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동네를 산책하듯 자신 있게 잘 걸었다. 그런데 갈수록 거리는 더욱 멀게 느껴지는 데다, 교차로에서는 방향이 헛갈리기까지 했다. 급한 마음에 뛰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5분. 숨이 멎을 듯 차올랐지만 끝까지 뛰었다. 그러나 역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썰렁한 플랫폼에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 파리에 머물 순 없었다. 나는 얼른 타임테이블을 다시 뒤적였다. ‘그렇지! 바로 이거야!’ 타임테이블을 보니 오늘의 마지막 열차가 30분 후 암스테르담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우선 벨기에로 가서 다른 곳을 먼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열차의 출발지는 리옹역이 아니라 북역이었다! 나는 다시 북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일이 이 쯤 되니 환전 수수료가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환전해서 지하철역으로 가기 위해 나는 부리나케 환전소로 뛰어갔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직원이 영업시간 끝났다고 내일 오라고 한다. “정말 사정이 딱하니 한 번만 봐주세요. 아직 창구도 안 닫았잖아요.” 나는 현란한 말솜씨로 그를 설득했지만, 이 친구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택시 승강장으로 달려가 운전사에게 “북 역 20달러!”를 외쳤다. 택시 기사는 흔쾌히 승낙했다. 역시 달러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20달러는 너무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택시 기사에게 “지갑을 보니 15달러 밖에 없네요. 조금만 깎아주시죠?”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사의 단호한 말, “No way!” 나는 히든카드인 접대용 담배 한 갑을 내밀었다. 다행히도 그는 애연가라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리하여 1천 원 돈 추가로 5달러를 벌었다. 우여곡절 끝에 북 역에는 차 시간 5분 전에 도착했고, 끔찍했던 파리의 밤을 끝낼 수 있었다.

유호상_서울 송파구 송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