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발행구분
[2005년 12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인도] 도시분류 : [바라나시]
기사제목
[ESSAY] 여자, 인도를 만나다 Woman meets India
| 나는 아직도 내게 새로운 충격을 주었던 인도를 똑똑하게 기억한다. 한 번쯤은 이렇게 놀랄만한 무언가를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인도에는 해도 해도 너무한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한 번은 한 장에 2루피(한화 50원)하는 엽서를 팔던 꼬마가 어느 샌가 짜이(인도 전통차) 장수로 변신해 자꾸 귀찮게 했다. 끈질긴 호객행위에 시달려 그만 쫓아다니라고 “Go!” 했더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굽실거리며 하나만 팔아달라던 그 녀석이 눈을 무섭게 치켜뜨고는 당당하게 외쳤다. “여기는 내 나라 인도니 당신이나 당신네 나라로 Go!” 뒤통수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처럼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상황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였지만, 돌이켜 인도를 추억해보면 어느 것 하나 매력 덩어리가 아닐 수 없다. |
| |
| 12th March 신과 함께 하는 바라나시 |
|
|
| 강에 시체와 꽃을 버리고 나서 신이 주신 성스러운 물이라며 그 강물(내가 보기에는 더럽기 그지없는)을 마시는 사람을 이곳 바라나시에서 쉽사리 만날 수 있는 이유는 몇 천 년 동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종교의 영향이 아닐까 한다. 틈만 나면 신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온몸을 던져 수행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의 젖을 간절히 찾는 것 같다. 신을 열망하는 인도인들과 함께 한 바라나시의 밤은 내게 작은 깨달음을 주었다. ‘갠지스 강은 원초적이고 지저분해 보이기만 하다’고 떠들어대던 내 모습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
| |
| 19th March 여행지의 만남은 모두 인연 |
| 원래 변덕이 심하긴 하지만 오늘은 변덕을 부리는데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오늘 하루를 ‘고되고 서글픈 하루였다’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돈 맛을 알아버린 인도 꼬마들 때문이고, ‘반갑고 기분 좋은 하루였다’고 말하는 것은 우연히 만난 두 명의 한국 남자 덕택이다. |
| 귀여운 꼬마 녀석들이 우리 곁에 다가와 반가움을 표하는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사진촬영-인도에 다녀 온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통과의례-을 부탁하더니,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마자 촬영비를 달라고 한다. 어이가 없다는 생각은 금세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의 동심은 다 어디로 가고 자신의 순수한 외모로 관광객을 현혹해 돈을 뜯어내는 현실이 무척이나 씁쓸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렸고 인도에 대한 내 마음까지도 닫으려 했다. |
| 그런데 그 때 반가운 우리 민족을 만났다. 내 편은 아무도 없을 것만 같은 외딴 이곳, 오르차에서 건강한 구릿빛의 피부를 가지고 바르고 고운 한국어를 쓰는데다 마음 또한 진국인 근사한 한국 남자들을 만나자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그들은 아이들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었다. 나는 대충 구겨 넣었던 인도 지도를 다시 예쁘게 펼쳐들고 그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가꾸어 나갔다. 순간적인 인연을 중요한 인연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진 놈이 ‘여행’이라면, 나는 요 기특한 녀석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 |
| |
| 20th March 10:38 샤자한에게 사죄하다 |
| ‘인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인 타지마할이다. 무굴 제국의 5대 황제였던 샤자한이 출산 중 세상을 떠난 아내를 위해 만든 어마어마한 궁전이다. 실제로 본 이곳의 모양새는 정말 대단했다! 르네상스 이탈리아 건축물에서나 볼 법한 디자인에 색색의 대리석과 돌들이 어우러져 오묘한 빛을 발했으니, 총 공사비용이나 인력 동원수가 엄청났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 머리와 눈은 최고라 해석하면서도 마음으로 함께 동요하지는 못했다. 그저 외국인들이 모여 사진 찍으니 나도 덩달아 멍청하게 따라하고, 햇빛에 달아오른 대리석 바닥이 뜨겁다며 구석구석 돌지도 않고 게으름뱅이처럼 행동했다. 또, 뚫어져라 쳐다보는 현지인들이 밉다고 째려보며 기운 없이 그곳을 관광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샤자한에게 죄스럽다. 지금이라도 그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샤자한이여! 아내를 향한 당신의 정성을 나는 이 만큼밖에 느끼지 못하고 가서 정말 미안하다오! |
| |
|
|
| |
| 5th April 3:35pm No problem, Madame! |
| 인도 사람들은 길을 물어보면 무성의하게 모른다고 하는 법이 없다.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no problem’이다. 그 뿐인가? 기차가 무한정 연착을 해도 ‘no problem’, 달리던 사이클릭샤(인도 교통수단 중 하나로 우리나라 자전거 정도)가 진흙 구덩이에 뒤집혀도 ‘no problem’이다. 한 번은 식당에 갔는데 주문한 음식이 한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여행자에게 시간은 금인데, 무작정 기다리고 있기 힘들어 나는 무척 안절부절해 했다. 그 때, 이미 책에서 익힌 ‘그래봐야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모호한 인도’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동시에, 시험공부를 하면서도 ‘시험을 망치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그 때 A말고 B를 선택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지나간 일에 집착하던 지지부진한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순간에 충실한 그들의 여유로운 삶과 내 모습이 오버랩 되자 아등바등 살아온 내가 참으로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음식 좀 늦게 나오면 어때! no problem! |
| 삶에는 골똘하게 생각해야 하는 때와 골똘히 생각하지 않는 쪽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여행의 경우는 후자 쪽이다. 그 중에서도 배낭여행은 마음이 닿는 그 찰나에 치러야 한다. 느리게 흘러간다 생각하던 ‘오늘’이 너무도 빨리 ‘역사’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찾은 곳이 인도였다. 바라는 것들로 마음이 무거웠기에 나와는 많이 다른 그들의 삶을 보며 놀라거나 불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늘 고민에 짓눌려 살아온 내가, 나와는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자 떠나온 인도 아닌가. 그들이나 나나 치열하게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내가 나이듯 그들도 그들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40일간의 인도여행은 이렇게 다양한 사연이 담긴 삶들을 존중하라고 내게 속삭였다. |
| 새 아침 영롱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며 당당한 자신감을 다질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나는 너 일수 있고 너는 나일 수 있다며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화해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떠나라! 인도로! (권오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