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Town of Nobility

영주, 옛 선비가 되는 정취에 빠지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국내 여행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그곳에는 어김없이 여행 욕구를 자극하는 다양한 ‘꺼리’가 자리한다. 그중에서 옛날 배부른 선비가 없던 세상, 현재 누구나 배부른 선비가 되어보는 곳이 있으니, 바로 경상북도 영주로의 선비가 되는 여행이다.

글과 사진 전준호 기자

영주하면 가장 먼저 소백산과 부석사 소수서원을 떠올린다. 물론 이들은 영주의 놓칠 수 없는 볼거리지만 전부는 아니다 영주에는 오래전 우리 선비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선비촌이 있고 수백 년을 이어온 무섬 전통마을이 있으며 한양을 오가던 선비들과 보부상의 애환을 담고 있는 죽령 옛길이 있다.

여기에 소백산 정기를 머금고 자란 한우와 약효가 좋다고 알려진 풍기인삼과 담백한 맛이 일품인 묵밥 그리고 길가에 늘어선 나무에서 직접 따먹는 영주 꿀 사과까지 선현의 얼과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선비의 고장 영주를 만나보자. 

민족교육의 산실 소수서원

예전 가을 소풍이면 영주로 향하는 길에 들르는 휴게소에는 수십 대의 관광버스와 아이들로 가득했다. 소풍 길에 나선 아이들이니 안 봐도 뻔하다.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휴식을 취하러 들른 휴게소에서 혼을 쏙 빼앗길 지경이다. 하지만 지금은 옛 이야기처럼 들려온다.

그렇게 학창시절 소풍을 떠나 듯 설레는 발걸음으로 도착한 영주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소수서원이다. 1543년 당시 풍기 군수 주세붕이 건립한 곳으로 원래 ‘백운동서원’이라 불렸었는데, 퇴계 이황이 풍기 군수로 부임한 후 명종으로부터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으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국가로부터 특별히 공인된 서원)이 되었다.

 

정문을 들어서면 수백 년에서 길게는 천 년에 이르는 적송나무가 울창한 솔밭이 반긴다. 그 옆으로는 죽계수라는 계곡물이 흐르는데 경렴정에서 죽계수를 바라보면 흰색으로 ‘白雲洞(백운동’, 그 아래 붉은색으로‘敬(경’이란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눈에 띈다.‘ 백운동’은 퇴계 이황 선생의 글씨로 전해지고 붉은색의 ‘경’자는 주세붕 선생이 직접 써서 새긴 것 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전설이 하나 전해져 온다.

세조 3년 10월 단종복위 거사 실패로 이 고을 사람들은 참화를 당하게 되었고 그 시신이 죽계수에 수장되면서 밤마다 억울한 넋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했다고 한다. 이에 주세붕은 바위에 ‘경’자를 새기고 붉은 칠을 한 뒤 제사를 지냈고 이후 울음소리가 그쳤다고 한다.

경내에는 유생들이 모여 강의를 듣던 강학당과 회헌 안향선생의 위패를 모신 문성공묘 오늘날의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장서각 서원의 원장과 교수의 집무실인 직방재와 일신재 유생들의 기숙사인 학구재와 지락재 등 옛 건물이 자리해 과거 유생들의 모습을 떠올리 게 한다. 또한 국보 제11호인 회헌 초상과 보물 5점 등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어 서원의 역사와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선비의 숨결을 마주하는 곳

소수서원에서 다리를 건너면 선비촌이 자리한다. 선비촌은 경북지방의 유서 깊은 고택을 그대로 옮겨 놓은 마을 선비의 고장 영주를 상징하듯 커다란 선비상이 있는 입구를 들어서면 시간은 금세 몇 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각종 먹을거리를 파는 저잣거리를 지나면 두암 고택, 해우당 고택, 김문기 가옥 등이 실제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 있고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자리한 기와집과 초가집은 옛 마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각 가옥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듯 가재도구가 갖춰져 있고 글을 읽는 선비 부엌일을 하는 아낙네 일 을 하고 있는 하인 등을 재현해 놓은 밀랍 인형은 당시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선비촌은 우리 민족의 생활 철학이 담긴 선비정신과 전통문화를 재조명하기 위해 조성된 곳답게 다양한 체험행사가 마련되어 있다. 붓글씨 쓰기나 다도, 한지공예 탁 본 등 선비문화를 체험하는가 하면 투호 제기차기 널뛰기 등 민속놀이도 즐길 수 있다. 강학당에서는 현장 학습을 위한 아이들의 다례체험에 자세가 흐트러지고 재잘대지만 자세를 다잡고 앉아 선비들의 마음가짐을 배운다.

이곳에서는 한옥에서의 숙박도 가능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깊은 밤 툇마루에 앉아 올라다 본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빛과 정겨운 풀벌레 소리 그리고 시골 할머니 댁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온돌방은 가을날의 정취에 흠뻑 빠져 들게 한다.

과거 한양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했던 죽령 옛길, 정상에 오르면 시원한 바람에 함께

주변을 둘러싼 소백산의 풍경이 펼쳐진다

 

옛 한양 길의 애환을 따라 걷다

밤낮으로 학문을 닦은 옛 선비들은 장원 급제의 꿈을 안고 이 길을 넘었을 게다. 소백산 허리를 감돌아 오르는 아흔 아홉 굽이의 죽령은 영남의 대관문 중 하나로 신라시대 아달왕 5년인 158년에 만들어 져 무려 천여 년의 세월을 담고 있다.

‘죽죽’이라는 이름의 신라 사람이 만들어 ‘죽령’이라 이름 붙은 이 길목은 1910년대까지만 해도 청운의 꿈을 품은 선비들이 과거시험 길을 떠났다 돌아오고 문물을 나르던 장사치들과 나그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던 고갯길이었다 하니 그 길목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애환이 서려있을까. 이후 교통수단의 발달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가 1999년 영주시가 죽령의 옛 자취를 되살려 보존하려는 뜻에서 길을 복원하면서 오늘날 이곳은 옛 선조들의 삶을 떠올리며 거니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복원된 길은 희방사역에서 죽령주막까지 2.5킬로미터 구간으로 영남지방의 옛 길 중에서도 가장 넘기 어려운 곳이었던 만큼 약 1시간거리의 옛 길을 오르는 길은 꽤 숨이 가쁘다. 주 막이나 마방이 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주막이 있었다는 팻말만이 남아 있을 뿐이어서 잠시 쉬어가기도 마땅치 않다. 그래도 하늘을 뒤덮은 나무 덕분인지 꽤 더운 날씨에도 울창한 숲길의 상쾌함이 전해진다.

그렇게 꼬박 1시간을 걸어 689미터의 정상에 오르자 경상도가 끝나고 충청도가 시작되는 커다란 도로가 나타나고 건너편에 옛 선인들이 쉬어 갔음 직 한 죽령주막이 보인다. 밥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식당 간판을 보자 허기가 느껴진다. 산길을 걸은 후 순흥전통묵집에서 8천 원짜리 묵밥 한 그릇은 도토리묵이 듬뿍 들어간 육수에 무생채와 김치가 고명으로 얹어져서 순식간에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는 다시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부석사, 애달픈 짝사랑과 천년의 숨결이 느껴지다

다음날 아침 일찍 향한 곳은 천년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고찰인 부석사다. 676년 해동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부석사(浮石寺)는 우리나라 5대 명찰 중 하나로 신라의 국운 상승을 기원하고 당의 외침을 막고자 지은 호국가람이다. 산속에 포근히 감싸여 있는 느낌’,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중의 하나’, ‘극락세계로 올라가는 단으로 된 계단’, ‘팔작지붕과 배흘림기둥’ 등 부석사 무량수전을 뜻하는 힌트에서도 가늠할 수 있듯이 소백산과 태백산에 포근히 안긴 듯 자리한 부석사는 누구라도 탄성을 내뱉을 만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매표소를 지나면 양쪽으로 은행나무 길이 펼쳐진다. 아마 지금쯤은 샛노랗게 물든 커다란 은행나무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 할 터‘. 극락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 지는 길을 걸으며 잠시 상상해본다. 은행나무 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자연 경관을 품안에 끌어안은 부석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경내의 건축물 하나하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의상이 묶었던 집 주인의 딸이 였는데, 그를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된 팔작지붕과 목조구조 기술의 정수라는 배흘림 기둥,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져 간결하면서 웅장한 느낌을 주는 이 건축물은 고건축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감동을 느낄 만큼 고색창연한 천년 고찰의 위상을 보여준다.

 

부석사의 상징인 부석은 실제로 바늘크기만큼 떠 있다고 한다. 덕분에 이름도 뜰 부자에 돌 석자를 사용하는 이 돌에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와 당나라 처녀 선묘간의 애틋한 전설이 깃들어있다. 선묘는 699년 불법을 닦기 위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의상이 묶었던 집 주인의 딸이었는데, 그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10년간 애달픈 짝사랑을 하던 선묘는 결국 그가 떠날 때 자신이 용이 되어 지켜주겠다며 바다에 몸을 던진다. 용이 된 그녀는 이후에도 계속 의상 주변을 맴돌다가 의상이 다른 종파의 반발로 부석사를 짓지 못할 때 커다란 바위로 변환 후 공중에 뜨는 이적을 보여 반대하는 이들을 쫓아내 주었다고 한다. 부석사의 부석은 그녀가 변한 것인 셈이다.

이 부석은 두 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사이가 바늘만큼 떠 있다. 옆에는 부석이라고 한자로 새겨져 있는데, 독특하게도 돌 석자에 점이 하나 찍혀 있다. 점이 없으면 돌이 날아 갈까봐 붙들어 두려는 의미다.

어디 이뿐이랴! 무량수전에 서서 내려 다 보는 백두대간 능선의 아름답고 가슴 후련한 풍경이 주는 감동은 말문이 막힐 정도. 사찰의 고즈넉함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면 이른 아침에 찾는 것이 좋을 듯싶다. 부석사에서 내려오는 길 나무에 매달린 빨간 빛깔의 사과가 자꾸만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전국 사과 생산량의 5퍼센트를 차지하는 영주에는 가는 길마다 탐스럽게 익은 사과밭이 즐비하다. 일교차가 큰 지형적 특성과 토양이 당도가 높고 향이 뛰어난 사과를 키워 내기 때문이다.  

 

물줄기가 휘돌아가는 마을

한손에 잘 익은 사과를 담은 봉지를 들고 점심을 위해 영주의 소문난 음식점 약선당을 찾았다. 풍기인삼과 소백산 자락에서 자생하는 약초, 양주 한우로 만든 음식을 파는 약선당은 그야말로 웰빙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 약초 튀김, 버섯탕수, 인삼떡갈비 등 영주 인근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로 차려낸 밥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푸짐한 식사를 마치고 영주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수도리 전통마을로 향한다.

아름다운 자연과 고가(古家)가 그대로 보존된 수도리 전통마을은 마을의 3면을 휘감은 내성천 탓에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 하여 무섬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선비촌에서 보았던 해우당과 만죽재, 김덕진 가옥 등의 고택을 볼 수 있는데, 선비촌과 다른 점이라면 오랜 세월 대대로 사람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 1666년 반남 박씨潘南朴氏)가 이곳에 집을 짓고 터를 개척하였고 이후 증손서인 예안 김씨禮安金氏)를 불러들인 이래 이곳에는 오늘날까지 두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마을 앞의 강에 놓인 외나무다리는 이곳 수도리 마을에 가 볼만한 또 다른 이유다. 물론 지금은 자동차가 다니는 수도교가 마을과 육지를 연결하고 있지만 오래전 이 외나무다리는 마을과 육지를 연결해 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농사를 짓고 돌아오는 농사꾼도 머리에 항아리를 얹은 아낙네도 동네 꼬마 녀석도 모두 이 다리를 건넜을 터. 다.리는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좁은데다가 흔들거리기까지 해 꽤 아슬아슬하다.

강물의 높이가 기껏해야 발목 정도여서 빠진다고 해도 다칠 위험은 없지만 운동화가 몽땅 젖으면 낭패인지라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동안에는 살짝 긴장을 하게 된다. 그렇게 마을을 둘러보는 동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조용했던 마을은 일을 마치고 돌아와 동네 어귀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로 활기를 찾는다. 족히 100년을 되었을 가옥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마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듯 정겨운 풍경에 마을을 빠져 나오는 다리를 건너며 나도 모르게 자꾸만 뒤를 돌아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