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ha
프라하, 천년의 종소리

 

뮌헨을 경유해 프라하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자정에 가까웠다. 아무도 없는 구시가지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트램의 모습은 멀리 동방에서 온 이방인의 피로를 잊게 했다. 숙소에 도착하자 장시간 여정의 피로가 엄습했다. 눈꺼풀은 무거운데, 바깥에서는 댕댕- 프라하가 간직한 천년의 전설이 종소리가 되어 울리고 있었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날 종소리에 기꺼이 웃으며 잠들었던 것 같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정기영 트래블 인플루언서, 정순영

프라하 성 안의 분홍빛 이르지 성당

 

프라하는 신비로운 정취를 풍긴다. 그 유명한 카를교에 빨리 찾아가려고 조급해할 필요는 전혀 없다. 프라하는 카를교라든지 구시가광장을 필연적으로 매일 지나가게 되니까 말이다. 걸어서 관광지를 다 둘러 볼 수 있는 작은 규모다. 나로드니 거리를 따라서 걷다 보면 아름다운 볼타바 강과 레기다리 그리고 멋진 교차로를 볼 수 있다. 이 광경은 꽤 인상적이기 때문에 잊을 수 없다. 트램들이 교차로를 오가고 버스와 차, 트램이 아슬아슬하지만 조화롭게 오가는 모습이 오래 기억 속에 남았다. 저 유명한 카를교는 또 어떤가. 블타바 강(몰다우 강)을 가로지르는 카를교는 점성술사와 천문학자의 자문을 얻어 가장 이상적인 시간인 오전 5시 31분에 축조되었다고 전해진다. 성 요한 네포무크 부조상을 문지르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설이 있기 때문에 반질반질하다. 소원을 안 빌 수 없지!

존 레논 벽 Zed John Lennon

프라하에서의 하루하루는 실로 감동이었다. 캄파섬을 산책하고, 카를교 초입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서 걷다 보면 이름 모를 예쁜 꽃집이 있다. 그곳에서 노란 튤립을 사서는 또 계속 걸었다. 목적지였던 존 레논 벽 앞에 도착하자 튤립은 햇빛을 받아서 한층 싱그러운 노란빛을 발한다. 본래 평범한 벽이었지만 1980년대 프라하 젊은 청년들이 공산주의 정권과 사회에 대한 비판을 낙서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익명의 아티스트가 자유의 상징이었던 비틀스의 존 레논의 얼굴과 비틀스 노래 가사의 그래피티를 벽에 그리며 '존 레논 벽'으로 불리게 됐다. 몰타 대사관 담벼락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치외법권지역으로 낙서를 지울 수 없었다. 낙서는 변하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온다면 또 다른 벽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번은 한 아티스트가 벽을 온통 흰색 페인트로 도배해놓은 황당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매일 스프레이와 페인트로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고 변하기 때문에 벽에 기대어 사진을 찍을 생각은 애당초 접는 게 좋다. 존 레논 벽 앞에서는 언제나 비틀즈의 음악으로 버스킹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

스타벅스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아름다운 풍경을 두 눈에 담는다. 쌀쌀하지만 한낮의 여유가 온몸으로 스민다. 프라하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성벽에 올라앉았더니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린다.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는지 뒤에 있던 중국계 중년부인은 손을 어쩌질 못하며 바라본다. 프라하는 시내를 흐르는 블타바강(몰다우강)이 라베강(엘베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있어서 예로부터 번성한 도시 중의 하나였다.

 

‘스타벅스’같은 곳은 선택력이 타고난 사람들을 위한 곳이죠. 커피 하나에도 수십 가지의 종류가 있죠. 작은 것, 큰 것, 연한 것, 진한 것, 디카페인, 카페인, 저지방, 무지방… 사람들이 2달러 95센트를 내고 사는 것은 커피가 아니라 그들의 정체성이에요. 최고의 커피를 원한다면 말예요. 영화 <You`ve got mail> 中

 

스타벅스에서 내다보이는 프라하 구시가지를 한없이 두 눈에 담으며, ‘프라하성에 있는 스타벅스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이리라’ 생각했다. 스타벅스를 나서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파란 하늘은 눈부시게 펼쳐져 있었다. 저녁에는 짭쪼름한 체코식 족발인 꼴레뇨와 맥주를 먹었다. 일명 ‘굴뚝빵’으로 불리는 ‘뜨르들로’도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다. 굴뚝처럼 길쭉한 원뿔형으로 생긴 모습이 굴뚝빵이라는 별칭에 썩 어울린다.

프라하 근교, 체스키크룸로프 Cesky Krumlov

이곳이야말로 누구나 상상해 본 동화 속 마을이다. 체코의 동화마을로 알려진 체스키크룸로프를 떠올리면 너무나 평화로운 시간이 행복하게 그려진다. 흐르는 물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따스한 햇볕은 온전한 행복감을 준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그림 같은 곳이다. 프라하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 정도 걸린다. 아침에 버스를 놓칠 뻔 했는데 용케 헤매지 않았다.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그쪽으로 무조건 뛰었기 때문이다. 역시 체스키크룸로프에 가는 버스가 맞았다. 우리나라에 체스키크룸로프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걸 감사할 지경이었다. 강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카푸치노와 토스트에 잼을 듬뿍 발라서 먹었다. 언제 날아들었는지 벌 한마리가 달콤한 향에 이끌려 계속 기웃거린다. 그 바람에 결국 실내로 쫓기듯 자리를 옮겼다.

낙후된 도시에 불과했던 체스키크룸로프는 1992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블타바 강이 완만하게 감싸고 있는 체스키크룸로프는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근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여행을 가기도 용이하다. 이곳은 19세기 오스트리아의 대표 화가인 에곤 실레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에곤 실레는 고국인 오스트리아보다 사랑했던 이곳에서 1년여간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지만 외설적인 작품으로 주민들의 반감을 사게 되어 떠나야 했다. 에곤 실레 아트센터에는 그가 만든 검은 침대 등의 전시물을 볼 수 있다. 에곤 실레는 독감 바이러스로 임신한 아내를 잃고, 자신도 감염되어 28세의 나이로 아내의 뒤를 따랐다. 체스키크룸로프는 13세기에 보헤미안 귀족이 고딕 양식의 성을 쌓아 행인들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통행세를 받았다고 한다.

핑크빛 캄파 섬(Kampa Island)

블타바 강변의 캄파 섬은 카를교와 연결된 작은 인공 섬이다. 예쁜 공예품들을 구경할 수 있고, ‘프라하의 베니스’라는 별칭에 걸맞게 곤돌라를 타고 둘러볼 수 있다. 물레방아가 있는 오두막집이 보이는데, 그 집에 악마가 살았다고 하여 캄파 섬은 악마의 수로 ‘악마의 시내라는 뜻의 ‘체르토브카’로 불리기도 한다. 캄파미술관, 호텔, 레스토랑, 카페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프라하 캄파섬의 어느 분홍집 앞에서, 핑크빛에 심취해 자리를 쉽사리 떠날 수 없었다. 핑크는 행복을 주는 컬러라는데, 평생, 이 분홍빛처럼 삶이 꾸려지면 얼마나 좋을까.

구시청 천문 시계탑

프라하의 아름다운 구시가는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체코의 명물인 천문 시계에 당도했다. 천문 시계는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넋을 잃고 바라보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정시마다 천문 시계의 12사도 인형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려고 수많은 사람이 숨죽이고 있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인파 틈에서 영상에 그 모습을 담으려고 팔을 최대한 길게 뻗었다. 천문 시계탑은 프라하의 명물 중 하나로 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천문 시계탑 전망대에 오르면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천문 시계는 매 시 20초간 짤막한 쇼가 진행 된다.

정각이 되면 먼저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인형이 2개의 창에서 나타나며 종을 친다. 두 개의 창문에서 12사도가 등장한다. 지갑을 손에 쥔 유태인, 거울을 보는 사람, 음악을 연주하는 터키인이 뒤따라 등장한다. 죽음 앞에 젊음, 부와 즐거움도 무용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프란츠 카프카는 어린 시절 이 시계탑의 유태인 모습을 보며 상처를 받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황금 닭이 ‘꼬끼오’하며 우는데, 모든 이를 웃게 했다. 알고 보니 천문시계가 꼬박 1년 반 동안 공사 중이다가 우리가 여행오기 며칠 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시 개관했단 걸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여행을 마칠 때까지 영롱하게 울리는 프라하의 종소리가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화약탑 역시 프라하의 명소로서, 구시가광장의 관문 역할을 한다.

리부셰 공주 이야기

체코의 건국 신화는 리부셰(Libuše) 공주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동명의 오페라도 있다. 옛날에 비셰흐라드에서 체흐 민족을 다스리던 크로크(Krok)는 아들은 없고, 세 딸이 있었다. 큰딸 카지는 의술, 둘째딸 테타는 사제였고, 막내딸 리부셰는 혜안과 통치술을 가지고 있었다. 막내 딸이 왕위를 물려받았다. 부족 원로들은 리부셰 공주가 어서 결혼하기를 재촉했다. 리부셰 공주는 어느 날 강 건너편 언덕 위에 도시가 세워져 번영하는 꿈을 꾼다. "이제 때가 됐습니다. 강 건너 언덕에서 찢어진 신발 한 짝을 신고 있는 농부가 저의 남편이 될 겁니다." 사람들이 리부셰 공주가 말한 언덕에 가보니, 아닌 게 아니라 신발 한 짝만 신고 있는 농부가 있는 게 아닌가. 그의 이름은 프르제미슬(Přemysl)이었다.

체코 최초의 왕조 프르제미슬 왕조의 시작이다. 두 사람은 결혼했고, 체흐는 날로 번영했고 새로운 영토가 필요해졌다. 리부셰 여왕은 한날 예지몽을 꾸었고 “영광이 별빛까지 이르는 도시가 세워져 전 세계가 찬사를 보내리라"라고 예언한다. 그녀는 현재 프라하성 인근의 허름한 집에서 문지방을 수리하던 노인을 만난다. 그 문지방을 넘기 위해서는 저절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리부셰 여왕은 누구든 겸허하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곳으로 도성을 옮기기로 결정한다. 프라하의 어원이 된 ‘Prah’는 체코어로 ‘문지방(Threshold)’이라는 뜻이다.

예술가들의 도시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주로 인간 운명의 부조리를 밀도 있게 고발하는 작품을 후세에 남겼다. 프라하 출생의 유대인 작가이다. 학창시절 ‘필독서’라는 이유로 사춘기 아이가 시험 범위에 있지 않는 이상 읽기가 거북했던 몇몇 책 중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책들도 포함이 됐다. 그의 대표작인 ‘변신’은 판타지 장르에 가깝지만, 섬뜩하리만치 현실을 반영해서 몸서리를 치게 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작업실이 있었던 황금소로 Zlatá ulička를 걸었다. 아기자기한 길이어서, 프란츠 카프카의 밀도 있는 작품들이 어찌 이런 곳에서 만들어졌는지 의아했다. 프란츠 카프카 외에 밀란 쿤데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작품에서 프라하의 모습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는 시계탑의 시계가 새벽 세 시를 쳤을 때까지 공허하고 평화로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창문 앞에서 밝아지는 바깥의 광경을 보았다. 그 다음 머리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완전히 아래로 떨어지고 그의 콧구멍에서 그의 마지막 숨이 약하게 새어 나왔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中

그렇다. 프라하라고 전쟁의 상흔이 없고, 지독한 이념의 대립이 없었을까. 영광이 별빛까지 닿으리란 프라하였기에 여행자들이 찬양하는 낭만과 현실의 괴리감은 좀 더 클지 모른다. 독일 작가지만 프라하에서 태어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단편작품인 '두 편의 프라하 이야기'는 가난한 곱사등이 청년인 보후쉬가 등장한다. 그는 '보후쉬 왕'이라는 별명으로 프라하의 콧대 높은 지식인들의 놀림거리다. 체코극장 맞은편 국영 카페에 모인 예술가들과 어울리려고 애쓰는 보후쉬는 냉대 속에서 짧은 생애를 살다가 삶을 마감한다. 또 다른 체코 출신의 작가인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968년 체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프라하의 봄(체코 민주화 운동)’을 그려낸다. 밀란 쿤데라는 이 책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 아래에서 억압받던 지식인의 절망과 방황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묘사한다. 주인공인 토마스의 지독한 바람기와 문란함에 가까운 자유로운 성생활은 충격적이나, 그만큼 효과적으로 지식인-토마스는 의사이다-들의 방황을 대변했다.

파엘로 코엘료의 소설인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어떤가. 프라하에서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베로니카가 결국 고리타분한 삶에 염증을 느끼고 죽기로 하는 데서 이야기가 출발한다. 아마도 모차르트의 경쾌함으로 이 이야기는 마무리해야겠다. 모차르트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린 후 프라하에 체류하며 오페라 <돈 조반니(Don Giovanni)>를 작곡했다. 지금도 프라하 시내에서 돈 조반니의 음악이 흘러나오거나, 작은 소극장에서는 마리오네트 형식의 인형극이나 연극으로 돈 조반니 작품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프라하의 은은한 밤길을 걸으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물을 채운 투명한 유리잔을 길게 세워놓고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한 뮤지션을 만났다. 은은한 연주소리, 섬세한 감수성…. 또 다른 수백 년이 흘러도 프라하는 예술가들의 도시로 남아 있을 것 같다. 프란츠 카프카부터 일련의 예술 작품들은 알을 깨치고 나오는 과정과 유사하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프라하를 산산히 깨부수고, 증오하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사랑했다. 그처럼 어떤 여행은 찬미하고 사랑하는 동시에 그 세계를 깨트릴 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