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월간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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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베트남]     도시분류 : [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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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FIELD] 삶이 팍팍할 때면 사파 행 기차를 타라

Sapa

삶이 팍팍할 때면 사파 행 기차를 타라

여행을 다니다 보면 기대만큼 못해서 실망하는 곳도 있고, 예상 밖으로 오래 가슴에 남는 여행지도 있다. 내게 사파는 후자이다. 베트남 여행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대개 하노이나 다낭, 또는 호이안을 손꼽는다. 사파는 우리에게 익숙한 하노이나 다낭, 하롱베이처럼 여행상품이 많이 개발되어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 가운데 사파를 아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다. 또한, 하노이에서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마음이 있어도 쉽게 가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파를 찾은 이들은 베트남에서 다시 또 가고 싶은 곳으로 사파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먼 여정의 사파

베트남 북부에 위치한 사파로 가기 위해서는 제법 힘든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 하노이에서 사파까지의 거리는 350킬로미터로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하노이 역에서 밤 기차를 타면 8시간을 달려새벽 무렵 라오까이 역Lao Chai에 도착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라오까이 역에서 사파까지 다시 한참을 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밤기차가 부담스러우면 하노이에서 사파까지 가는 슬리핑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파 호라이즌 호텔 기차역에서 사파행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꼭 승강장을 확인해야 한다. 만약 다른 승강장에서 기다리다가 열차를 놓치면 그런 낭패가 없다. 나도 여행사 직원에게 기차역에서 차표를 받기 위해 기다리다 하마터면 차를 못 탈 뻔했다. 4인 침대로 되어 있는 침대칸에서 다른 이의 숨소리와 기침 소리에 뒤척이다 보면 종착지인 사파가 나온다. 

새벽에 라오까이 역에 도착하면 역 앞에는 사파까지 운행하는 밴이나 미니버스들이 기다리고 있다. 좀 더 편안하게 가고자 한다면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으나 대개는 밴이나 미니버스를 이용한다. 

기념품 가게 만약 하노이에서 예약했다면 기차 도착시간에 맞추어 마중 나온 안내인이 이름을 부를 것이다. 그 사람을 따라가서 타면 된다. 도착해보니 숨이 막힐 정도로 미니버스는 이미 만원이다.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고향을 가는 이부터 배낭을 멘 여행객까지 고만고만한 사람들을 태운 미니버스는 굴곡진 도로를 한참이나 달려 이른 아침 사파에 도착한다. 잠결에 언뜻 보니 사파 가는 고갯길은 아찔함의 연속이었다. 나는 사파 호라이즌에 머물기로 했다.

사파 호라이즌 호텔 예상치 못한 최고의 숙소 호라이즌

이른 아침에 맞이하는 사파의 첫 느낌은 한적한 시골 마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평균 해발 1650미터의 사파는 아침 공기부터가 달랐다. 새벽안개에 휩싸인 사파는 수줍은 새색시랄까. 하노이의 활기찬 모습이나 고즈넉한 다낭이나 호이안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사파에 들른 이라면 규모에 비해 많은 호텔에 놀랄 것이다. 골목골목마다 호텔이 들어차 있어서 이렇게 많아서야 영업이 될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지금도 곳곳에서는 새로운 건축물이 올라가는 데 대부분이 호텔이다. 사파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베트남의 다랭이논 풍경사진을 보았던 이라면 아, 거기 하며 쉽게 고개를 끄덕이리라. 9~10월이면 벼 이삭이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추수를 끝낸 후라 벼 이삭이 출렁이는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그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깟깟마을에서 바라본 다랭이 논사파의 대표적인 풍경이라 할 수 있는 계단식 논 풍경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힘을 지녔다. 햇살이 논 위로 스멀스멀 넘어가는 모습은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여행에 나선 여행객을 위로해주기에 충분하다. 나는 사파에서 내 인생 최고의 호텔을 만났다. 

사파 숙소를 검색하다 사람들의 평이 압도적으로 후한 곳을 발견했는데 그게 바로 사파 호라이즌이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호텔은 숙소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 대개 여행객들은 노곤한 몸을 누이거나 다음 여행지를 위한 중간 거점으로 호텔을 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만약 호라이즌을 찾는다면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지 간에 그 이상을 경험할 것이다. 사파 호라이즌은 단순한 호텔 이상의 특별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깟깟마을 가는 길몽족이 사는 깟깟마을로의 여행

밤기차에서 늦게까지 뒤척이며 잠을 청해서인지 아니면 새벽 버스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몸이 엄청 피곤했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몸이 축축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새벽녘 도착한 버스 안까지 들어온 호텔 매니저의 안내를 따라 호텔 로비에서 수속을 밟는 동안 따끈한 생강차 한 잔이 따라온다. 

차가 들어가자 굳어있던 몸이 그대로 사르르 녹는 느낌이다. 그때 호텔에서 제안한 서비스가 아침 샤워이다. 이른 새벽에 도착한 여행객을 위해 간단하게 샤워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이라니 근사하지 않은가! 미리 하노이의 한 여행사를 통해 깟깟마을로 가는 패키지 여행을 신청했건만 약속시간에 가이드는 오지 않았다. 

몇 십 분을 기다렸건만 끝내 오지 않아 결국 여행사에 연락하여 취소하고 아내와 나는 마을 근처를 탐방하기로 했다. 짐을 맡겨 두고 사파를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한적한 마을 풍경아기자기한 골목이 비 오는 풍경을 뒤로한 채 멋들어지게 펼쳐 있었다. 간단하게나마 아침을 먹고 가까운 곳에 있다는 깟깟마을에 먼저 가기로 했다. 깟깟마을은 시내에서 3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베트남의 몽족이 사는 전통 마을이다. 새벽부터 내리는 비는 도무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형적인 우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깟깟마을로 가는 길에 보니 등산용품을 파는 가게마다 신발을 보호하는 용도의 비닐로 만든 덧신을 판다. 비가 제법 와서 그런지 도로 위로 물이 한 가득이다. 우산을 들었음에도 바지 아래가 흠뻑 다 젖었다. 재미 삼아 비 신발을 사서 신어 본다. 걷다 보니 보기만 그럴싸하지 어느새 신발 쪽으로 물이 마구 들어온다. 거 있지 않은가. 마음만 든든하게 하는 허접한 장비, 딱 그 꼴이다.  

베트남의 정겨운 시골 풍경현지인도 즐겨 찾는 사파에서의 트래킹

한 40분 남짓이나 걸었을까. 드디어 목적지이다. 눈 아래로 그 유명한 사파의 다랭이 논이 보인다. 논이 풍족하면 좋았으련만 산악지대인 사파에는 농사지을 만한 땅은 충분하지 않다. 그나마 있는 산비탈을 개간해서 논으로 만들어서라도 살아야만 했던 눈물겨운 역사가 오늘날의 이 아름다운 논을 만들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사파를 대표하는 풍경은 이렇게 만들어 졌다. 굽이진 고랑에서 마을 사람들이 한 해를 살 만한 먹거리가 나왔을 것이다. 보호지역이기 때문인지 여기는 옛모습 그대로처럼 느껴진다. 

깟깟마을 입구천수답은 하늘의 눈치를 봐야 하는 땅이다. 인근에서 어떻게라도 물을 끌어올 수 있는 평야지와 달리 산비탈에 조성한 논이나 밭은 물에 취약하다. 그래서 산비탈의 논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눈물과 땀을 먹고 자란다고 한다. 사파는 베트남 내국인들도 즐겨 찾는 곳이다. 입장료를 내고 아래로 내려가면 깟깟마을의 랜드마크와 같은 사진 찍는 곳이 나온다. 거기에서 우리는 베트남 하노이 대학에 다닌다는 여학생 대여섯 명을 만났다. 

하노이에 산다던 학생들은 모처럼 만의 여행이 즐거운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특히, 자매가 사 좋게 여행을 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하나의 일행으로 깟깟마을 트래킹을 시작하였다. 초록빛 파스텔 톤의 마을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모습은 그동안 바삐 사느라 수고했다고 위로해주는 느낌이랄까. 

아내와 나, 그리고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우리 일행은 비를 피해 간이음식점에 들렀다. 대학생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구운 고구마와 간식을 먹다 보니 어느새 절반쯤 베트남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깟깟마을의 명물, 수차하염없이 비는 오는데 가게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느긋하기 짝이 없는 우리네 시골 정취 그대로였다. 비를 머금은 사파의 풍경은 전혀 다르다. 마을 트래킹을 하다가 만난 수차가 그랬고 다리가 그랬다. 흐드러지게 푸근하고 아름다운 다랭이논만 생각한다면 비 온 사파에 그런 이질적인 풍경이 숨겨져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계곡에서 세차게 흐르는 물은 호쾌하다 못해 두려울 정도이다. 이런 물들이 흐르고 흘러 강을 이루며 베트남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젖줄이 된다. 다리를 건너면 오르막길이다. 깟깟마을을 도는 3시간 남짓한 트래킹의 고단함을 아는지 오토바이 기사들이 진을 치고 있다. 동행했던 학생들은 지쳤는지 택시를 불러 숙소로 가기로 했다. 우리는 그냥 걸었다. 

다시 비탈진 경사 길을 걸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그런 호사를 어찌 누리랴.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는 듯한 부부를 만났다. 그 모습이 묘한 울림을 주었다.

일을 마친 남편을 마중하러 나온 아내가 남편 곁을 차지하고 걷는다

일을 마친 남편을 마중하러 나온 아내가 남편 곁을 차지하고 걷는다

길이 좁지 않은데도 착 달라붙어 걸어간다

남편 허리춤에서 삐져나온 허름한 수건이

아내의 손에 들려진 비닐봉지에 맞춰 춤을 춘다

가끔 실없는 농담이 둘 사이의 어색한 침묵을 깨곤 한다

투박한 남편 손이 닿을 때마다 황토를 닮은 여자가 살짝 자지러진다

좀 멀찌감치 따라가는 게 좋을 뻔했다

부부 덕분에 제법 먼 길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파의 저녁이 시장하다

- 사파 퇴근풍경

깟깟마을로 가는 길숙소로 오니 매니저가 객실까지 따라 올라와 구석구석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과일 바구니뿐만이 아니라 와인까지 서비스로 받고 나니 하루 더 눌러앉고 싶은 생각이 마구 든다. 일부러 마운틴 뷰를 선택했건만 여전히 산은 뿌연 안개에 싸여 있다. 창을 여니 안개가 조금씩 문을 열어줄 때마다 사파 마을 풍경이 그림처럼 왔다가 사라진다. 

저녁이면 사파는 새로운 얼굴로 변신을 한다. 자연적으로 발달했음이 분명한 골목길이 사파 구석구석을 이어준다. 다만 찾는 관광객 수만큼이나 이 작은 마을도 몸집을 불리느라 곳곳에 공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호텔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광장 근처에 위치한 사파 성당은 마을 사람들에게 안식처이자 기도처이다. 한눈에 봐도 그리 크지 않은 모지만 엄숙함만은 다른 곳에 비할 수 없다. 

깟깟마을 트레킹 출발 안내 표지이곳에 사는 현지인이나 여행객들도 여행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고 영혼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성당을 찾는다. 밤이면 성당 앞 꽈잉 드응 광장은 사람들의 산책처이자 데이트 코스로 바뀐다. 어느 지역이나 광장은 사람들의 소통 공간이자 출발지이기도 하다. 사파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유럽지역의 통상적인 광장과는 다르다. 

그 규모 또한 마을과는 쉽게 어울리기 어려울 정도로 큰 공연이나 대형 축제에 어울릴 만큼이나 크다. 광장 근처에는 하노이며 다른 도시로 향하는 간이 버스터미널이 있다. 아마도 저녁을 먹고 사박사박 길을 걷다 보면 다른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느긋함과 편안함이 작은 마을 곳곳을 뒤덮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게다. 광장 너머에는 제법 큰 규모의 사파 호수가 있다.

콩 카페저녁이면 마을의 카페는 관광객들의 한숨과 설렘으로 들썩인다. 우리는 커피콩 카페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하노이에서 들렀던 커피콩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커피를 비롯한 음료와 간단한 견과류를 먹으면서 연주자의 공연도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연주자는 여행객의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통 피리를 구슬프게 연주한다. 

가슴이 시린 사람이 연주하면 비록 경쾌한 곡도 그 언저리에는 슬픔이 묻어난다. 그 중에는 소수민족의 노래도 있고 우리에게 익숙한 곡도 있다. 연이어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있다 보니 어느새 손님들이 하나 둘 지갑을 연다. 

공원 같은 느낌의 함롱산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는 함롱산Ham Rong Mountain으로 향했다. 호텔 인근에 있는 산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도 된다는 말에 조금 더 힘을 내보기로 했다. 입장료를 내고 산을 오르다가 중간에 길을 놓쳤다. 그럴 것 같아서 중간에 있던 편의점에서 물어보기는 했지만 도무지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파 시내가 보인다는 함롱산을 뒤로 하고 내려오다 보니 산이라기보다는 아기자기한 정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산 입구 근처에서는 전통극을 하는 장소도 있어 베트남 문화와 풍속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인도차이나에서 가장 높다는 판시판 Phan Xi Pang 산우리는 아침을 먹고 난 후, 판시판에 다녀오기로 했다. 매니저는 오늘 날씨가 어제보다 좋다고 너스레를 떤다. 인도차이나에서 가장 높다는 판시판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산이다. 마치 우리에게 지리산이 어머니와 같은 느낌을 주듯이, 판시판 역시 몽족, 쟈오족, 낀족 등 소수민족을 품어주는 산이다. 

교통편이 쉽지 않기 때문에 판시판에 가고자 하는 이라면 대부분 택시를 탄다. 대략 10여 분 남짓, 드디어 입구에 도착한다. 

판시판의 케이블카판시판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가격은 70만 동. 베트남 물가를 생각한다면 제법 비싼 금액이지만 다른 선택은 없다. 트래킹 하는 방법도 있으나 그러려면 대략 일주일은 잡아야 한다. 그나마 비가 멈추기를 바라는 수밖에, 이 험준한 산에 케이블카를 놓은 업체는 다낭 바나힐에 케이블카를 놓은 바로 그 업체이다. 

일단 케이블카가 규모 면에서 엄청날 뿐만 아니라 산의 높이 또한 상당하기 때문에 건설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했을 것이다. 입구의 선플라자에서 판시판까지 이어지는 케이블카는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길이가 압권이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다보는 판시판은 첩첩산중 오지 그 자체이다. 

마치 구름을 등지고 산을 오르는 느낌이다. 게다가 바람이 불 때마다 케이블카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짜릿한 스릴까지 맛볼 수 있다. 케이블카가 도착하는 곳에는 간단하게 요기와 차를 마실 수 있는 제법 큰 규모의 휴게소가 있다.

베트남의 정겨운 시골 풍경정상 부근은 아래보다 더 심하게 바람이 분다. 거센 빗줄기에 바람까지. 우산은커녕 가만히 서 있기도 힘이 들 지경이다. 게다가 한치 눈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다. 온몸을 우비로 감쌌지만 몸이 휘청이는 것까지 막지는 못한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다 보니 잠시 후 정상으로 향하는 모노레일이 나온다.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이런 빗속에서의 산행은 역시 무리이다. 다시 모노레일 비용으로 10만 동이 나간다. 비가 와서인지 모노레일 내린 곳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계단이 쉽지는 않다. 제법 가파른 계단이 온통 빗물 투성이다. 게다가 바람까지 심하게 부니 난간을 잡고 가는 수밖에 없다. 드디어 정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가장 높다는 판시판의 높이는 3,143미터이다. 판시판 정상에서도 바람은 여전히 강하고 매섭다. 세찬 비와 거센 바람은 지금이 우기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그래도 사람들 표정은 밝고 행복해 보인다. 백두산도 그렇지만 고지대인 판시판에서 맑은 날씨를 보기란 쉽지 않다. 정상에 있는 베트남 국기를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서둘러 남기고 서두른다. 날씨 좋은 날이면 산 아래까지 한눈에 보일 것이다. 잠시 후일을 기약해본다.

케이블 타러 가는 길에 만난 크리스마스 조형물따뜻한 반미 도시락, 정겨운 마음이 풍성한 사파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다 보니 따뜻한 차 한 잔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고 보니 휴게소 자리마다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언 몸을 녹이고 있다. 차 한 잔을 마신 후, 케이블타를 처음 탔던 선플라자까지 내려오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어렵사리 다녀온 곳인 만큼 판시판 여행기념 조형물을 하나 샀다. 

유독 내 눈을 끈 것은 사파의 다랑이논이 안에 아름답게 새겨진 크리스털 제품이다. 호텔측의 배려로 3시에 체크아웃을 할 수 있었다. 체크아웃을 하기전에 아침식사 때부터 매니저는 몇 번이고 우리가 몇 시차로 출발하는지를 물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를. 우리가 체크아웃을 하는 순간, 씩하고 웃으며 따뜻하게 만든 베트남식 도시락 반미를 건넨다. 

우리 출발시간에 맞추려 했는지 아직도 따스한 온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처음 도착해서도 감동을 주더니 떠날 때까지 이렇게 사람을 사로 잡아버리는 서비스를 세상 어디에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꽈잉 드옹 광장 여기서는 햇살도 참 순하다

비가 온다면 잠시 자리를 비켜주고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제 자리로 돌아온다

다랭이 논을 닮은 사람이 사는 마을에는 순한 사람들 덕분에

돈 냄새가 심하게 나지 않는다

길을 재촉하지도 서두르지도 않고 기다리며 여기를 찾은 이가

마음 열어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자연이 말을 건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일이고 수업이고 삶이다

늘 서두르며 살았던 사람은 깨닫지 못하는 아니 느낄 수 없는 느긋함이 사파 도처에 있다

그들이 알아채기 훨씬 전부터 살았던 그 오랜 연원이 저절로 생겼을 리 없다

- 사파 논다랭이

사파-하노이행 버스비가 오는 간이 버스터미널은 사람으로 붐볐다. 미리 차를 예약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고생할 뻔했다. 차를 타고 하노이로 향하는 순간, 뒤를 돌아보니 사파는 다시 안개로 사라져버렸다. 예전에 둔황을 떠나올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렇게 베트남의 오지 중 하나인 사파라는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이름 하나를 가슴에 새기며 떠나왔다. 

중간쯤에 하노이로 가는 길이 꽉 막혀 있다. 사파로 가는 길이 워낙 좁다 보니 중간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달리 수습할 길이 없다. 덕분에 1시간 반 남짓 버스는 도로에 갇혀 도무지 움직일 줄을 모른다. 우리야 하노이에 숙소를 잡아서 다행이지만 하노이 공항에서 바로 귀국을 준비한 사람이라면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체 구간을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버스는 다시 정신없이 달린다. 하노이의 호안끼엠 근처에 도착한 것이 자정 무렵. 2박 3일,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사파를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끔 삶이 팍팍하거나 가슴이 먹먹해질 때면 사파가 그리울 것이다. 유난히 친절했던 호텔의 매니저와 우연히 만난 베트남 여학생들이며 안개 속에 휩싸여 속살을 보여주지 않았던 판시판 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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