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생명력을 밥상 위에 지리산 최고의 사찰인 화엄사 입구에는 산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대규모로 밀집해 있다. 각종 호텔과 다양한 종류의 식당 간판들 너머로 펼쳐진 논밭은 푸른 봄기운으로 덮여 있고, 논두렁을 가로지르는 농부의 손길도 벌써부터 분주하다. 예전같으면 그들 너머로 ‘한푼 두푼 돈나물, 매끈매끈 기름나물, 어영꾸부렁 활나물, 동동말아 고비나물’ 하는 나물타령을 부르며 나물 캐러 가는 여인들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저 상상만 하며 길 한켠에 있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백화여관’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전부터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의 휴식처였던 이곳은 현재 ‘백화회관’이라는 이름의 산채한정식 전문점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식당이다.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이미 한상 가득 식사를 차려 두고 기자를 맞이하는 사람은 백화회관 대표 이은순 씨다. 구수한 사투리가 다시 한번 ‘지금 지리산 자락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을 되살려주는 가운데, 접시 하나 놓을 틈 없이 빼곡히 차려져 있는 식탁에 벌써 눈이 간다. 어떤 것은 새파랗고 어떤 것은 노르스름하고, 어떤 것은 또 먹음직스럽게 새빨갛다. 식탁 가득 꽃이라도 핀 듯,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봄이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일단 이 모든 ‘지리산의 보물’들이 가지고 있는 이름부터 물어 보았다. 서울에서 온 촌놈은 이 땅이 매일같이 밀어 올리는 풀들의 이름도 모른 채 허겁지겁 젓가락질부터 해댈 만큼 염치가 없진 않다. 이건 갓김치고 저건 두릅나물이고 이쪽은 돌나물, 저쪽은 박나물, 가운데에는 더덕구이, 이쪽 구석에는 매실장아찌에다 저쪽 구석엔 미나리와 취나물...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 주는 주인 아주머니의 손마디에서도 향기가 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 나물들을 매일같이 직접 손으로 무칠 터이니 그럴 만도 했다. 향기와 색깔만으로도 이미 무장해제 되어버린 기자에게 직접 맛을 보는 순서는 외려 차분했다. 미끈하면서 타박거리는 박나물을 입에 넣어도, 쌉싸름한 취나물과 두릅나물을 씹어도, 새콤한 매실장아찌와 향기로운 돌나물을 집어 들어도 이미 남도의 봄기운은 전부 자기 것이 된 것인 양, 배가 불렀다. 아들뻘 되는 기자가 나물들 앞에서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도 주인아주머니는 옆에 앉아 이것도 한번 먹어보지, 저것도 맛있는데, 하며 도와주신다. 37년 전, 이 여관집으로 시집을 와서 시어머니로부터 배운 손맛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조아려진다. 인공조미료 대신 새우 가루로 맛을 내고, 뒤뜰에서 직접 기른 깻잎과 매실로 반찬을 내 오는 그 ‘내공’은 바로 아내로, 어머니로 37년을 살아 온 여인의 삶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