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혼자 배낭여행을 하다 겪은 일이다. 사건은 추워진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니스로 가기 위해 TGV를 타러 갔는데,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표가 모두 매진이었다. 하루를 더 제네바에서 머무르며 기다렸다가 다음날 기차를 타면 되지만, 스위스의 물가가 워낙 비싼데다 마음은 이미 니스로 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니스로 가는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다른 기차 편을 알아보니 이탈리아 밀라노를 경유해 니스로 가는 기차가 있었다. 난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밀라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 때만 해도 그것이 엄청난 실수인줄도 모른 채, 유레일패스의 혜택에 눈이 멀어 마냥 즐거워했다. 그러나 얼마 후 나는 엄청난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탈리아의 열차가 대부분 연착을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밀라노에 제 시간에 도착했다면 별 문제없이 니스로 갈 수 있었겠지만, 기차는 아니나 다를까 한 시간이나 연착했다. 니스로 가는 열차는 이미 떠난 뒤였고, 다음 열차도 이틀 후에나 올 예정이었다. 이제 방법은 단 하나, 다시 제네바로 돌아가는 것. 마침 30분 뒤에 제네바로 가는 막차가 있어 다시 서둘렀는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했다. 역무원이 오더니 제네바행 열차는 오늘 오지 않으니 지금 들어오는 브리그행 열차를 타고 가서 거기서 다시 제네바행 열차로 갈아타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절망한 사람은 나와, 국적을 명확히 알 수 없는 외국인 일곱 명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역무원의 말대로 브리그로 갔다. 그것도 밤 11시에…. 그러나 우리는 브리그에 도착해서 한 번 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역무원의 말과는 달리 브리그을 지나는 열차는 모두 끊긴 상태였던 것이다.

브리그역의 역무원은 어쩌면 한 대가 지나갈지도 모르니 조금 기다려보라고 했다. 올지도 모른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나를 포함한 여덟 명의 여행자들은 브리그역에서 추위에 떨며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는 기차를 기다려야만 했다. 열차는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브리그역을 지나갔다. 제네바가 종착역인 열차였다. 우리는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기진맥진한 상태로 기차를 탔다. 제네바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새벽 네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난 그날 아침 여섯 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니스에 갈 수 있었다. 한 순간의 판단 착오로 인해 하지 않아도 될 터무니없는 고생을 무더기로 하고 만 것이다. 이 일로 정말 많은 고생을 했지만, 덕분에 나는 난처한 순간이 다가오면 하루 쯤 여유를 부려서라도 침착하게 생각해보는 편이 좋다는 것을 배웠다.   
 

이성식_서울시 도봉구 방학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