도시는 물론 잔잔한 목가적인 풍경도 즐길 수 있는 완벽한 여행지에 가깝다. 단, 후텁지근한 날씨만 빼고. 하지만 타이완 본섬의 이러한 풍성한 여행 콘텐츠에 다소 지쳐있는 사람이라면 금문도로 발길을 돌려보자. 

금문도는 1995년까지는 섬을 지키는 군인들만이 살던 곳이었다. 그러나 중국과의 긴박한 관계로 전투태세를 갖춘 탓에 언제나 긴장감이 맴도는 곳이었다. 이후 중국의 개방정책으로 화해모드가 조성되기도 했지만 타이완의 집권당이 어느 당이냐에 따라 협력이냐 긴장이냐 하는 순간이 반복되고 있다. 겉보기에는 전쟁기념관 같은 느낌이겠지만 단순히 평가할 곳이 아니다. 

중국과의 오래 긴장감을 마주하고 있는 타이완의 역사적인 현실을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며 아울러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전통 가옥과 유적 등 볼거리가 만만치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았기에 새로운 이방인을 기다리는 금문도의 바람이 꽤 간절하게 느껴진다.

 펑지아 야시장의 전경. 대학가 앞이라 젊은이들이 많다.

모든 야식은 펑지아 야시장으로 통한다?

개인적으로 타이완과의 인연은 화려한 도시 보다는 한적한 곳이 인연인가 보다. 2년 전 이란현이라는 아담한 시골 도시를 첫 방문한 이후 두 번째 방문이 진먼다오 즉, 금문도라니. 남들 다 가는 화려한 곳을 못 가본 탓에 좀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송산국제공항에 도착해 간단한 점심을 한 후 바로 기차를 타고 타이중으로 이동했다. 

기차의 차장 넘어 보이는 도심의 풍경이 점점 목가적인 시골 풍경으로 바뀌다가 다시 도심으로 바뀌니 이곳이 타이중이다. 밤늦게 도착한 탓에 호텔에 여장을 풀기 전 잠깐 ‘유천안’이라는 곳에 들렀다.

타이완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펑지아 야시장의 전경. 대학가 앞이라 젊은이들이 많다.

이곳은 작년 말에 완공된 우리의 청계천과 같은 공원으로 밤에는 하얀 조명 때문에 로맨틱한 분위기이다. 밤에도 조깅하거나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고 주변에는 야식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보인다. 호텔로 돌아가 짐을 푼 후 마침 호텔 근처에 있는 유명한 춘수당 본점으로 가 밀크티 한 잔을 주문했다. 유명세 탓인 지 밀크티를 먹기 위해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나도 조금 늦었으면 주문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뻔 했다. 그때 근처에 유명한 야시장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피곤함에 그냥 잠을 청할까 하다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직업(?)정신으로 택시를 잡아탔다. 얼핏 들은 “펑지아 야시장”을 말하니 오케이하고 내달린다. 타이중 대학교 정문 앞에 내려주며 양 옆이 야시장이란다. 

타이완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야시장이라더니 역시나 인산인해다. 타이완의 웬만한 야시장 메뉴가 바로 펑지아로부터 시작됐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겠다.

우리의 청계천과 비슷한 유천안 공원의 야경을 빛내주는 하얀색의 LED 조명이 아름답다.

대학가 앞이다 보니 먹거리도 먹는 사람도 죄 젊다. 개인적으로 아직 그 유명하다는 곱창국수를 먹어보지 못해 이번 기회에 꼭 먹어보리라 눈에 불을 키고 돌아다녔다. 간신히 누군가의 도움으로 곱창국수집을 찾았고 그 더운 날씨에 뜨거운 곱창국수를 후후 불어가며 상봉의 기쁨을 누렸다. 맛은 전분을 넣은 걸죽한 맛에 곱창을 넣고 끓인 수프에 가까웠다. 

맛은 분명 호불호가 갈릴 맛이지만 곱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곱창을 좀 더 많이 주문하면 좋겠다. 가격은 한 그릇에 2천원도 안 한다. 뜨끈한 야시장을 구경하고 호텔로 돌아가 긴 하루를 마감한다.

금문도를 살린 금문고량주

아침 일어나 금문도로 가기 위해 타이중 공항으로 이동했다. 늘 최신형 항공기를 이용하다가 쌍발 항공기를 보니 마음이 푸근해짐을 느낀다. 진짜 여행가는 느낌이랄까? 정원 70명의 작은 쌍발 항공기를 타고 1시간을 비행한 끝에 마침내 진먼다오 공항에 도착했다. 생소한 곳으로의 첫 발걸음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금문도는 중국 본토인 샤먼(하문)과 10킬로미터의 거리로 타이완 보다는 중국에 가깝다. 남북으로는 5킬로미터이지만 동서로는 20킬로미터로 자동차로 4시간이면 어지간한 명소는 다 둘러볼 수 있단다. 언뜻 생각해도 왜 중국과 가까운 섬이 타이완의 섬이 됐을까? 

당시 중국공산당과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금문도를 살린 오늘날 타이완을 대표하는 관광상품.

그것에는 깊은 역사가 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밑에서 하기로 하자. 마셔보지는 않았어도 금문고량주의 이름은 대부분 들어봤을 정도로 그 명성은 세계적이다. 전혀 화학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아 음주 후에도 전혀 숙취가 없으니 어찌 사랑을 받지 않으랴. 금문도에 왔으니 제일 먼저 금문고량주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향했다. 

거의 도착하니 거대한 금문고량주 병 모양의 조형물이 제일 먼저 반긴다. 2만 3천 평의 대지에 세워진 이 금문주조장은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금문도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금문도 방위군 사령관인 후렌장군이 창업하였다고 한다. 주조장에 들어서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금문고량주의 역사를 보여주는 시청각실이었다. 

비디오영상을 보고 있으면 앉은 의자 옆에 놓인 고량주잔에 연신 고량주를 따라준다. 간단히 곁들일 땅콩도 있어서 고량주를 여유 있게 맛 볼 수 있다. 진한 향이 독함을 물리치며 고소한 땅콩과 함께 얼큰함을 선사하지만 이 고량주의 특징이 바로 금방 술이 깬다는데 있다. 알코올은 사라지고 향만 남는다. 

이때부터 모든 식사 때마다 금문고량주가 함께 했는데 금문도의 유명한 해산물 요리뿐만 아니라 고기 종류에도 기막히게 어울린다. 찹쌀숙성으로 당도가 높고 부드러운 맛의 금문고량주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금문도의 경제를 살리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금문고량주 공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90퍼센트가 현지 주민들이라는 것만 봐도 그 위상을 알 수 있겠다. 금새 취하지만 독기만 사라지고 향만 남은 금문고량주는 가히 매력적인 술이다.

한사람이 지날 만한 갱도를 통해 끝으로 가면 나오는 관측소를 통해 복건성 부근에 공항을 짓는 배들이 혼잡하게 오간다.

중국을 향해 선전방송을 했던 마산관측소. 첨밀밀의 가수 등려군이 군복을 입고 선전방송을 했다

마산관측소(馬山觀測所)

언제 고량주를 마셨는지도 모르게 뜨거운 햇볕에 땀이 줄줄 흐른다. 다음 코스가 바로 금문도의 현실을 가장 실감할 수 있다는 마산관측소이다.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응달이 보이는가 싶더니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지하벙커가 보인다. 갑자기 습한 냉기가 가득한 콘크리트로 된 좁은 터널을 따라가니 중국을 향해 24시간 선전방송을 했던 작은 방송국이 나온다. 

여기서 낯익은 이를 봤으니 그녀는 바로 중국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첨밀밀’의 가수 등려군.  그녀가 군복을 입고 이곳에서 선전방송을 했다니 정작 중국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중국 본토와는 10킬로미터, 샤먼과는 페리로 30분 거리인 금문도의 모든 해변은 처참했던 전쟁의 기억이 가득하다.

좀 더 들어가니 전시관이 나오고 군인들이 거주했던 숙소가 나왔다. 터널 끝으로 가니 무려 2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중국 본토를 감시하는 관측소가 보인다.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니 중국 땅이 정말 눈앞에 있는 듯하다. 

마산관측소 때문에 중국인들은 낮에는 등소평의 목소리를 저녁에는 등려문의 노래를 듣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고. 바로 지척의 중국 복건성 부근에 2020년 공항건설을 앞두고 공사가 한창이어서 온갖 배들이 자재를 실어나느라 분주하다.

사산포진지(獅山砲陣地)

관측소를 떠나 부근의 사산포진지로 이동했다. 사산포진지 입구에 도착하니 실제와 같은 타이완 경비병(마네킹)으로부터 환영의 인사를 받는다. 역시 음산한 지하갱도를 따라 들어가니 습한 냉기가 열기를 다소 식혀준다. 사산포진지는 거대한 화강암을 뚫고 만들어 어떠한 포탄에도 끄떡없다고. 갱도 끝으로 가니 사거리가 17킬로미터에 달하는 8인치 견인 곡사포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타이완에서 유일한 갱도식 곡사포진지로 823포전에서 활약을 했다. 

1958년 8월 23일부터 10월 5일까지 벌어진 중국은 타이완의 금문도에 무려 44일 동안 47만여 발의 포탄을 쏘아댔다. 실로 엄청난 포격이었지만, 사산포진지는 끄떡없었다는 것을 보니 역시 강력한 화강암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산포진지의 8인치 견인 곡사포가 중국을 향해 있다. 8.23 포격전 당시의 포탄들.

그 당시 쏘아댄 포탄이 바로 모택동의 선물이라 불리며 금문도의 경제를 살리는 역할을 했는데 이는 밑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오후 3시30분이 되니 포탄을 쏘는 시범을 위해 병사들이 대열을 갖추고 구호를 외치며 대포 앞으로 전열을 가다듬는다. 

실제로 대포의 포탑을 열고 포탄을 주입하는 동작을 절도 있게 연출하는데 포탄을 발포할 때는 자동으로 귀를 막았으나 너무 작은 소리에 맥이 빠지고 말았으니. 예전에는 실제 대포를 발사하는 소리를 냈지만 조~기 건너편 중국에서 진짜 포를 쏘는 걸로 항의한 탓에 연출만하게 됐다. 실제 군복을 입은 군인들의 연출 덕에 마치 전쟁터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가냘픈 대포 소리만 빼면 말이다.

1900년대 성냥으로 부자가 된 왕씨 성의 화교가 자신의 가족과 친지들을 위해 만든 집성촌을 만들어 살았다.

산후민속문화촌(山后民俗文化村)

전쟁의 격전지만 돌아보다 보니 좀 건조한 감이 있었는데 산후민속문화촌에 들어서니 역시 고요하고 정취가 충만한 고택군락의 분위기에 마음이 촉촉해진다 1900년대 성냥으로 많은 돈을 번 왕씨 성의 부자 화교가 집을 짓고 사서 자신의 가족들을 나누어주고 문화촌으로 만들었단다. 지금도 실제 가족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일반 가옥을 비롯해 사당과 학교 등 총 18채의 고택으로 돼있어 ‘18간’이라고도 불린다. 

지붕이 뾰족한 것은 관직을 지낸 집안이라는 뜻이다.

고택 지붕의 끝이 뾰족하게 돼있으면 관직에 붙은 집안을 의미하고 고택 내부의 바닥 무늬가 거북이 등 모양의 육각형이면 손님이 들어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고 사각형이면 오로지 가족들만 이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고택에 ‘태원세제’이라는 팻말이 있으면 왕씨 집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화장실은 예전에 마구간이었고 고택 내부 마다 물을 모아놓은 우물과 어른과 자식들 그리고 사당이 구분되어 있다.

U자형으로 된 적산갱도의 모습. 이곳을 통해 수송선이 오갔다.

적산갱도(翟山坑道)

금문도의 전쟁시설 중에서 분위기 있는 관광코스가 아닐까 한다. 구강호 남동쪽에 위치한 타이완 해군의 지하요새인 적산갱도는 U자형으로 만들어진 터널을 통해 42척의 수송선이 군수물자 보급을 위해 오갔던 매우 중요한 시설이다. 지금은 몇 척만이 남아 있지만 전쟁 중 타이완 본섬에서 오갔을 42대의 수송선의 모습을 연상하니 꽤 비장하게 느껴진다. 

갱도 외부에는 당시의 수송선과 발칸포 등이 전시돼있다. 1961년부터 5년간 그 강한 화강암을 뚫는 공사 끝에 완성된 이곳은 수송선 LST 42척이 정박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유턴 또한 가능할 정도의 수심 2미터, 길이 100미터, 폭 6미터, 높이 3.5미터의 수로가 갱도와 연결돼 있다. 

입구에서 수로로 걸어가니 양 옆으로 당시 사용하던 무기고, 탄약창고, 작전실, 숙소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작은 문을 열고 내려가니 뿌연 물안개가 피어 있는 수로가 모습을 드러낸다. 화강암의 거친 암반과 어둠과 뿌연 물안개가 몽환적으로 느껴진다. 수로 오른쪽으로 걸어가니 난간이 있는 통로가 바다를 향해 있는 출구 쪽으로 연결돼 있다. 

밖에서는 절대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은폐시설. 40도에 육박하는 바깥 더위와 갱도 내부의 시원한 공기가 만나 물안개가 만들어지는 것을 알았다. 더운 여름철에 피서지로 꽤 좋을 듯. 매년 10월 31일에는 수로에서 250명 정원의 음악회가 열리는데 티켓 발매와 동시에 전량 매진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바깥쪽으로 나가면 바다로 향한 수로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경치도 꽤 운치 있어 관광코스로 그만이다.

무역업으로 큰돈을 번 황씨 성을 가진 화교마을로 7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쉐이토우구락(水頭聚落)

금문도에서 가장 완벽에 가깝게 원형 보전된 전통마을로 유명한 쉐이토우구락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황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항구가 있는 곳에 세워진 마을이라 수두라고 불린 무려 7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쉐이토우 항구는 진먼과 샤먼을 오가던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마을 사람들의 생업도 어업, 농업이었고 그 외 배를 타고 해외 무역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산후민속문화촌과 달리 마을 전체를 돌아보는데 3시간 이상 걸릴 정도로 꽤 규모가 크다. 마을로 들어설 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이 망고가 마을 곳곳에 주렁주렁 열려 있어 매우 풍요롭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100년 된 양옥 형식의 집이다. 

붉은 벽돌로 만든 단층집인 민남식 가옥의 내부 건축 양식만 봤을 때 마치 서양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리고 무려 18개의 기둥이 있어 웅장하기 까지 하다. 

금문도의 명물인 굴 요리

특이한 것은 이 양옥집 옆에 가짜 집이 있다는 것. 강도가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들어가도록 일부러 화려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겉만 화려하지 안은 텅 빈 것을 모르는 강도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 집주인과 마을 사람들이 강도를 제압했다고. 얼마나 많은 강도들이 들끓었길래 돈을 들여 이렇게 가짜 집을 지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큼 부를 누리던 곳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에서 많은 돈을 벌어왔고 그 때문에 회교양식도 함께 들여왔다고. 돈은 많았지만 치안이 좋지 않아 가짜 집 외에도 문이 3개나 만들었을 정도. 이층에는 주인이 내려다보는 구멍도 있다. 금문 사람이 말레이시아 여인을 만나 결혼해 낳은 딸을 ‘냥요’라 불렀고 한약방이 외환송금의 역할도 담당했다. 황씨 집안 사람들을 위한 소학교가 있다.

중국공산당이 점령해 사령부로 쓰던 북산고양루. 치열했던 전투를 말해주듯 처참한 모습만 남아있다.

구닝토우 전사관(古寧頭戰史館)

금문도의 전쟁역사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구닝토우 전사관으로 가는 길에 처참한 붉은 벽돌 건물이 눈에 띄었다. 원래는 1928년 필리핀에서 무역업을 하던 리진위라는 사람이 지은 커다란 2층 양옥집이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금문도에 상륙한 후 최초로 점령하고 작전사령부로 쓰던 북산고양루이다. 이후 국민당의 치열한 반격으로 되찾았지만 그 덕분에 건물 전체에 수많은 총탄의 흔적이 안쓰럽게 보인다. 당시 무려 2~3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정도로 치열한 싸움이었다고. 

구닝토우 전사관 앞의 승전 용사 동상과 구닝토우 전쟁 당시 금문도를 방문한 장제스 총통이 타던 지프.

이윽고 구닝토우 전사관에 도착했다. 지난 1984년 구닝터우 전쟁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중국공산당에 대승을 거뒀던 그 현장위에 건물을 세웠다. 전사관 외벽은 오래된 성의 모습이고 메인 광장에는 승전 용사의 동상과 전투 당시 활약을 했던 M5A형 전차가 전시돼 있다. 

구닝토우 전투는 1949년 10월 24일 중국공산당이 금문도에 몰래 상륙하지만(타이완 측은 2만 명의 전투 병력이라 주장했지만 실제로 전투병은 9,000명이고 나머지는 뱃사공 등 비전투원) 한 경계병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쉽게 점령할 수 있었던 전투를 무려 3일 밤낮의 격렬한 전투 끝에 10,000명 정도가 전사하거나 주민들에게 맞아 죽고 4,000여 명이 포로로 잡히는 참패를 당하고 만다. 

이곳으로 중국공산당이 침투했지만 발각되어 1만 여명이 전멸하고 4천 명이 포로로 잡혔다.

금문도를 그냥 점령할 수 있는 곳으로 과소평가한 중국공산당은 금방 찍어낸 인민화폐와 승전잔치에 쓸 돼지들을 가득 싣고 오면서 하루치의 식량이면 족하다고 자신만만하다가 역습을 당해 참패를 당하고 만 것이다. 200평의 대지에 전사관 사방의 벽에는 당시 전황을 묘사한 12폭의 거대한 유화가 걸려 있어 생생한 역사의 현장에 와 있는 듯하다. 

전사관 내에는 장제스 총통이 구닝토우 전투당시 직접 방문해 타고 사열을 받았던 지프도 전시돼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과거 지뢰가 가득했던 해안가는 평화로운 해변으로 변해 있었다.

모택동이 날린 포탄으로 명품 칼을 만들어 유명해진 진허리강다오 공장 입구

진허리강다오 공장金合利鋼刀廠

앞서 말했듯이 이곳이 바로 모택동이 21년간 금문도에 퍼부었던 포탄 세례를 금문도의 특산물로 승화시킨 수제 칼 공장이다. 8.23포격전투 후에 금문도에는 10만 명 이상의 군인들이 상주하게 되면서 군용 대검과 가정용 부엌칼이 엄청나게 필요하게 되었단다. 

19세기말부터 칼을 만들었던 진허리강다오는 1937년 공식 회사를 만들어 고품질의 칼을 만들면서부터 군 당국으로부터 신뢰를 얻었다고. 1980년대 말에 금문도에 떨어진 포탄을 수거해 폐기하는 것을 아깝게 여겼고 이를 재료로 칼을 만들기 시작한 끝에 1996년부터 매우 뛰어난 품질의 칼을 제작하게 되었다. 

각종 칼을 진열해 놓은 매장 안으로 들어서니 훤칠한 키에 마른 우정둥 사장이 나와 직접 폐 포탄으로 칼을 만드는 시범을 보여주겠다며 일사불란하게 토치로 포탄을 자르고 떼어낸 쇳조각을 1300도가 넘는 풀무에 넣고 시뻘겋게 달군 후 망치와 자동함마기를 이용해 다지며 칼의 틀을 만들고 쉴 새 없이 풀무에 넣었다 두들기고 달구고 식히는 작업을 하니 어느 순간 볼품없었던 폐 포탄이 반짝거리는 멋진 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시간이 무려 15분. 포탄 하나로 60개의 칼을 제작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경제적인가. 50년의 노하우가 응집된 명인다운 솜씨에 넋이 빠져 내 손에 칼이 들려 있는 것을 얼마 후에 깨달았을 정도.

“그 동안 망가진 대포로 30년, 대포 내부의 재료로 20년, 지금은 대포의 포탄으로 칼을 만들고 있습니다. 진허리의 칼은 포탄 재질이 무기 철이라 품질이 뛰어나고 밀도가 정확해 매우 강합니다. 언제든지 AS가 가능하니 칼을 버리지 않고 대대손손 사용할 수 있지요.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았고 이제 제 아들이 물려받아 3대로 이 공장을 유지할 것입니다” 우사장은 또한 단순히 칼을 만드는 것에서 나아가 포탄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년 이후에는 박물관을 개관할 계획도 갖고 있단다. 그가 만든 칼을 보고 있노라면 이는 칼이 아닌 명품 아니 작품으로 느껴진다. 이 때문에 이곳은 인기 있는 관광 명소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선물한 작은 과도는 꽤 비싸게 주고 구입한 외국 과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난 절삭력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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