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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구분
[2006년 02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체코] 도시분류 : [프라하]
기사제목
[ESSAY] 중세에 머무른 고혹의 도시 Antique Praha
| 몇 번의 배낭여행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어서인지 나는 여유 있고, 너무 계획적이지 않으며, 자유롭게 일정을 바꿀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바람을 이루기 위해 나는 그 흔한 가이드북 하나 없이, 체코로 가기 위한 배낭을 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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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로 가는 타임머신을 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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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만화를 볼 때마다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주인공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비록 만화에서처럼 버튼이 빽빽하게 들어찬 타임머신은 아니지만, 밥도 주고 땅콩과자도 많이 주는 에어플레인을 타고 나와 친구 둘은 체코로 향했다. 엔진이 꺼지며 도착지를 알리자 눈앞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타임머신에서 내릴 때의 기분이 이럴까? 중세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환상적인 이 도시, 프라하에 나는 순식간에 매혹되고 말았다. 트램을 타고 가는 길에 보이는 프라하의 이국적인 풍경에 가슴이 요동친다. 거리 어딘가에 왠지 귀족 아가씨가 부채질을 하며 마차에 타고 있을 것 같고, 저쪽 멀리에서는 늠름한 기사가 말을 타고 달려올 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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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드북대로의 식상한 여행은 이제 그만! |
| 낯선 나라에 가면 누구나 무언가에 의지하게 된다. 내게 그 무언가는 가이드북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이드북에는 여행 일정이 세세하게 짜여 있어, 나도 모르게 그 일정에 끌려 다니며 여행의 참맛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과감히 가이드북을 던져버리고, 중요한 메모 몇 개에 의지하기로 했다. 친구 둘과 동행한, 씩씩한 여걸 쓰리의 프라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이틀 안에 프라하 여행을 마치고 다른 나라로 이동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수박 겉핥기식의 여행을 피하기 위해 우리만의 체코 10일 여정을 잡았다. 여유 있는 일정 덕분에 프라하의 구석구석을 볼 수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 가서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들처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한 민가에 무단 침입해 구경하다 주인에게 혼이 나기도 하며, 가이드북에 실려 있지 않아 더욱 빛을 발하는 장소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이렇게 발길 가는 대로 가다보면 유럽에서도 거대한 성으로 손꼽히는 프라하의 보석, 프라하성에 닿는다. 또, 근처에서 동화책에나 나올듯한 거리인 황금소로, 예술과 낭만이 가득한 까를교, 성 니콜라스 성당이 있는 구시가 광장, 마음이 숙연해지는 종소리가 울리는 화약탑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도시 구석구석에 아름다움이 널려 있어, 우리는 가끔 길을 잃었다. 트램을 타고 가다가도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돼 정류장 이름을 못 듣고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곳에서 눈치껏 내리기도 했다. 이 눈치가 적중하지 않아 때론 몇 정거장을 걷기도 했지만, 길을 못 찾으면 어떠랴. 우리의 걸음걸이는 마냥 가볍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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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를교에서 로맨틱한 상상을 펼치다 |
| 까를교에서 로맨틱한 상상을 펼치다 내가 프라하에서 가장 좋아했던 곳은 바로 까를교다. 그곳에는 프라하의 모든 것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리 주변에는 평온한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고, 고개를 돌리면 동화 속의 집들이 따뜻한 햇빛을 받고 서있으며, 아름다운 빛깔의 성당들은 중세시대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전해준다. 뿐만 아니라, 다리에서 올려다보면 저 멀리 미녀와 야수가 살 것만 같은 프라하 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사랑스럽지만, 내가 까를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성 네포묵’ 동상이다. 상 아래에는 그의 순교 장면이 동판으로 새겨져 있는데, 이를 보고 있으면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까를교를 건널 때 마다 줄을 서면서까지 소원을 빌었는데, 소원의 내용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곳에 다시 오게 해주세요!’였다. 만약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나도 이곳에서 ‘프라하의 연인’ 못지않은 드라마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연인과 나는 이 동상에서 어떤 소원을 빌게 될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림을 파는 상인들과 몇 푼 안 되는 돈을 받으며 연주를 하는 거리의 악사들도 까를교를 더욱 낭만적으로 빛내주는 중요한 요소다. 이 풍경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있는 한 프라하는 영원한 예술의 도시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 악사의 연주가 쓸쓸하게 들리지 않도록 우리는 자리를 지키며 그의 따뜻한 관객이 되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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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션 스릴러의 주인공이 되다 |
조그만 동양인 여자 세 명이 낯선 체코 땅에서 끝없이 재잘재잘거리고,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도 하며, 수상하다 싶은 사람들에게는 ‘우리 건드리면 죽어!’하는 매서운 시선을 겁 없이 보내는 바람에 우리는 체코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게다가 체코 사람들의 옷은 어쩜 그렇게도 칙칙하고 새카만지, 우리의 컬러풀한 의상도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그 덕분인지 나는 프라하에서 영화 한 편을 찍었다. 영화의 장르는 멜로도, 코미디도 아닌 액션 스릴러. 상대 배우는 유럽 등지에서 판치는 소매치기 집단, 영화의 배경은 소매치기가 활동하기 가장 좋은 지하철이었다. 처음으로 외투 밖으로 가방을 매고 지하철에 탔는데 입구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자리를 이동하려고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자 덩치 큰 아저씨가 지하철 노선을 보는 척하며 나를 막는다. 주위를 살펴보니 안쪽은 텅텅 비어 있고, 5명의 남자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깜짝 놀라 가방을 열어보니, 이럴 수가! 프라하 여행을 위해 새로 산 내 디지털카메라가 그 무리들에게 납치당한 것이 아닌가? 너무 충격 받아 멍하니 서 있는 나를 친구가 서둘러 그 무리에서 빼내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르르 모여 있던 소매치기들은 이미 흩어지고, 용의자 한 명만이 내 시야에 잡혔다. 우리는 그에게 “카메라! 카메라! 기브 미 더 카메라!”라고 소리쳐 보았지만, 그는 천연덕스럽게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당황한 우리는 혹시나 체코 사람들이 도와주지는 않을까 싶어 현지인을 향해 애처로운 눈빛을 지어보였지만 누구 하나 이 가엾은 동양여자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나는 다시 그에게 “폴리스! 폴리스!” 하고 외쳤다. 그러자 그는 겁을 먹었는지 문이 열리자마자 지하철에서 내렸다. 우리는 서둘러 그 사람을 따라 내렸는데, 인적이 없는 역을 보는 순간 ‘이러다가 한국에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그 범인은 아직 열려있는 지하철에 다시 탔다. 놓칠세라 우리도 다시 탔고, 이를 본 범인은 다시 하차했다. 체코 지하철 문은 그날따라 꽤 오랜 시간 열려있는 것 같았다. 따라내릴 시간은 충분했지만, 우리는 국제 미아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쯤에서 카메라를 포기하고 더 이상 그를 쫓지 않았다. 이 모든 광경을 보고만 있는 매정한 체코사람들에게 원망의 눈빛을 보내며 우리는 다음 역에서 내렸다. 나는 다리가 후들거려 바닥에 주저앉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체코 올로케이션의 액션 스릴러는 내 신형 디지털카메라의 실종이라는 슬픈 주제를 다루며 이렇게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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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나의 프라하 |
| 열흘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프라하를 기억하며, 이따금 가슴 속에서 프라하의 찬란한 한 때를 꺼내어 본다. 사진으로는 다 담아올 수 없는 것들은 마음으로 찍어 삭제가 불가능한 깊은 기억 창고에 저장해 두었다. 이 기억은 아마도 나를 평생 동안 프라하에 머무는 여행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정경아 경기 광명 철산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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