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BA'S TRUE DREAM 'CHE GUEVARA'

쿠바의 진정한 꿈 ‘체 게바라’

쿠바는 캐리비안의 작은 섬나라에 불과하지만 쿠바 혁명의 정신은 세계로 퍼져갔다. 그 중심엔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있었다. 혁명이 태동한 쿠바의 작은 도시 산타클라라엔 지금까지도 혁명가 체 게바라를 추모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글과 사진 전준호 기자

쿠바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볼리비아에서 총살당한 체 게바라는 숨을 거둔지 30여년 만인 1997년 10월 17일 쿠바 산타클라라에 안장됐고, 혁명이후 수십 년간 정권을 잡았던 피델 카스트로는 그 자리를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넘겨주었다. 후회 없는 생을 살았다 자부하는 그도, 떠나간 친구에 대한 그리움만은 간절하리라. 가끔은 추억에 잠겨 옛 친구에게 편지 한통을 띄울지도 모를 일이다.

 

체 게바라는 말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혼자 꾸는 꿈은 몽상일 뿐이지만,

함께 꿈꾸면 현실이 된다”

 

나는 쿠바혁명이 주었던 모범만은 제외하고 모든 책임으로부터 쿠바를 자유롭게 해주렵니다. 혹시 또 다른 하늘 아래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나는 마지막으로 바로 쿠바 국민, 특히 당신에게 향할 것입니다.

-피델 카스트로에게 보낸 체 게바라의 마지막 편지

Che:

오늘 산타클라라에 다녀왔다네. 그곳의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더군. 산타클라라 중심 광장의 호텔 리브레는 이제 완전히 낡아버렸어. 그래도 에어콘과 냉장고는 다 갖춰 놓았다네. 무너져 내리는 건 호텔만이 아니더군. 폭삭 가라앉을 것만 같은 집들도 여러 채 보았네. 하지만

확실히 아바나 구시가지와는 다른 매력이 있더군. 오전엔 중앙 광장 공원에서 한참 동안 지나는 이들을 구경했지. 시가를 나눠 피우는 노인들과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내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네. 이곳에선 세발자전거와 우마차가 자동차를 대신해, 아

바나에서처럼 시커먼 연기를 마실 일은 없더군. 길가에선 노인들이 팝콘이며 사탕 같은 군것질거리들을 좌판 위에 펼쳐놓고 소일을 한다네. 아깐 아이들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1차선의 좁은 거리를 뛰어 다니는 통에 하마터면 허벅지에 퍼렇게 멍이 들 뻔했지 뭔가. 광장에서 꽃 한 다발을 사가지곤 자네가 쉬고 있는 산타클라라 체 게바라 기념관을 찾았는데, 알고 있었나? 막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가 붉은 꽃다발을 들고 자네를 찾아 왔더군.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온 부부도 만났네. 그들은 그리운 친구에게 하듯 자네를 추도했지. “체를 기억하는 이 여행에서, 우리들은 혼자가 아니군요”라던 남자의 말이 계속 생각나네.

체, 여전히 자네를 기억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네. 깜깜한 밤에 행군을 마치고, 해먹위에 누워 시가를 문채 흐린 양촛불 아래 늦게까지 괴테와 마르크스의 저서를 읽던 자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 기념관엔 자네가 즐겨 두던 체스판과 4시 40분을 가리킨 채 멈춘 시계도 거기 남아 있더군. 기념관 입구에선 자네 어릴 적 사진을 보고 한참을 웃었네. 인상을 잔뜩 쓰고 손가락 두 개를 입에 문 폼이, 시가를 물고 있는 자네 예전 모습 그대로더란 말이지. 간호사로 일할 때 입던 가운과 자격증, 의학 박사가 된 후에 받은 학위도 남아 있더구먼. 1956년 베라크루즈에서 라울과 함께 찍은 사진도 보았네. 기억나나? 멕시코시티로 망명을 갔을 때 마리아 안토니아의 집에서 처음 자네를 만났지. 나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행운을 만났지만 자네를 만났던 일이야 말로 내 생애 최고의 행운이라 말하고 싶네.

나뭇잎으로 대충 기워 만든 막사 안에서 강아지를 끌어안고 시가를 문 흑백사진 속에서, 자네의 해사한 미소는 변함이 없더군.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이 마치 안방이라도 되는 양 태평하게 누워있는 모습도. 시에라리온 전투에서 쓰던 눈에 익은 소총들도 나란히 놓여있었네. 매일 목숨을 내걸어야 했지만, 그래도 낭만은 있었어. 밤을 지새운 열띤 토론 후엔, 일본에서 만들어진 16현 하프 지피지터를 연주하며 흥겨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자네는 가끔 낡은 카메라를 꺼내들고 사진을 찍곤 했지. 자네가 볼리비아에서 전투를 할 때 쓰던 양철 밥그릇과 잔뜩 찌그러진 수통도 기념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네. 자네는 볼리비아의 전장에서도 자네는 매일 일기를 썼더군. 하루하루가 불안했을 텐데도, 자네는 여전히 주변 사람들을 돌보느라 바쁜 듯 보였네. 볼리비아로 떠나기 직전, 기름을 발라 머리를 말끔하게 넘기고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자네 모습은 조금 어색해 보이더군. 소총을 들고 짚풀 위에 앉아 한 손엔 시가를, 다른 손엔 책을 들고, 올리브 그린 색 군복 차림에 베레모를 눌러 쓴

모습이야 말로 우리가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혁명가 체 게바라일 것이네.

기념관을 나와 자네가 잠들어 있는 방엘 들렀다네. 볼리비아에서 운명을 달리한 36명의 전우들과 함께 있으니 천국에서도 외롭진 않겠더구먼. 혹시 그곳에서 그들과 또 다른 혁명을 준비하는 건 아닌가?

아스따라 빅토리아 시엠쁘레(Hasta la Victoria Siempre).

폭력을 폭력으로 이겨낼 수밖에 없는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네. 처음에는 정치에 입문해 평화로운 방식으로 쿠바의 문제들을 풀어내고 싶었네만 바티스타가 무혈 쿠데타로 권력을 잡으면서, 나는 내 방식대로 조국을 해방시키기로 결심했지. 그만큼 절박했다네. 그거 아는가? 지금 혁명광장의 내무부 건물 외벽엔 자네 얼굴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네. 승리할 때까지(Hasta la Victoria Siempre)란 구호도. 그 옆으로 정보통신부와 국립 중앙 도서관, 국방부 건물이 차례로 들어서 있지. 북동쪽엔 거대한 호세 마르띠 동상이 서있다네. 뒤편의 건물은 공산당 본부로 쓰이고 있지. 국립극장(Nacional Teatre) 2층엔 아바나 데릴리움(Habana Derilium)이란 클럽이, 지하엔 카페 칸탄테(Cafe Cantante)가 들어서 있네. 낮에는 쿠바인들을, 저녁엔 외국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공연이 열리지. 

쿠바가 걸어온 길

콜럼버스는 아바나에 도착해 ‘가장 아름다운 땅’이라 했다지. 아름다운 여인의 삶은 고달픈 법이잖은가. 달라붙는 놈팡이들이 많으니 말일세. 쿠바의 운명도 그처럼 고달팠다네. 처음엔 스페인이, 다음엔 영국이 차례로 이 땅을 점령했지. 한데 영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플로리다와 쿠바를 홀랑 바꿔치기 하지 뭔가. 우리는 참을 만큼 참았네. 그러나 끓는 물은 넘치기 마련이지. 1868년엔 마침내 카를로스 마누엘 데 세스페데스가 농장의 노예들을 해방시켜 1차 독립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네. 망명 중이던 막시모고메스, 안토니오마르세오, 호세마

르띠가 그 바톤을 이어받았지.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꼭 맞음세. 그중에서도 호세마르띠는 어린 시절 내 우상이었네. 안타깝게도 도스 리오스 전투에서 사망하고 말았지만 그는 여전히 모든 쿠바 민중의 가슴 속에 밝은 횃불로 남아있네.

독립은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었네. 아주 조금만 더 가면 되었지. 한데, 1898년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네. 미국의 전함 메인 호가 아바나 항만에서 폭파된 걸세. 그 사고로 260여 명이 목숨을 잃었네. 미국은 스페인에 책임을 묻고 군사를 동원해 스페인을 몰아냈다네. 이 사건으로, 30여년 가까이 꿈꿨던 쿠바의 독립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 2년 후, 쿠바는 공화국임을 선포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 해 3월에 발효된 미국의‘플랫 수정 조항’이 쿠바의 자주권을 박탈하고 말았는데.

1925년 대통령이 된 헤라르도 마차도는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 못지않았네. 게다가 1929년에는 미국 발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쿠바는 엉망진창으로 망가지기 시작했네. 1940년대에 이르러서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였지. 아바나는 몰려든 주정뱅이들과 자본가들, 마

피아들이 점령한 무법천지였네.

혁명의 태동

내가 태어난 건 그 즈음이었지. 나는 1926년 8월 13일생일세. 그 때문에 내게 26이란 숫자는 특별하다네. 바티스타 정권을 뒤엎기 위해 몬카다 부대를 습격한 날짜는 1953년 7월 26일이었지. 1953년은 호세 마르띠가 태어 난지 100년이 되는 해여서 내게는 더욱이 특별하다네. 하지만 이 첫 혁명은 실패로 막을 내렸지. 그러나 수확도 있었네. 10월 16일, 법정 변론에서 크게 한 건 터뜨린 걸세. 자랑은 아니지만, “판결하십시오. 괜찮습니다. 역사는 나에게 무죄판결을 내릴 것입니다” 내가 변론 말미에 했던 이 말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는군. 나는 그때 15년형을 받았지만, 1년 만에 가석방됐지. 그리고 이듬해 여름, 멕시코시티로 망명을 떠났던 걸세. 하지만 4년 후 나는 다시 아바나로 돌아왔지. 난 지고는 못 사는 성미잖나. 그건 자네도 인정했지. 자네와의 골프경기에서도 내가이기지 않았나? 작가 헤밍웨이가 초대한 새치 낚시 토너먼트에서도 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었지.

 

어쨌거나 경제적 뒷받침 없이는 완벽한 복지와 평등한 사회의 꿈도 요원한 일이지. 해서 소련식의 엄격한 계획경제를 도입하고, COMECON(사회주의 국가 경제 공동체)에도 가입했네만, 미국의 압박이 만만치 않았네.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미국으로 건너오는 쿠바인들을 모두 수용 하겠다 발표하자 12만 명의 쿠바인이 마리엘 항을 떠났지. 쿠바의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던 소련도 1986년 페데스트로이카의 물결을 타고 떠나더군. 물론 소련은 동승을 권했지만, 내 성격 알잖나? “잘못된 것은 고치겠다”며 맞섰지. 하지만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네.

1990년엔 ‘평화 시기의 특별기간’을 선포하기까지 했다네. 트랙터는 우마차로 대체됐고, 중국에서 수입된 자전거가 도로 위를 달렸지. 미국은 1992년 토리셀리 법으로 대쿠바 경제봉쇄를 제3국으로 확대하더니, 1996년엔 헬름스 버튼 법을 발효해 미국의 자산을 쿠바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의 경제활동까지 제재하더군. 그 때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네. 자네만 있었어도. 그때 자네를 붙잡았다면, 쿠바는 좀 달라졌을까?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요즘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네. 이런, 넋두리가 너무 길었네. 자, 이제 편히 잠들게. 내 다시 편질 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