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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아무 말 없이 군림한다' 는 말을 믿는 사람에게 가우디의 작품과 조우하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머리 위 밝은 태양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들뜨게 만들 듯, 자연의 앙름다움을 빼닮은 가우디의 건축은 때로는 환희와 열정으로, 때로는 경이와 경건함으로 우리마음을 들었다 놓는다. 까딸루냐의 정신을 구체화한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그렇게 바르셀로나의 푸른 하늘과 바다 위에 말없이 군림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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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감각이 낳은 실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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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셀로나 시가지 북쪽끝에 있는 구엘공원으로 가는 |
| 택시 안에서 에우제비 구엘에 대해 말을 건넸다. 평생 |
| 자신의 예술을 이해해 준 구엘 같은 후원자가 있었다 |
| 는 것은 가우디에게 적지 않은 행운이었을 거라고. 하 |
| 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구엘은 가우디의 명성과 재 |
| 능을 효과적으로 구매한 사업가 쪽에 더 가깝다고 생 |
| 각한다는 것. 확신에 찬 그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 |
| 었지만, 늦게나마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해주고 |
| 싶다. 그 동기야 어떻든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재 |
| 력가로서 그가 가우디의 재능을 알아보고 평생 가문 |
| 의 건축가로 대접했다는 것은 가우디의 작품세계가 |
| 꽃 피우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음에 분명하다. 로렌초 |
| 데 메디치가 없는 미켈란젤로와 다빈치를 상상하기 |
| 힘들 듯, 구엘 없는 가우디를 상상할 수 없기에. 1898 |
| 년에 쿠바를 끝으로 대부분의 해외 식민지를 잃은 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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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인은 수평선 너머로 잠기는 태양이었다. 가장 부유한 지방이었던 까딸루냐도 경제가 침체되기는 마찬 |
| 가지여서,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진 부자들이 새로 눈을 돌린 사업 중에 하나가 부동산이었다. 바르셀로나 |
| 북쪽의 민둥산을 매입한 구엘은 그곳을 영국식 전원주택지구로 개발해 분양하고자 했고 그 새로운 프로 |
| 젝트의 중심에 가우디가 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우디의 예술은 길이 남았지만 구엘의 사 |
| 업은 재앙으로 끝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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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가 우리에게 준 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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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3년에 구엘이 이 부지를 시에 기증함으로써 시대 |
| 를 앞서간 구엘의 사업구상과 가우디의 작품세계는 |
| 뜻밖의 선물이 되어 후대 사람들에게 남겨졌다. 구엘 |
| 공원을 보면, 20세기가 시작되던 때 가우디가 바라보 |
| 았던 세상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전혀 옛스럽 |
| 지 않다는 점에 놀랄 수밖에 없다. 공원관리인 건물의 |
| 알록달록한 창문과 구불구불한 지붕의 곡선은 마치 |
| 최신 테마파크의 과자로 만들어진 집처럼 보이고 온 |
| 갖 색깔의 타일을 붙여 만든 뱀 모양의 분수대와 구엘 |
| 공원의 상징인 용 모양 작품은 불투명한 돌로 만들어 |
| 진 스테인드글라스처럼 햇빛 아래서 화려하게 반짝인 |
| 다. 모든 정형화된 틀과, 무엇보다 직선 구도를 극도 |
| 로 싫어한 가우디의 생각이 구엘 공원 입구에서 여지 |
| 없이 드러난다. 분수대 옆을 지나 중앙 계단으로 올라 |
| 가면 시장으로 조성된 공간이 나온다. '완벽한 작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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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라 굳게 믿었던 가우디의 시장 공간을 떠받치고 있는 도 |
| 리아식 기둥들을 자세히 보면, 의도적으로 각기 다른 각도로 기울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에 똑같은 |
| 것은 없다' 는 그의 메시지가 이 기둥들을 통해 전해온다. 시장의 천장은 곧 광장의 바닥이다. 계단을 더 |
| 올라가면 지중해의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난간과 벤치가 있는 광장이 나오고 탁 트인 지중해와 바르셀로 |
| 나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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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계일학이란 이런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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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우디의 건축을 보며 독특하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
|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바르셀로나 도시 까사 바 |
| 뜨요야말로 상대적인 의미에서 그의 독창성이 가장 돋 |
| 보이는 장소다. 바르셀로나 도심의 그라시아 거리를 |
| 따라 북쪽으로 걸어가서 가장 개성있게 건물을 하나 |
| 찾아보라면 열에 아홉은 가우디의 까사 바뜨요를 찍어 |
|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거리가 고만고만 |
| 한 집들과 멋없는 상가들로만 가득 차 있는 것도 아니 |
| 다. 이곳에는 까딸루냐 모더니즘 건축의 대가 도메니 |
| 치 이 문따네의 까사 예오 모레라부터 뿌이그 이 까다 |
| 팔치의 까사 아마뜨예르 까지, 저마다 모더니즘의 특 |
| 징을 나타내는 개성 넘치는 건물들이 잇달아 있어 '부 |
| 조화 지구'라는 별칭까지 붙어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
| 불구하고 가우디의 까사 바뜨요는 개성 넘치는 건물들 |
| 사이에서도 발군의 독창성을 보인다. 까사 바뜨요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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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옆집이 까사 아마뜨예르인데, 고백하자면 그 건물이 독창성을 인정받는 유명인의 작품임을 귀국 뒤 |
| 에 책자를 통해서야 알았을 정도다. 햇빛이 달을 가리고 달빛이 별을 가리듯, 가우디의 상상력이 내뿜는 |
| 광채는 그렇게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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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을 모방한 어머니의 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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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구엘공원과 독보적인 까사 바뜨요, 스페인의 |
|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사그라다 빠밀리아 대신 까사 |
| 밀라가 가우디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나타내는 건물 |
| 이라는 평가에 의아해 한다고 해도 비난할 마음이 없 |
| 다. 적어도 겉으로 볼 때 까사 밀라는 특별하고 화려 |
| 하기보다는 그저 '가우디스럽다' 는 느낌 외에는 시선 |
| 을 잡아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
| 학자 하이스 반 헨스베르헌이 그의 책에서 밝힌 대로 |
| '개성이 드러나면서 까딸루냐 문화와 조화를 이루고 |
| 도덕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건물을 짓는 것'이 가우디 |
| 의 목표였음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대표작은 두말할 |
| 나위 없이 까사 밀라다. 도로 모퉁이에 있어 귀퉁이가 |
| 잘려나간 오각형 모양을 한 집을 지을 수밖에 없는 조 |
| 건에 맞추면서도, 그것을 새로운 시도와 양식미를 시 |
| 험하는 도구로 이용한 가우디의 작품 중에서 가장 다 |
| 양한 해석을 낳은 건물이기도 하다. 그를 좋아하는 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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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람은 노아의 방주나 몬세라트의 석산을 연상했고 그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납골당과 참호 쯤 |
| 으로 평가절하 했다. 물론 그 어떤 칭찬이나 비판도 까사 밀라에서 직접 그의 상상력과 교감하기 전까지 |
| 섣불리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우디만의 언어로 빚어진 건물을 발로 밟아보고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 그 |
| 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경솔한 행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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