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lltribe People in Thailand

 

반짝이는 미소를 지닌 그네들의 삶, 태국 치앙라이

마치 우리나라의 60년대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쌀, 옥수수, 조 등을 주식으로 삼으며 농사를 짓는 그들이 그렇고, 그네를 뛰며 노는 모습이 그렇다. 태국 북부 지방 치앙라이의 산악마을에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키며 순박하게 살아가는 고산족 사람들. 과거 마약으로 얼룩졌다는 불온한 기운은 도무지 찾을 수 없는 티없이 맑은 모습이었다.

 

글 편집부 사진·뚜르드몽드 포토 취재협찬 태국정부관광청 서울사무소 www.visitthailand.or.kr

 

이렇게 아름다운 땅이 아편으로 얼룩진 곳이었다니, 치앙라이의 고산마을로 가는 길에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언뜻 상상이 되지 않았다.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가 만나는 삼각주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은 과거 세계 제일의 마약 제조창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었다. 이 지역 깊숙한 산속에 여러 부족이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는 거주지에는 과거 마약과 내전, 코끼리 가득 양귀비를 싣고 다니는 이들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곳에 더 이상 마약은 없다. 대신 아름다운 풍광과 그 속에서 차와 옥수수, 벼 등을 재배하며 소박하게 자신들의 삶을 고수하는 이들이 살고 있을 뿐이다. ‘까르르’, 행복한 듯 웃는 그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혹 과거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고 이곳을 찾는 이방인을 머쓱하게 만들만큼 빛나고 있었다. 과거는 지우고 오늘날의 그들을 만났다.

 

높은 산에 사는 사람들

고산족(高山族). 말 그대로 높은 산에 사는 사람들이다. 태국 북부의 산악 지역에는 카렌족(Karen), 아카족(Akha), 라후족(Lahu), 야오족(Yao), 리수족(Lisu) 등 55만 명이 넘는 9개 부족의 고산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원래 중국과 티베트, 미얀마, 라오스 등지에서 살다가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혹은 전쟁 당시 적을 피해 최근 1백~2백 년 사이에 태국으로 이동해 온 사람들이다. 고산족마다 각기 다른 독특한 언어와 영혼숭배사상을 지니며 자신들의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는 데, 모든 이들을 만나볼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일행이 찾은 곳은 치앙라이 북쪽의 아카족 마을인 반 로차(Ban Lorcha)다. 혹시 태국 북부를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머리에 흰 구슬이 달린 모자를 쓰고 은세공 장식이 유난히 많은 차림새의 사람들을 본 적이 있을는지 모른다. 이들이 바로 아카족으로 원래 중국 남부 지방에 살다가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미얀마와 태국 북부, 라오스 지방으로 쫓겨나 흩어져 살고 있는 민족이다. 카렌족, 몽족, 라후족 다음으로 그 수가 많은 고산족으로 아카족의 약 85퍼센트가 치앙라이에 살고 있다고 한다.

 

 

원래 이들은 1천 미터 이상의 깊은 산 속에 각기 흩어져 생계를 위해 주로 양귀비를 재배하며 살았는데 태국 정부에서 아편에 찌든 이들 고산족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생계지원이 시작되면서 점차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1974년 그들 스스로 협회를 만들어 아카족을 위한 관광사업이나 복지사업 등을 벌여오고 있다. 그리고 이의 일환으로 아카족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도록 1977년에 지금의 반 로차가 형성되었는 데, 마을 이름은 이곳을 조성한 ‘아코로차’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딴 것이라고 한다. 총 1.2킬로미터 거리에 관광객들을 위한 다양한 볼거리를 마련해 두고 있는 반 로차 마을. 이들에게는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이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생소하기만 한 독특한 생활방식이기에 혹 관광객들 위해 민속촌 형태로 꾸며놓은 마을은 아닌지 몇 번이고 확인해야 했다.  

따뜻함이 숨 쉬는 그들의 보금자리

마을에 들어서자 전통복장 차림의 가이드가 환한 미소로 이곳을 찾은 이들을 맞는다. 이곳에는 마을 길을 따라 둘러볼 수 있도록 푯말과 함께 12개의 명소를 지정해두고 있는데 각각의 장소마다 영문으로 된 설명이 적혀 있어 혼자서 둘러보기에도 충분하지만 좀 더 상세한 설명을 원하면 가이드를 고용할 수 있다. 가이드를 따라 찾은 첫 번째 장소는 동물을 잡는 덫이 놓인 곳. 수백, 수 천 년간 동물이 가는 방향과 특성을 파악해 만들어진 덫으로 오랜 세월 자연과 함께 살아온 이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바로 옆에는 높다란 그네가 설치되어 있다. 까마득한 높이에 외줄로 걸린 그네는 아카족 마을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 이는 놀이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의식으로 매년 8~9월에 열리는 축제 때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연장자 순으로 그네를 탄다고 한다. 또한 처녀, 총각이 축제 저녁에 함께 그네를 타고 맺어지기도 한다니 우리네의 춘향과 이도령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언덕을 조금 더 올라가면 그제야 아카족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이 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인간세상에 들어온 것으로 마을 밖에는 악령이 살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문 앞에는 귀신을 쫓는 데 사용한 칼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꼭 한 가지 이 문을 통과할 때 주의할 점은 절대로 문을 만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문에 손을 대면 그 문을 새로 지어야 한다니 인간세상에 들어갈 때는 조심 또 조심하자. 문을 들어서면 대장간이 자리한다. 지금은 외부와 왕래가 잦아져 덜 하지만 과거 샤머니즘에 필요한 장비를 만드는 대장장이는 아카족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고 한다. 뚝딱뚝딱 무언가를 열심히 만드는 대장장이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쪽에서 대나무 막대로 바닥을 치면서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도는 전통복장의 아카족 무리가 보였다. 징과 북까지 신나게 두드리는 모습이 알고 보니 이곳을 찾는 이방인을 위한 환영식이었다. 흥겨운 악기 소리에 신이 나서 그들을 따라 빙글빙글 돌면서 그들의 환영인사에 보답한다.

 

마을은 옷을 만들기 위한 직물 짜는 기계, 대만군의 영향으로 세워진 중국식 사원, 관광객을 대상으로 대나무를 엮어 만든 기념품을 판매하는 아낙네의 집으로 이어진다. 마을을 둘러보는 중간, 마을 초입에서 봤던 것과 같은 그네를 또 하나 볼 수 있었는데 마을에서 만난 한 꼬마는 몰려오는 관광객들을 보자 보기에도 아찔한 그 높다란 그네에 올라타 그네타기 솜씨를 선보인다. 많아야 여섯 살이나 됐을까? 꼬마 녀석은 외줄 끝에 한 발만을 얹어 놓고 힘차게 발을 굴러 한참 그네타기를 선보이더니 신발도 신지 않은 발로 ‘쓱~’ 땅에 발을 끌면서 그네를 멈춘다. 그 능숙한 솜씨에 관광객들이 환호하자 이내 부끄러운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자리를 피한다.

 

이곳에서는 아카족의 전형적인 전통가옥을 볼 수 있는데 곳곳에 적지 않게 자리한 현대식 건물과 위성 안테나의 모습이 우리와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임을 증명해 보인다. 아카족의 전통가옥은 목재인 기둥과 비를 막기 위해 지붕에 덮은 갈대를 제외한 모든 것은 대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갈대를 엮는 얇은 줄도 대나무를 베어 얇게 잘라 물에 담가둔 뒤 실처럼 감아 사용하는데 습하고 비가 많이 오는 지역 특성상 다른 재질로 엮으면 쉽게 썩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부에 들어서자 밖은 환한 낮인데도 안은 어두컴컴하다. 이상해서 둘러보니 그제야 창문이 없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부엌에서는 화덕 같은 도구를 이용하여 음식을 하는데 이 때 나는 연기로 인해 천정은 물론 가구까지도 검게 그을려 있었고 집 안에 연기냄새가 진하게 배어나지만 이는 벌레를 쫓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네보다 훨씬 못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짐작하기 쉽지만 곳곳에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터득한 그들의 지혜가, 긴 막대를 이용해 매미잡기에 한창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리고 이방인에게 선뜻 차 한잔 내어주는 따뜻한 마음이 각박한 우리의 삶보다 훨씬 따뜻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평화의 산으로 탈바꿈한 도이 매 살롱

또 하나의 고산마을로, 반 로차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도이 매 살롱Doi Mae Salong을 찾았다. 이런 곳에도 마을이 있나 싶을 만큼 꼬불꼬불 산길을 돌며 덜컹거리는 길을 한참 올라 마을에 들어선 순간, 눈앞에 펼쳐진 또 다른 세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잘 포장된 도로 위로 달리는 트럭과 양쪽에 서 있는 현대식 건물들, 대만 국민당 출신 군인들이 정착한 탓에 마을 곳곳의 중식당과 어지러운 한문 간판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까지 세워져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마을 곳곳을 거니는 목에 긴 링을 겹겹이 하고 있는 카렌족 할머니와 아카족, 리수족의 모습은 현대적인 도시의 풍경과 묘하게 어우러지며 이방인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마을 시내를 둘러본 후 과거엔 국제적인 마약 생산지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도이매살롱차’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차 밭으로 향했다. 조금 전 북적이는 시내와는 또 다른, 산비탈에 끊임없이 펼쳐진 차 밭이 장관을 이룬다. 도이 매 살롱은 북부 지방에서 가장 큰 차 재배지역으로 대만 품종과 경작방법을 그대로 가져와 차를 재배하고 있는 곳이다. 차 재배를 시작하면서 과거 양귀비 재배로 얼룩졌던 과거를 청산하고자 이름도 ‘평화로운 언덕’이라는 뜻의 산티키리Santikiri로 바꾸었다. 그곳에서 만난 어깨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빠른 손놀림으로 찻잎을 따는 농민들, 온종일 따가운 햇볕 아래 일하느라 검게 그을렸지만 미소가 떠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끝도 없이 이어진 차 밭의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한적한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태국 고산족 사람들. 없으면 없는 대로 욕심내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가난한 그들의 삶을 조금은 가엾이 여겼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오히려 그들이 더 많은 것을 갖고 행복하게 살아갈지 모르는데 말이다. 이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이 다시는 과거와 같은 어둠에 빠지지 않고 늘 지금과 같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