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지금의 남편과 무작정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우리는 영국에서 출발해 암스테르담을 거쳐 니스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유레일패스 1등석을 탔는데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의자들을 쭉 펴 놓고 잠을 청했다. 잠이 들 무렵 한 남자가 들어오기에 자리를 피해 다시 잠을 자는데 잠시 후 갑자기 남편이 나를 깨웠다. 남편은 잃어 버린 것이 없는지 확인해보라며 다급하게 나를 흔들었다. 영문도 모른채 잠에서깨 가방을 보니 빨간색 보조가방이 사라져 있었다. 그 안에는 유레일패스, 여권, 비상금 5백마르크 그리고 한국에서 쓸 차비가 들어 있었다. 아차 하는 마음에 밖으로 나가 보았지만 밖은 아무일 없다는 듯 고요하기만 했다. 나는 상한 마음을 안고 자리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잠시 후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나서 뛰어 나가니 남편이 어떤 사람의 멱살을 잡고 싸우며 그 사람의 옷을 뒤지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남편에게 멱살을 잡힌 사람은 처음 우리자리에 들어왔던 바로 그 남자였다.내용인즉슨, 우리 칸에 들어와 우리가 자는 틈을 타 가방을 훔쳐서 나갔던 그 남자가 화장실에서 옷을 바꿔 입고 나오는 것을 남편이 언뜻보고 잡은 것이었다. 그 사람 가방을 열어보니 우리의 빨간색 가방이들어 있었다. 우리는 내용물을 확인하고 승무원에게 그 남자를 경찰에 인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승무원은 오히려 그 남자를 보호하면서 잃어 버린 물건이 없으면 보내주라고 했다. 아무리 팔이 안으로굽는 다지만 먼 이국 땅에서 그런 대접을 받으니 더욱 어이가 없었다. 우리는 너무나 황당했지만 별다른방법이 없었기에 포기하고 다음부터는 철저하게 가방을 관리하기로 했따. 이후로 남편은 절대로 나에게가방을 맡기지 않았고 열차에서는 둘이 함께 자는 일 없이 한 사람씩 보초를 섰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큰 추억으로 남는다. 남편은 그 날을 떠올릴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한다."현선아 나 그 때 멋있지 않았어?"라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