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ovsgol National Park

3천 미터 고지에서 바다를 만나다, 헙스걸 국립공원

자연이 좋아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훌훌 털고 떠나는 것일까? 가도 가도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그저 나무와 풀, 호수만이 눈과 가슴을 가득 채우는 그런 곳이 반겨 주기 때문일까? 록키산맥의 푸른 나무와 에메랄드빛으로 출렁이는 호수, 알프스의 아름다움이 떠오르는 이곳, 헙스걸 국립공원에서 꿈에 그렸던 바로 그 자연의 모습을 봤다.

꿈에서나, 디즈니 만화에서나 보던 백마가, 몽골의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다. 홀로 외로이 풀을 뜯고 있는 백마는 혹시 동물나라 왕자님이 아닐까?

몽골 지도를 보면 북부 중앙에 세로로 길게 놓여 진 파란 물의 흔적이 있다. 여기가 바로 몽골에서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는 헙스걸 호수.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비행기를 타고 호수 남단에 있는 하트갈 공항의 활주로에 비행기가 내리면 바로 헙스걸 국립공원이 이다. 

헙스걸 국립공원은 면적이 2,760평방미터나 되는 호수와 높이 3천 미터가 넘는 산들, 눈이 시리도록 푸른 초원이 있는 지상낙원으로 평가 받는다.

어떤 사람은 이곳을 몽골의 알프스라 부르고, 또 어떤 사람은 록키산맥을 옮겨놓은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는 캐나다도, 스위스도 아닌 몽골의 헙스걸. 헙스걸이 록키산맥보다 아름답고 알프스보다 눈부신 이유는 3천 미터 고지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 

바다로 가려면 이곳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데, 중앙아시아의 고원에 바다가 있다는 것이 신이 내려준 큰 선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말에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나 하겠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의 수평선 너머를 보지 못한 헙스걸 사람들에게 이곳은 바다나 다름없다.

사람과 자연,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산과 나무, 호수만 끝없이 펼쳐진 다른 곳들과 달리 헙스걸에는 사람의 흔적이 있다. 그것도 아주 자주 있다. 그런데 헙스걸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의 흔적은 자연을 감상하는 눈과 귀를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그 자연의 한 부분으로 다가온다. 

동굴에서 발견되는 그림과 불을 지핀 흔적들이 원시시대를 그려볼 수 있게 하는 것처럼, 헙스걸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말의 배설물, 말을 타고 양떼를 모는 어린 아이, 그들이 만든 집 게르 등 인간의 삶을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헙스걸에서 태어나 자란 듯 이곳을 말해주고 있다.

사람과 자연은 상극인 줄 알았는데 헙스걸의 사람과 자연은 한 몸이다. 헙스걸의 초원은 말과 양떼, 야크 무리를 먹이고 이들은 사람에게 먹거리를 안겨준다. 헙스걸 호수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에게 마실 것을 제공하며 동물의 가죽은 사람에게 잠잘 곳을 마련해 주고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람이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과 함께 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 의식적으로 자연보호를 외치며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그 자연에 속한 일부라서 저절로 융화되는 곳,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에도 결코 자연으로부터 해침을 당하지는 않는 곳,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겠는가.

저 푸른 초원 위에, 저 파란 호숫가에, 그림 같은 게르 짓고, 한 백년 살고 싶다

말 타고 낚시하고 서핑도 신나는 땅

헙스걸 호수의 물을 보고도 그냥 마시지 않는 것은 깨끗한 호수에 대한 모욕이다. 배를 타고 호수 깊은 곳까지 나가보지 않는 것도 넓은 호수를 무시하는 게으른 처사이다. 호수 안에 사는 수많은 물고기들의 생태계를 적절하게 조절해 주기 위한 낚시는 호수를 위해 사람이 해야 할 의무이다. 

바람이 불어 호수에 파도가 칠 때 서핑을 하며 호수와 놀아주는 것 또한 한몸된 자연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다. 말을 타고 달리며 드넓은 초원의 땅을 단단하게 하는 것, 말을 타고 산에 올라 헙스걸 호수의 경치에 감탄하는 것도 모두 자연을 아름답게 하는 것들이다.

헙스걸에서는 사람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함께 즐겨야한다. 수십 년 동안 오염된 공기를 마시며 차가운 건물과 까만 아스팔트에 둘러싸인 채 희뿌연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온 것에 익숙해져 파란 하늘의 눈부심과 푸른 초원의 부드러움, 투명한 물의 순결함이 생소하게 느껴질지라도, 헙스걸에 가면 자신이 수십 년 전 안겨있던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그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보트를 타고 호수의 깊숙한 곳까지 나가며, 출렁이는 호수에서 서핑을 즐기고 말을 타고 산에 오르면서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느껴야한다. 그것이 곧 사람에게 많은 것을 안겨준 헙스걸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또 하나, 하얀 구름이 떠도는 파란 하늘과 말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푸른 초원 사이로 펼쳐진 쪽빛 호수를 품고 있는 헙스걸 초원지대에서 산을 바라보면 왜 그럴까하는 의문이 든다. 바다 하늘이 가까운 몽골에서 산의 남쪽 면은 해가 너무 강해 나무가 견디지 못한다고. 그래서 몽골의 산은 북쪽에만 나무가 있다. 

초원에서 길을 가다 방향을 잃으면 산을 봐라 한다. 찰랑 찰랑 잠긴 물에 반사되는 하늘과 나무의 그림 속에 마치 일부러 끌어다 놓은 듯 보이는 말 한 마리와 울타리 속에 보이는 사람과 오토바이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헙스걸 호수의 풍경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여유로운 일상이 부럽기만 하기도 하다.

헙스걸 호수의 전설

우물이 바다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가늠할 수조차 없는 아주 먼 옛날, 지금 헙스걸 호수가 있는 자리는 사막이었다. 사막을 지나다니던 유목민들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우물에서 물을 얻으며 쉬었다 가곤 했는데 이 우물은 늘 커다란 돌로 입구를 닫아두어야 했단다. 그렇지 않으면 우물 아래에서 끊임없이 물이 솟아 나와 밖으로 흘러넘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유목민이 우물에서 물을 마시고 뚜껑을 닫는 것을 잊었고 우물의 물은 쉬지 않고 흘러나와 사막을 물로 덮기 시작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흘러나온 물은 사막을 전부 덮어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이뤘다. 

그러던 중 이곳을 지나던 한 영웅(몽골 사람들은 영웅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수도인 울란바타르의뜻이 붉은 영웅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이 옆에 있던 산의 꼭대기를 잘라 우물의 입구를 막았는데 우물의 뚜껑이 된 잘려진 산의 꼭대기는 호수 가운데 떠 있는 섬이 되었다. 

이 섬의 이름은 나무의 자식이라는 뜻의 ‘못등후’, 잘려진 산은 잘라낸 산이라는 뜻의 ‘오릉더시’이다. 헙스걸 호수를 둘러싼 산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정상이 깎인듯 평평하게 보이는 산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도 헙스걸 사람들은 우물이 넘쳐 ‘헙스걸 바다’를 이루었다고 믿으며 매우 자랑스러운 듯한 모습으로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에게 헙스걸 호수의 전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헙스걸 호수에는 세 개의 커다란 섬이 있다. 호수의 전설에 등장하며 나무의 자식이라는 뜻을 가진 ‘못등후’와 바위로 이루어져 바위의 자식이라는 뜻의 ‘핫등후’,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쇼릉아를’이 그것이다. 배를 타고 핫등후 섬 근처를 지날 때면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갈매기 떼가 섬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