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절실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일상과 직장을 뒤로 하고 나는 3개월간 네팔 배낭여행을 떠났다. 포카라에 들렀다가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트레킹을 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베이스캠프 4,130미터 중 3,500미터쯤에 도착했을 무렵 날이 저물어 우리는 숙박할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해발 3천 미터부터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데다 플라스틱 페트병에 든 미네랄워터도 팔지 않고 끓인 물만 팔고 있었다.
무척 피곤했지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꾸는 상황. 그런데 어떤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자신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핫샤워’가 가능하다며 묵고 가라고 설득했다. 내가 ‘이곳부터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물도 먹을 물만 끓여서 파는데, 어떻게 핫샤워가 가능하냐’고 물으니 그는 ‘요즘은 태양열 전지판을 설치해 여기서도 뜨거운 물이 잘 나온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일행은 핫샤워에 솔깃해 그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기로 했다.
 내가 가장 먼저 옷을 벗고 샤워실로 뛰어 들어갔다. 이상하게도 샤워꼭지가 한 개밖에 없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는 들뜬 마음에 물을 틀었다. 그런데 아뿔싸! 샤워꼭지에서 70~80도에 육박하는 아주 뜨거운 물이 김을 모락모락 내며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서 대충 옷을 걸쳐 입고 주인에게 뛰어갔다. 그에게 ‘샤워실에 수도꼭지도 하나뿐이고, 물이 뜨거운 물만 나온다.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주인은 “Only hot shower!”라고 당연한 듯 말했다. 뜨거운 물만 나오고 온도 조절은 전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오 마이갓!!! 나는 눈물을 머금고 벗어두었던 옷들을 다시 껴입었다. 그리고 그 뜨거운 물을 조금씩 손바닥으로 비벼 온도를 식힌 다음 겨우 고양이 세수만 하고 나왔다. 다음날 아침 게스트하우스를 떠나기 전에 주인에게 ‘물이 저렇게 뜨거운데, 도대체 당신들은 어떻게 씻느냐’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새삼스레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씨익 웃으며 “No shower!”라고 당당하게,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