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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구분
[2006년 06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중국] 도시분류 : [시안]
기사제목
[COVERSTORY] 1천년 전의 그리움을 좇다_DOWN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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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때 시안은 로마, 콘스탄티노플과 함께 세계 최고의 국제도시였다. 1천 년 전, 피부가 다르고 종교와 문화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한 성벽 안에서 부대끼던 이곳에는 한복 입은 청년도 있었으니, 그가 바로 최치원이다. 그는 분명 이곳에 있었지만, 그의 흔적은 이곳에 없다. 그래서 그의 하루를 상상하며 시안을 둘러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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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을 떠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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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이 지겹다 싶을 때, 세상 일이 왜 이리도 불합리한가 싶을 때, 현대인은 유학을 꿈꾼다. ‘공부가 제일 쉽다’는 부모님의 말씀이 진정으로 와 닿고 학구열이 내 안에서 불타오른다고 느끼는 때는 왜 항상 ‘너무 늦었다’ 싶을 때인지, 그렇게 후회하고 스스로를 흔들어 깨우면서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뉴욕의, 보스턴의, 케임브리지의, 파리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지금부터 약 1천 1백 년 전, 날씨 좋은 동쪽의 소국(小國)인 신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장안(長安, 시안의 옛 이름)은 뉴욕이자 보스턴이자 파리였다. 그것이 좀 더 깊은 학문이든 좀 더 나은 세상이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자 하는 신라인에게 장안은 곧 꿈의 도시였다. 최치원 역시 꿈을 안고 머나먼 길을 달려 온 유학생 중에 한명이었다. 그는 육두품(신라 말기 신분제 내의 한 계급. 중앙 관직으로의 출세에는 한계가 있었다)으로 태어난 신분의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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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를 극복하고자 12살의 어린 나이에 유학길에 올라 이곳으로 왔다. 처음 시안에 발을 내딛었을 때 그가 느꼈을 낯설음은 상당했을 것이다. 시안의 황색 공기는 그처럼 낯설다. 그리고 답답하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두 시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우리와 달리 한달, 두달 쉬지 않고 걸어야만 고향을 볼 수 있는 어린 최치원에게 이 모래 바람은 호오의 문제가 아니었을 게다. 적응하고 성공하느냐, 아니면 짐을 싸서 돌아가느냐 하는 절박한 문제였으리라. ‘조기유학’을 선택한 최치원이 당나라, 그것도 장안으로 온 것은 여러모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9세기의 당나라로 말할 것 같으면 명실상부한 지구 최강의 국가였고, 그 수도인 장안은 의심의 여지없는 최고의 국제도시였기 때문이다.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었던 이 도시는 유럽과 중동의 입장에서 볼 때 동쪽의 끝. 수많은 회교도인과 서양인(당시에는 색목인이라 불렸다)들은 이곳에서 서로 만나고 이야기하고 거래를 했다. 종이와 비단이 금과 은으로 바꾸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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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꼐 소리지르며 성벽을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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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착 첫날을 시안 변두리의 호텔 부근에서 보낸 뒤, 아침 일찍 택시를 잡아타고 도심으로 들어왔다. 시안의 중심가는 아직도 당대에 만들어진 것을 바탕으로 명대에 지어진 성벽 안에 자리하고 있다. 그 성벽이라는 것은 현대인의 눈으로 봐도 거대하다.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고 있는 택시 앞은 동서로 뻗은 육중한 성벽으로 가로막혀 있다. 도로는 폭을 줄이고 고개를 숙여 성벽을 뚫고 지나간다. 동쪽으로 봐도, 서쪽으로 봐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14 킬로미터 길이의 성벽 위에는 수많은 탑과 누각이 서 있다. 게다가 당대의 장안성은 지금 것보다 무려 9배나 더 넓었다고 한다. 야트막한 고분들과 초가집이 가득한 서라벌(경주)을 가슴에 품은 채 이곳으로 왔던 최치원이 보았을 성이 지금보다 9배나 넓었다면, 그의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을 감으니 저 앞에 12살의 최치원이 서 있다. 웅크린 어깨, 그 위에 걸친 도포 자락이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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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하늘거린다. 고개를 잔뜩 뒤로 젖혀 우뚝 솟아있는 성벽을 올려다보는가 하면, 좌우로 두리번거리며 그 끝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지금보다 9배 넓이에 백만의 인구가 살았다는 장안성, 그리고 천년의 세월을 견뎌내고 카메라 든 기자 앞에 우뚯 솟아 있는 성벽. 서로 보고 있는 것은 달라도 그 반응은 분명 다르지 않을 거다. 뭐든지 거대하게 만들어 놓은 중국에서 만리장성도, 자금성도 이미 본 기자였지만 이번만큼은 어린 최치원과 함께 마음놓고 ‘촌놈’의 비명을 질러댔다. “우와~ 우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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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린에서 붓을 씻는 청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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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의 국제도시로서 시안의 면모는 시내에 있는 베이린(碑林, 비림)에 가도 엿볼 수 있다. 베이린은 ‘비석 숲’이라는 이름처럼 한나라 때부터 청나라까지 제작된 약 2천 3백여 개의 비석을 모아놓은 석각서예 박물관으로, 초서나 예서와 같이 우리가 아는 수많은 필체와 구양순, 안진경과 같은 명필들을 만져보고 감상할 수 있는 장소다. 당나라 때 베이린은 현재의 국립대학 격인 태학이 있던 곳이었고 송대에는 공자 사당이었다가 1950년대부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태학이라면 현재의 국립대학과 같은 최고의 인재양성기관이다. 그 때문인지 베이린 입구에 있는 분수는 옛날부터 과거에 급제한 사람만이 붓을 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학 7년만인 18세때 빈공과(당나라때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과거시험)에 합격한 최치원도 이곳에서 붓을 씻어볼 수 있었을까. 그 전통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실제 최치원이 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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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안 장안에 머물렀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지금으로선 그저 허무맹랑한 가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한번 그 모습을 상상하고 싶었다. 눈이 파란 사람들과 머리에 터번을 두른 사람들 사이에서 갓끈 단정히 메고 먹을 가는, 그리고 꽃가마를 타고 이곳에 와서 분수대에 붓을 씻는 열여덟 살 신라 청년의 모습을 말이다. 베이린 박물관 정면에 있는 큰 현판은 청 말기의 장군인 임칙서(林則徐)가 직접 쓴 것이라 한다(거꾸로 읽으면 ‘임비’, 즉 임칙서의 비라고도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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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의 밤과 장안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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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 제국의 중심도시였던 시안은 이방인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멀게는 로마에서 찾아온 눈이 파란 사람, 모래바람이 부는 중동에서 터번을 쓴 채 낙타를 타고 온 사람이 나막신 딸깍거리는 섬사람과 늘 부대끼며 살았다. 그중에서도 당나라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었던 비단을 유럽까지 중계하는 이슬람 상인들은 황실 차원에서도 많은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두둑한 수익을 안겨주는 이 이슬람 상인들이 조금이라도 더 장안에 머물게 하기 위해 당 황실은 중국인 아내와 짝을 맺어주는 등 많은 신경을 썼고, 그 결과 장안의 이슬람인 수는 3천 명에 달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이슬람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했음은 당연한 일. 틈만 나면 고향을 생각하고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꿈꾸는 이들을 중국인들은 ‘돌아간다’는 뜻의 ‘회족(回族)’이라 불렀고 그들의 종교를 회교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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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안 도심에 있는 다칭전쓰(大?眞寺, 대청진사)는 장안의 수많은 이슬람 사람들을 위해 당 현종이 서기 742년에 세운 사원으로 중국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 중 하나다. 물론 중국의 여러 건물들이 그렇듯이, 천 년이 넘는 시간의 부침을 온전히 받아내지 못한 다칭전쓰는 18세기 무렵에 새로 지어진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원 안에는 구름누각과 기둥, 대들보를 화려하게 색칠한 목조건물들이 있고 나머지 공간은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한 정원으로 채워져 있다. 때는 마침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는 무렵, 정원 곳곳에는 희고 붉은 꽃들이 목화솜처럼 봉우리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지금 한가롭게 나무 난간에 앉아 바둑을 두는 노인들처럼 옛 시안에 살았던 이방인들 역시 그들만의 무료함, 혹은 그들만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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