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Hwa

왕의 역사와 아름다운 섬, 강화도

강화도는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섬 중 하나다. 수평선과 바다 내음, 광활한 갯벌과 아름다운 산을 가진 섬이 고작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다. 하루 두 번 맨얼굴을 내미는 이 섬의 갯벌은 풍요로워 배가 부르고, 저녁마다 하늘에 불을 놓는 이 섬의 낙조는 아름다워 숨이 막힌다. 이 풍요로움과 하늘에 비친 신성(神聖)을 우러러 옛사람들은 마니산에 제단을 쌓았다. 물살 빠른 바다가 든든해 왕조의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도 두었다. 그리고는 진과 포대도 만들어 접근하는 외세를 막았다. 과거에 강화도는 신과 왕의 것이었겠지만, 오늘날에는 모든 것들이 이 섬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의 몫이 됐다.

글과 사진 전준호 기자

더리미 해안에서 어부를 기다리는 어선

 

옛부터 강화도는 마냥 한가로운 휴양섬이 아니었다. 이 섬은 왕의 피난처이자 요새였고 나라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한 뼘의 보루였다. 그런 이유로 강화도에는 여느 섬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남아있다. 강화도를 육지와 연결하는 다리인 강화대교와 초지대교를 건너자마자 그것은 눈에 띈다. 두 다리사이 해안선에는 매끈한 백사장과 산 능선 대신 굳건한 석벽과 대포가 있는 진(陣)과 보(堡)들이 줄을 잇는다. 동서남북 어디에나 요새들이 바다를 향해 서있다. 강화도의 해변은 사람을 끌어 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척하기 위한 것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다. 물론 이는 옛날이야기고, 지금 이곳을 찾는 사람에게 석벽과 대포는 흥미로운 유산이자 사진촬영의 명소다. 

강화에 있는 12진보 중 가장 웅장한 모습의 광성보. 이곳에 있는 용두돈대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뛰어나다

 

왕과 실록을 지킨 ‘12진보’

예전에 강화도에는 ‘12진보’라 해서 열두 개의 진과 보가 있고 그 아래에 모두 53개의 돈대(포대)가 있었다. 그 수많은 돈대가 지키고자 한 것은 일차적으로 왕의 목숨이었고 그 다음은 정족산 사고에 보관된 실록을 비롯한 보물들이었다. 한강을 거슬러 서울로 진격하려는 적을 막는 방패 역할도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든 요새들이 완성된 것은 조선왕조가 마지막 숨을 헐떡이던 고종 때에 이르러서였지만, 그 이전부터도 강화도는 역대 왕들의 ‘믿는 구석’이었다. 초지대교 북쪽, 섬에서 가장 볼만한 진지인 광성보에서 바라본 바다는 매섭고 빠르다. 김포 해안이 손에 잡힐 듯 보임에도 불구하고 좁고 빠른 물길이 주는 심리적 거리는 가깝지 않다. 고려 때 삼별초는 이 수벽에 의지해 몽고에 오랫동안 저항했다. 1627년 정묘년에 조선왕 인조도 이곳에 들어앉아 대륙의 패자 후금에 머리를 조아리길 거부했다. 국토를 전부 내어주고도 이 한 뼘의 땅과 왕의 머리만 지키면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던 그들은 가련한 몽상가들이었다. 그 가련한 착각 덕에 강화도는 전란을 일단 피했지만, 9년 후에 다시 돌아온 청나라는 강화로 가는 길부터 막고 왕을 압박했다. 그 결과는 모두 아는 대로다. 오래지 않아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걸어 나와 이마를 땅에 짓찧으며 청에 굴복했다. 

 

거대하고 잘 생긴 고인돌의 모습. 강화도는 대표적인 고인돌 분포지다

 

광성보에 있는 용두돈대는 강화에 남은 요새들 중에 가장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용두라는 이름은 용의 머리처럼 바다로 튀어 나왔다 해서 붙여졌다. 용두돈대는 이 섬을 지키는 제일선이었다. 신미양요 때 어재연 장군은 200명의 부하들과 함께 이곳에 목숨을 바쳤다. 광성보와 용두돈대 앞바다는 손돌목이라고도 불린다. 정묘호란 때 강화로 피신하던 인조가 이 거친 물길에서 자신을 안내하던 뱃사공 손돌을 의심해 죽인 뒤부터 그렇게 불린다. 백성들을 뒤에 두고 도망가던 왕의 강박은 순박한 사공의 언행조차 믿지 않았다. 나라를 적의 손에 내맡기고 목숨만 부지하던 왕이라도 그 서슬은 그토록 시퍼랬다. 햇빛을 받아 따끈한 모형철포가 가리키는 방향에 흐느끼듯 물보라가 인다. 죄 없는 손돌의 죽음에 관한 그 이야기는 김훈소설 ‘남한산성’에 예조판서 김상현이 송파나루에서 자신을 건너게 해준 사공을 베는 장면도 떠올리게 한다.

 

강화도 남쪽의 작은 섬인 동검도 앞바다는 붉은 칠면초가 장관을 이룬다

 

강화도 바닷가를 따라 

광성보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해안도로를 달리면 섬 남쪽 끝에서 동검도를 만난다. 큰 섬과 작은 섬을 잇는 둑길 양쪽 갯벌은 빠져나갔던 바닷물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갯벌은 멀리서 반짝거리며 돌아오기 시작하는 밀물을 시뻘건 함성으로 환영한다. 붉은 물결의 주인공은 자라면서 녹색에서 자주색으로 색깔이 일곱 번 변한다는 칠면초다. 순천만을 핏빛으로 물들이기로 유명한 바로 그 풀이다. 칠면초로 뒤덮인 갯벌은 낙조가 지는 하늘 이상으로 붉다. 하늘이 끝없이 뻥 뚫린 우주공간으로 이어지지만 않았다면,  아마도 저 붉은색이 하늘에도 반사되어 되돌아 왔을 것이다. 물에 비친 붉은 노을이 아니라 하늘에 비친 붉은 갯벌이 되었을 것이다. 

 

썰물 때의 동막해수욕장은 푹신하고 부드러운 거대한 놀이터가 된다

 

동검도 앞 붉은 갯벌은 그렇게 대낮에도 푸른 하늘을 압도한다. 섬을 돌아 나와 서쪽으로 가는 길에는 시원한 여름 계곡 함허동천과 강화도 유일의 해수욕장인 동막해수욕장이 차례로 나온다. 주말이면 이곳도 여름 휴가철 분위기처럼 북적 된다. 서해안의 해수욕장답게 동막해수욕장도 썰물 때면 끝없이 펼쳐지는 갯벌이 장관이다. 발목을 쭉쭉 잡아끄는 부드러운 뻘은 아무리 세게 밟아도 아프지가 않다. 아이들이 먼저 그 부드러움을 알아보고, 옷 버릴 걱정에 쭈뼛거리는 어른들을 제쳐 두고 온몸을 내던진다. 마음 놓고 뻘 위에 뒹구는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이곳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바라보는 전등사 대웅보전도 아름답다

 

해안선을 따라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도 섬 여행의 독특한 재미인데, 여행이 시작되었던 초지대교로 돌아가는 길에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등사에 들렀다. 입구 역할을 하는 삼랑성에서 절 앞마당까지의 멋진 숲길이 인상적인 절이다. 이 숲길은 천년이 넘는 나이를  가진 절과 그보다도 더 오랜 나이를 가진 것으로 짐작되는 성 사이를 아주 오랫동안 이어 왔다. 그러니 길도 자연스럽고 길 양편의 나무들도 자연스레 길을 품어 안았다. 비와 바람에 오랫동안 닳아서 산의 일부가 되어 버린 듯한 삼랑성도 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 해서 삼랑성이란 이름을 받았다고 하는 데 그것을 증명할 길은 없다. 산술적 증명이 꼭 필요치는 않다. 돌 하나하나에 깃든 세월의 흔적만으로도 이성은 아름답고,  아름다움을 논할 때 진짜 나이는 중요치 않은 법이다.

 

전등사 대웅전의 네 귀퉁이를 지탱하고 있는 나부상. 대웅전 중수를 맡았던 도편수가 아랫마을 주모와 눈이 맞아 함께 살게 되었지만, 도편수가 가져다주는 돈만 들고 도망을 친다. 이에 상심한 도편수가 주모의 형상을 나부상으로 만들어 끼워 넣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더러미장어마을의 장어 보양식

강화도는 인삼과 타박타박 씹히는 맛이 독특한 순무, 바닷가에서 나는 해산물 등이 유명한 고장이다. 그 중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축 처진 몸을 회복시키는데는 장어구이가 아닐까? 강화도도 서해안의 여느 지방 못지않은 장어 서식 환경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강화 앞바다에 끝없이 펼쳐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갯벌은 육식성인 장어에게 먹이가 될 만한 새끼물고기와 게 등이 풍부하다. 수도권 최대 규모의 장어마을인 더리미 장어마을이 생긴 것도 이런 서식 환경에서 잡히는 맛좋은 장어 때문이었다. 장어는 힘이 센 동물이다. 양손으로 꾹 누르고 있으면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양 어깨까지 전달된다. 그 힘이 장어구이를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장어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힘을 더욱 잘 축적한다. 그래서 한강의 민물과 서해의 바닷물이 만나는 강화도 앞바다에서는 힘센 장어가 많이 났다. 장어구이만 전문으로 하는 마을이 들어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숯불 위에서 초벌구이를 한 장어 맛은 남다르다. 한 번 구운 장어를 이렇게 특별한 양념장에 찍어 다시 한번 굽는다

 

흔히들 장어(주로 장어 혹은 민물장어로 불리지만 정확한 명칭은 뱀장어다)하면 풍천장어라고들 말한다. 그래서 서울에 있든 지방에 있든 장어구이를 하는 집은 풍천이라는 간판을 즐겨 달고, 사람들도 구이집을 찾을 때 “이거 풍천장어 맞죠?”하고 묻는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만한 말이지만, 이 풍천장어가 풍천이라는 지방에서 잡히는 장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풍천(風川)이란 말은 사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을 통칭하는 말이다. 그러니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이면 일단 모두 풍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바닷물과 민물의 상대적인 농도라든지 바닷물이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거리 등에 따라 장어에게 가장 알맞은 서식환경은 따로 있다. 예컨대 전북 고창이나 전남 강진 일대는 환경적인 면에서 최고의 장어 서식지 중에 하나로 꼽힌다.

 

한 번 구운 장어를 특별한 양념장에 찍어 다시 한번 굽는다

 

장어의 넘치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영양학적인 면을 따지고 들기 전에 장어의 습성과 일생을 살펴보면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장어는 아직까지도 자세한 생태가 밝혀지지 않은 물고기다. 멀리 필리핀 근해의 깊은 바다에서 유생의 형태인 ‘렙토세팔루스’로 부화한 장어는 실뱀장어의 상태로 무려 6천여 킬로미터를 헤엄쳐 올라와 강으로 들어선다. 인공 부화는 불가능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식 장어는 이렇게 바다에서 강으로 들어오는 실뱀장어들을 잡아 수년간 몸집을 불린 것을 말한다. 그렇게 수년간을 민물에서 산 뒤 다시 바다로 돌아가 수백만 개의 알을 낳고 죽는 것이 장어의 일생이다. 겨우 눈에 띌까 말까한 치어의 상태로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치는 저력과 민물과 바닷물을 오가며 생활하는 적응력이 장어의 강인한 생명력의 원천이 아닐까 싶다.

 

초벌구이가 끝난 장어는 먹기 좋게 썰어 테이블에 올려 진다

 

강화대교에서 해안을 끼고 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찾을 수 있는 더리미 장어마을은 오래 전부터 장어구이에만 특화된 식당들이 모여 영업을 해 왔다. 마을 초입에 있는 별미정은 그 중에서도 터줏대감 격이라 할 만한 곳으로, 장어구이 단 하나의 메뉴로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인기를 끌어 왔다. 이 집은 주말이면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30분 이상 빈자리를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특별한 인기의 비결에 대해 초벌구이와 양념장이라 한다. 고소한 향을 내며 보기 좋게 익어가는 장어를 보자 벌써 군침이 돈다. 장어를 한 번 뒤집자 지글거리는 흰 살이 식욕을 더욱 자극한다. 조바심에 이성을 잃어가는 기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인은 여러 이야기를 곁들이며 장어를 굽고 또 굽는다.

 

이렇게 구워진 장어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접시에 담은 뒤 테이블에 올려 진다. 테이블 위에서 한 번 더 불 위에 올려 취향에 따라 구워먹는 것이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장어 본래의 맛을 즐기려면 초벌구이 된 장어를 그대로 구워 소금에 찍어 먹으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매콤달콤한 소스에 장어를 푹 담근 다음 다시 익히면 된다. 빨간 양념이 듬뿍 담긴 커다란 사발은 별미정의 또 다른 맛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그릇이다. 어느새 양념을 발라 구운 장어가 다 익었다. 간장 소스에 찍어 입으로 가져가니 ‘과연’하는 탄식이 나온다. 고소한 장어 고유의 맛과 양념 맛이 서로 기가 막히게 호응한다. 장어의 느끼함을 무마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맵고 씹는 쾌감과 식욕을 충분히 자극할 만큼 부드럽고 달다. 주말마다 줄을 잇는 손님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 자세한 내용-2020년 10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