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erranean Jewelry
지중해의 보석, 니스

프랑스 남부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도시가 많다. Arles, Cannes, Nice, Marseille. 정신적으로 지쳐 있던 고흐(Vincent van Gogh)를 따뜻하게 감싸준 곳 역시 넉넉한 엑상프로방스였다. 따사로운 햇살 너머로 넘실거리는 밀밭과 라벤더 밭을 보고 있노라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 끝에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니스가 있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장창영 트래블 인플루언서

니스 가는 길 
남부 프랑스 중에서도 니스(Nice)는 로마 시대부터 많은 유럽인의 사랑을 받아온 대표적인 휴양도시이다. 프랑스령이면서도 이탈리아에서도 가깝고 또 연평균 15℃의 기온을 유지하기 때문에 휴양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던 화가들이 니스를 찾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이 니스를 가게 된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생트마리(Sainte-Marie)와 생크로와 호수(lac de sainte croix)를 거쳐 처음에는 마르세유로 숙소를 잡으려고 예약을 해 놓았었다. 베르동에 머물까도 생각했으나 좀 더 남부로 가기로 했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우리 가족은 그날 저녁 항구도시 마르세유로 갔을 것이다. 그리고 저녁으로 그 유명하다는 지중해식 생선 스튜인 부야베스(bouillabaisse)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니스를 선택한 이유는 아무래도 더 큰 도시라서 숙박이 쉬우리라는 것과 여차하면 칸으로 넘어올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저녁으로 향하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밤길 운전은 피해야 한다. 특히 차를 가지고 다닐 경우라면 낯선 길을 운전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짐작할 것이다. 그게 초행이라면 더 그렇다. 

니스 해변은 자유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항상 초행길이 힘들었지만, 니스도 만만치 않았다. 큰 도시에 약한 징크스는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니스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또 헤맸으니 말이다. 유럽에서 운전하다 보면 가장 힘든 게 갈림길을 만났을 때 어느 쪽이 맞느냐이다. 매번 내게는 마치 뽑기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운이 좋으면 천만다행이지만 만약 꽝을 뽑으면 몇 분에서 10여 분을 다시 또 달려야 한다. 석양을 머금은 니스의 풍경은 운전하는 틈에 잠깐 보았음에도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강아지와 해변을 산책하거나 달리기 하는 사람들을 보니 부럽기 짝이 없다.  저 자유롭고 느긋한 표정이라니 낯선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드디어 우리는 꿈의 도시 니스에 왔다. 광장을 지나니 바로 해변이 나온다.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드는 나무들이 늘어선 니스 해변은 젊은이들의 해방구이다. 아니 모든 세대의 해방구라는 하는 말이 정확하리라. 날이 더워서인지 해변과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렇지, 여름은 바다야, 라며 다들 몰려나온 느낌이다. 밝은 표정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싫지 않다. 바다 냄새를 맡으면 잠잠하던 사람들의 피는 끓고, 바다를 보면 뛰어들고 싶어진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그저 뛰어들기만 하면 그다음은 바다가 알아서 다 해준다. 바다라는 마법에 사람들은 순식간에 포로가 되어버린다. 어쩌면 그걸 알면서도 즐기는지도 모른다. 때로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지독한 열병에 걸리기도 하고 무작정 떠나고픈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하니 말이다. 하기는 나도 ‘바다’라는 매혹적인 이름에 사로잡혀 현실을 잊고 싶기도 하다.  

니스의 여름은 뜨겁다!
해변 주변의 공원에는 물분수가 있어 가족과 함께 나온 아이들은 최고의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물과 친해지는 게 최고의 놀이일 테고,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그걸 온몸으로 겪으면서 이 여름을 보내는 것이다. 우리는 그 곁 그늘막에서 부모들 틈에 섞여 짧은 휴식을 취했다. 오래간만에 낮잠을 잔 것도 거기에서였다. 사실 이번 여행을 다니면서 낮잠을 잔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였을까? 한여름,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던 니스 해변은 저녁이 되면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을 한다. 왁자지껄하던 사람들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뒤로하고 해변의 여유로움을 누리면서 밤바다를 산책하거나 밤 수영을 즐기는 것이다. 그들은 바쁜 일상에서 한 걸음 벗어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니스의 자유를 맛본다. 그들의 발길을 사로잡기 위해 몇 팀은 공연을 한다. 노랫소리가 들리나 싶으면 사람들은 발걸음을 추고, 어느새 근사한 무대가 즉석에서 만들어진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언덕 쪽에 니스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아이 러브 니스가 나온다. 제법 큰 규모의 조형물이다.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은 아이 러브 니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근처에 앉아 야경을 바라본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듯,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포즈를 하면서 자신들이 이곳에 머물렀음을 증명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있음을 만끽하겠다는 듯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쾌하고 즐거워한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덩달아 즐거워진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야경이야말로 니스의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대변한다. 우리 가족은 어두워질 때까지 니스 해변이 밤으로 물드는 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보았다. 니스를 감싸고 있는 평화가 온몸으로 그대로 전해졌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한가한 니스의 오후 즐기기
아내와 나는 니스 상징물 건너편에 있는 길을 통해 전망대에 올라가려 했으나 이미 출입금지 상태였다. 개방시간이었던 8시가 넘어서인지 경찰 몇 명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길 자체가 상당히 위험하기 때문에 늦은 시간에 통제함으로써 위험사고를 예방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경찰 이야기로는 내일 아침 8시 30분에 열 테니 그때 다시 오라는 것이다. 우리만이 아니라 전망대로 향하던 다른 관광객들 역시 진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결국, 아내와 내일 아침 일찍 다녀오기로 다짐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해변에는 사람이 많다. 니스를 찾은 사람들은 해변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즐기기도 하고 느긋하게 자전거를 타며 니스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그냥 바다일 뿐인데 이곳에서는 누구나 다 자유인이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야간인데도 바닷가에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니스는 우리나라 해운대를 연상하게 한다. 

니스 해변은 우리나라 해수욕장처럼 모래가 아닌 자갈이라서 맨발로 걷기는 조금 불편했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빌딩보다는 자연과 어울리는 형태의 개발을 해서인지 해변 근처의 호텔이나 건물들이 크게 거부감이 안 든다는 점이다. 꽤 늦은 시간인데도 해변에서 비치발리볼을 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이러한 사소한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니스를 빛나게 만든다. 바다에서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록 부표가 떠 있다고 해도 칠흑 같은 밤바다는 무섭다. 나도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면서 그 느긋한 대열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저녁 바닷물은 차면서도 상큼했다. 짭조름한 바닷물이 입에 들어오자 비로소 내가 니스의 바다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 니스의 밤바다는 한가하고 느긋하다. 아니 평화롭다 못해 고혹적인 매력을 품고 있는 평온함이 사라지는 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여기는 니스니 다 용서가 된다. 

니스의 시간은 특별하다
니스에서의 수영이라니, 한동안 수영장조차 찾지 못했는데 이게 웬 호사인가 싶다. 어제 남프랑스를 온종일 달려온 후 맞이하는 달콤한 휴식이다. 정말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었는데 지금은 현실이 되어 있다.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까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나와서 잠깐 자갈 위에 누우니 오돌토돌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맥주라도 한잔 마신 것처럼 세상이 다 평화롭다. 갑자기 인근에 누워 있던 처음 보는 이조차 정겨워진다. 니스는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바다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대상이자 경외의 대상이었다. 고전 『오디세이아』가 그렇고 트로이 신화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 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이 상당히 많다. 바다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바다의 광포한 힘을 알기에 바다를 외경의 대상으로 보았던 일이 많다. 그래서 우리에게 바다는 용왕을 떠올리게 하는 대상이자 토끼와 거북이의 배경이었으며, 심청전에도 등장한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바다 하면 떠오르는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다. 

니스에서의 시간은 짧고 할 일은 많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니스의 밤은 흘러가고 있었다. 거의 12시가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밤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나 역시 바쁜 일정에서 벗어나 모처럼만에 느긋함을 맛보았다. 우리는 니스의 밤이 아쉬운 사람들을 뒤로하고 숙소로 향했다. 나대신 바다를 지키는 이들에게는 니스의 바다를 남겨주었다. 그들은 대체 언제쯤이나 잠이 들까. 그나저나 우리는 내일 이른 아침에 전망대로 나서야 한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역시 니스라서 일까?
<더 자세한 내용-2020년 8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