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노르망디의 해변 곳곳에는 당시 상륙작전에 사용되었던 잔해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Normandie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는 노르망디의 기록

수없이 많은 생명을 앗아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무대 노르망디. 그곳 사람들은 그 수많은 전쟁의 흔적들을 여전히 남겨놓고 있다.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다시는 그 땅이 전쟁의 상처로 얼룩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처절했던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글과 사진 전준호 기자

 

1944년 6월 6일 새벽, 프랑스 북부의 노르망디. 아름다운 해안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이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상륙작전이 시작된다. 작전명은 오버 로드. 미국과 영국 연합군에서 15만 명의 젊은 군인들이 투입된 이 작전은 전술적 기습효과를 가져오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기념비적인 역사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젊은 군인들은 그들의 생명을 바쳐야했다. 그리고 전쟁의 상흔은 76여 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오늘까지도 노르망디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전사자들의 신상정보와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 국립디데이박물관

 

잊지 말아야 할 그날, D-DAY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기차를 이용, 2시간을 달려 노르망디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해안가를 따라 유럽풍의 크고 작은 집들이 있는 노르망디는 파리보다 약간 더 따뜻하고 비가 많이 오는 곳이어서 곡물과 사과가 많이 재배되고, 목축도 발달되어 있다. 말 그대로 작고 한적한 이 시골도시를 걷다 보면 마치 아주 거대한 전쟁 박물관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버릴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수없이 많은 전쟁 박물관이 세워져 있을 뿐 아니라 노르망디 전체에 해안 포대, 벙커 등을 그대로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많은 전쟁 박물관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국립 디데이 박물관(National D-day Museum)이다. 이 박물관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바다 한가운데에 건설되었던 방어벽과 부교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해안가 옆에 지어져 있다. 

 

전사자들의 신상정보와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 국립디데이박물관

 

박물관 앞에 서서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리니, 정말로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눈에 띈다.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큰 콘크리트 덩어리의 이름은 피닉스. 상륙작전 당시 연합군이 건설해 놓은 방어벽이다. 모래사장 곳곳에는 부교 조각들도 남아 있는데, 당시 해안까지 상륙할 수 없었던 군함에서 모래사장까지 군인과 자동차를 이동시키기 위해 건설한 부교의 일부분이다. 

이들은 모두 모형을 복원해 놓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당시에 사용되었던 것들이다. 박물관 안에서도 커다란 유리 창문을 통해 이 광경을 마주할 수 있는데, 창문 밑으로 당시 부교와 방어벽, 군인들의 이동 광경을 완벽하게 재현한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비행기에서 낙하하는 모습과 상륙하는 군인들의 당시 상황을 재현해 놓은 박물관의 모형

 

수없이 많은 군인들이 해안가로 상륙하던 장면을 그려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 발걸음을 옮기며 당시 군인들이 가지고 있던 돈이나 사진, 편지 등 여러 가지 물품을 둘러보니 당시의 모습이 떠오른다. 총과 대포 등 각종 무기 뿐 아니라 독일군 레이더에 잡히지 않기 위해 비행기에 덧씌웠던 알루미늄 페이퍼도 전시되어 있으며 당시 사용된 막사나 자동차가 그대로 복원되어 있기도 하다. 

전시된 물품 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1천 파운드 무게의 포탄. 당시 이 포탄이 1만 개가 넘게 투하되었다고 하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박물관 내부의 작은 극장에 들어서니 상륙작전에 참여했던 한 군인의 증언에 의해 재구성된 디데이(Dday)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글자막이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당시 상황을 영상으로 접해볼 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흔적이 76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작은 박물관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가장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오바마 해변의 백사장 한 가운데에는 그날을 기억하는 조형물이 외롭게 서 있다. 아까운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을 기억하면서 

 

하늘의 별이 된 이들과 마주하다

박물관을 나서 미군 전사자들의 묘지를 찾았다. 가는 도중에도 곳곳에서 독일군 벙커와 대포들을 계속 만날 수 있었는데, 현재 노르망디 곳곳에 약 20여 개의 대포와 수없이 많은 벙커가 남아있다고 한다. 실제로 들판 곳곳에 불쑥 솟아 있는 덤불 속을 들여다보니, 두 명은 족히 들어 갈만한 구멍이 눈에 띈다. 독일군이 만들어놓은, 말 그대로 작은 벙커다. 

그들의 흔적을 뒤로 하고 미군 묘지에 들어서니 도무지 끝을 찾을 수 없는 하얀 비석들이 줄지어 서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모두 다섯 군데 해변에서 진행되었는데, 그 당시 암호명이 유타와 오마하, 골드, 주노, 스워드였기 때문에 현재까지 오마하 비치, 유타 비치 등으로 불리고 있다. 당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난 곳은 오마하 비치였는데, 이곳에서 작전을 펼친 군인들이 바로 미군이었다. 결국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는 했지만 독일군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던 데다가 당시 미군이 해안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부터 상륙을 진행했기 때문에 군인들은 긴 시간 동안 파도와 포격에 노출되었다. 

게다가 오마하 해변이 가파른 지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진입이 쉽지 않아 수없이 많은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피하기가 어려웠다고. 이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전사자들이 바로 당시 희생된 미군들이다. 프랑스가 미군 전사자들을 위해 제공한 땅으로, 프랑스 내에 있는 미국 영토인 이 공동묘지에는 모두 9,387명의 전사자와 끝내 시신을 찾지 못한 1,557명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 

 

한적한 노르망디의 해변에 여름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강렬한 태양과 해수욕을 즐긴다. 하지만 불과 22년전 까지만 하더라도, 이 평화로운 해변에는 전쟁의 잔해가 너무 많아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국립디데이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만들어진 안내책자가 있다 

 

별모양의 유대인 비석과 십자가 비석은 모두 미국이 있는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잘 정리된 파란 잔디 위에 줄지어 서서 조국을 바라보고 서 있는 비석의 물결을 눈 속에 담으니 그저 경건해질 따름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많은 사람들과 마주쳤지만 누구 하나 웃고 떠드는 사람은 없다. 

경건한 마음을 가졌으면 이제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만날 차례다. 이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묘지 입구에 세워져 있는 비지터 센터. 이 센터에서는 훈장을 받은 사람들이나 고위직 군인들, 사병 개인의 이야기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만나볼 수 있다. 전사자들의 유품과 다양한 영상물이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고 컴퓨터에 전사자의 이름만 입력하면 그 사람에 대한 각종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수많은 미군 전사자들의 묘지가 가지런히 줄 서 있는 공동묘지. 이들의 비석은 모두 조국인 미국을 향해 서 있다. 뿐만 아니라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관련된 각종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어 작전 현장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비지터 센터에서는 또 전사자들의 이름을 끊임없이 낭독하는 방송을 통해 그들의 희생을 기리고 있다. 

비지터 센터를 나오면 오마하 비치가 눈에 가득 들어온다. 해변 중앙에 서있는 상륙작전 60주년 기념조형물이 이곳이 오마하 비치임을 알려주고 있는데 이조형물이 없다면 예쁜 집들이 줄지어 선 그저 평화롭게만 보이는 바닷가다. 이곳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지만 상륙작전 후 10년간은 당시의 잔해가 바다에 너무 많이 남아 있어 바닷물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하니 그 상황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여름마다 이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국립디데이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만들어진 안내책자가 있다 

 

상처의 흔적이 고스란히, 라 포인트 뒤 혹 오마하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라 포인트 뒤 혹. 이곳에서는 당시 전투가 얼마나  치열하게 벌어졌는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라포인트 뒤 혹에서 연합군의 상륙작전이 시작된 것은 6월 6일 오전 7시 10분이다. 225명의 미군 유격대가 포인트 뒤 혹에 위치한 30미터 높이의 절벽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바다 위 군함을 공격할 수 있는 독일군의 거대한 대포들이 집중되어 있어 상륙할 연합군에게 엄청난 희생을 입힐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보병부대가 상륙하기 전, 연합군은 수없이 많은 폭탄을 이곳에 투하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에 독일군의 벙커와 대포들은 여기 저기 부서지고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고, 그 모습이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투하된 폭탄들은 벙커가 없는 땅에도 상처를 입혔는데, 여기저기 움푹 파인 곳이 셀 수 없이 많아 평평한 곳으로 걷기가 어려울 정도다. 라 포인트 뒤 혹을 탈환하기 위해 이틀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하는데, 이곳을 탈환한 것은 연합군에게 값진 수확이었다. 그러나 이미 100여명의 사망자와 60여 명의 부상자를 낸 후였다.

 

당시 사용되었던 거대한 대포는 아직도 노르망디, 그 땅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다

 

전쟁의 기록은 그대로 살아있다

노르망디를 돌아다니다 보면 전쟁의 현장과 조우할 수 있다. 2,500여 대의 수송기가 실어 나른 군인들과 글라이더를 이용한 공수부대, 포탄을 실은 13,000여 대의 비행기와 6,000여 척의 함선이 투입된 상륙작전이었으니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터. 각종화기, 통신 및 관측 설비들이 전시되어 있는 벙커와 해안 포대를 보존해 놓은 메르빌, 노르망디 동부지역 상륙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페가수스 다리 탈환 작전이 진행된 페가수스 다리와 기념관인 메모리얼 페가수스 등 전쟁과 관련된 흔적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게다가 길 곳곳에 남아 있는 참호들까지. 물론, 노르망디에서 전쟁 관련 기념지들 외에 방문할 곳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진-12

상륙작전 당시 떨어졌던 포탄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라 포인트 뒤 혹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이외와 같이 기적적으로 전화를 입지 않아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지역도 있다. 노르망디 지역 전체에 퍼져 있는 작고 예쁜 집들과 시내는 프랑스의 시골 정취를 느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기도 하다. 그렇지만, 노르망디에서 전쟁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흔적이 너무 많아 어려운 것이 아니라 역사가 계속되는 한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르망디라는 이름 자체가 과거의 역사이자 현재에도 역사인 것처럼.

<더 자세한 내용-2020년 10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