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발행구분
[2006년 04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중국] 도시분류 : [타슈쿠르간]
기사제목
[ESSAY] 고원의 열정, 타슈쿠르간
| 중국의 신강위구르족 자치구 서남쪽 끝에 위치한 타슈쿠르간은 해발 3천 3백 미터의 작은 고산 마을이다. 티베트 사람들과 함께 고원에 정착한 타지크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살고 있는 이곳은 고대 서남아시아로 이어지던 실크로드 연변의 오아시스며, 지금은 중국과 파키스탄을 이어주는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중간 기착지기도 하다. |
| |
|
|
타슈쿠르간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루무치를 거쳐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성지인 카슈가르로 가야 한다. 우루무치에서 카슈가르까지는 1천 6백 킬로미터. 사막의 오아시스를 따라 가던 그 곳에는 현재 검은 콘크리트길이 놓여있어 차로 달릴 수 있고, 2000년에 철로가 완성되어 하루에 두 번씩 사막을 가로지르는 열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카슈가르에서 타슈쿠르간까지는 약 2백 80킬로미터로,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통과한다. 때로는 산사태로, 때로는 폭설로, 때로는 파미르 고원의 만년설이 녹은 물로 인해 길이 종종 끊기며, 통행이 가능하다 해도 여기저기 공사 중이라 지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비포장도로와 공사구간을 통과해 타슈쿠르간으로 가는 데는 적어도 8시간 이상 걸린다. 카슈가르까지 가는 길에 사막의 혹독한 열기와 건조함을 견뎌냈다면 이제는 파미르의 고산증과 싸워야 한다. 카슈가르에서는 매일 두 편의 버스가 타슈쿠르간으로 향한다. 한 편은 오전 9시 반에 출발하는 시외버스로, 타슈쿠르간이 종착지다. 다른 한 편은 12시에 국제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파키스탄 행 버스인데, 이 버스는 타슈쿠르간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나는 9시 반 버스를 이용했는데, 버스를 타기 위해 시외버스터미널에 나가니 벌써 사람들이 큰 짐을 들고 버스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몇 명의 서양 여행객과 한족 인부들, 그리고 위구르인과는 조금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 녹색의 눈동자를 보니 아마도 타지크족인 것 같다. 버스는 10시가 되어서야 출발했다. 카슈가르를 빠져나가는 길에 손 흔드는 몇몇 사람을 더 태우고 나니, 버스의 통로는 사람들의 짐과 그 짐에 앉아 조는 사람들로 도저히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한참을 달려도 생각했던 파미르 고원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계속해서 모래 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의 연속이다. ‘우팔’이라는 마을에서 잠시 쉰 후 차가 조금씩 오르막길을 오르더니 드디어 저 멀리 설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은 어느새 포장도로로 바뀌었지만, 차가 오르는 속도는 갈수록 늦어지고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사람들은 끽끽거리며 힘들어하고 있다. 카슈가르를 출발한 지 4시간 만에 검문소에 도착했다. 중국인들은 통행증 검사를 하지만 외국인은 여권만 있으면 통과할 수 있다. 검문소 부근에 작은 가게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잡지만 가게 물건의 빛바랜 껍데기들은 몇 년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은 건지, 아니면 고원의 햇살 때문에 색을 잃은 건지 도저히 알 수 없게 한다. 검문소를 통과하면서부터 차는 산언저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S’자로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한 시간 넘게 오르니, 드디어 내리막길이 나타나고 마른 산 위로 살짝 보이던 설산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길의 양쪽에는 눈을 머금은 높은 산들이 펼쳐져 있고, 만년설이 녹은 물은 아래로 흘러내려 큰 물줄기를 이룬다. 산 아래에는 자갈들 사이로 어느새 푸른 풀들이 자라나 있으며, 그 위로 주인 없는 양떼와 야크떼가 평화롭게 뛰어 놀고 있다. 계곡을 따라 조금 더 달리면 모래산 아래에 물줄기들이 모인 호수가 나타난다. 호수의 물빛은 푸른 하늘색과 흰 구름, 그리고 누런 모래산의 색을 동시에 머금어 사람이 만들 수 없는 오묘한 색깔을 만들었다. 호수의 풍경에 잠시 넋을 잃고 있는 동안 차는 카라쿨 호수에 도착했다. 카라쿨 호수는 여러 설산들로 둘러싸인 해발 3천 8백 미터에 위치한 호수다. 눈과 하늘이 만들어 내는 물빛은 방금 모래호수와는 또 다른 빛깔을 자아낸다. 카라쿨 호수 주위에는 많은 유르트들과 식당이 있어 오가는 여행객들에게 호수를 감상하며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 |
| |
카라쿨을 지나면 또 다시 비포장 길이 시작된다. 곳곳에 공사를 하고 있어 도대체 어디가 길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한참 날리던 모래먼지들이 가라앉을 무렵 눈앞에는 거대한 설산인 무즈타그 아타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다. 수만 년 동안 빙하들이 흘러내려 가운데가 쩍 벌어진 봉우리 아래에는 거센 물살과 함께 습지와 초원이 형성되어 있다. 비포장길을 달리며 점점 심해지는 울렁증과 고산증, 그리고 목을 메우는 가래에 한참을 시달리다 보면 버스는 가로등이 서 있는 마을로 들어선다. 이곳이 바로 타슈쿠르간이다.
카슈가르를 떠난 지 8시간 만에 만난 땅이다.타슈쿠르간은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타지크족 자치현의 중심이다. 중앙아시아에는 약 9백만 명의 타지크 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중국 내에 4만여 명이 있으며 그 중 2만 5천 명 정도가 이곳 타슈쿠르간 타지크 자치현에 산다. 차가 한 대도 없는 버스터미널에는 강렬한 고원의 햇살이 들어온다. 따가운 자외선을 피해 백양나무 그늘을 따라 걷다 보면 금세 이 마을의 생김새를 알게 된다.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는 십자가 모양의 큰 길, 몇몇 가게와 식당들, 그리고 우뚝 솟아있는 누런 성곽과 석두성만 기억하면 된다. 남북으로 뻗은 큰 길에는 타지크족의 상징인 독수리 상이 우뚝 서 있고, 독수리상의 건너편에는 타지크 민족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는 녹색의 눈을 지닌 아름다운 타지크 아가씨가 고원의 희박한 산소에 지친 여행객을 따뜻하게 맞이한다. 그녀는 하루에 몇 명 오지 않는 외지인들을 위해 잠겨 있는 전시실 문을 하나하나 손수 따주며 유창한 중국어로 신기한 타지크의 풍습과 풍경을 설명해 준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타지크인은 다른 중앙아시아의 민족들이 투르크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페르시아 계통의 언어를 사용한다. 다른 민족들은 이슬람의 영향으로 아라비아 문자로 구성된 자신들의 글자를 가지고 있지만, 이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글자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타지크인들은 어릴 때부터 한자와 한어를 배운다고 한다. 박물관의 아가씨는 ‘누얼바누’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그 이름은 ‘밝게 빛나는 공주’라는 뜻이다. 비록 고원의 햇살과 바람에 조금은 거친 피부를 가지게 되었지만 아리아인의 후예인 그녀는 붉은 빛의 머리카락과 녹색의 눈동자로 신비감을 풍긴다. 동방원정을 떠났던 알렉산더 대왕이 왜 이 험한 파미르 고원에서 타지크 여인을 신부로 맞이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
| |
|
|
| |
박물관을 돌아보고 구름을 머리에 걸치고 있는 설산들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타슈쿠르간의 상징인 석두성으로 향했다. 온통 돌무더기로 이루어진 석두성은 1,400년 전에 지어진 요새로, 사방이 모두 절벽이다. 실크로드를 차지하기 위한 여러 민족의 침입에 수많은 이별을 맞이했던 타지크인들이지만 언제나 그들이 되돌아온 곳은 바로 이 석두성이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흐른 지금 이곳은 사람의 발길을 그리워하며 까마귀의 마른 울음소리와 적적한 바람 소리만 품고 있을 뿐이다. 파미르 고원을 넘어 사라센 제국을 물리쳤던 고선지 장군도 여기에 머물렀으리라는 생각에 석두성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초원으로 향하는 샛길을 찾아갔다.
타슈쿠르간의 초원은 만년설을 머금고 있는 두 산줄기가 남북으로 뻗어가며 만든 계곡 사이에 길게 펼쳐져 있다. 무즈타크 아타산의 만년설이 녹은 물줄기는 초원을 중앙에 두고 두 갈래로 흐르며 얕은 늪지대를 이룬다. 늪지대를 건너 초원으로 향하는 길에는 혹시나 올지도 모르는 여행객을 기다리는 유르트가 몇 개 서 있고 말과 개, 양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있다. 주인 없이 떠돌아다니는 말을 따라 가다 물살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걸터앉아 발을 담그니 머리 속까지 시원해지며 그간의 피로와 고산의 두통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저 멀리 초원에는 이른 아침부터 풀을 다듬고 가축을 먹이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일을 마친 사람들은 꼬마들을 무등 태우고 물살을 건너 마을로 돌아간다. 개울가의 그늘에는 아낙들이 하얀 천에 색색의 수를 놓고 있고, 황토 집 아궁이에는 빵 굽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구수한 냄새에 발길을 멈추니 꼬마 녀석들이 문틈으로 이방인을 쳐다보며 들어오라고 수줍게 손짓한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할머니가 마당의 화덕에서 방금 구운 빵을 건네준다. 빵 냄새만큼이나 구수한 인심이다. 마을을 둘러 본 후에는 박물관 아가씨의 초대로 마을에서 가장 큰 식당에 갔다. 그곳에는 오가면서 만난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푸른 눈의 할아버지는 얼큰하게 취해 흥겨운 전통 음악에 맞춰 타지크의 전통춤인 독수리춤을 추었다.
나도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두 팔을 길게 늘어뜨리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독수리처럼 몸을 움직여 본다. 흥겨운 춤판 속에서 동네 어르신들이 권하는 한 잔의 술에 벌겋게 달아오르는 사이 태양은 떨어졌고, 창문 틈 사이로는 고원의 일교차가 몰고 오는 찬 바람이 스며든다. 가로등 하나 없는 마을에는 물 흐르는 소리와 하늘의 별빛, 그리고 길을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맑고 밝은 달빛만이 남는다. 항상 맞이하는 이별이다. 먼 길을 달려와 이 땅과 쉽게 헤어지는 것도 아쉽지만, 짧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아 있을 사람들과의 헤어짐은 더더욱 아쉽다. 새벽녘 카슈가르로 돌아가는 차에서 맞이하는 고원의 태양은 산을 넘기 위해 힘을 썼는지 이미 벌겋게 달궈져 있다. 긴긴 이별을 부정하면서, 저 태양처럼 내 마음속에도 아쉬움과 미련을 희망과 용기로 바꾸는 열정이 생기기를 바랐다. (황정원 서울시 강서구 방화동)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