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서쪽으로 아드리아 해를 끼고 길게 이어지는 크로아티아는 해안지역 어느 곳이라도 모두 아름답지만 남쪽의 두브로브니크와 그 일대는 아드리아의 진주로 불리며 사랑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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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다의 향기, 아드리아

아드리아 해의 진주, 아드리아 해의 보석, 조지 버나드 쇼가 극찬한 낙원. 크로아티아를 수식하는 어구는 다양하다. 산세가 수려하고 물이 맑은 어느 곳이라도 그런류의 찬사는 따라오게 마련이지만 아드리아 해 깊숙한 곳에서부터 지중해와 교차되는 곳에 이르기까지 아드리아 해를 끼고 길게 이어지는 크로아티아에 발 딛고 선다면 굳이 부연 설명 없이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왜 그토록 찬사해 마지않는지.

글과 사진 전준호 기자 취재협찬 크로아티아관광청 www.htz.hr

 

발칸반도 중간 쯤 크로아티아가 있다. 북으로는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동과 남으로는 헝가리 세르비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까지 동유럽의 많은 나라와 살을 맞대고 있지만 초승달 모양 혹은 거꾸로 엎어 놓은 기역 ㄱ자 모양의 국토 서쪽으로는 온전히 아드리아 해를 끼고 있는 축복 받은 나라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지중해성 기후를 띠는 해안지역은 어느 곳이든 아름답지만 ㄱ자의 끝부분에 해당되는 남쪽의 두브로브니크Dubrovnik)는 수도 자그레브보다 더 인기가 높은 아름다운 성곽도시이다. 중세에 세워진 성벽이 아직도 손상되지 않은 모습으로 올드타운을 감싸며 굳건하게 서 있고 올드타운의 붉은 지붕 집들과 성벽 너머로 보이는 아드리아 해의 푸른 바닷물의 절묘한 조합은 누가 보아도 감탄을 숨길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두브로브니크를 향해 샘솟는 관심은 잠시 접어두시길. 이 지면은 두브로브니크가 아닌 두브로브니크를 더욱 빛나게 하는 아드리아 해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므로.

 

아드리아 해 탐험에 나서다

두브로브니크에서 10분쯤 떨어진 한 선착장에 섰다. 운 좋게도 보트를 얻어 타고 아드리아 해로 나설 기회가 생긴 것. 크지 않은 보트였지만 무릎을 맞대고 나란히 앉아도 그리 불편하지 않은 서너 명이서 오붓하게 항해하기엔 딱 좋을 사이즈다. 스키퍼가 보트와 항구에 각

각 한쪽 발을 딛고 선채 살살 보트의 방향을 돌리다 항구를 한번 밀어내자 보트가 바다 쪽으로 성큼 밀려 나온다. 크로아티아 앞 바다 아드리아 해에는 우리나라의 서해안처럼 크고

작은 섬들이 수도 없이 솟아 있다. 북쪽으로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이루는 이스트라반도에서부터 아드리아 해와 지중해가 교차 되는 남쪽의 두브로브니크 인근까지 치자면 유·무인도를 합해 천여 개가 넘는 섬들이 있다 하니 정확한 숫자를 헤아리기도 힘들다. 두브로브니크 인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코르출라Korcula) 섬으로 동방 원정을 떠났던 오리지널 모험가 마르코폴로의 집과 올리브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지금 보트가 향해 가는 곳은 세인트 안드리아St. Andrea) 섬 출발하며 이름만 들었지 어느 곳인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는 상태다. 

 

항구를 빠져나온 보트는 두브로브니크와 북부를 잇는 긴 다리를 오른편으로 지나치고 점점 더 망망한 바다로 나가고 있다. 그렇게 30분쯤 갔을까. 무릎을 붙인 채 멀뚱히 앉아 있기를 그만 두고 뱃머리로 나가 앉았다가 이내 뒤로 누워 버렸다. 아래층 선실에 침대와 소파도 있는 데 굳이 위험한 뱃머리에 누워 있으려니 적당한 스릴과 함께 엔진이 온몸으로 느껴져 덜덜 흔들리지만 그에 익숙해지면 이내 바다의 결이 등부터 전해져 온몸으로 퍼진다. 뱃머리가 파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배가 움직일 때마다 누운 몸이 함께 넘실넘실 한다. 얼마나 왔을까. 스키퍼가 손가락 끝으로 바다 저쪽을 가리켰다 취재팀과 동행했던 프랑스인 포토그래퍼가 벌떡 일어나 카메라를 든 것도 이 무렵이다. 누군가 한 짝 흘리고 간 듯한 슬리퍼를 닮은 섬에 점점 가까워지자 무인도 같아 보이는 이 섬에 뭐 볼게 있다고 왔나 싶다. 꼭 대기에 등대만 하나 덩그러니 서 있을 뿐 인기척도 없던 섬에 내려 어슬렁거리려니 나무 틈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보인다. 스키퍼가 저 사람이 섬의 등대지기라고 일러주며 영어를 못하지만 섬을 구경시켜 줄 것이라고 따라가 보란다.

 

조개껍질이 가지런히 박힌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섬 정상에는 등대가 있는 작은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등대지기와 그의 아내가 머무는 작은 섬이었던 것이다. 3층의 등대로 올라가니 60도로 확 트인 공간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온통 푸른 아드리아 해가전부다. 무섭기는 커녕 청명한 햇살과 더 청명한 공기를 마시느라 심호흡을 하며 한참을 서 있으려니 등대지기가 내려가자는 손짓을 한다. 찌지직거리는 TV와 스프링이 삐죽 솟아 나온 오래된 소파 아귀가 맞지 않는 서랍장. 비닐로 대충 위를 덮은 나무탁자가 살림의 거의전부인 작은방에 들어가 앉아 있으려니 등대지기의 아내가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꺼내온다. 유리컵 가득 오렌지 주스를 따라주며 마시라는 눈짓을 하더니 “카파”한다. 아마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그 좋아하는 커피를 못 마시는 일은 없을 테다. 커피 아니면 카페 그 비슷한 단어로 거의 통하니 못 알아들을 래야 모를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작은 부엌으로 들어가 뚝딱 커피를 끓여 나온 아주머니는 의자에 앉아 또 벙긋이 웃고만 있다. 출장이건 여행이건 어느 곳에서도 간단한 영어는 통했던 것 같은 데 이처럼 소통이 안 되기도 처음이다. 난생처음 접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기분으로 연신 벙글벙글 웃기만 하다가 돌아왔는데 두브로브니크에서의 일정을 회상하며 원고를 쓰는 지금 왜 그 등대지기부부가 유독 기억에 남는 지모를 일이다.

 

등대에 올랐다가 방에 잠시 앉아 차 한 잔 마셨을 뿐인데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부지런히 선착장으로 내려가 대기 중이던 보트에 오르니 등대지기 아저씨가 출항 준비를 도와준다. 묶어두었던 밧줄을 풀어 배 위로 휙 던져 주고선 손을 흔들며 뭐라 뭐라 외치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나 원. 꿀 먹은 벙어리 기자가 할 수 있었던 거라곤 열심히 손을 흔들며 그저 씨익 웃어주는 수밖에.

 

1천여 개 이상의 크고 작은 섬들이 솟아 있는 아드리아 해에서는 보트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며 그 경치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올리브와 시 푸드의 담백한 만남

배를 타고 다시 30분쯤 두브로브니크 앞 바다의 많고 많은 섬 중 어딘가에 닿았다. 사실 두브로브니크에 닿은 이후, ‘예쁘다’라는 감탄사가 그치질 않고 있었기에 더 이상 새로운 풍광을 봐도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눈 돌리는 곳 마다 놀랍고, 아직 보지 않았어도 감동이 그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역시 파란 바다를 건너 물빛이 초록색으로 변할 때 쯤, 바다에서부터 오목하게 패인 만으로 접어 들어 배를 대고 섬으로 올라섰다. 점심식사를 위해 들른 이곳은 시판(Sipan) 섬. 취재팀을 픽업하러 나온 레스토랑 주인의 낡은 지프를 타고 나지막하지만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올라 반대편의 경사를 향해 내려갈 때 쯤 또 한 번 감탄사가 터진다. 물론 등대지기가 지키고 있을 뿐인 세인트 안드리아 섬보다는 훨씬 크지만 두브로브니크에 비하면 작고 아담한 이 섬마을에는 ‘아기자기’란 수식어가 꼭 어울린다. 아기자기한 항구와 언덕이 있는 시판 섬에는 호텔도 있고 민박도 있지만, 코르출라 섬만큼 유명하지 않아 그런지 한적하다.

 

 

바닷가 선착장과 거의 맞닿아 있어서 가만히 있으면 마치 배를 탄 기분이 되어 몸이 일렁이는 듯한 착각이 드는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으려니 섬의 앞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 요리가 속속 테이블로 옮겨진다. 싱싱한 토마토와 올리브 모짜렐라 치즈에 올리브유를 살짝 끼얹고 파슬리 가루를 뿌려 내는 샐러드, 잘게 자른 오징어를 올리브와 함께 조리한 메뉴에 이어 올리브유를 뿌려 통으로 익힌 오징어 그리고 오븐에 바삭하게 구워낸 생선까지 그야말로 해산물로만 구성된 풀코스 요리로 성대한 런치가 차려졌다. 게다가 이곳의 음식은 맵거나 짠 양념 없이 인근 코르출라 섬에서 나는 신선한 올리브로 만든 올리브유만을 소스로 써서 그런지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올리브를 좋아하지만 가끔 아주 시거나 짠 올리브에 허를 찔린 적이 있는지라 샐러드에 얹힌 올리브를 조심스레 베어 물려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 담백하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웬만한 해산물은 다 좋아하지만 유독 꺼리던 것이 오징어였는데, 올리브유가 원인인지 오징어 종이 다른 건지, 시판 섬에서 먹는 오징어는 그렇게 연하고 부드러울 수가 없다. 호밀빵을 조금씩 뜯어 오징어 요리에 쓰이고 남은 올리브유를 찍어 먹는데도 비리기는커녕, 담백하고도 고소한 그 맛에 감동하며 썩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냈다. 다시 낮은 언덕을 넘어 보트가 대기 중인 선착장으로 향한다. 관광객을 가득 태운 바이킹선 모양의 배가 항구를 막 벗어나고 있고 슬로베니아에서 이곳까지 요트를 타고 왔다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배에 걸터앉아 맥주를 마시며 여자들만큼의 수다를 풀어내고 있었다. 이제 다시 보트에 올라타고 예쁘게 출렁이는 파란 바다를 건너 오밀조밀 붉은 지붕의 집들이 기다리는 두브로브니크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싱싱한 아드리아의 숨결

하루 종일 두브로브니크 인근의 섬을 돌며 바닷길 위를 떠돌았던 다음날, 다시 한 번 길을 나섰다. 이번엔 섬 대신에 바다를 옆에 끼고 해안 도로를 따라가다가 닿는 작은 어촌마을 스톤(Stone)이 그 목적지. 두브로브니크 일대에 공급되는 굴과 홍합이 재배되는 곳이기도 한데, 스톤에서 생산되는 굴과 홍합은 크로아티아에서도 최상품으로 손꼽힌다. 1킬로미터 남짓 이어지는 스톤의 아담한 성곽이나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지금까지도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천연소금을 생산한다는 염전 이야기는 차치하자. 스톤의 아이콘은 누가 뭐래도 아드리아 해의 생명력 넘치는 기운을 가득 머금고 자라는 굴과 홍합 아니던가. 실제 스톤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굴과 홍합을 비롯한 해산물 양식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아드리아 해의 크고 작은 섬들이 안전한 장벽 역할을 해 바다에 풍랑이 일거나 태풍이 와도 양식장이 있는 항구와 만 주변에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뿐더러, 아드리아 해와 지중해가 교차되는 지점인 까닭에 지중해성 기후를 띠는 이 지역은 여름에도 기온이 그리 높지 않아 해산물을 양식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췄다. 조금이라도 중심을 잃으면 금방 뒤집힐 듯한 작은 배에 올라타고 양식장을 한 바퀴 돌았다. 제법 깊은 곳까지 나갔는데도 여전히 투명한 바다 저 아래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앙증맞은 성게와 게의 움직임까지 투시되는 바다를 지나자 그제서야 물빛이 짙은 청록으로 변하고 바다 여기저기에 세워둔 긴 나무 막대로 양식을 구분해 놓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굴이나 홍합 모두 제대로 키워 내려면 3년가량이 소요된다. 한 명이 타야 편하게 작업할 수 있을 듯한 작은 모터보트를 몰던 양식장 주인이 이제 막 양식을 시작한 어린굴과 1년, 2년 자란 굴을 차례로 보여주더니, 마지막으로 이제 곧 수확을 앞둔 3년산 굴을 건져 올렸다. 밧줄로 연결된 망에 가득 차도록 자란 굴이 배로 올라오자마자 물을 뱉어내니 그제서야 바다의 짠 내가 물씬 번진다. 굴을 하나 따든 주인은 주머니칼을 꺼내 익숙한 솜씨로 겉껍질에 붙은 이물질을 슥슥 긁어 제거하고는 껍질을 갈라주며 먹어 보라고 내밀더니 아까운 줄도 모르고 연거푸 몇 개씩이나 껍질을 까준다. 주인이 가르쳐 준 대로 굴을 껍질채 입에 대고 빨아들이듯 먹고선 남은 껍질은 바닷물에 퐁당 던져 넣었다.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짭조름한 굴을 물에 씻지도 않고 네댓 개나 먹고 나자 그제서야 껍질이 납작하게 생긴 독특한 굴의 생김새도 눈에 들어온다. 실제로 해산물을 먹으려고 스톤에 왔다가 생굴을 사서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는데, 그 만큼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다시 뭍으로와 두브로브니크에 돌아가기 전까지의 행적은 익히 상상하는 대로다. 싱싱한 아드리아의 맛을 지면에 전하기 위해 레스토랑에 앉아서는 이제 레몬까지 곁들여 나오는 생굴과 해물 수프로 애피타이저를 대신한 다음, 오징어 먹물 파스타와 갖가지 해물로 간을 한 리조토, 통통한 속살의 킹프라운 찜까지 맛봤는데 아직 선보일 음식이 더 남았다기에 결국 중도에서 ‘스톱’을 외치고선 돌아 나오고 말았다. 기원전부터 운영되었다는 스톤 염전에서 생산된 천연소금을 선물로 받아 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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