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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트렁크를 겨우 겨우 끌어 파크호텔에 도착, 문을 열자마자 직원에게 손잡이를 고칠 곳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방으로 올라와 짐을 푸는데 문득 도쿄의 비싼 물가가 생각났다. 계획에도 없던 택시를 몇 번 탄 데다 쇼핑도 많이 해서 경비는 이미 예산을 초과한 상태였다. 어차피 여행 막바지니 쓸 일도 없을 것 같아 우리는 그냥 고치지 말고 부서진 채로 한국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예상대로 우리는 인천공항까지 별 탈이 없이 귀국했다.
그러나 인천공항에 내려 입국심사를 받으려 하는데 카트도 없고, 갈 길은 너무나 멀었다. 트렁크를 거의 들다시피 하며 끌고 왔지만, 이제 트렁크는 고장 날 대로 고장 나 임시방책도 소용없는 상태였다. 부서진 손잡이를 한 손에 든 채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안쓰럽다는 표정을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했다.
게다가 휴가철이라 입국심사대는 그야말로 만원. 줄이 조금씩 줄어들 때마다 트렁크를 옮기는 일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트렁크는 거의 1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거대한 무게였는데, 손잡이가 없으니 몸을 쭈그린 상태로 트렁크를 끌다가 너무 허리가 아파 부서진 손잡이를 엮어서 조금씩 끌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생난리였다.
집에 돌아와 언니에게 트렁크를 고장 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지난번에 여행갈 때 고장 났었는데, 들고 간다고 할 때 말해주는 걸 깜빡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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